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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만화_ 세상에 꾸미는 지독한 꽃밭들
도정암 추천 0 조회 67 09.04.13 18:3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가끔 나는 스스로가 참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 만화에 관한 글 같은 걸 쓰게 되었을까? 어쩌다가 다른 사람들의 만화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신세가 되고 말았을까? 어쩌나, 이제 다시는 만화를 그릴 수 없게 된 건지도 모른단 말이다. 만약 나의 낙서장에 그려진 볼품없는 그림을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아니 저런 녀석이 남의 만화를 보고 데생력이 어떠니 스토리의 완결성이 어떠니 떠들어댔단 말이냐고 노발대발 소리지를 게 틀림없다. 어쩌나, 나는 나이 서른에 인생 최대의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나의 조카는 참 행복하다. 도화지에 괴발개발 줄과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그게 소풍 간 고양이가 분홍색 토끼를 만난 그림이라 말한다. 그 위에 말 풍선을 그려 놓고 몇 마디 제가 아는 말을 툭툭 던져 놓고는, 그게 만화라고 말한다. 얼마나 재밌냐고 혼자서 키득거리며 행복해 한다. 고작 다섯 살짜리가 찾아내는 인생의 즐거움, 만화를 그리는 그 신비한 매력을 왜 나는 스스로 내팽개쳐 버렸을까?


 

누굴까, 만화를 처음 그린 위대한 이는

만화는 쉽다. 다섯 살짜리도 금방 깨우칠 정도로 그리기도 쉽고 보기도 쉽다. 그래서 그런지 만화의 기원을 찾는다면 선사 시대의 동굴 벽화에까지 쉽게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 동굴의 벽에는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원시인이 그날 자신과 친구들이 멧돼지를 잡던 모습을 자랑스럽게 그려 놓았는데, 어떤 이는 그것이 회화의 기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회화가 아니었다. 간략하게 특징만 잡은 그림을 연속으로 늘어놓고 그것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이미 회화를 넘어서 만화의 기본 원리를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그 뒤 사람이 문자를 발명하게 되면서, 그림으로 생각을 전달하는 만화적인 언어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아니 사실 아직까지도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자와 같은 상형 문자는 그 자체로 추상화된 만화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어쨌든 역사 시대에서부터 고매한 문자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고, 글깨나 하는 사람들이 행세를 하면서 위대한 선지자들과 주 예수의 거룩한 업적 또한 그림이 아니라 글로 기록되게 되었다.

 

물론 그림과 글을 결합한 책들은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 특히 글을 모르는 가난한 민중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거룩한 권위의 시대인 중세에도 몇몇 성직자들은 책의 귀퉁이에 익살스러운 그림을 그리며 먼 훗날 만화의 탄생을 예고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점차 진행되어 온 인쇄술의 발달은 왕과 귀족들만이 누리던 예술을 일반 민중들도 쉽게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십오 세기의 <성 에라스무스의 고문>과 같은 그림이나, 십팔 세기에 나온 윌리엄 호가스의 그림 소설들은 비록 현대적인 만화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그 속에서 만화적인 상상력과 풍자의 정신만큼은 분명히 찾아낼 수 있다.

 

 

두 천 년의 마지막에 태어난 쌍둥이, "영화"와 "만화"

처음 문자가 만들어져 사람의 말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몇몇 사람들은 문자가 사람의 기억력을 감퇴시킬 것이라며 그것의 사용을 금지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문자는 곧 사람들의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고, 그것은 영원 무궁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히브리어가 예수의 탄생을 기록한 그 거룩한 날로부터 두 개의 천 년을 보내는 막바지 백 년에, 요상스러운 쌍둥이 형제가 나타났다. "만화"와 "영화"라는 해괴 망측한 그 두 형제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고대의 주술을 현대에 되살려낸다.

