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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은 존재의 진리를 가장 먼저 듣는 사람 선지자나 무당 같은 존재
철학카페에서 시읽기’ 낸 대중철학자 김용규
최준석 기자
‘철학카페에서 시읽기’의 저자 김용규씨를 12월 5일 만났다. 대중철학자로 불리는 김씨는 ‘철학카페’ 시리즈로 인문서 독자들에게 알려져 있다.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철학카페에서 영화읽기’를 내놓은 바 있다. 철학소설 ‘알도와 떠도는 사원’ ‘다니’를 낸 뒤 한국의 움베르토 에코란 이름을 얻기도 했다. 신간 ‘철학카페에서 시읽기’를 접하고, 기자는 그의 다른 책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도 언젠가 집에 사두고 읽지 않은 걸 깨달았다. 올 초에 접했던 두툼한 책 ‘서양문명을 이해하는 코드 신’의 저자인 것도 알았다.
김씨를 만나기 위해 ‘시읽기’를 낸 출판사(웅진지식하우스)를 통해 저자와 접촉했다.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자택에서 시간을 내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인터뷰에 앞서 김용규씨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으나, 그 흔한 언론 인터뷰 기사 한 건 확인할 수 없었다. 저서에 소개된 본인 자료 외에는 거의 없었다. 책은 김씨에 대해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과 튀빙겐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라고만 적었고, 활동에 대해서는 ‘인문학과 철학의 풍부한 재료를 맛깔스럽게 풀어내며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해 인문학의 연금술사로 불린다’라고 했다. 인터뷰 당일 웅진지식하우스의 윤동희 편집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선생님은 휴대폰이 없고, 댁의 전화도 보통 내려놓고 계신다”고 말했다. 김씨에 대해 더욱 궁금증이 커졌다. 전화도 내려놓고 사는 철학자라~.
청파동 주택가의 1970년대에 지은 2층 양옥집. 거실에 들어가니 베토벤의 교향곡이 들려왔다. 거실 한쪽 테이블에 찻잔과 큰 홍시가 두 개 놓여 있었다. 1952년생인 김씨는 “사람을 안 만나고 산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출판사 사람이나 가족 아니면 안 만난다”고 말했다.
- 말씀을 들으니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생각난다.
선생님의 이전 책(‘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을 읽어보면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소설을 쓰면서 외부와 접촉도 안 하고, 외부 소음 차단을 위해 방을 코르크로 밀폐했다고 되어 있었다. “난 그렇게 큰 뜻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독일에서) 1992년 귀국, 시간강사 생활 5년을 했는데 적응을 잘 못했다. 집사람은 사회생활에 잘 적응해서 ‘내가 아이 키우고 살림할게 당신이 사회생활해라’라고 했다. 그런 생활이 길어야 2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다. 자의 반 타의 반, 한번 기회를 놓치니 사회에 나아갈 기회가 없었다. 전에는 간혹 일반인에게 강의도 하고 했는데, 나이도 먹고 하니 힘들어 그것도 그만두고, 집에만 있다 보니 그렇게 됐다.”
- 어떤 분인지 공개된 자료가 너무 없었다.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데, 사람을 안 만나고 지내니까.”
- 대학교는 어디.
“동국대 철학과를 다녔다. 동국대 갈 때는 불교에 관심이 많았다. 탄허 스님과 친분도 있고 해서 갔다. 정작 공부하게 된 건 서양철학이었다.”
- 그리고 나서 독일로 유학갔나.
“1982년 독일에 갔다. 프라이부르크대학은 신학과 철학이 강하다. (철학자) 하이데거가 그 대학의 교수, 총장을 지냈다. 나치 때 총장을 하다가 잘못된 것을 알고 그만두고 산으로 들어갔다.”
- 대중에게 철학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려 손을 내미는 사람이 별로 없다. ‘철학은 어렵다’가 일반의 생각이다.
“철학자들이 일부러 어렵게 하고자 해서가 아니라 전문용어를 사용하니까 그렇다. 전문용어는 개념을 분명히 하고 싶어 사용한다. 예를 들어 하이데거는 인간 대신 ‘현존재(現存在)’라는 말을 쓴다. 그는 인간이라는 말이 다의적으로 쓰이고 선입견이 있어 의미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쓴다. 철학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오해나 오염 없이 정확히 전달하고자 한다.
나처럼 철학을 대중화하고 싶은 사람들의 위험이 그거다. 전문용어를 일상용어로 풀어 전달해야 대중이 알아듣기 때문에, 그러려면 정확한 개념을 그대로는 전달 못하고 아무래도 오해의 여지, 부정확한 전달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일반인에게 전할 수만 있다면 해야 한다.
