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 헤롯
사도행전 12:20-24
본문에 나오는 헤롯은 대헤롯 왕의 손자 아그립바 1세입니다. 대헤롯은 아켈라오, 안디바, 빌립 셋 아들을 분봉 왕으로 세워 유대를 나누어 주었지만 형제간에 서로 다투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손자 아그립바 1세가 유다와 사마리아까지 다스리는 유대 왕이 된 것입니다. 아그립바는 이렇게 큰 세력을 가졌지만 실제로는 왕 위에 로마 황제가 있습니다. 로마 황제로부터 파송을 받은 총독 빌라도가 유대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헤롯은 유대 왕이지만 로마 총독 빌라도의 눈치를 보아야 했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유대가 소동이 없는 정치적인 평화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황제의 눈치를 보는 헤롯은 유대인들이 아무 일도 없이 조용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정치인들에게는 여론조사에 민감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문재인 대통령이 큰 소리 치는 것은 여론조사에 70-80% 이상 지지를 받기 때문입니다. 노인연금을 비롯해서 유아복지와 청년일자리를 위해 엄청난 예산을 풀었습니다. 군인들의 월급도 80% 이상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높은 지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을 보고 장차 우리나라가 빚더미에 망할 것이라고 염려를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백성들의 높은 지지도만 믿고 눈도 끔쩍하지 않습니다.
헤롯은 유대인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얻으려고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헤롯이 믿음이 좋아서 종교적인 목적으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로부터 환심을 얻기 위해서 성전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이 건축되어지는 것을 보고 좋아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이 어떠하니이까”(막13:1)라고 하며 예수님께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며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조용하지 않았습니다. 명절에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심으로 온 유대인들은 호산나 예수님을 찬양하며 따르는 것입니다. 이를 지켜 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잡아 십자가에 달아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죽어 무덤에 장사까지 지냈습니다. 그러면 예루살렘이 조용해 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죽은 예수님이 사흘 만에 살아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에 성령 강림으로 제자들이 성령 충만하여 예루살렘 거리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여 세례를 받고 모여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를 지켜 본 헤롯은 교회를 해치기 시작했습니다. 헤롯은 야고보를 죽였습니다. 야고보가 의인이냐 악인이냐, 무슨 죄를 지었느냐 안 지었느냐를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한 사람이 죽어서 온 백성이 조용하다면 죽이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죽이므로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에게 까지도 호감을 사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아무 이유 없이 야고보를 목베어 죽인 것입니다.
야고보의 죽음은 이해 할 수 없는 죽음입니다. 너무나도 예매한 죽음입니다. 야고보의 죽음과 세례 요한의 죽음은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옥에 갇힌 베드로에게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옥문을 열고 출옥을 시켜 살리셨다면, 야고보도 얼마든지 죽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세례 요한의 죽음입니다. 헤롯의 부정적인 아내 헤로디아의 말 한 마디에 세례 요한이 목베어 죽임을 당하였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세례 요한의 죽음 역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마14:8). 그러나 우리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의인들의 죽음이지만 하나님의 깊은 뜻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헤롯이 야고보를 죽였더니 아니나 다를까 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매우 기뻐하는 것입니다(3). 그래서 헤롯은 한 사람 죽이니까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 한 사람 더 죽이면 더 좋아하겠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적인 인물인 베드로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베드로를 잡아 죽이려고 하니까 마치 그날이 무교절이라 다음 날 죽이려고 옥에 가두었습니다(3).
그런데 그날 밤에 베드로는 깊은 옥에서 천사의 도움으로 옥문을 열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보통 사건입니까? 그런데 헤롯은 베드로가 옥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별로 문제를 삼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를 놓쳤구만’, 이렇게 생각만 할 뿐 그 이상의 생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헤롯은 신앙적인 이해가 없는 사람입니다. 적어도 양심이 있다면 천사가 베드로를 옥에서 데리고 나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두려워하고 떨어야 해야지요.