 

현대적인 만화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기법인 "칸 나누기"를 비롯해, 만화적 연출이 처음 등장하게 되는 것은 십구 세기 중반부터이다. 이 시기는 공포, 공상과학, 추리와 같은 이십 세기 대중문화의 핵심 장르들이 소설이라는 형태로 서서히 자기 모습을 드러내던 때이다. 당시는 산업 혁명이 가져온 과학 기술에 대한 동경과 빅토리아 왕조의 엄격한 윤리관이 지배하고 있던 시대였지만, 이러한 상황과는 정반대로 대중들은 모호한 환상과 어두운 쾌락의 세계에 탐닉하게 된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와 같은 소설들이 바로 그 시절에 나와 오늘날까지 서양인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이러한 예술적 기운은 시각 예술의 분야에서도 넘쳐 흐르고 있었는데, 린드워드의 목판화나 막스 에른스트의 초현실주의 콜라주 작품들은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그리기 위해 회화 속에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들여왔고, 이는 곧 찾아올 만화의 세기를 직감하게 하는 것이었다. 더불어 십구 세기의 마지막 몇 년에 등장한 영화 예술이 가장 먼저 시도한 장르 또한 <달세계 여행>과 같은 공상과학 영화였다. 장르의 분화가 명확하지 않은 채 여러 예술인들이 새로운 방법을 무차별적으로 실험하고 있던 이 시기, 가장 앞선 화가는 만화가였고, 영화 감독이었다. 그리고 그이들은 불가능한 환상의 세계를 사람들 앞에 보여 주는 현대의 마술사에 다름아니었다. 실제로 <달세계 여행>의 멜리에스는 이 세 가지 직업을 모두 가진 사람이었다.

 

영화는 사실 이십 세기의 과학 기술이 없었으면 존재할 수 없는 예술이지만, 만화는 좀 달라 보인다. 그냥 종이와 잉크만 있었으면 고대의 누군가도 쉽게 그려 냈을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만화의 탄생에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했는데, 하나는 십구 세기부터 본격화된 대중문화라는 자양분, 둘째는 활자가 아니라 그림의 대량 복제가 가능한 인쇄술의 발전, 셋째는 영화의 발명과 함께 본격화된 "이미지에 의한 이야기의 전달"이라는 연출법의 개발이다.

 


The Yellow Kid


 

노란 꼬마와 슈퍼 영웅의 나라-미국

현대의 예술인 만화의 (상업적) 가능성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역시 이십 세기의 나라, 미국이었다. 현대 만화의 효시라고 불리는 <옐로 키드>는 이십 세기 초 거대 신문들과 판촉 경쟁의 가운데서 태어났다. 당시 신문 재벌인 허스트(<시민 케인>의 모델이 되는 바로 그 사람)는 일요일판 신문에 컬러 면을 새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유럽처럼 고급 인쇄술을 갖춘 것도 아니고 값싼 신문용지에 그런 인쇄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주인공 꼬마를 잉크로 그리고 아이의 몸 안에 노란색을 칠해 넣어 본다. 이것은 순전히 컬러 인쇄가 얼마만큼 제대로 찍히느냐를 실험해 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꼬마의 선명한 생김새와 그이가 지껄이는 직설적인 말들에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십 세기 초반의 만화 세계를 대표하는 "신문 카툰"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옐로 키드>가 불러일으킨 만화 열풍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는데, 신문들은 인기 만화가를 끌어 오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쓰게 되었고 인기 만화는 신문의 판매량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오늘날 상업주의적인 언론을 뜻하는 "옐로 저널리즘"은 바로 <옐로 키드>에서 나온 말이다.

 

