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의 명상센터 경험담 / 일중 스님
“어떻게 해야 집중·관찰 잘하나요.”
스리랑카서 첫 경험한 위빠사나, 완벽한 깨어있음 요구된 시간
열악한 환경에 심신 힘들었지만, 명상 덕에 마음 기쁘고 감사해
1990년 스리랑카에 도착한 지 두 달쯤 됐을 무렵부터 위빠사나 명상을 시작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위빠사나 명상에 관심이 있었기에
명상센터를 찾아갔다. 콜롬보에서 버스로 한 시간 반쯤 가면,
넓은 숲속에 칸두보다 국제명상센터가 있었다.
1956년 불기 2500년 붓다자얀띠 기념으로 개원했는데,
마하시 사야도 전통을 따르는 위빠사나 명상센터였다.
이번 글에서는 초기불교명상을 논하기 전에 먼저 필자가
스리랑카에서 처음 경험했던 위빠사나 명상센터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방사를 배정받고 난 후, 지도스님께 명상주제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초심자이기 때문에 행선 30분, 좌선 30분을 번갈아가며 하라고 했다.
행선(걷기명상)은 한발 한발 걸을 때마다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이름을 붙여가며 마음을 챙기고, 좌선할 때는 배의 움직임을 관찰하라고 했다.
숨을 들이쉴 때는 배가 나오고, 숨을 내쉴 때는 배가 들어간다.
그때마다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이라는 배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수행이었다.
오전 4시에 일어나서 오후 10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9시간 정도 좌선과 행선을 했다.
번뇌는 수시로 찾아와 의식의 주변에서 계속 맴돌았지만,
30분 행선하고 좌선하면 몸과 마음이 착 가라앉아 깊은 바닷속에 앉아 있는 것처럼 고요했다.
오후 4시가 되면 매일매일 지도스님을 만나 면담을 했다.
영어 실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면담 시간마다 질문을 참 많이 했다.
“집중을 잘하려고 노력하는데 마음은 왜 자꾸 달아나나요?”
그러자 지도스님은 “바람은 왜 부는가?”라고 질문을 던지셨다.
“자연적으로 붑니다”라고 대답하자 “마음도 그러하다. 자연적이다.” “
그렇다면 마음의 본질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하자
스님은 “마음은 끊임없이 달아난다.
한 대상에 머물지 않고 계속 변하는 것이 마음의 본성이다”라며
언어가 잘 소통되지 않기 때문에 설명하기 어려운 주제라고 하셨다.
“그럼 어떻게 하면 집중과 관찰을 잘하나요?”라고 또 질문했더니
스님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시며 “하룻밤 새 좋아지지 않는다.
나무가 차츰차츰 커가는 것처럼, 명상도 조금씩 조금씩 발전할 것이다”라고 했다.
질문이 너무 많았던 것일까?
스님은 오로지 배의 ‘불러옴, 꺼짐’에만 집중하며 관찰하고
다른 곳엔 신경쓰지 말라고 하셨다.
무엇인가 보았을 때는 ‘보인다’고, 생각할 때는 ‘생각한다’고 알며,
소리가 들릴 땐 ‘들린다’고 분명하게 알라고 했다.
상황이 바뀌어 전개될 때마다 그 변화를 명확하게 관찰하고 아는 것이
위빠사나 수행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하루에 1시간씩 좌선하고 30분 경행하라며 좌선 시간을 늘려주셨다.
한번은 “호흡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좀 엉뚱한 질문을 했더니
호흡은 전혀 신경쓰지 말라고 하셨다. 지금 하고 있는 명상은 호흡수행이 아니라고 했다.
다만 배의 일어나고 사라짐만 깨어있는 의식으로 알아차리며 관찰해야 한다는 것!
정말 얼마나 정성스럽게 집중하고 관찰해야만 마음이 도망가지 않는지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스럽게 주의를 기울였다.
한 찰나도 방심해서는 안 될 완벽한 깨어있음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센터에 머무는 동안 필자가 머물렀던 작은 방은 우기철 곰팡이 냄새로 습습했고,
창문이 한 개뿐이어서 답답했다. 삐그덕거리는 낮은 침대, 거미줄이 처진 천장,
도마뱀이 기어다니는 벽, 이런 곳에서 마음 붙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명상하며 공부하기 때문에, 스승님이 매일 경책해주실 것이기 때문에
많이 힘들고 피곤해도 마음은 기쁘고 감사했다.
일주일을 명상센터에서 보내면서 필자는 복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루의 모든 시간을 명상하면서 보낸다는 것이 어찌 쉽게 만나질 일이겠는가?
어찌 이런 수행처에 앉아 부처님처럼 명상할 줄 알았으랴.
부처님 제자라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필자는 충분히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때 이후 필자는 여러 전통의 수행법들을 익혔고,
현재는 대학과 명상원에서 여러 전통명상법을 가르치고 있다.
일중 스님 동국대 강사
2022년 7월 20일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