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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탈모
언제나 그러하듯 정확히 오전 아홉시 반 직전까지는 병원에 도착한다. 환자들이 넘치는 대기실을 가로질러 진찰실에 들어서면 우선 양복을 벗어 흰 가운으로 가라 입고 그런 후 책 꼬지 위에 놓인 두개의 돋보기안경 중 검정 테 안경으로 바꿔 뀐 다 -금테안경은 수 술용이다-그런 후 진찰실의자에 않으면 간호원이 자판기 커피와 생수를 안 쪽 책상 모 서리에 갖다 놓고, 나는 약병에서 4등분 쪼개진 알약 한 조각을 입속으로 집어넣어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전립선치료제가 발모제로 둔갑되어 지지난해부터 복용하기 시작한 쌀알보다 작은 알 약, 그 작은 알갱이가 대단한 효과를 입증 받은 것은 여러 모임에서 나의 두정 골 부위 가 머리카락으로 뒤 덥혀져 있다는 사실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환자들 로부터 점점 더 젊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비약을 공개하라고 조크를 받기도 한다. 사실 이 약을 복용하기 전 만 해도 내 두정 골 부위는 가뭄으로 매 마른 황토색처럼 불 그 수레 하고, 기름을 바른 것처럼 끈적거리면서, 듬성듬성 가늘고 거칠한 머리카락들이 벼 모작 심어 놓은 듯 볼품이 없었다.
그런가 하면 언제부터인지 덮개 눈이 눈 꼬리가 아래로 축 쳐지고 눈 밑에는 심술보가 생겨 욕실에서 거울을 보면서 덮개 눈을 추 켜 세워 보기도하고 심술보를 당겨보기도 하였다. 매형이 어쩌다 만나면 어대가 아 프냐, 나보다 더 늙어 보인다하며 안 쓰러 워 하는 표정도 나는 무덤덤하게 새벽부터 너무 열심히 운동한 탓이라고 자위하곤 하였다.
그러든 어느 날 내 장녀가 시집을 가던 날이다. 나는 늘 그러 하듯 머리를 대충 감고 빗질하면서 앞 머리칼로 이마를 가려 보았다. 그래야 머리를 뒤로 젖혀 이마빡이 번쩍 거리는 기생오라비 스타일보다 점잔 코 젊게 보일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후 나머지 좌측머리카락을 우측으로 돌려 둠 성 둠 성 쥐가 파 먹은 듯한 볼품없는 두정 골 부위를, 빗어서 감싸면 그만 일 것이었다.
그러하기를 20분, 빗질 할 때마다 황토 같은 붉은 두피는 머리털이 모자라 한번은 이 쪽,다음번은 저쪽 하면서 좀처럼 가려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드라이로 머리카락을 바짝 마르게 한 후 빗질을 하고 나서야 골고루 퍼져 그나마 약간 가려졌을 뿐 이다. 세상 태어나서 이렇게 공을 들여 빗질을 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젊었을 때부터 유난히 머리 숯이 많아 더벅머리에 약간 곱술 이어서 빗은 항상 무용지물이었었다. 최근에 머리가 많이 빠졌다는 애기는 가끔 듣기는 하였지만 이렇게 내 머리가 대머리로 변모 했다는 사실을 느껴보기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1년 전 삼원 사 약사가 전립선치료제를 강력히 권유 했을 때만 하여도, 아니 그 후에 사무 장이 그 약을 복용하여 머리카락이 무성하게 자란 것을 확인 하였을 그때 만하여도 절대 늦은 것은 아니었다. 윤정 이를 시집보내면서 나의 신체중 머리 꼭대기가 대머리 화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체득한 것은 비로 서 내가 현실적으로 노인 화 되었구나 하는 것을 절감하게 하였던 것이다..