<옐로 키드>는 주인공의 대사를 꼬마가 둘러 입고 나오는 노란색 보자기 속에 써 넣었는데 이것은 현대 만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말 풍선의 원초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조악한 신문 인쇄술을 극복하고 주인공을 드러내기 위해 쓴 강렬한 원색은 이후 미국 만화의 성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옐로 키드>가 만화의 상업적 위력을 보여 주었다면, 윈저 매케이의 <리틀 네모>는 만화의 예술적 가능성을 보여 준 선구적인 작품이다. 천구백오년 시월 뉴욕 헤럴드에 <잠의 나라의 리틀 네모>라는 제목으로 처음 연재되기 시작한 이 만화는 매주 일요일판에 한 장씩 꼬마 소년 네모가 환상 속의 잠의 나라에서 여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윈저 매케이의 초현실주의적인 상상력은 그 스토리뿐만 아니라, 만화의 형식에 있어서도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이는 사각의 공간에 주인공을 평면적으로 등장시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스펙터클"한 구성력으로 면을 나누고 인물들을 배치했다. 당시의 영화는 여전히 정적인 연출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매케이가 만들어 낸 이 대담한 미장센은 이미 영화를 앞질러 새로운 시각 예술의 형식을 개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에도 만화와 영화는 경쟁하듯 새로운 연출법을 개발해 나갔고, 이 두 장르는 서로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며 성장해 갔다.

 

 

삼십년대 미국 만화는 바야흐로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미키 마우스>, <타잔>, <뽀빠이>, <블론디>, <딕 트레이시>, <정글 짐> 들 해서 지금 이름만 대도 모두가 알 만한 만화 주인공들이 모두 이때에 등장한다. 소재 면에서도 전통적인 유머에서부터 탐정, 판타지, 웨스턴, 호러, 공상과학 들 해서 다양한 대중문화의 장르로 영역을 넓혀 갔다. 그리고 바로 이때, 이후의 미국 주류 만화계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주인공이 탄생했으니, 다름아닌 <슈퍼맨>이다.

 



Cover to Superman v2, #204 (April 2004).
Pencils by Jim Lee, inks by Scott Williams.

 

 

 

천구백삼십팔년 처음 등장한 <슈퍼맨>은 "외계에서 날아온 초능력자가 평소에는 평범한 기자로 살아가지만 지구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 때에는 그 능력을 발휘해 지구를 지킨다"는 고전적인 슈퍼 영웅의 원칙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이것은 "미국이라는 신대륙에 모인 이민자(에일리언, 이는 외계인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들이 평소에는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다가 공산주의와 같은 적이 쳐들어오면 목숨을 바쳐 전쟁에 나서 미국을 지켜 낸다"는 논리를 거의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제이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슈퍼맨>류의 슈퍼 영웅물은 미국 주류 만화를 점령하게 되었고, 그 흐름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Mad

 

 

거대한 만화 시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은, 일본이나 유럽에 견주어 국민들의 만화에 대한 인식이 뒤처져 있고 주류 만화의 편협한 만화 세계가 다양한 만화의 등장을 억압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다. 미국에서는 유럽에 견주어 성적, 정치적 검열이 심했던 탓에 만화 문화가 크게 억압받아 왔는데, 오십년대 말의 <매드> 잡지에 이어 육십년대 반전 운동, 히피, 록 문화와 결합하며 등장한 언더그라운드 만화가 만화의 힘을 자각시키기에 이르렀고, 이후에 다양한 작가주의 만화가들이 크지 않은 시장에서이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영역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만화가 저지르면 철학이 수습한다- 유럽

오랫동안 그래픽 문화가 발전해 온 유럽에서는 만화 또한 그 문화의 후손으로 여겨져, 스토리 이상으로 훌륭한 그림체와 스타일을 중요시하는 고급스러운 만화 문화가 발전해 왔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책방에서 고급스러운 장정으로 꾸며진 만화들이 가장 눈에 뜨이는 자리에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어린이 대상의 만화들이 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래서 만화를 저급한 문화로 여기는 인식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미테랑 정권의 프랑스 정부에서 앙굴렘에 만화 학교를 세우고 국제적인 만화 페스티벌을 열면서 훌륭한 작가주의 만화들을 널리 알렸고, 그런 노력들 덕분에 만화가들은 영상시대의 가장 뛰어난 예술 매체를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에 가득 차 있다.

 

 

 


Albert Uderzo dessinant Ast?rix ? la Foire du livre de Francfort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는 "아스테릭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낯이 익은 이 만화의 주인공들은 로마 제국 시대, 식민지인 골 지방(지금의 프랑스)에 살고 있는 부족민들이다. 로마군은 끊임없이 이 마을을 점령하려고 애쓰지만,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를 비롯한 낙천적이고 용감 무쌍한 전사들이 절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이들이 만들어 내는 유쾌한 유머는 프랑스 사람들의 쾌활한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고 할 수 있다.

