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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약속과 소망 그리고 인내
히브리서 6:13~20
우리는 히브리서 기록자가 그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함을 강조해온 것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사보다 더 뛰어나신 분입니다. 그는 모세보다 더 뛰어나신 분이요 여호수아보다 더 나으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위대하신 대제사장으로서 그의 택한 백성들의 형제로서 혈과 육을 가지고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그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구원의 말씀을 마지막 때에 증거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시어 하나님의 온 집에서 아들로서 신실하였으니, 그의 말씀을 믿음으로 연합하여 붙드는 자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그 말씀을 붙들지 아니하고 결국 안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아들이시면서도 고난 중에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시어 자기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그는 아론의 반차를 따라 세워진 구약의 대제사장 가문과 달리 시편 110편 4절 말씀에,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신 말씀을 따라 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세워지신 분입니다. 그래서 다시금 이 완전하신 구원의 말씀을 증거하신 자,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는 진리를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진리 가운데 영적으로 더 성장해야 합니다. 영적인 어린아이의 상태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성장하지 못하면 안됩니다. 한번 진리의 빛을 보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새롭게 될 수 없습니다.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으면 안됩니다. 물론 하나님은 신실하기 때문에 우리가 과거에 행한 신앙의 열심과 헌신과 봉사의 수고를 결코 잊어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을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과거에 행한 뜨거운 열심과 헌신을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끝까지 붙들어주실 것이고,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의 믿음과 헌신을 주님께서는 낱낱이 기억하시고 우리를 붙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교와 타락과 변절의 위험을 항상 잊지 말고, 침체와 세상 유혹과 우리 자신의 게으름과 나태함을 항상 조심하면서, 영적으로 어린아이 상태에 머물지 말고 주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과 그를 위한 헌신의 삶에 있어서 점점 더 성장해야 하겠습니다. 열심을 내었던 과거의 회상에만 그치지 말고 그 때와 동일한 부지런함을 계속하여 나타내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의 지속성과 끈질김과 인내를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3:6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고 하였습니다. 끝까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굳게 잡으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3:14 말씀에서도 반복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고 하였습니다. 또 오늘 본문 직전에 있는 히브리서 6:11,12 말씀에서도 다시 강조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게으르지 아니하고 열심을 내되 끝까지 소망을 가지고 믿음과 인내로써 신앙 생활을 계속하라고 강하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시작은 참으로 크신 은총이지만 그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이 믿음을 끝까지 견고하게 지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끝까지 우리 믿음을 붙들고 나아갑시다. 시련이 있고 유혹도 만나고 침체의 기간도 겪게 되겠지만 결코 주저앉지 말고 다시 일어나 앞으로 더욱 정진해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됩시다. 그러면서 믿음의 선배들이 이렇게 해왔다고 하면서,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고 오늘 본문 말씀 직전에 말씀하였습니다. 즉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이 다 이처럼 믿음과 인내로써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한 가지 정의가 여기 나오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현실적인 축복을 당장의 기업으로 받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단지 약속만을 주셨는데, 그 약속들을 기업으로 알고 받았고 결국은 그 약속을 훗날 다 상속하게 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은 기업을 약속만 받았지만 믿음과 인내로써 기다렸다가 결국 그 약속의 성취를 받아 누린 자들이라고 여기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의 신앙의 본질이 바로 이처럼 약속을 기업으로 받고 그 약속을 믿고 끝까지 인내함으로써 결국 약속의 성취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하나님의 축복들, 곧 즉 하나님께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 약속만 주신 것일지라도 그것은 확실한 것이며 끝내는 그 약속이 믿고 인내한 그의 백성들에게 성취되는 것은 확실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오늘 우리가 읽은 13절부터 20절까지의 말씀이 그 근거들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 대표적인 인물로 아브라함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13절로부터 15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며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던 나이 75세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명령하시며 약속하시기를,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세기 12:1~3)
고 하셨습니다. 그 후에도 창세기 15:5 이하에 보면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고 약속해주셨습니다. 또 나의 나이 99세에 다시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면서 그의 후손이 심히 번성하며 그가 거하는 가나안 온 땅을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그 자손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사실 상속받을 자식이 그 아내 사라에게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을 붙들고 계속 기다린 끝에 마침내 그의 나이 100세에, 그 아내 사라의 나이 90세에 이삭이 태어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아들 이삭이 소년기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리아 산에 올라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인신제사를 바치기를 심히 가증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에 아브라함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순종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칼을 들어 제단에 묶여 누워 있는 이삭을 치려는 아브라함을 급하게 불러 제지하시고 그의 순종을 칭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로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세기 22:16~18)
이처럼 아브라함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계속 기다렸고 마침내 약속을 받은 뒤 25년만에 아들 이삭을 얻었으며, 그 땅 가나안 지역에 그와 그의 아내 사라의 묘지 막벨라 굴과 딸린 밭 외에는 아무런 자기의 땅이 없었지만 그는 그 광대한 가나안 땅이 그의 후손들의 땅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오랫동안 인내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쳤던 모리아 산 제단 앞에서 친히 맹세로써 그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보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실 때에 약속하신 지 약 700년 후에(아브라함이 약속받은 후 25년, 이삭이 야곱 낳은 나이 60살, 야곱의 애굽행 나이 130살, 애굽 생활 430년, 광야 생활 40년, 가나안 정복 전쟁 대략 15년, 그 합계는 700년임) 그의 후손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민족이 되어 출애굽하여 요단강 땅을 건너가 그 땅을 차지하여 기업으로 삼았습니다.