철학이라는 것이 본래 시작할 때부터 지금처럼 학교 안에 학구적으로 갇혀 있었던 것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아고라나 길에서 지나가는 젊은이를 붙잡고 ‘자네 어디 가는가?’라고 말을 붙이며 철학이 시작했다고 보면, 결국 철학이라는 것은 삶에 도움을 줘야만 한다. 약간의 개념의 부정확성 또는 오해의 여지 이런 것들을 감안하고라도 철학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이 옳지 않은가 생각한다.”
- 책은 그간 몇 권을 냈는지.
“11년간 15권 냈다. 철학만 얘기하면 사람들이 딱딱하고 힘들어하니 영화를 갖고도 얘기해 보고 소설하고도 묶어 보고 이번엔 시로 냈다. 한때는 소설도 써 보고 철학을 갖고 이렇게 저렇게 버무려 봤다.”
- 작년 12월에 낸 ‘서양문명을 이해하는 코드 신’은 어떤 책인가.
“신학도 철학처럼 대중화 해보자 해서 썼다. 중세 때 라틴어 성경이 번역되기 이전에 신부들이 일반인이 성경을 모른다는 점을 이용해서 면죄부를 만들어 판다든지 못된 짓을 많이 했다. 자기들 편리하게 이야기하고 성경에 쓰인 것처럼 말했다. 이를 막기 위해 루터가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성경을 누구나 보지만 해석은 마음대로 한다. 가톨릭은 조금 덜하지만, 개신교는 목회자 나름대로 해석하여 사실은 비성경적인, 때로는 반성경적인 일이 너무 횡행하고 있다. 앞으로 다시 한번 종교개혁이 있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보편적인 성경해석을 일반 신도에게 알리는 게 필요하다.
우리나라 교회들이 정통신앙을 일반 신도에게 알린다면, 일부 목회자들이 편의에 따라 해석해서 이상한 짓을 못할 거라 생각한다. ‘신’을 낸 건 지난 10년 동안 철학을 대중화하는 데 노력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갖고 신학에도 시도해본 것이다. 신학을 보면 아주 전문적인 서적, 간증이나 경험담 등 가벼운 에세이는 있고, 그 중간에 정통 신학이론을 일반 신도가 볼 수 있도록 한 책은 없다. ‘신’이 800쪽인데 총 4권 분량으로 기획이 됐다. ‘신’ 다음에는 ‘이성’ ‘죄와 구원’ ‘사랑과 생명’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
- 출간 당시 서평이 좋았다.
“거의 모든 신문이 서평을 크게 다뤘다. 서울, 지방 포함해서. 기독교계가 큰 관심을 보였다. 소망교회 김재철 목사님이 인터넷에서 구입, 부목사 20명에게 자기 돈으로 사서 돌리고 읽어보라 하고 내게 강연 해달라 해서 강연도 했다.”
- 박사학위는 무엇을 썼나.
“플라톤이 전공이다.”
- ‘철학카페에서 시읽기’를 보니까, 기자처럼 철학 공부도 안 하고, 시도 안 읽던 사람들에게는 입문서랄까, 안내서로 좋다고 생각했다.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얘기로 시작을 했는데 시의 세계로 문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참 좋았다. 시의 문을 열어준 뒤 시에 나오는 사랑 얘기, 인생, 외로움, 현대사회 소비특성 등 이런 순으로 풀어나갔다. “문학에서 시를 다루는 분들은 시 안에 들어있는 시인의 숨은 의도 같은 것을 밝히려고 한다. 이거 말고 해석이 있다.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해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예를 들어 ‘이건 젓가락이다’라고 안다. 그럼 젓가락을 이해하느냐? 젓가락이 있는데 쓸모를 안다는 것, 음식을 집어먹는 도구라는 것까지 알아야 이해한다고 할 수 있다. 또 이해한 다음에 자기 처지에 맞게 그 이해를 다시 한번 해야 한다. 만일 상인이라면 젓가락을 상품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해석이란 것은 대상의 쓸모를 ‘이해’하고 그것을 자기 처지에 알맞도록 ‘다시 한번 이해’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해석을 ‘자신의 존재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폴 리쾨르라는 학자가 하이데거의 해석이론을 문학작품에 적용할 때 ‘우리가 문학작품을 해석한다는 것은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새로운 존재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예를 들어 입센의 ‘인형의 집’이 나왔을 때 아내, 엄마로서의 존재에 그쳤던 여성이 집을 뛰쳐나갔고, 여성도 인간이라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갈 길을 찾는 것이 문학의 해석이다.