의인을 죽였는데 무사할까? 죄 없는 사람을 목베어 죽였는데 괜찮을까? 이만큼의 두려움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를 다름 아닌 천사가 옥문을 열고 데리고 나간 것을 알았을 때, 어떻게 해서 베드로가 나갔는지에 대한 것을 알아 볼 생각은 하지 않고, 아무 죄도 없는 파수꾼들만 죽이고 말았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하나님의 신비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셨다 라고 하는데 헤롯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냥 있습니다. 천사 따위는 관심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비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무관심한 사람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뜻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헤롯은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고민도 없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에게는 가장 두려워하고 가장 무서워해야 할 때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무감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옥에 갇힌 베드로를 풀어 데리고 나갔다면 그게 사실인지를 알아보고 사실이라면 그 다음에는 또 무슨 일이 있을까를 생각할 줄 알아야 올바른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헤롯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롯은 전혀 고민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헤롯입니다. 이러한 헤롯에게 이제 결정적인 시간이 왔습니다. 심판의 시간이 온 것입니다. 헤롯에게 심판은 가난과 질병의 고통이 주어지는 게 하니라 오히려 영광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생각해야 합니다. 불의한 사람이 형통할 때, 불의한 사람이 잘될 때에 그것을 성공이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축하할 일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불의하고 죄를 범하고 있을 때라면 오히려 실패를 하게 되고, 병이 들어야 되고, 일이 잘못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의 나쁜 길을 가지 못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헤롯을 심판하십니다. 헤롯의 심판은 가난과 역경과 실패가 아니라 영광이었습니다. 형통이었습니다. 헤롯에게 심판의 도구로 영광이 주어졌습니다. 여기서 헤롯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거든 때가 온 줄로 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한 곳에 있어서는 아니 될 사람이 있다는 것은 심판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공해서는 안 될 사람이 성공했다면 망할 징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헤롯은 옥을 지켰던 파수꾼들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고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갔습니다(19). 20절에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일로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에게 노여워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노여워하다’란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적대감을 품는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모종의 정치적 음모를 꾸미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무엇 때문에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했는지는 알 수는 없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항구도시입니다. 예루살렘에 필요한 식량과 필요한 모든 것을 수입할 때 항구 도시인 두로와 시돈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럴 때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헤롯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아서 노여워했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도 헤롯으로부터 식량공급을 받고 있기 때문에 부득불 헤롯과 화친할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마치 헤롯이 가이사랴에 왔다는 것을 알고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왕의 침소를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헤롯과 화목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왕의 침소를 맡은 신하라면 왕의 생명을 책임질 만큼의 왕으로부터 신의가 있는 신하입니다. 그래서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헤롯의 침소를 맡은 블라스도의 힘을 빌려 헤롯과 화해하고자 했습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의 청을 듣고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아 앉아 연설을 하였습니다(21). 헤롯이 택한 날은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의 생일 축제 다음 날이라고 합니다. 로마 황제의 생일을 축하는 큰 잔치에 로마 황제는 없고 황제가 앉을 자리에 헤롯 자신이 않았습니다. 헤롯의 일장 연설이 끝났을 때 백성들은 일제히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22)고 외쳤습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비롯한 백성들이 헤롯의 연설 소리가 ‘신의 소리’라고 극한 아첨을 한 것입니다. ‘당신은 사람이 아닙니다. 신입니다. 신으로 섬기겠습니다’라고 외친 것입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헤롯은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아첨하는 사람은 대개 이런 식으로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북한에 김정은은 걸핏하면 광장에 수십만 명을 모아놓고 행사를 자주 치룹니다. 무대 차를 타고 무리들 앞을 지나며 손을 흔들면 무리들은 ‘김정은 만세’라고 우레 같은 박수와 함성을 지릅니다. 김정은은 이것을 보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합니다. 그래서 김정은은 신이 되는 것이고 최고의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신이다’하는 것입니다. 헤롯은 온 백성들로부터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는 외치는 소리를 들었을 때 신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헤롯이 유대인의 왕이라면 그런 아첨의 소리를 들었을 때 마땅히 백성들을 꾸짖어야 했습니다. 베드로가 로마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갔을 때에 고넬료가 온 집으로 더불어 베드로 앞에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절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는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고 하며 황급히 잡아 일으켜 세웠습니다(행10:26). 헤롯도 이와 같이 했더라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은 자기를 신이라고 치켜세우는 사람들 앞에서 오히려 크게 기뻐했습니다. 무리가 신이라고 추앙하며 아첨하자 헤롯은 이들의 칭송을 흡족히 여기고 그 영광을 자기가 받았습니다. 헤롯은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꾸짖지도 아니하고 그것을 오히려 자기가 받아들이고 교만하게 마치 진짜 자신이 신이 된 것처럼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앉아 있는 사람을 보고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걸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신이라고 하며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를 지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 본 바울과 바나바는 옷을 찢으며 무리들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행14:15)고 소리 질러 제사를 못하게 하였습니다.
헤롯도 이와 같이 했어야 옳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영광을 자기가 받았습니다. 그로인하여 헤롯은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곧 바로 주의 사자가 헤롯을 쳤습니다. 헤롯은 벌레에게 먹혀 죽었습니다(24). ‘주의 사자가 치니’란 말은 옥에 갇힌 베드로에게 ‘주의 사자가 나타나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7)라는 말과 같은 의미의 말입니다. 천사가 동일하게 베드로를 치고 또 헤롯을 쳤지만 하나님을 거역하는 헤롯에게는 죽이기 위해 쳤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베드로에게는 살리시기 위해 치셨습니다.
주의 사자가 치므로 헤롯은 벌레에게 먹혀 죽었습니다. 어떤 벌레에 어떻게 먹혀 죽었는지 알 수 없지만 외경 마카비서에 의하면 배에서 벌레가 나오고 그로 인해 악취가 날 정도로 살이 썩어 들어가 죽었다고 합니다(마카비2서 9:9). 헤롯은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어야 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자기가 그 영광을 받았기 때문에 무서운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헤롯이 죽은 후에 초대교회는 다시 안정을 찾았고 복음은 더욱더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흥왕하여지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더욱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의인과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 세상 마지막 날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대로 즉각적인 보응을 내리기도 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어야 할 유대 왕 헤롯이 하나님께 돌릴 영광마저 자신에게 돌리므로 무서운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가 돌려드리는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영광을 돌립시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리시는 은혜와 축복을 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