 


The Adventures of Tintin


 

유럽 전체로 보자면 올해 칠십 주년을 맞은 "땡땡"이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을 것이다. 벨기에 출신의 만화가인 에르쥬가 그린 <땡땡의 모험>은 미국식의 단조로운 색 지정 방식도 대가의 손길을 거치면 얼마나 마술적인 색채로 변할 수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 준다. 이 만화는 민완 기자 땡땡과 멍청한 쌍둥이 형사가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벌이는 모험을 그리고 있는데, 그 모험의 대상이 되는 나라에서는 꼭 이 만화를 볼 수 있다. 이를테면 히말라야에 가면 <땡땡과 히말라야 설인의 만남>을 볼 수 있고, 브라질에 가면 <삼바 축제와 땡땡>을 볼 수 있는 식이다.

 

유럽 만화를 보다 살찌우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대중적인 소재의 만화가들말고도 이른바 작가주의를 지향하는 만화가들이 막강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육십년대 말 로버트 크럼을 필두로 등장한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만화는 바다를 건너, 칠십년대 초반 프랑스에 대단한 만화 열풍을 불러일으킨다. 이미 육십년대부터 장 제르와 뫼비우스라는 두 개의 필명으로 남이 따를 수 없는 뛰어난 작품을 발표하고 있던 만화가 뫼비우스는 <메탈 위르랑(영어 이름은 헤비메탈)>이나 <하라키리>와 같은 진보적인 만화 잡지에 대단히 실험적인 판타지 작품들을 발표하는데 이것은 천구백육십팔년 프랑스 혁명의 진보적 기운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가장 중요한 성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때 그이의 만화를 보며 엄청난 감동에 사로잡힌 뤽 베송은 이십여 년 뒤 <제5원소>를 통해 그 세계를 영화로 표현해 냈다고 한다.

 

 



The first Corto Maltese adventure, Una Ballata del Mare Salato, Italian publication cover

 

 

뫼비우스말고도, 고도의 정치적 비유로 무장한 공상과학물로 이름 높은 엔키 빌라르, 영원히 방랑하는 정신의 매력적인 주인공 <코르토 말테제>를 탄생시킨 위고 프랏, 독특한 에로틱의 세계로 미국 시장에서도 인기가 높은 이탈리아의 밀로 마나라와 같은 만화가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세계를 가지면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많은 유럽 사람들이 만화를 자신들의 교양 체계의 가장 중요한 한 부분으로 삼고 있는 까닭을 이들의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군사 독재 아래 자라난 초현실의 만화들-라틴 아메리카

라틴 아메리카가 이십 세기의 영화와 문학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열어 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스페인어를 통한 남유럽권과의 긴밀한 역사적 끈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군사 독재의 억압을 받으면서 민중의 저항을 훌륭한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문화적 토양이 없었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보르헤스와 마르케스로 대표되는 라틴 문학, <산티아고에는 비가 내린다>와 <검은 신, 하얀 악마> 들로 널리 알려진 라틴 영화가 세계의 문화계에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하다. 그렇지만 그 둘도 라틴 아메리카의 만화가들이 차지하고 있는 세계적 비중만큼은 아닐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만화가들은 일찍이 유럽과 자기 나라를 오가며 활동을 벌여 왔다. 군사 통치 아래의 어두운 정치적 상황이 만화가들의 활동을 끊임없이 위협해 왔기 때문이며, 그이들 스스로가 결코 군부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틴 아메리카의 만화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정치적인 저항을 초현실주의적인 비유와 몽환적인 묘사로 표현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그 대표적인 작가로는 아르헨티나의 브레시아, 삼파요, 무뇨스 들을 들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페라무스>의 작가 알베르토 브레시아는 이십 세기의 "가장 혁신적인 만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자 진정한 대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미 육십년대부터 <모르트 신데르> 들의 작품으로 작가적인 힘을 인정받고 있던 그이는 칠십년대 후반 아르헨티나의 가장 참혹한 군사 독재 기간 동안에도 조국을 떠나지 않고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그이와 가족들은 끊임없는 살해 협박 전화를 받아야 했고, <모르트 신데르>의 시나리오 작가인 친구 엑토르 웨스터헬드는 영원히 "증발"되어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이는 그 시절을 <드라큘라>, <에드거 앨런 포>와 같은 은유적인 번안 작품을 그리면서 버텨 냈고, 독재의 막바지에는 이십 세기의 가장 뛰어난 만화의 하나인 <페라무스>를 구상하기에 이른다. 이 만화에서 정치 운동을 하다가 동지들을 배신하고 살아남은 페라무스는 그 자책감을 이겨내기 위해 망각의 세계에 빠져든다. 그러나 이후 그이가 겪게 되는 환상적인 세계는 그이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라틴 아메리카의 비극적 현실을 모호한 죽음의 색채로 보여 주고 있다.

