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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주께서 원하시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설교본문 : 시편 51, 53편(참고, 사무엘상 26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1년 10월 31일
서 론 :
“오직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
이 말씀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에게 큰 은혜의 말씀입니다.
믿기만 하면 죄도 용서받고 하나님의 의(義)도 선물로 받을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주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이란 어떤 것을 말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사무엘상과 시편의 말씀을 통해
주께서 원하시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1 부 : 사울의 잘못된 믿음(사무엘상 26장)
1. 다시 한번 사울을 살려준 다윗
1) 십 황무지에서 깊은 잠에 빠진 사울과 그의 군사들(삼상 26:5~7)
5. 일어나 사울의 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넬의 아들 군대장관 아브넬의 유하는
곳을 본즉 사울이 진 가운데 누웠고 백성은 그를 둘러 진 쳤더라
6. 이에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물어
가로되 누가 나로 더불어 진에 내려가서 사울에게 이르겠느냐
아비새가 가로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
7.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혔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십 사람들이 또다시 다윗의 위치를 사울에게 알립니다.
지난번 엔게디 황무지의 동굴 속에서 다윗이 사울을 살려준 후
사울은 다윗을 추격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십 사람들이 또다시 사울에게 가서
자기들이 살고 있는 곳 근처에 다윗이 있다고 알려줍니다.
그러자 사울의 마음에 다윗을 향한 증오심이 다시 불일 듯하게 되어
즉시 3,000명의 정예의 군사들을 선별하여 뽑아 다윗을 추격합니다.
다윗은 십 황무지에 있다가 사울이 자기를 추격하여 온 것을 알고
정탐꾼을 보내 그 위치를 확인한 후에,
한밤중에 그의 누이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와 함께 사울의 진영으로 잠입해 들어갑니다.
들어가 보니 사울의 군대 전체가 다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2) 사울을 살려준 후 사울 앞에서 호소하는 다윗(삼상 26:8~20 참조)
(성경구절이 길어 싣지 못했습니다. 성경을 참조하십시오.)
사울의 군사들 3,000명이 모두 깊은 잠에 빠진 모습은
참으로 보기 드문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아비새는 이 장면을 보고 이번에야말로 하나님께서 저 원수를 다윗의 손에 넘기셨다고 말하며
자기가 단칼에 죽이겠노라고 말합니다.
아비새가 그런 말을 할 법도 한 것이,
전에 엔게디 동굴에서는 우연히 사울이 혼자서만 들어왔지만,
이번에는 무려 3,000명이나 되는 사울의 군사들이 모두 깊은 잠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고 아비새가 사울을 죽이려 하지만
다윗이 죽이지 못하게 하고는 사울의 머리맡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갑니다.
다윗이 건너편에 있는 산꼭대기에 서서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에게 왕을 보호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며 책망하고,
왕의 머리맡에 있던 창과 물병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사울에게 어찌하여 자기를 추격하느냐며 다시 한번 자신의 무죄를 호소합니다.
2. 사울의 고백 : 대단히 잘못되었도다
1) 다시 한번 크게 뉘우치는 사울(사무엘상 26:21)
21. 사울이 가로되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오늘 내생명을 귀중히 여겼은즉 내가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 되었도다
다윗의 손에 자신의 창과 물병이 있는 것을 보자
사울은 다시 한번 다윗에게 자신이 죄를 범하였노라고 고백합니다.
이번에는 “대단히 잘못되었도다.”하고 진심으로 뉘우치는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다윗을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이 일 후에 사울은 죽을 때까지 다시는 다윗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울의 이 고백은 진심으로 한 고백이었습니다.
2) 그러나 사울은 이 고백을 하나님 앞에서 했어야 했습니다.
사울의 고백은 너무 늦었습니다.
그나마 이 고백 역시 다윗에게만 했을 뿐입니다.
다윗보다는 하나님께 고백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이제 이 저주스러운 질투와 증오심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구했어야 합니다.
그랬다면 최소한 구원은 받았을 것입니다.
