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의 겨울은
조용한 듯하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을 붙잡는 서늘함이 있었다.
얼음이 채 녹지 않은 강가를 걸을 때
바람은 얼굴에 얇게 베어들었고
그 차가운 느낌이 오래 지속되었다.
브라티슬라바의 회색빛 하늘은
마치 도시 전체를 하나의 숨결처럼 감싸고 있었다.
구시가 골목은 낮은 건물들 사이로 길게 뻗어 있었고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조차 벽에 부딪혀
금세 사라졌다.
골목 끝에 세워진 작은 가로등 불빛이
한순간 흔들렸다가 고요 속에 잠겼다.
그 불빛을 바라보는데
이 도시에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어두운 평온이 자리하고 있는 듯했다.
스피슈 성으로 향하던 오후
안개가 천천히 내려앉아
성벽의 윤곽을 흐리게 감추고 있었다.
그 아래 넓게 펼쳐진 들판도
색을 잃은 채 무거운 정적만을 품고 있었다.
바람은 일정한 속도로 성벽을 스쳐 지나갔고
그 흐름 속에 오래된 시간들이
한꺼번에 묻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차갑고 깊은 침묵이
발끝 너머로 퍼져 나갔다.
반스카 슈티아브니차의 오래된 길을 올랐을 때
석조 건물 사이로 퍼지는 냉기와
좁은 골목에 고여 있는 그림자가
이상하리만큼 단단하게 느껴졌다.
카페 창문 너머의 희미한 불빛 하나가
겨우 사람의 온기를 보여주는 듯했고
그 안과 밖의 온도 차가
가슴 어딘가에 차갑게 스며들었다.
코시체의 밤 거리에서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다가
금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고딕 성당 위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은
튀지 않고 곧바로 어둠에 녹아들었다.
그 바람 사이로
말하지 않은 감정들이
조용히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 나라를 걷는 동안
뭐라 이름 붙이지 못할 감정이
내 안쪽에서 얇게 떠올랐다가
차갑게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가볍지도 않지만 무겁지도 않은
부유하는 온도 같은 것.
슬로바키아의 풍경은
그 감정을 천천히 따라오며
흔들림 없이 깊어졌다.
도시도 사람도 말수가 적었고
그 적막함이 오히려 마음을 붙잡았다.
흩어지던 생각들이
서늘한 공기 속에 가만히 가라앉으며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워지는 순간들이 이어졌다.
슬로바키아의 겨울은
그런 방식으로 마음 깊은 곳을 흔들었다.
크게 울리지 않고
화려하게 움직이지도 않지만
발걸음과 풍경 사이에 스며드는
차가운 온도가 오래 남았다.
그곳의 고요는
지워지지 않는 잿빛의 한 줄처럼
지금도 내 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