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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국(太平天國)! 모든 백성이 지극히 평화롭고 평등한 지상천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혁명가 홍수전이 세운 나라 이름이다. 홍수전의 태평천국은 중국 역사상 가장 기이한 실험이었다. 기독교 성서를 동양적으로 해석하여 이상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그의 실험은 고통받는 민중의 염원과 절망을 안고 한때 성공한 듯 보였지만, 신의 사랑은 생각보다 짧았다.
신의 사랑이 짧았다기보다는 인간의 사랑이 변하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내분에 휩싸인 태평천국은 이미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다. 수도 천경(天京, 오늘날의 난징)은 식량 보급로도 끊겨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었고, 당연히 민심도 흩어졌다. 1864년 5월 천왕(天王) 홍수전은 덜컥 병에 걸렸다. <출애굽기> 16장에서 신이 백성들에게 음식을 내려준 것을 보고 잡초를 떡으로 만들어 먹었기 때문이라고도 전한다. 신이 자신을 치료해줄 것이라 생각했던지 홍수전은 약도 먹지 않았고 변변한 치료도 받지 않았다. 20일을 앓은 후 6월 1일 그는 50년 5개월의 생을 마감했다.
세간에는 오랫동안 홍수전이 태평천국의 멸망을 예감하고 자결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태평천국의 신하였던 충왕(忠王) 이수성(李秀成)이 토벌대장 증국번(曾國藩)의 요청에 따라 홍수전이 음독 자살한 것으로 서술했기 때문이다. 증국번은 홍수전이 병사했다고 보고하는 것보다는 자살했다고 보고하는 것이 자신의 공을 높이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홍수전이 죽자 사실상 태평천국의 혁명은 종말을 맞이했다. 7월 19일 성이 함락되면서 태평천국의 혁명은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홍수전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아들 홍천귀복(洪天貴福)도 토벌군에게 잡혀 죽었다.
태평천국 혁명을 연구한 고지마 신지는 홍수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광기와 종이 한 장 차이 혹은 오히려 광기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정력적인 신념과 이에 기초한 유토피아에 대한 꿈은 초기에 큰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것이 유효한 건설의 에너지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의 신앙과 유토피아는 너무나 주관적이고 현실과의 합리적인 통로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신화가 하나의 권력으로 바뀌었을 때, 이 권력은 매우 비능률적이고 억압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이 신앙에 고집하고 있는 한 태평천국 운동의 패배는 피하기 어려운 필연이었다.”
1814년 1월 1일 홍수전은 청나라 시절 광동성 화현에서 3남 2녀 가운데 네 번째인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이름은 인곤(仁坤)이었다. 그의 집안은 객가(客家)였는데, 객가란 한족(본지인)이 아닌 외래이주자 집안을 일컫는 것이었다. 집안 형편은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어서, 인곤의 두 형은 서당에 다니지 못하고 집안일을 도와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모든 일에 관심이 많고 집중력이 강한 인곤만은 꼭 교육을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린 시절부터 홍수전은 서당에 다녔다. 서당에서는 주로 사서오경을 중심으로 한 유학서적을 읽었다. 이러한 유학적 교양이 나중에 기독교까지도 다분히 유교적으로 해석하는 계기를 주었다. 서당에서 보여준 그의 실력은 탁월했다. 그러나 그와 그의 가족이 그토록 염원했던 과거 시험에서는 번번이 낙방하였다. 화현의 현시에는 합격했지만 다음 단계인 부시에서 실패한 것이다. 1837년 세 번째 낙방한 후 홍수전의 낙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과거에 연속으로 낙방한 것이 곧 그가 비범한 인물로 살아가는 원인이 될 줄은 그 스스로도 몰랐다. 낙방의 굴욕이 너무도 커서 그는 시험이 끝난 후 열병에 걸려 들것에 실린 채로 귀향했다. 그로부터 약 40일 동안 홍수전은 거의 의식을 놓은 채 꿈속을 헤매었으며 헛소리를 계속했다. 이 환몽이 홍수전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든 첫 번째 계기가 되었다.
1840~50년대 홍콩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선교사 테오도르 햄버그는 홍수전 전기를 쓰면서 홍수전의 환몽 경험을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햄버그의 기록에 따르면 홍수전은 환상 속에서 특별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홍수전을 향하여 “용기를 내어라, 맡은 일을 다하여라, 어떤 곤란한 경우에도 나는 너를 도와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홍수전은 또 때때로 중년의 사내를 만났다. 홍수전은 그를 장형이라 불렀다. 중년의 사내는 홍수전에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아주 먼 지방까지 가서 악령을 물리쳤다. 홍수전은 훗날 노인을 ‘상제(上帝)’라 생각했고, 장형을 예수 그리스도로 생각했다. 자신은 자연스럽게 예수 그리스도의 동생이 되는 것이었다.