● 묵상 :
주께서 “내가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는 영적인 자각을 하는 기회를 주셨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나의 영적 상태를 알게 되는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나로 하여금 주께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신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신호를 무시하면 하나님의 강제가 들어옵니다.
시련과 고통이 온다는 말씀입니다.
그 시련과 고통마저 무시하면 사울처럼 결국 망하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 이 부분을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사무엘상 26장 큐티를 참조하십시오.
오늘 설교는 시편 51, 53편에 강조점이 있으므로
사무엘상 26장의 말씀은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합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더 자세히 알기를 원하시는 분은 사무엘상 26장 큐티를 참조하십시오.
제 2 부 : 다윗의 회개(시편 51편)
이렇게 간단하게 자신의 잘못을 후회한다는 말로 적당히 넘어가는 사울과 다윗의 회개를 비교하여봅시다.
사울과 다윗의 회개를 비교하여보면
주께서 원하시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죄를 아파하며 고백하는 다윗
1)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에(표제어)
다윗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통을 한 후,
밧세바가 임신을 하자 발각될 것을 두려워하여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최전방으로 보내 죽게 만든 일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죄를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선지자 나단이 찾아와서
다윗이 저지른 죄를 지적하며 크게 책망하였습니다(사무엘하 11~12장).
시편 51편은 다윗이 선지자 나단에게 책망을 들은 후에 지은 시입니다.
2)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1~4절)
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다윗은 자신의 죄가 항상 자신 앞에 있다고 고백합니다(3절).
죄가 항상 자신의 앞에 있다는 것은
자신의 죄가 항상 자신을 대적하며 고발한다는 뜻으로,
깊은 죄책감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죄를 두 가지나 저지른 자신의 추한 모습에
다윗은 내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괴로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3) 주께서 꺾으신 뼈들로 기뻐하며 춤을 추리이다(8절)
8.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다윗은 자신이 겪는 죄책감의 “고통을 주께서 꺾으신 뼈”라고 표현했습니다.
내장이 녹아내리고 뼈들이 다 부서지는 고통을 겪을 정도로
다윗이 죄책감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해주신다면,
주께서 꺾으신 이 뼈들로, 만신창이가 된 이 몸으로
주님 앞에서 기뻐하며 춤을 출 수 있을 텐데”
다윗은 간절함으로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2. 심령의 회복을 구하는 다윗
다윗에게 죄를 용서받는 것만큼이나 시급한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가 죄를 범한 후 하나님을 섬기는 즐거움이 사라진 것입니다.
예배의 기쁨,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즐거움,
주께 봉사하는 행복이 다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주님을 섬기는 기쁨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1)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정한 마음’은 죄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마음,
다른 어떤 것도 섞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는 순전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또한 ‘정한 마음’은 죄의 욕망을 이길 수 있는 영적으로 건강한 마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미 죄를 범하여 그의 마음이 욕망으로 더럽혀졌습니다.
동일한 유혹이 다시 찾아올 때 다윗은 그 죄를 이길 자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기쁨을 잃어버렸으니
하나님을 향한 순전하고 순수한 마음의 상태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멸망 받을 것 같은 답답한 마음,
그러면서도 죄의 욕망은 여전히 자신의 마음을 자극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 아, 이대로는 영영 파멸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한 마음을 창조해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창조해주시기 전에는
결단코 자신의 마음이 정한 마음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직한 영’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정한 마음을 창조해주시면,
자기도 다시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의 마음을 새롭게 해 주셔서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가진 자가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2)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시 51:11)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다윗이 두려워하는 것은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주님 앞에서 자신을 쫓아내지 말아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주님의 성신을 자신에게서 거두지 말아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주님의 성신(성령)을 거두면 그는 육신만 남고 영은 없는 자가 됩니다.