비록 시간은 많이 흘렀습니다만 하나님은 자기가 맹세하신 바를 그대로 다 성취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기까지 25년을 걸렸으며 큰 민족을 이루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얻기까지 700년을 걸려서라도 그 약속을 다 지켜주셨습니다.
특별히 히브리서 기록자는 맹세의 신성함과 엄정함을 여기서 강조합니다. 16절과 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의 다투는 최후 확정이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사람들도 자기 말의 신실함을 보증할 때 흔히 맹세를 동원합니다. 하늘을 두고 맹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백성들은 재판할 때에 맹세로써 자기의 진실성을 보증합니다. 출애굽기 22:10,11 말씀에 보면 이르기를
“사람이 나귀나 소나 양이나 다른 짐승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죽거나 상하거나 끌려가도 본 사람이 없으면 두 사람 사이에 맡은 자가 이웃의 것에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고 여호와께 맹세할 것이요 그 임자는 그대로 믿을 것이며 그 사람은 배상하지 아니하려니와”
라고 하였습니다. 증인이 없을 경우에 자기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최후 방법으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케 자기는 맡긴 물건을 죽이거나 팔거나 다른 이에게 넘겨주지 않았다고 맹세하면 재판장은 그 사람의 맹세를 그대로 받아주라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맹세한 것이기 때문에 만일 거짓말이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그의 맹세는 신성한 것이기에 그대로 사실로 믿고 재판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만큼 맹세란 엄숙한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기보다 더 크거나 더 높은 자가 없기 때문에 자기 이름을 걸고 맹세로써, 그의 뜻이 절대로 변하지 않으며 그 하신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확실한 뜻을 충분히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맹세로써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 그의 자손 곧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것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기 백성들이 번성하되 이스라엘만 아니라 이방 민족들까지도 복을 받아 그의 백성이 될 것과 그들이 가나안으로 예표된 영원한 기업의 땅을 다 얻는 것은 아브라함의 육신적 자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받은 주의 백성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4:16 말씀에서 이르기를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들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민 중에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리스도인들이 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육신의 아브라함에게 기업으로 주시기로 약속하시고 맹세하시고 그 약속대로 주신 가나안 땅은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예비하신 영원한 기업, 곧 하늘 나라 성을 가리킵니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고하셨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약속하셨고 사도들이 계속하여 증거한 바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온전히 나타날 그리스도의 나라를 가리킵니다. 히브리서에서 이에 대하여 4장에서는 ‘안식에 들어간다’는 말로 언급하였고, 히브리서 11:10 말씀에서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히브리서 12:22 말씀에서는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히브리서 13:14 말씀에서는 “장차 올 영구한 도성”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들어갔지만 그곳에서는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는 외적들의 침입과 이스라엘 백성 자체의 타락으로 인한 재앙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곳에는 참된 안식이 없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참된 안식의 나라를 약속하시곤 하였으니 그 나라는 곧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실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아브라함의 참된 자손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맹세로써 보증하신 바 약속의 땅, 영원한 하늘의 안식의 도성을 상속할 것이 확실하니, 그것은 마치 아브라함에게 그 후손을 주실 것과 그 후손이 번성할 것과 그들이 거주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맹세로 보증하셨던 바를 다 이루심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그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았던 것처럼, 우리도 오늘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장차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하늘의 본향, 그리고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를 상속할 것이라는 약속을 확실히 믿읍시다.
