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山門)에 기대어 / 송수권
누이야
가을산 그리매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山茶花)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매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 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뛰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매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 옴을
-월간 『문학사상』 1975년 2월호 발표
* 시 읽기
내가 좋아하는 시다. ‘빠진 눈썹,을 세 번이나 기술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시인의 누이는 나병으로 죽은 것일까?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라는 언술에서는 자연사가 아닌 잔혹사라는 생각이 든다. 그 맑디맑은 눈물을 돌팔매로 눌러 죽인 것은 아닐지...
누이야, 너는 가을 산 그늘에 돌무덤으로 누었구나. 강물이 일어서 듯, 물고기가 뛰어 오르듯, 돌이 살아서 반짝이 듯, 불쑥불쑥 생각나는 누이야. 너는 산당화 한 가지 꺾어 건네주던 추억을 기억하는가? /가을산 그리매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너는 살아 있는 듯 생생한, 그 아픈 기억을 잊지 않았겠지?
한 잔은 내가 마시고 한 잔은 너를 위해 비워둔다 누이야.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뛰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우리 비가 되어 만나리, 물이 되어 만나리.../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매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 옴을/ 나 그 못물 속에 잠겨 너를 그리워하느니, 그리워하느니...
송수권 시인의 시세계와 서정을 더 맛깔스럽게 이해하기 위하여 신라 향가 재망매가를 보자.
재망매가 / 월명사
생사로(生死路)난
예 이샤매 저히고
나난 가나다 말도
몯다 닏고 가나닛고
어느 가잘 이른 바라매
이에 저에 떠딜 닙다이
하단 가재 나고
가논 곧 모다온뎌
아으 미타찰애 맛보올 내
도 닷가 기드리고다
* 시 읽기
누이야, 내 사랑하는 누이야,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여기 있음이 두려워 '나는 간다, 나는 간다' 말 한 마디 못 이르고 갔느냐?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우리 남매 같은 나뭇가지에서 태어 낳고서도 가는 곳 모르게 떠나가는구나. 아아, 미타찰 미타찰 극락세계에서 만나 볼거나 나는 불도를 닦으며 너를 기다리겠느니... (조삼현)
첫댓글 차타르시스 , , 가슴이 뭔가 원하는데 뭔지 모르겠어요 꽉막힌 가슴 , , 근데 이 시를 읽으며 가슴이 아파오며 확트이네요 때론 이런 감정에 빠져 깊은 슬픔을 체험할때 막힌 가슴이 트이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시는 잘 모르지만 , ,
그리매 = 집게벌레, 즈믄 = 천, 이 시를 이해하지 못하겠네요. 제망매가도요.
그리매 = 집게벌레, 즈믄 = 천, 이 시를 이해하지 못하겠네요. 제망매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