영이 없으면 그는 이미 지옥의 저주를 갖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부어주신 주님의 성령을 자신에게서 거두지 말아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3) 구원의 즐거움과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시 51:12)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구원의 즐거움’은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뜻하고,
‘자원하는 심령’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주님을 섬기는 마음,
주님을 섬기는 일을 향하여 자기가 자기에게 재촉하는 마음입니다.
주께 아낌없이 바치려는 적극적인 사랑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을 주면서 도리어 기쁜 것처럼,
하나님을 섬길수록 기쁨이 넘치는 마음이 자원하는 심령입니다.
➀ 주님과 동행하는 즐거움,
➁ 주님을 섬기는 자의 행복,
이 두 가지는 신앙을 건강하게 하는 중요한 두 기둥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죄를 용서해주시는 데서 그치지 말고,
자신에게 이 두 가지 신앙의 중요한 기쁨과 행복을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4)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이다(시 51:13)
13.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주께서 다윗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구원의 즐거움과 자원하는 심령까지 회복시켜주신다면,
다윗은 자기처럼 죄를 범한 범죄자들에게
주님의 도를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회개의 말씀, 구원의 즐거움과 자원하는 심령을 회복하게 하는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5) 나를 건지소서. 그리하면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시 51:14~15)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그러나 주께 용서를 받기에는 자신이 저지른 죄가 너무 큽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 드렸다고는 하지만,
주께서 과연 자신의 아픈 마음을 받으셨을까,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다시 한번 자신을 건져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주께서 건져주시면 자신이 주님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라고 고백합니다.
제 3 부 : 교회 안의 무신론자의 위험(시편 53편)
1. 두 가지 무신론자
이 시편에서 다윗은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들에 대하여 경고합니다.
다윗은 그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있으므로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이방인과 같이 되었는데,
정작 자기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 중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아주 이상하게 여기며 이 시를 노래합니다.
1) 지적 무신론자 : 주님을 믿지 않는 교회 밖의 사람(이방인)
시편 53편에서 다윗이 지적한 사람은 아닙니다만,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 중에서 제일 먼저 지적한 자들은
지식으로나 마음으로나 전혀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교회 밖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을 지적 무신론자라고 합니다.
지적 무신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교회 밖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전혀 믿지 않고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어떤 심판의 말씀을 하신다고 할지라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마음에 찔림을 받지도 않습니다.
자기들이 어떤 죄를 지었든 간에
그 죄의 일로 마음에 번민이나 갈등 역시 전혀 하지 않습니다.
혹시 번민을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명예가 실추될까 염려할 때뿐입니다.
2) 교회 안의 무신론자 :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시 53:1)
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그러나 시편 53편에서 다윗이 지적하는 자는 신앙생활은 하는데
그 마음에 하나님은 없는 자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신학자들은 실천적 무신론자라고 말합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을 알고 있고 그 입으로도 주님을 믿고 있다고 고백도 하는데,
그가 하는 짓을 보면 교회 밖에 있는 믿지 않는 자들과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의 무신론자(실천적 무신론자)의 전형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➀ 그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다
분명히 교회에도 열심히 다니고,
예배와 봉사는 물론 성경공부 모임이나 기도모임까지
빠짐없이 참여하는 사람 중에도 무신론자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조금 고상한 최미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새로운 학문을 깨우칠 때 기쁨을 얻는 것처럼,
신앙생활에 대하여 새로운 것을 발견할 때마다 가슴 벅찬 기쁨을 느끼지만,
그저 그것뿐입니다.
그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습니다.
일은 일이고 신앙은 신앙입니다. 일과 신앙이 완전히 별개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든지, 자기의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생각 자체가 없습니다.
그저 일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고,
신앙은 좋은 음악을 들을 때처럼 자신에게 고상한 품격을 주니
그렇게 살아갈 뿐입니다.
이런 자들은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도 무신론자입니다.
➁ 그가 바라고 원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다
그의 일에서뿐 아니라 그가 바라고 계획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습니다.