물론 지금은 약속만 있을 뿐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교회는 연약하고 세상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습니다. 악인들이 더 번성하고 신자들은 점점 위축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록자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배교의 위험에 처한 것처럼 지금도 신자들은 믿음을 지키고 인내하지 못한 채 낙심하여 뒤로 물러갈 유혹을 많이 받곤 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그러했고 이삭이 그러했고 야곱도 그러했고 요셉도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우리는 앞에 있는 소망을 가지고 용기를 내어 믿음과 인내로써 끝까지 신앙의 달음질을 달음질합시다. 이 소망은 헛되지 않습니다. 18절로부터 20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할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는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고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장차 영원한 천국 본향, 안식의 나라에 들어갈 소망이 확실한 것은 하나님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거짓말을 할 수 없으니, 만약 그가 거짓말하는 분이라면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이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본유적인 성품적 특징은 진실함이요 그는 거짓말을 절대로 하실 수가 없습니다. 민수기 23:19 말씀에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랴”
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진실 무망하신 분이시니 그에게는 거짓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진실 무망하신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분이 두 가지 곧 약속하심과 맹세하심으로써 보증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나라, 다시는 사망이 없고 다시는 눈물이 없고 다시는 포악과 압제가 없는 평화의 나라를 자기 백성에게 주시고,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왕이 되셔서 갈리지 않는 그 나라를 상속받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실 것은 확실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소망은 마치 영혼의 닻이라고 히브리서 저자는 말합니다. 아무리 무섭게 파도가 일렁거려도 배가 항구 안에 닻을 내리고 있으면 그 배가 안전하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영원한 소망을 갖고 있으면 영혼의 닻이 내려진 배처럼 튼튼하고 견고하여 결코 흔들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휘장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휘장은 구약 시대의 지성소와 성소를 가로막는 길게 늘어진 커튼입니다. 금실 홍실 자색 세마포 실 등으로 견고하게 짜진 이 휘장 안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는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한 비밀한 곳입니다. 그 지성소에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는데, 그것도 제물의 피를 가지고 가야 하며 분향단의 향을 피워 앞을 가려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속죄의 일을 마치면 곧장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하니, 하나님의 임재 앞에 감히 오래 설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엄위하시고 거룩하신 지성소가 있는 휘장 안으로 우리가 감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하늘 본향 성소에 천국 소망을 가지고 영혼의 닻을 주님 안에 내린 우리는 감히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들어갈 수 있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바로 그리로 앞서 가신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2절에 예수님을 두고서 히브리서 저자는 “앞서 가신 자”, 헬라어 원어로 ‘프로드로모스’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곧 “선두 주자, 선구자, 길을 예비하여 개척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번 그것도 오래 그곳에 머물지도 못하는 불완전한 지성소 출입의 은혜를 입었으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하나님께서 맹세로써 보증하신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어 그곳에 선두 주자가 되어 길을 개척하여 하늘의 지성소, 우리의 영원한 하늘 본향 안식의 나라에 먼저 들어가셨고 그곳에 영원히 계시면서 형제인 우리를 맞아서 함께 하나님과 영원히 거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이 약속을 기업으로 받고 믿음과 인내로써 끝까지 그 길을 감으로써 그 약속을 마침내 받아 누렸던 것처럼, 우리도 분명히 믿음을 지키고 인내할진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하늘 본향에 들어가서 영원한 안식과 영광을 누리는 기업의 약속은 반드시 받아 누리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흔들리지 맙시다. 현재의 고난이 우리의 믿음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고 시험이 우리를 아무리 흔들어댈지라도 우리의 소망이 확실함을 굳게 믿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인내로써 달려갑시다. 비록 때가 오래 걸릴지라도 주님은 우리에게 주신 모든 약속들을 다 우리에게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그는 진실하시고 그 하신 모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실 것입니다. 주님이 베푸신 이 천국 소망의 약속을 붙들고 부지런하여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며 살아갑시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반드시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