 

브레시아나 무뇨스, 삼파요의 작품이 대단히 지적인 비유로 농축되어 있는 데 반해, 퀴노의 작품은 보다 대중적이고 간결한 언어로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적 현실을 명료하게 풍자하고 있다. 대표작 <마팔다>를 비롯해 그이의 만화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나약한 소시민들이다. 그이는 권력의 그림자 아래 주눅들어 살고 있는 소시민의 무기력과 좌절, 그리고 벼랑 끝에 이른 그이들이 내지르는 분노의 절규를 매우 독창적인 유머로 그려 낸다. 거칠지 않고 호소력 있는 퀴노의 선은 어떤 정치적인 이야기도 따뜻한 유머로 감싸 주며, 독자들은 한바탕의 웃음 뒤에 찾아오는 퀴노의 따금한 질책에 더 큰 감동을 느낀다.

 

 

 

 

 

 

코믹스가 아니라 "망가"-일본

이십 세기의 마지막 오십 년은 전혀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만화의 대폭발을 경험하게 된다. 만화는 다른 어떤 예술이나 문화보다도 동서에서 서로 다른 발전을 거쳐 왔다. 우리는 셰익스피어를 읽고, 비틀스의 노래를 듣지만 서양의 어떤 만화도 즐겁게 보기는 힘들다. 뽀빠이와 슈퍼맨, 배트맨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만나는 존재이지, 만화책을 통해 만나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제 바야흐로 서양의 젊은이들을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그이들은 "망가"와 "아니메"라는 일본어 발음 그대로 부르고 있다. 그것은 코믹스나 애니메이션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장르라는 뜻이다.

 

일본은 아시아권에서는 매우 오랜 만화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미 십구 세기 말에 영국의 만화잡지 <펀치>의 일본어판이 만들어졌을 정도다. 그러나 오늘날의 일본 만화는 제이차 세계 대전 바로 뒤, 데츠카 오사무라는 천재에 의해 새롭게 "발명"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철완 아톰>의 작가로 우리에게도 꽤 알려진 데츠카는 디즈니적인 캐릭터와 영화적인 연출 기법을 만화에 들여와 현대 일본 만화의 기본 형식을 만들어 냈다. 당시 일본 사람들은 패전의 불안감과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이들을 위로해 줄 어떤 마땅한 문화나 오락물이 없었다. 데츠카를 비롯한 선구적인 만화가들이 창조해 낸 이 새로운 예술은 바로 그런 일본 사람들에게 가장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문화적인 양식이 되었다.

 

그 뒤 육십년대까지 데츠카류의 만화가 전성 시대를 이루는 한편, 데츠카의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를 위한 "극화"라는 성인 취향의 사실주의 만화 양식이 만들어지고, 만화 잡지가 나이별로 체계를 만들어 가면서 만화 왕국 일본의 기틀이 갖추어져 간다. 칠십년대에는 텔레비전이 널리 보급되면서 텔레비전용 애니메이션과 함께 만화 문화가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고, 완전한 성인기에 접어든 팔십년대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만화계에서 확고 부동한 위치를 갖추고 세계 시장에까지 나아가게 된다.