그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자기의 고상한 취미를 위한 것이었으므로,
그가 바라고 원하는 것 역시 그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자기의 마음을 충족하게 하기 위한 것이니,
앞으로의 꿈과 계획 역시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바라고 원하는 모든 것에 하나님이 없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기는 하지만 땅의 것을 구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생각 없이 신앙생활을 할 뿐입니다.
➂ 그가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다
처음부터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으므로
그가 저지르는 죄에 대한 죄책감이나 두려움이 없습니다.
두려움이나 슬픔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자기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이러다 하나님께 버림받으면 어떻게 하나”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주일 예배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대한 의무는 끝났으니,
더 이상 자기의 사생활에는 간섭하지 말라는 투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➃ 신앙과 생활을 별개의 일로 생각하는 자들
사람이 취미활동을 가지고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직장의 일이라면 그것이 잘못되었을 때 직장 상사에게 용서를 구하기도 하지만,
등산이나 달리기와 같이 취미활동이라면 며칠 못했다고
누구에게 용서를 구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조금 아쉬울 뿐입니다.
신앙생활을 이렇게 취미활동 하듯 하는 사람들,
죄를 범했을 때에도 그저 조금 아쉬울 뿐인 사람들,
신앙과 생활을 별개의 일로 생각하는 이런 사람들 역시 무신론자입니다.
2. 교회 안의 무신론자의 위험 : 자기가 그리스도인인 줄 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적어도 머리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지적 무신론자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 아주 많은 사람이 실천적 무신론자들입니다.
회개 없는 은혜를 원합니다.
회개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갈등과 번민이 싫기 때문입니다.
그냥 은혜받은 감동만 받기를 원합니다.
소위 종교적 감상주의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런 실천적 무신론자들은 다음과 같은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1) 부패하고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 없도다(53:1)
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일과 신앙을 별개로 여기고 있으니 죄책감도 없습니다.
처음부터 신앙생활을 그저 고상한 감상에 젖기 위해 하는 것이었으므로
공연히 마음 불편하게 하는 회개나 뉘우침 따위는 하지 않기로 합니다.
이런 자들은 진심으로 애통하며 회개한 적이 없으니 죄를 그냥 갖고 살아갑니다.
죄를 그냥 갖고 있으니 믿음 없는 자와 똑같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의 형식은 갖고 있으니 ‘나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다’하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런 부패한 신앙인의 위험입니다.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은 적이 없으면서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2)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53:2)
2.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신앙생활을 하지만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는다고 할지라도 자기 개인의 일을 위해서만 찾습니다.
질병이나 돈이나 직장이나 가정의 일과 같은 것을 위해서만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주시는데,
그의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기도 제목인 하나님이 없습니다.
어떤 행동을 하든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행합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땅의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이라고 하니
그 능력이 많으신 분께 이 땅의 것을 달라고 요청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많지만, 그에게는 하나님도 천국도 없습니다.
3)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53:3)
3.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세상에서 일반 사람들과 똑같이 향락과 음란에 젖어 살더라도
신앙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후회나 죄책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교회에서는 거룩한 마음을 갖고,
교회 밖을 나가는 순간 더러운 마음에 가득한 상태가 됩니다.
죄와 은혜, 선과 악, 거룩함과 음란함,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이 둘이 함께 있음에도
아무런 번민도 갈등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신앙생활을 하기에는 참으로 편리한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죄를 많이 지어도 회개와 갈등이 부담감이 없으니 참으로 편리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들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된 하나같이 썩은 자들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4) 너희가 무지하여 그런 못된 짓을 하는 것이냐(53:4)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우리는 이 기도를 하는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의 탄식의 소리를 듣습니다.
“언제나 깨달으랴, 이 무식한 자들아!
그들이 떡 먹듯이 죄를 범하면서도 여호와를 부르지 않는도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서
거룩한 감정을 얻기만을 바라는 자들,
천국에는 가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세상을 사는 동안 사람들로부터
은혜로운 자라는 평가를 받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무식한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결국 믿지 않는 자와 똑같이 멸망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묵상 : 이런 자들이 바로 시편에서 말하는 악인입니다.