안 되겠다 싶어 우선 “핑 카”를 복용하기로 하였다. 피지로 끈적거리는 두피를 아침
마다 매일 씻어 냈다. 처음에는 머리털이 한 움 쿰 씩 빠져 세면대 하수구가 막히는 것 을 보고 이러다가 나머지 아까운 머리 털 마 져 다 빠져버리는 것이 아닌 가 겁이 나기 도 하였다. 넉 달이 지날 즈음 되어서야 머리털이 굵어지고 거의 탈모가 사라졌다. 머리털이 굵어서 인지 축 늘어졌던 머리털이 탄력이 생기고 머리털 숱이 불어난 듯하며 - 마누라와 애들은 머리털이 새로 생겼다고 확신하고 있다 - 붉은 두피색이 조금씩 사 라지기 시작 하였다.
마침 막내딸이 미국에서 보내 준 스프레이( 폴 미첼 )가 한 몫을 더하여 머리털을 강력히 부착시켜 주는 바람에 탈모부위를 그럴 싸 하게 가려 주었고 헤어스타일을 말끔하게 정돈 시켜 놓았다. 지저 분 하던 나의 헤어스타일이 변모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탈모가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위안이 되기도 하였다. 급기야 고등학교 동창, 대학동창, 수련병원 의국모임, 한신 모임, 소소회모임, 이수회모임 등 등 등, 모임에서 모두들 나의 두피의 변신에 대하여 대단 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 하였다.
일 팔 회 모임에서 영배 녀석이 내 머리를 잡아채 보기도하였다. 사실 나의 이런 변화는 획기적인 약의 효력이 라기 보다는 부스 적으로 여러 가지 가식적인 도움이 필요 했던 점들이 있다. 모공이 이미 소실된 부위는 약으로도 머리털이 재생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두피가 지방질로 채워지면서 마치 사막화 되어가는 것을 막아주는 그것 만 으로도, 이유야 어떠하든 매우 다행이라고 하겠다. 현제 남아 있는 머리카락이 튼튼하고 굵게 자라 주기 만 하여도 감지덕지이다. 머리카락이 굴 거 지 면서 머리숱이 많아진 것처럼 보이고 그리 고 남은 머리카락을 이용하여 노출 된 두피를 가려 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대만족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럴 여면 머리털이 덜 빠져 있을 때가 적기였는데 늦은 감이 있다. 단지 약을 복용 하면 서 성욕감퇴를 야기한다면 - 약 15%에서 발생한다함- 6개월에서 1년간 만 복용하여 탈모 의 진행속도를 늦추어 주는 것도 한 방책이 될 것이다. 탈모를 체험하지 않는 사람들은 탈 모에 대한 고민자체를 이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생명에 위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혐오 감도 없으며 천박해 보이는 것도 아닌 것을, 그들은 왜 비싼 가발을 만들어 뒤 집어 쓰고 또 는 빵모자나 나까 오리 중절모자,야구모자,빈폴모자,베레모까지 써가면서 굳이 탈모를 감 추려 하는 지를 아마도 당사자가 아닌 이상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나와 늘 함께 골프를 치는 대학동기인 친구가 있다. 전형적인 대머리이다. 평소에는 대머리에 관하여 불평하거나 감추려 하는 법이 없다. 생긴 대로 사는 거지 별 수냐 하며 굳이 가발을 권유하여도 마다하였다. 머리카락을 심 으 라 해도 그럴 만큼 머리털의 여분도 없으니 더 이상 얘기 할 것도 없다고 했다. 오로지 골프 칠 때만 규칙상 골프 모자를 쓸 뿐이었다. 그런데 볼떼기에 살이 붙어서 그런지 머리만 가리면 10년 전 나이로 격상되어 막 내 동생 년 배 쯤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가발을 권유 한 이유이다-
그러던 그 친구가 어느 날 가발을 쓰고 모임에 나타났다. 화려한 변신은 그야말로 눈 부 셨다. 부인은 분위기에 젖어 입이 쩍 벌어져 다물 줄을 모르고 친구들이 노인이 청년 되었다 는 농에 기분이 업그레이드 된 그 친구가 마치 정경발표나 하는 것처럼 슬그머니 일어서서 한번 청중을 싹 흩어보고 서두를 꺼냈다. “ 내가 왜 가발을 써야만 하 였 는 지에 대하여는 우리 집 마누라만 알 것이네!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니 이해하소. 내가 이 나이에 장가를 갈 것인가 바람을 피울 것인가 ? 근 디 세상이 엄청 히 좋아서 가발을 그냥 뒤 집어 쓰면 되는 거두만 ! 어이 이 원장! 자네도 써 보소 ” 하고 만면에 미소를 띄 며 내려 않았다.