 

이처럼 일본 현대 만화가 제이차 세계 대전 바로 뒤에 태어나 육십년대 소년기, 칠십년대 청소년기를 거쳐 팔십년대에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미국이나 유럽 만화의 영향은 이상할 정도로 작고 보잘것없었다. 데츠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이나 <리본의 기사>처럼 일본 만화의 전형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작품들이 디즈니의 영향 아래에서 만들어졌지만, 그 뒤 일본 만화는 서양의 만화와는 거의 단절된 채 성장했다. 오히려 영향이 있었다면 서양의 만화보다는 영화 쪽이 훨씬 더 클 것으로 여겨진다. 그 결과로 일본 만화는 서양 만화와는 전혀 다른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あしたのジョ>! <내일의 조>는

일본의 인기 스토리작가 다카모리 아사오(高森朝雄)와 만화가 치바 데츠야(ちばてつや)의 원작만화

 

일본 만화는 이야기의 전달에 매우 큰 비중을 둔다. 유럽 만화가 그림의 완성도, 미국 만화가 액션적인 볼거리를 중요시하고 이야기의 길이도 별로 길지 않은 반면, 일본 만화는 탄탄한 스토리를 중요시하고 <내일의 조>(치바 데츠야)나 <에이치 투>(아다치 미츠루)처럼 몇십 권에 이르는 대작들도 많다. 반면 서양 만화는 하나의 줄거리가 한 권 분량이 되는 것도 찾기 힘들 정도다. 그리고 요즈음 들어 많이 바뀌고 있지만 일본 만화의 캐릭터는 단순 명료하고 매우 전형적이다. 눈은 크고, 몸의 비례는 극단적이고, 행동은 만화적인 기호를 많이 도입하고 과장이 심하다.

 

 

이것의 가장 큰 원인은 일본 만화가 매우 값싼 대중문화에서 출발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초창기 일본 만화는 질 나쁜 종이에 한두 가지 색으로밖에 인쇄할 수 없는 어려운 조건에서 만들어졌다. 자연히 인물은 단순한 선으로 과장되게 그려야만 인쇄가 가능했고, 그것을 재미있게 하려니 이야기에 큰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일본 전통의 평면적이고 여백을 중요시하는 판화 예술, 가부키의 주인공처럼 과장된 가면 예술의 영향을 받아 만화의 전형이 만들어지고, 약간의 변화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 틀을 벗어나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일본 만화만의 독특한 특징은 서양의 만화나 영화와 같은 영상 예술을 받아들이면서도, 일본 사람들의 정서에 맞는 새로운 예술 형태를 완성하려는 만화가들의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가능했을 것이다. 그 노력이 일본 사람 누구나 만화를 사랑하게 만든 결정적인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전쟁 뒤 일본 만화 시장의 규모는 해마다 성장해 온 반면, 육십년대 이후 일본의 극장 수와 영화 관람객 수는 계속 줄고 있다. 한 일본 영화인은 "일본 영화가 가라앉고 있는 주요한 까닭 가운데 하나가 일본 사람들이 '이야기'에 대한 욕구를 만화에서 채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현대 만화의 초창기부터 훌륭한 만화들을 많이 만나 온 일본 사람들이 만화의 강한 매력을 뼛속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만화의 영역을 어린이들에게만 두지 않고 성인 만화의 영역으로까지 넓혀 온 여러 작가들의 치열한 작가 정신이 오늘날 일본에서 만화가 가장 중요한 문화가 되도록 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다음 세기 그리고 우리 만화