건강이 회복되면서 홍수전의 인품은 완벽하게 달라져 있었다. 한결 의젓해지고 친절했으며 신중해졌다. 외모도 위엄이 가득한 풍채로 바뀌었으며 걸음걸이도 중후해졌다. 병에 걸리기 전에 얻은 <권세양언(勸世良言)>이라는 책 또한 홍수전의 삶을 바꾸어준 중요한 것이었다. 이 책은 성경의 주요 부분을 발췌하고, 유교 불교 도교 등을 우상숭배와 미신의 예로 비판한 책이었다. 홍수전은 처음에 이 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자세히 보지 않았으나, 외사촌 이경방이 이 책의 내용을 물어오자 책을 다시 보게 되었다. 책에 깊이 빠진 그는 환몽 속에서 체험한 것을 이 책의 내용에 입각해 해석하기 시작했다. 환몽 속의 노인은 이 책에서 ‘상제(上帝)’라고 번역한 여호와이며, 그가 악마를 격멸할 때 도와준 장형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악마들은 이 책에서 비판하고 있는 유교 불교 도교와 민간신앙이라고 해석했다.
홍수전은 자신의 체험이 특별한 종교적 체험임을 확신하고 책에 씌어진 대로 종교적 의식을 거행하였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 사명을 유일한 신 ‘상제’로부터 부여 받았다고 확신하고, 이경방과 함께 머리에 물을 부으면서 ‘죄악을 씻어내고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에 따른다’는 서약을 하였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생각하는 세례였다. 이렇게 하나의 종교가 탄생하고 있었고, 종교의 명칭은 상제를 숭배한다는 뜻에서 ‘배상제교(拜上帝敎)’라 했다. 배상제교를 창립한 홍수전은 가까운 친구들에게 포교활동을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상제에 귀의하라고 역설한 결과 홍수전의 태평천국 건국에 지대한 공헌을 한 홍인간(洪仁玕)과 풍운산(馮雲山)이 동지가 되었다.
태평천국을 건국. 스스로 천왕에 오른 홍수전
홍수전의 종교는 엄밀히 말해 기독교와는 다른 것이었다. 홍수전의 상제는 유일신이되 부인도 있고 자식도 여럿인 인격신이었다. 그래서 고지마 신지는 홍수전의 상제가 사실상 옥황상제에 가깝다고 말한다. 어쨌든 그로 인해 배상제교는 중국인들에게 비교적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었지만, 초기에는 유교를 부인한다는 이유로 배척 받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그들은 고립되면 고립될수록 “예언자는 고향에서 용납되지 않는다”라는 <권세양언>이 인용한 성경 구절에 의해 더욱 고무되었다. 홍수전과 이경방은 보검을 만들어 몸에 차고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손에 3척의 검을 쥐고 산하를 평정하며 ,
사해를 일가로 삼아 함께 평화를 누리리.
요마(妖魔)를 사로잡아 모두 땅 그물에 던지고,
간사한 자를 잡아 하늘의 그물에 떨어뜨리리.
동서남북은 황극에 걸리고,
일월성신은 개선가를 연주하네.
호랑이와 용은 울부짖으며 세계를 비추네,
모두가 태평해지면 얼마나 즐거울까.
최진규 역
초기에 풍운산의 포교활동이 활발했다. 그는 자형산 안에서 후원자를 얻어 산간마을은 물론, 무선 귀현 평남 등 인근 지역에서 3천여 명의 신도를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이 실질적인 배상제회라는 결사의 시작이었다. 상제가 현세에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복신앙적인 요소가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자석이었다. 조직이 갖추어진 만큼 이들은 계율을 만들어야 했다. 홍수전은 풍운산의 의견을 받아들여 배상제회의 계율서인 <천조서>를 만들고 모세의 10계를 본떠 10조의 계율을 만들었다.
1) 상제를 예배하라.
2)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3) 상제의 이름을 멋대로 붙여서는 안 된다.
4) 7일마다 예배하여 상제의 은덕을 찬양하라.
5) 부모에게 효도하라.
6) 남을 죽이거나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7) 불의와 음란의 죄를 범하지 말라.
8) 도적질이나 약탈을 하지 말라.
9) 거짓말이나 속임수를 말하지 말라.
10) 탐하지 말라.
각 조에는 간단한 설명이 붙어 있는데, 10조의 경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타인의 예쁜 아내와 딸을 보고 이를 손에 넣고 싶어한다거나 타인이 가진 물건과 재산을 보고 욕심 내는 자, 도박을 하거나 복권을 사거나 과거시험에 누가 합격할 것인가로 내기를 하거나 하는 자는 모두 천조를 범하는 자이다.”