겉으로만 고상한척하는 이런 사람들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악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자기들이 어떤 사람인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죄의 용서는 받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교회에 들어가는 순간 은혜를 받았다는 고상한 감상에 깊이 빠지기를 원하는 자들,
이들이 바로 저주받을 악인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제 4 부 : 의인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시편 53:5~6)
1) 너를 대하여 진을 친 저희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53:5)
5. 저희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너를 대하여 진 친 저희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
하나님이 저희를 버리신고로 네가 저희로 수치를 당케 하였도다
이렇게 일과 신앙을 별개로 생각하니
심지어 사람을 죽이고도 곧바로 예배에 참여하여
“거룩 거룩 거룩”하는 찬양을 부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인들일지라도
자기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악을 행합니다.
그렇게 악을 행하고도 곧바로 은혜로운 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자들,
그리고는 거룩한 용어를 사용하며 자기들이 아주 훌륭한 믿음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우아하게 행동하는 자들,
이들이 악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들을 대하여 진을 치고 그들을 핍박하며 공격한 악인의 뼈를 흩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으니 그들이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참되게 섬기는 자들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악인들에게 짓눌려 괴로움을 당하는 그들의 가련한 처지를 주께서 살피십니다.
지금은 이들이 세상에서 힘도 없는 나약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높이실 것입니다.
2)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가 누구인고(53:6)
6.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고 하나님이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시온이란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리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천국의 생명을 내리십니다.
바로 그 참된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나옵니다.
3)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 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53:6)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 된 곳에서 돌이키십니다.
여기에서 ‘포로’는 전쟁에서의 포로가 아니라
세상의 악한 자들로부터 억압과 핍박을 받는 고난의 자리를 가리킵니다.
혹은 죄를 벗지 못해 고통 받고 있는 가련한 인생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죄를 범하고도 아무런 죄책감도 없는 자들은 악인이지만,
똑같이 죄를 범했더라도 자신이 저지른 죄를 고통스러워하며
애통한 마음으로 부르짖는 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주께서 그들을 그 포로 된 자리에서 돌이키게 하십니다.
4)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53:6)
그렇게 죄를 고통스러워하고 애통하며 부르짖는 중에
주께서 그들을 포로 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진정한 기쁨을 얻게 됩니다.
주께 용서받은 자가 느끼는 참된 기쁨입니다.
단지 육체의 욕망만 만족시키는 기쁨이 아니라
영혼까지 만족하게 하는 깊고 충만한 기쁨입니다.
● 묵상 :
그러나 이런 충만한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죄를 고통스러워하며 애통해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 우리는 죽음 같은 번민과 근심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아픔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갈등이라는 광야를 지난 후에 얻게 되는 참된 기쁨을 생각하고 참고 견디십시오.
그리고 내 모든 것을 주께 맡기십시오.
주께서 나를 포로 된 곳에서 건지십니다.
결 론 :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찾는가
사울과 다윗의 믿음의 차이를 정리해봅시다.
1) 두려움과 고통의 차이
사울은 왕권을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것을 두려워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범한 것에 고통을 느끼며 괴로워하는데
사울은 그저 왕권을 빼앗기는 것만 괴로울 뿐입니다.
2) 찾고 구하는 것, 즐거워하는 것의 차이
사울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왕위가 아들 요나단에게 이양되는 것이고,
다윗이 원하는 것은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순전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그 정한 마음이 회복되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노래했던 그 은혜로운 때를 회복하는 것,
그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3) 마음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
다윗과 사울을 통해서 본 바른 믿음은
결국 마음의 자리에 무엇이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이 있는 자,
이런 사람이 바로 시편에서 말하는 의인이요,
예수께서 찾으시는 주의 백성입니다.
주님
하나님 앞에 내가 어떤 자인지
자신의 영적 상태를 바로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 안에 정한 마음을 창조해 주옵소서.
구원의 즐거움과 자원하는 심령을 주셔서
주님을 기쁨으로 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