이번의 책 ‘시읽기’도 내 의도는 시 안에 들어있는 시인의 은밀한 의도, 시인이 정말 무슨 얘기를 하려 했을까가 아니다. 시를 읽고 그를 통해서 우리의 새로운 존재가능성, 일상용어로 하면 갈 길, 살아갈 길을 찾자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시인들은 굉장히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 있다. 마치 예민한 악기가 자신이 내는 선율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모르고도 울림을 내고 아이들이 때로는 말 배울 때 뭔지 모르는 말을 하듯이 한다. ‘시읽기’의 마지막 단원에서 시에 대한 하이데거의 이론을 갖다가 시인이란 이런 사람들이라고 규명을 했는데, 그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말이 진짜 무언지 잘 모르고도 시를 쓰는, 일종의 무당이나 선지자나 예언자처럼 그냥 직관으로 받고 느끼는 것 같다. 이상의 ‘오감도’ 같은 게 한 예다.”
- 책 속에 나오는 김수영 시인의 1967년 작품 ‘Vogue야’를 읽고 놀랐다. 그 시대에 오늘과 같은 소비시대를 예감하는 감수성이 나올 수 있었는지.
“김수영 시인 대단하다. 1967년이면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막 시작할 때다. 근면, 검소 교육시키고 할 때인데, 보그 잡지를 보고 1990년대부터 한국에서 진행될 후기 자본주의의 엄청난 마성, 그 두려움을 시인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시인들이 무당 같고 선지자 같다고 했다. 자신들이 하는 얘기가 무언지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김수영 시인은 오늘날 사회를 전혀 예측 못했을 거다. 근데 직감적으로 느낀 거다.
하이데거는 역사적인 어떤 토양, 배경,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땅, 숨 쉬고 사는 삶의 터전을 말한다. 그것으로부터 시가 저절로 우러나온다고 했다. 그건 고요한 울림으로 들리는데 제일 먼저 예민하게 듣는 사람들이 시인이라고 했다. 존재의 진리가 들려오는데 그것을 시인이 듣고 우리의 언어로 옮긴다고 했다. 하이데거는 ‘언어가 말한다’, 존재의 언어가 말하고 시인이 그것을 듣고 따라 말한다고 했다. ‘말하기는 먼저 듣기다’라는 표현을 썼다. 진리를 이야기하려면 먼저 들어야 한다는 거다. 그 후에 일상언어로 존재의 언어를 해석하는 거다.”
- 철학자와 시의 관계는 어떻게 얘기할 수 있나.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얘기한 차축(車軸)시대가 있다. 카렌 암스트롱이란 분의 ‘축의 시대’라는 책도 시중에 나와있는데, 기원전 800년에서 기원전 300년 사이 한 600년 정도가 인류 정신문화에 굉장히 특별한 시기다. 이때 인류는 정신문화의 거의 모든 기반을 닦았다. 중국의 제자백가, 인도의 부처, 이란의 차라투스트라, 팔레스타인의 이사야와 예레미야 등등 선지자들이 모두 나왔다. 이후 2000년의 동서양 문명이라는 것은 이때 나온 것들의 주석에 불과하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자신의 철학을 모두 잠언이나 경구, 다시 말해 시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다. ‘일리아드’ ‘오디세이’도 극시이다. 문화의 초창기에 동양에서도 시경이 있었다. 인류문화 초창기에는 시와 철학이 구분되지 않았다. 시와 철학이 갈라진 것은 플라톤부터다. 플라톤은 ‘국가론’이란 책에서 이상국가에서 시를 추방해야 한다고 했다. 플라톤이 생각하기에 철학의 역할까지 맡고 있는 시를 퇴출하지 않고는 철학을 올바로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한 거다.”
- 플라톤은 왜.
“그리스 사람들, 우민들을 교육시키는 것은 철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다. 플라톤은 시가 무언가를 부풀리고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고 진리를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시와 철학이 플라톤 이후로 분리되어 2000년 이상 왔지만, 다시 하이데거 이야기로 돌아가면 플라톤이 분리한 것을 하이데거가 다시 합치는 쪽으로 그의 후기 철학에서 주장했다. 존재의 진리를 시인들이 가장 먼저 안다고 했으니까. 하이데거가 계속 부르짖은 것이 소크라테스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존재론으로 돌아가야 한다, 형이상학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이다. 시인들을 진리를 파악하는 사람으로 높이 평가하는 것이 같은 맥락이다. 나는 적어도 이 책을 쓰는 동안에는 하이데거 쪽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하이데거 말대로 존재의 진리를 듣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시인이라 한다면 결국 철학자들이 하는 일도 그런 것이다. 하이데거 식으로 우리 삶의 바탕, 역사적 맥락, 여기서 무언가 우러나오는 ‘이게 진리야’ 하는 걸 듣고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시인이라면 이 사람들이 철학자나 다름없다.”
- 책에서 젊은 사람들 상대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핵심 메시지는 뭔가.
