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 방학식 날이면 가슴 조리던 순간이 있었다.
바로 담임이 성적표를 나누어 주는 순간이었다.
성적표를 받기 까지는 내가 반에서 몇 등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평소에도 반에서 누가 공부를 잘 하고 누가 못하는지 대강은 짐작을 할 수 있지만 성적표를 받기 까지 누가 얼마만큼 잘하고 얼마만큼 못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지금 한국은 온 국민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성적표를 받아서 자기 성적을 알게 되고 그동안 막연하게만 알아왔었는데 누가 공부를 잘하고 누가 못하는지를 백일하에 알게 되었다.
바로 노무현이라는 전 담임이 죽으면서 국민들에게 정치성적표를 남겼기 때문이다.
전 담임의 서거를 계기로 대한민국 수구 권력동맹(청와대-한나라당-조·중·동-경찰-검찰-재벌-(대)기업 등)이라는 성적불량 학생 집단의 정체가 명료하게 들어났다.
또 그들이 어떤 과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어떤 과목은 영원히 구제불능인지도 들어났다.
이를테면 투기와 환경파괴에는 최우수 점수를 받았지만 북방외교나 사회적 약자 보호 과목은 쥐약이었다.
요즘 한국은 졸지에 전혀 계획에 없던 역사의 시간표에 따라 온 국민이 정치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다.
물론 학습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학습이 제대로 된 것인지는 빠르면 올 하반기의 재·보궐선거와 내년 5월의 지방선거에서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그 2년 후의 국회의원 선거는 그 학습의 결정적 고비를 이룰 것이다.
앞으로 수구 권력동맹이라는 불량학생들은 점점 더 과격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힘없는 나머지 학생들에게 현 담임의 권력 밑에서 기세를 부리는 수구권력동맹은 넘기 어려운 거대한 장벽이다.
그것은 다른 학생들에게 무기력과 공포심을 조장하고 체념 효과도 가지고 온다.
어떤 때는 힘없는 학생들이 용기를 내서 거리에서, 광장에서, 모여서 목소리를 높이지만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뼈저린 허망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집안에서, 동네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거리와 광장에서 우리가 만난 사람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그들은 오늘의 현실에 대하여 전혀 무감각한 동물들 같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눈에 노무현이 던진 성적표는 수구 권력동맹의 실체를 눈과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어린 시절 방학식날 받는 성적표 한 장에 희비가 갈려져 집으로 향하는 그날의 발걸음이 가벼울 수도 있고 ‘아! 인생이 왜 이렇게 고달프냐?’하는 생각이 들어 그냥 그대로 영원히 사라지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성적표를 받고서 언제나 드는 생각은 ‘좀 더 열심히 할 걸…걸...걸...’이었다.
첫댓글 모범학생 이었으나 ....1980년 5월 13일 이후로 불량학생이 된 .... 김동길 만 봐도 .... 편식된 사고가 ... 사람을 얼마나 더럽게 만들어 가는가를 보여준다 ....(원래부터 불량학생이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