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병원은 어디 가나 환자들로 붐빈다. 입원하려면 짧게는 며칠씩, 길게는 몇 달씩 기다리기 일쑤다. 입원료가 하루 1만원 이하인 다인실(多人室)은 그야말로 초만원이다. 응급실은 입원 대기 환자들로 항상 북새통이다. 그만큼 환자들이 대학병원으로 집중되고 있다.
그중에는 감기나 단순 고혈압 등 굳이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될 환자들도 포함돼 있다. 동네의원이나 중소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진료비가 더 저렴한데도 상당수가 기어코 대학병원을 고집한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교수급 의료진에 대한 신뢰와 선호가 크다. '같은 전문의라도 대학병원이 아무래도 낫겠지' 하는 생각이다. 가격도 대학병원에서 2만~3만원이면 진찰을 받을 수 있다. 건강을 위해 그 정도는 투자할 만하다는 것이 중산층의 인식이다. 예전과 달리 그다지 불편하지도 않다. IT기술의 발달로 예약, 검사, 결과 확인 등이 시간에 맞춰 착착 돌아간다. '3시간 대기, 3분 진료'에 대한 원성은 이제 옛말이다. 주차 대행까지 해주는 곳도 생겼다. 친절 서비스는 기본이다.
대다수 환자가 만성질환자라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비만·고혈압·당뇨·고지혈증·통풍 등 만성질환 한두 가지를 가지고 있다. 한 분야 전문의 진찰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 과를 돌아다녀야 할 상황이다. 예를 들면 당뇨병 환자는 내분비내과·안과·정형외과 진료가 필요하다. 단순히 배가 아파도, 다리가 저려도, 왜 그런지 복합적으로 뒤져봐야 한다. 이들이 대학병원 당뇨병센터를 찾는 이유다. 이런 곳에서는 다양한 질병 관리 교육도 제공되니 환자들로서는 구미가 당긴다.
의사들의 진료 방식에도 변화가 왔다. 의료 영상이나 진단 장비의 발달로 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청진기나 손으로 만지는 진찰의 정확성을 이제 아이로니컬하게도 의사들도, 환자들도 미더워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결국 대학병원 집중 현상은 의료 소비자들의 질병 구조가 바뀌고, 의료서비스가 날로 고도화되고 다원화된 결과다. 1인 의사 진료 방식의 소규모 동네의원이나, 어정쩡한 중소병원은 이미 의료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다. 그 사이 대학병원은 밀려오는 환자들로 점점 더 대형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고착화할 경우, 우리는 고(高)비용 구조의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중증(重症) 환자 처치를 위한 의료 자원의 효율적 활용에도 문제가 생긴다. 동네의원과 중소병원의 기능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소규모 의료기관은 네트워크화하고, 군집화(群集化)해서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대학병원과 공동 진료 협약을 통해 중증과 경증(輕症) 질환에 따라 유기적인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 중소병원은 질환별로 특화하거나 전문병원으로 변신해야 한다. 보건소는 질병 관리 교육을 활성화하여 만성질환자들의 욕구를 지역사회에서 흡수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의원→중소병원→대학병원 순으로 의료전달체계를 아무리 까다롭고 엄격하게 한들, 의료 소비자들의 종착역은 대학병원일 수밖에 없다. 대학병원이 '공룡'이 된 이유는 의료 서비스 공급 체계의 실패이지 절차의 부실(不實)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