“사람은 특히 젊은이들은 가치를 위해 살아야 한다.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시대에 따라, 또 사람에 따라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가치라는 말이 매우 애매하고 광범위하게 쓰이지만, 모든 가치에는 공통점이 있다.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내가 자주 인용하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우화’가 있다.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지옥엘 가보았더니 그곳에도 음식은 많은데 사람들이 모두 자기 팔보다 더 긴 수저를 들고 있었다. 당연히 음식을 떠서 자기 입에 넣을 수가 없다. 그래서 모두가 굶주리고 살고 있었다. 천국엘 가 보아도 상황은 같더란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가 앞사람의 입에 음식을 떠 넣어주고 있었다. 모두가 배불리 먹고 살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배려받는 나를 만들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는 나를 만든다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이 같은 원리를 ‘상호주관적 매듭’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내 책에서는 포옹이 그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포옹은 다른 사람을 ‘안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안긴 나’를 만드는 형상이니까다. 이때 다른 사람은 내 가족일 수도 있고, 직장 동료나 이웃 또는 전혀 모르는 타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행복하려고 애써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방법으로, 오직 이런 방법으로만 행복해지는 거다. 또한 이런 방법을 통해서만 사회를 지옥이 아니라 천국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젊은이들에게 이런 의미에서의 가치 있는 일, 곧 먼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일을 하라고 권한다. 그러면 그들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려받고, 사랑받을 것이고, 그럼으로써 행복해진다는 거다.”
- 이 시대의 철학자들은 무얼 하고 있나? 철학자의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나.
“인터뷰 서두에 ‘학자들은 학구적인 부분에 계시고 저는 대중을 상대로 하고 두루두루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 입장에서 불만을 토로하자면 오늘날 철학은 지나치게 우리 삶과 떨어져 있다. 철학을 위한 철학에 매몰되어 있다. 일부에서는 자연과학과 손잡아 인지과학 쪽으로, 뇌신경학, 뇌과학, 유기과학, 이런 것들은 아무래도 철학적 인식론과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런 곳에 몰두해 있는 사람도 있고, 오늘날에는 진화론이 대세라서 진화생물학, 모든 것을 진화로 해석하려는 쪽에서 철학적인 도움을 열중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내가 보기에는 삶과 동떨어진 이런 철학을 위한 철학들에 매몰되어 있다. 어찌 보면 20세기 초에 언어 철학이 시작되면서 그 쪽으로 가지 않았나 생각한다.”
- 대중들과의 만남은 어떻게 갖나.
“강의를 나가는 것인데, 안 나간 지 7, 8년 됐다. 학생들이 제 강의를 별로 재미있어 하지를 않았다. 좀 재미있는 얘기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 출판사 ‘푸른그대’도 운영했다.
“2005년에 부엌에서 벗어나 보고 싶어서 그랬다. 대학에서 부르는 곳도 없고 다른 수가 없어서 출판사를 하나 해보자, 준비도 없이 시작했었다. 그 책이 ‘철학통조림’이다. 1년 후에 김영사에서 전화가 와서 ‘선생님 책 저희가 보기에는 참 좋은데 참 못 팔고 계신다’고 하며, 우리한테 넘기면 어떻겠냐고 했다. 아이고 하느님이 도왔다 했다. 그래서 책 판권을 넘겼다. 이게 2006년 이야기다. 손해는 안 봤다. 좋게 사줬다. 철학통조림 1권은 약 10만권 정도 나갔다. 4권까지 나와 있는데 꾸준히 나간다. 주로 중학생들이 본다.
출판사는 내게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책을 쉽게 쓸 수 있게 됐다. 출판사를 딱 1년 하고 내가 달라졌다. 그전에는 강의했던 것을 출판사에 원고 그대로 넘기면 그쪽에서 교정, 교열, 편집하면서 여기 좀 쉽게 써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쉽게 못 쓰겠더라. 심지어 책이 거의 완성된 상황에서 책을 더 이상 못 쓰겠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책을 내니까 초판, 2쇄에서 판매가 끝나곤 했다. 그런데 출판사를 차리고 딱 내 책을 내면서 보니까 못 고칠 데가 없다. 그 이전에는 고칠 데가 없었는데 아무리 봐도 더 쉽게 고칠 데가 없었는데 제가 출판사를 하니 못 고칠 데가 없었다. 완전히 달라진 거다. 그래서 2006년 이후에 나온 책 치고 3만권 이하로 나간 적도 없다. ‘문학읽기’는 9만권 나갔다. 지금 37쇄인가 나왔다.”
- 뭐가 달라졌나.
“관점이 달라진 거다. 지금도 출판사 편집자들은 ‘선생님처럼 쉽게 쓰는 분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 좋아하는 시인은.
“시인이란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의 진리’를 전해주는 특별한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모든 시인을 다 높이 평가한다. 개인적으로는 서정주 시인과 김수영 시인을 높이 평가하고, 최승자 시인과 장정일 시인을 특별하게 생각하며, 진은영 시인과 심보선 시인 같은 젊은 시인들을 눈여겨본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 취향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