그 후 정말 이 원장도 가발을 쓰고 다음 모임에 나타났다. 그도 확실히 10년은 젊어 보 였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다 더벅머리에서 벗어나 간신히 두피를 덮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평생 가발을 쓸 것 같지 않던 그 친구가 써야만 될 동기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 믿고 일요일 새벽 내차에 그 친구를 태우고는 골프장으로 가면서 넌지시 변죽을 놓았다. “ 가발 을 쓰고 모자를 써도 괜찮은 건가 ?” 했더니 “ 자네, 내가 가발 쓴 것에 대해서 궁금해서 그러 제 ?” 한다. “ 별건 아닌 디...... 말 함세 ”하면서 말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그 친구는 나와는 정 반대로 매우 동적인 성격이어서 일요일에는 무조건 새벽부터 집을 나서야 직성이 풀렸다. 골프를 치지 않을 때면 산으로 줄행랑을 치거나 국내 여행을 혼자 서 다니곤 하였다. 그날도 새벽 혼자서 강원도 백담사코스 여행길에 나섰다. 이런 여행은 일반적으로 단체관광이나 회모임이 주력을 이루어서 홀로 여행하는 경우는 매우 드믄 일이다. 그러나 이 친구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여유롭게 혼자 즐기는 시간이야말로 최상의 낙원이라고 늘 상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였다. 그래서 그 날도 목적지에 도착 할 때 까지 버스 안에서 느긋하게 서너 시간 달콤한 잠을 자리라 하고 눈을 붙였었다.
그런데 그날은 유난히 잠이 오지 않아 옆 빈 좌석에 발을 올 여 놓고 이리 뒤 척 저리 뒤 척 거리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눈을 감고 있으니 대머리의 정수리가 얼마나 뚜렷하게 보였을까. 서너 개의 머리털이 볼 품 없이 흔들리는 그 모습이 때깔 좋은 처량한 노인이 , 세파에 주눅 이든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 대머리가 얼마나 또렷하게 보였으면 그 녀가 그에게로 다가 올 용기를 주었겠는가 하는 점이다. 그녀는 그가 육칠십 노인으로 보았을 수도 있다. 내가 그녀를 보았을 때 그렇게 보았으니 말이다. 직접 친구의 예기를 들어보자. 그녀는 내 옆 자리로 다가와서 혼자 오셨냐고 말을 꺼내기 시작 하더니 다짜고짜 옆자리에 덥석 않았다
대답이 궁색하여 혼자 왔노라고 하였더니 자기는 모임에서 같이 왔는데 아들 딸 모두 출가 시키고 홀몸으로 산다고 하면서 자식은 품안에 있을 때 자식이지 떠나면 모두가 남이라고 말 하고는 나의 동정을 살피면서 어림짐작을 해보는 듯 하였다. 고개를 돌려 일행들을 쳐다 보면서 눈을 흘기기도 하였다. 내가 황당해서 “그러시냐”고 대답하고 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창문 밖을 쳐다보자 그녀는 무어라고 계속 말을 하고 있었는 데 그 중 기억나는 말이 “ 그래서 이것도 인연인데 서로 외로운 사람끼리 만나 사귀는 것도 좋은 것이 아니냐 ”하는 말이었다.