구십년대 들어 본격화되고 있는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세계 진출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마음은 매우 미묘한 희망과 비관 사이를 오가고 있다. 지난 십 년은 우리나라 만화의 역사에서도 가장 격동적인 연대로 기억되기에 충분했다. 구십년대 초반 <드래곤 볼>을 시작으로 공식, 비공식적으로 속속 들어오기 시작한 일본 만화는 우리 만화 시장의 육십 퍼센트, 많게는 팔십 퍼센트까지 장악하게 되었다. 어떤 이는 일본 만화가 흘러 들어오는 것이 우리 만화계의 위기를 가져오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을 하지만, 일본의 우수한 만화들이 들어와 우리 독자들의 만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나가고 있다는 점 또한 지나칠 수는 없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우리 만화는 지난 몇십 년 동안 일본 만화의 영향을 극단적으로 받고 자라왔다. 실제 제삼국의 사람이 보아서는 무엇이 한국 만화이고, 무엇이 일본 만화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두 나라 만화는 비슷한 캐릭터와 비슷한 연출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는 어떤 만화가 일본 만화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만화냐 아니냐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좋은 만화가 있으면 좋은 독자들이 생기고, 그 독자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만화가들의 노력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구십년대는 또한 대본소와 문하생 체제의 주류 만화계가 점점 더 대중들의 외면을 받게 되고, 새로운 감각의 언더그라운드 만화가들의 활동이 우리 만화계에 새로운 자극을 주기 시작한 때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 모두 육십년대의 격렬한 혁명이 가라앉고 난 뒤 그 정치적 열기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새로운 형식의 만화들이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구십년대의 영상 붐은 팔십년대의 정치적 열기가 새로운 형태로 문화적 자양분이 되고 있음을 분명히 확인하게 해 준다.

 

또 한편 우리나라 만화계에 있어 지난 십 년은 문화 산업의 시대라는 거품을 타고 만화-애니메이션-게임-캐릭터 산업의 찬란한 미래를 꿈꾸고 날아올랐다가, 그 거품이 빠지자 곧바로 곤두박질쳐 자신의 허약함을 여실히 증명하게 된 뼈아픈 교훈의 시기이기도 했다. 모든 장르에서 사회적 검열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청소년 보호법"의 제정은 만화를 여전히 아이들이나 보는 저급한 오락물로 보는 기성 세대의 편견을 다시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이제 만화가 우리 대중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분명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과연 만화가 단순한 일회성의 오락이 아니라 우리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양식 있는 "문화"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이 먼저 있어야 할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만화를 빌려 보는 대본소, 대여점 문화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구십년대 중반에 겨우 싹트기 시작한 만화 단행본 시장은, 곧이어 몰아닥친 아이엠에프 한파로 인해 꽁꽁 얼어 버렸다. 일본 만화의 황금기는 독자들이 만화를 빌려 보는 것이 아니라, 사서 보기 시작한 칠십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만화의 진정한 변화도 만화를 사서 보며, 그런 만큼 신중하게 만화를 골라 볼 수 있는 만화 문화가 자리잡는 것에서부터 본격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다음 십 년, 아니 새로운 천 년을 맞이하게 되는 우리 만화계는 꽤나 험하고 혹독한 시련의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십일 세기에 일본 만화의 서양 진출은 더욱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일본 만화의 매력에 맛을 들이고 있는 서양의 젊은이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고, 그이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많은 만화들이 그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나아가 그것은 우리 만화가들에게도 서양으로까지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래서 다음 십 년은 우리 만화계가 우수한 일본 만화를 훌륭한 만화적 전통으로 삼으면서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만화 독자들이 세계의 좋은 만화를 보며 눈을 높이듯, 만화가들 또한 세계 독자들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이곳에서 진정 빛나는 만화 문화를 열매맺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 명석/만화 평론인인 이 명석 씨는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문화 잡지 <이매진> 기자, 웹진 <스폰지> 편집장을 지냈고, 현재 만화 문화 사이트 "마나마나(www.manamana.kr.net)"를 운영하고 있으며, <리뷰>, <씨네 이십일>, <프리미어> 들의 문화 전문지에 만화와 영화, 인터넷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그로테스크하고 아라베스크한 문화의 백과 사전>, <이 명석의 유쾌한 일본 만화 편력기> 들의 책을 내기도 했다.

 

 

 

<출처;tong.nate.com/kkj9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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