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어 사랑을 하기 오래전부터 내 아이의 이름을 가슴속에 간직하며 살아왔다. 그 이름은 자주 바뀌었으나 언제가 내 아이가 태어나면 그 이름을 꼭 선물하고 싶었다. 결혼이 늦어진 덕에 그 이름을 먼저 결혼한 동생부부에게 선물했고 지금 그 이름은 내 조카아이의 것이 되었다. 지난 토요일. 성공회 서울성당에서는 진도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20일간의 도보 순례를 하고 오신 신부님들을 맞는 성찬례가 있었다. (그 분들 중에는 춘천 성공회 나눔의 집 박순진 신부님도 포함되어 있다.) 광화문에서 신부님들과 유가족들을 모시고 약식집회를 하고 장소를 이동하여 성당에서 성찬례를 했다. 예배가 끝날 때쯤, 눈물 흘리는 소리마저 들릴 것 같아 조심스러운 성당 안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이름이 한 사람 한사람 불려졌다. 가슴이 미어졌다. 나는 생각했다. 누군가는 저 이름들 하나하나에 이 세상에 대한 모든 희망을 담았을 거라고. 자신의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미래를 스스로 약속하고 다짐하며 태어난 아이에게 그 이름을 선물했을 거라고. 김빛나라, 이단비, 이은별, 한고운, 김건우, 정이삭.. 이름을 부르던 수사님의 목소리가 떨릴 때마다 사람들은 고개를 떨구거나 어깨를 들썩였다.
그 신도들 사이로 꼬마 아이 둘이서 노란 풍선을 입에 물고 뛰어 다녔다. 자매인 듯 다정해 보인 두 아이의 웃는 얼굴은 다시 나에게 얘기했다. 누군가도 저 아이들과 같은 아이들을 자신의 생을 걸고 키워냈을 것이다. 자신의 입에 들어갈 것을 아이의 입에 먹이고 자신의 살을 깎아 아이의 옷을 입혔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는 오늘 아침, 내가 아내와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 그 일이, 생애 마지막 인사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어제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상이 축복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삶. 세월호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이 세상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이 모든 것마저도 이제 그만 잊으라하는 이 세상이, 유가족들과 신부님들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라. 빨갱이들은 모두 북으로 보내야한다’고 쉼 없이 마이크로 떠들어대는 저 어버이들의 모습이.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250명의 단원고 아이들의 이름이 불리던 성당 안에서 눈을 감고 그 이름들을 들을 때 나는 그 이름들이 들려주는 어떤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가 내게 하는 얘기는 이런 것이었다. 유가족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한사람은 바로 나일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게도, 방송과 신문에게도 버림받은 세월호 부모들에게 이제 희망이란 게 있다면 나와 같은 평범함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미안해하다가도 잊어버리고 쉽게 변하지도 못하며 늪에 빠진 듯 일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와 같은 사람들. 저분들은, 고작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런 우리야말로 어쩌면 유가족들을 마지막까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우리가 함께 나눈 이 못난 대한민국의 평범한 삶이 어쩌면 우리를 저분들과 연결시켜주는 가장 단단한 고리가 된다는 것을. 세상이 바뀌는 일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바뀌는 모습에서 온다는. 결국 나를 움직이지 못한다면 세상은 단 한걸음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강원희망신문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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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분들이 춘천에 오십니다. 많은 당원분들이 함께 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