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매일신문 2025년 3월 7일 금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동안거
김순일
가시나무는 가시를 떼내고 화살나무는 화살촉을 떼내고 매발톱풀
은 발톱을 떼내고 톱풀은 톱날을 떼내고
산 식구들이
입 코 눈 귀를 떼내고
모두 숨을 멈추고 생각도 멈추고 ‘나’를 벗고 있네
나도 한 꺼풀 허물 벗으려고 산을 향해 면벽하고 앉아 보지만 생각
을 멈출 수가 없어서
나를 떼 낼 수가 없네
♦ ㅡㅡㅡㅡㅡ 동안거(冬安居), 모두를 가만히 내려놓는 자성의 시간이다.
내려놓은 것이 뭐에 그리 힘든 일이냐며, 초목들은 알뜰히도 키웠던 이파리들 훌훌 떨쳐
버리고, 꽃눈을 감추고, 물관을 닫고, 뿌리에 중심을 모으고, 혹한에도 보란 듯이 맨몸을
드러내며 수도하는 자세로 겨울나기를 한다.
‘나도 한 꺼풀 허물 벗으려고 산을 향해 면벽하고 앉아 보지만 생각을 멈출 수가 없어서,
나를 떼 낼 수가 없네’ 라고 한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어둠과 밝음, 선과 악, 생과 멸이 공존하는 시간에 실재하는 ‘나’는 무엇일까?
연기(緣起)에 의해 생하고 멸한다는 마음과 마음 밖의 경계는 어떻게 정해질까?
만물은 자성을 지니지 않아 공(空)하다는데, 상(像)을 지니지 않으면 그대로가 ‘나’일까?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
http://www.s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541411
첫댓글 가시나무의 동안거, 화살나무의 동안거, 매의 발톱의 동안거, 톱풀의 동안거는 자신의 가장 매력적인 것을 떼어내는 과정이군요. 눈, 코, 입, 귀 다 떼어 내고 동안거 하면 무엇이 남죠? 떼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붙어 있는 것으로... 아픈 이의 딱한 사정을 눈으로 보았을 때 나의 사랑, 관심, 물질을 붙여주는 것도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 해 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뿌리의 중심에 머물며 내일의 도약을 준비하는 동안거....
자신의 영육이 강건해야 건강한 나눔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