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 독립에 성공한 페루의 잉카 콜라
-한국은 고유 전통문화도 버린 나라-
코카콜라 시장을 누른 페루의 잉카콜라
전 세계 시장에서 유일하게 자국 콜라로 시장을 지배하는 폐루에는 황금색깔의 잉카콜라가 독자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어 코카콜라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페루에서만큼은 코카콜라가 폐루 국민에게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색상조차 황금색을 띄우며 그들만의 고유한 음료로 정착하여 과거 잉카문명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지켜 나가고 있다.
결국 코카콜라도 잉카콜라에 자본을 투자하여 공동 주주로 사업에 동참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IMF 구제금융 체제가 시작된 1998년 "콜라독립"을 선언하며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광고 문구로 국민들의 동참을 호소한 제품이 있다.
1998년 4월 1일 대구에 위치한 범양식품은 '콜라독립 815'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산 콜라를 출시하였다. 당시 대한민국의 콜라 시장은 코카콜라, 펩시콜라 등 외국산 콜라가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815콜라는 1999년 콜라 시장 점유율을 13.7%까지 끌어올렸다.
위기 의식을 느낀 코카콜라는 대대적인 물량 공세로 가격인하를 통한 시장지배를 가속화하고 미국 상무성등의 압력과 국내 정치권의 냉대와 언론의 무관심등으로 콜라의 독립선언은 6년만에 쓸쓸히 막을 내렸다.
코카콜라는 국내시장에 경상도 범양, 호남권의 호남식품,충청권, 수도권등 4개 권역에 콜라의 제조 판매권을 주었으나 2000년 초반부터는 코카콜라 본사가 한국의 제조권한을 철회시키고 직접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계열사인 건영식품이 부도가 나면서 범양식품도 2003년에 연쇄 부도를 내고 2004년에 파산하였다. 향후 후속 상품의 출시 계획을 포함한 10년간의 영업 운영 안까지 작성하여 회생을 꾀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2005년 3월 30일에 범양식품의 법정관리 폐지가 결정되어 파산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
품질에서는 콜라의 입맛에 길들여진 국내시장에서 어느 정도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맛과 엇비슷한 수준으로 끌어 올렸으나 탄산음료의 핵심인 탄산가스량을 고정시키지 못하고 조절기능에서 소비자의 입맛을 길들이지 못하고 콜라 독립은 막을 내렸다.
당시 범양은 콜라의 독립선언과 함께 샘물시장에도 진출하여 경북 상주 화북면에 건영식품(96년1월 허가)을 설립하고 먹는샘물 가야라는 브랜드로 (0.5/1.0/1.5/2.0/18.9리터) 샘물사업을 하였다. 샘물매출은 연간 99년 1만6천톤에 34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2002년에는 3만1천톤에 43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815콜라와 함께 성장을 지속했다.
건영식품의 당시 사장 내외와 필자(김동환경영학박사)는 프랑스 에비앙등 유럽의 음료시장을 견학하면서 미래의 물산업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세계시장의 변화를 탐색하기도 했다.
나고야선언 이후 점차 부각되고 있는 한국의 종자산업마저 국제경쟁력을 잃고 있는 현실에서 식품의 자주독립에 대한 경제계의 사회적 확산운동이었던 우리나라의 콜라 815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렇게 이별을 고했다.
지금 세계 10대 종자 기업은 미국이 지배하고 있으며 스위스,프랑스,독일,일본,덴마크 기업이 선도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상하수도등 기반시설을 지원하고 있는 잉카제국 페루에서 코카콜라의 장벽을 깨고 황금색 잉카콜라가 식품거리를 장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전율이 흐르는 것은 왜 그럴까.
‘오징어게임’‘기생충’‘미나리’‘방탄소년단’‘블랙핑크’등 세계시장을 강타한 영화와 한류아이돌등은 경제적 가치는 물론 세계에 한국문화를 알리고 한국의 과거와 어제와 오늘을 전달하는 충실한 매개역할을 했다.
우리나라가 우리것을 되살려 세계 시장에 첫 선을 보인 것은 88올림픽 당시 개막식에서 너른 경기장을 달리던 굴렁쇠였다.
이어령선생의 아이디어가 세계인들의 가슴을 굴러가게 한 사건 아닌 사건이다.
우리는 과거 조선시대까지 중국문화에 젖어 있었다면 해방이후에는 미국문화에 함몰된 나라였다.
오징어게임에도 잘 나타나 있듯 딱지치기,자치기,재기차기,윷놀이,땅 따먹기,말타기,모래집짓기,줄넘기등은 골목길 아이들의 하찮은 놀이로 여겨왔다.
지각있는 인사들은 멸종되어가는 우리의 놀이문화를 재생하고 우리만의 독특한 놀이를 개발보급하자는 애국적 운동도 있었으나 정치권은 어느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막걸리는 서민층의 술로 퇴색되어가고 양주나 양담배가 권위와 경제적 부의 상징으로 여겨온 우리시대의 쓰디 쓴 자화상이다.
한국의 전통 자개상
,고가구나 도자기보다는 유럽에서 건너온 서양의 장식장들이 권위의 상징으로 안방을 독차지했다.
선진 외국들을 다니다 보면 그들만의 정통적인 구두공,유리공예,목공예등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가계를 이어오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정치권이나 통치자들이 우리것의 위대한 가치를 해방 70여년만에 문화계의 울림으로 되돌아보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럽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우리것을 무수하게 스스로 짓밟아 버렸다.
무명옷이나 한지,무명기저귀,짚신,옻칠,자개등은 환경측면에서는 자연으로 회귀하는 친환경적인 생활용품이다.
잉카문명의 발상지 페루에서 코카콜라를 누르고 잉카콜라가 시장을 지배하는 모습에서 상대적 기쁨과 쾌감을 맛본다. 가슴 아픈 대리만족이다.
(환경경영신문, 환경국제전략연구소 김동환소장 경영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