나는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멀찌감치 줄행랑을 치고는 즉시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모자를 눌러썼다. 그녀가 나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 것이 보였고 마침내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거리상 약간 떨어져 있기는 하였어도 그녀는 갑자기 10년이나 젊어진 나 를 알아 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뒤늦게 대머리만 보고 나이를 착각 하 였 음을 깨달 았 는 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그제 서야 자신의 모습이 노인이 되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마음만 청춘이라고 누가 알 아 주겠는가 ?, 외모도 청 춘으로 바꾸자하여 가발을 뒤 집어 쓰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큰누님 같은 여자가 프로 포즈를 하였으니 정신 차릴 만 한 충격임에 분명하다
석 달 전, 부산 모임에서 친구가 머리를 심기로 결심 했다고 하면서 자신보다 주위 친구 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도 예의가 아니냐 하면서 농을 치기도 하였다. 남은 인생 추 하게 보이면 고쳐야 하겠지. 어찌 되었건 늙는 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벌써 우리는 신체의 구석구석마다 퇴화의 진행을 느끼고 있다. 마음은 청춘에 머물고 신체의 변화 는 어찌 할 도리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 내일도 나는 머리를 손질하며 머리털이 재생 하리라 굳게 믿고 노화를 멈추게 하는 데 전력을 다 하겠다. 내가 늙어가고 있고 늙어가는 생체의 변화를 막아보려고 무던히 싸우고 있는 중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여하튼 탈모현상도 분명히 노화현상 중 하나이니 만큼 이에 맞서 싸우는 일도 젊었을 때는 없었던 일일 것이다.
굼벵이 |
첫댓글 그 약먹구 머리카락이 새로난게아니고 굵기만 한게야?
한개의 모공에 2-3개정도 머리털이 나오는데 이게 굵기만 해도 머리숱이 많게 됨. 모공이 부실하면 가느다란 머리털이 겨우 한개정도 위태롭게 붙어 있는 상태로 됨.
확실히 머리 덜 빠지더라고.. 하여간 탈모방지에 좋다고 하니 심리적으로도 머리가 덜 빠지는 것 같고. 그런데 강원장! 핑카 떨어졌쩌. 금명간 처방 받으러 가야켜. 그런데 바쁜 중에 글 길게도 썼네.. 다 친구덜 사랑하는 갸륵함일테지.
털모자 이야기 하니 제주 동창들 중에 털모자를 쓴 동창이 몇 있는데 전에는 어디가면 나보다 위로 보았는데 요즘은 다 나를 위로 보는 경향이 있어 내가 선의의 피해를 입는 셈이지. 그래서 나도 머리에 꽤 신경쓰는 편이다. 작년 10월에 태능 성모의원에 들려 약을 받았는데 거의 8개월을 먹은 셈이다. 며칠 전 아들놈 편에 약 처방을 부탁해 여러모로 강원장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최근에 이 약의 효과를 본다 생각하는 것은 나보다 머리가 많던 사람들이 나보다 더 적어지는 것을 알수 있기 때문이다. 알카이바도 그 하영 있던 머리 다 어디로 가버련 핑카족이 돼신고. 핑카그룹을 만들어야 험직허다.
참 단편소설이나 꽁트 하나는 읽을 듯 하다. 예술분야에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음을 새삼 느끼네.
읽어보니 첫번째로 놀란것은 재경이 글 솜씨가 웬만한 문학가를 능가하는 글이고, 두번째 놀란것은 전립선 약이 머리털에 효능이 있다는 것이고, 세번째 놀란 것은 이수가 그 좋은 처방을 물끄럭의 머리털을 언제나 보와왔으면서도 혼자서만 복용하였다는 것이다. 섭하다 섭해. 우리 동창중에 빛나리 회원들 단체로 처방받으로 서울로 가세.
나도 처방받으러 가키여.
물끄럭이 놀란만큼 나도 놀랐저. 대단한 문장가구만! 논문 발표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