1848년에는 상제와 예수 그리스도가 배상제회 신도의 몸을 빌려 나타나는 특별한 일이 있었다. 상제는 양수청(楊秀淸)이라는 청년의 몸을 빌려 지상의 진정한 군주가 될 자는 홍수전임을 분명히 밝혔다. 예수 그리스도는 소조귀(蕭朝貴)라는 젊은 농민의 몸을 빌려서 홍수전이 자신의 동생이자 천하만국의 통치자라고 말했고, 풍운산 양수청 소조귀 위창휘(韋昌輝) 등 나중에 태평천국의 왕이 되는 이들도 상제의 친아들로서 홍수전의 아우라고 지목했다.
이러한 이야기는 이들의 거병(擧兵)과 건국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신화화된 것이다. 1851년 1월 드디어 이들은 농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청나라와 봉건주의를 물리치기 위해 거병하였는데, 신앙심으로 굳게 뭉친 이들의 전투력은 막강했다. 영안(永安)에 입성하여 홍수전은 양수청 소조귀 풍운산 위창휘를 각각 동왕 서왕 남왕 북왕으로 봉하고, 석달개(石達開)를 익왕(翼王)으로 하여 조직을 갖추었다. 명실공히 나라의 꼴이 갖추어진 것이다. 풍운산이 전사하긴 했지만 태평천국의 군대는 파죽지세였다. 1853년 남경에 입성한 홍수전은 남경을 천왕부로 삼고 천경이라 개칭했다.
제2차 아편전쟁 후 프랑스와 미국이 청나라와 연합하여 태평천국 진압에 나섰다.
1864년 6월 세상을 뜰 때까지 홍수전은 최고 권력자였지만, 군대를 장악한 양수청의 권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양수청은 가끔 상제가 강림했다며 특이한 목소리를 내어 홍수전을 벌하곤 했다. 양수청의 권력이 갈수록 커지자 홍수전은 북왕 위창휘를 시켜 양수청을 죽였고, 위창휘의 권력도 커지자 그도 죽였다. 합리적인 통치수단을 구현해내지 못하고 신탁에 의존한 그들의 계획은 결국 그로 인해 무산된 셈이었다. 내부의 잦은 권력다툼은 나라의 힘을 급속도로 약화시켰던 것이다.
난세에는 어지러운 세상을 구원해줄 영웅을 기다리게 마련이다. 그런 민중의 기다림에 부응하여 영웅이 출현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 영웅이 우리를 진정으로 구원한 예는 드물다. 영웅의 힘이 권력화될 때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옭아매는 오랏줄이 되고 만다. 홍수전의 혁명운동도 그랬다. 그는 한때 그 지역 민중의 구세주였으나, 권력자가 된 뒤에는 민중 위에 군림하는 자였다.
홍수전의 반란은 중국 역사상 무수히 있어왔던 반란과 다를 바 없이 취급되었다. 청나라 조정은 홍수전을 대역죄인으로 보고 조상의 무덤까지 파헤쳐 파괴하였다. 신해혁명 이후 홍수전에 대한 평가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손문과 그를 계승한 사람들이 홍수전을 만주족과 청나라에 저항한 혁명의 선구자로 칭송했기 때문이었다. 공산당 혁명세력도 마찬가지로 홍수전을 영웅시했다. 그들에게 홍수전은 농민혁명의 훌륭한 지도자이자 평등사상을 실현하고자 노력한 선구자였던 것이다.
실제로 ‘천하는 한 집안’(天下一家)이라는 이상 아래 대동세상을 구현하려 했던 홍수전의 정책은 이후에도 영향을 끼쳤다. 제대로 실행되지는 못했지만, 홍수전은 토지와 그 생산물을 모두 평등하게 분배하려 했다. 그러나 합리적인 제도를 실시하기에는 왕국의 태생 자체가 선민의식에 의존하고 있었고, 태평천국의 집권자들도 권력을 잡는 순간 사실상 민중 위에 군림했다. 생각해보면, 지금으로부터 150~160여 년 전에 신화를 통해 지상천국을 건설하겠다는 터무니없는 열정이 배고픈 민중에게 먹혀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슬픈 일이다. 지상에 진정 유토피아는 건설될 수 있는 것일까?
필자가 추천하는 덧붙여 읽으면 좋은 책
조너던 D. 스펜스의 <신의 아들-홍수전과 태평천국> 은 가장 자세하게 기술된 홍수전 평전이다. 청나라를 위협할 정도로 막강했던 거대한 종교공동체인 태평천국의 흥망성쇠를 훑어보면서, 홍수전의 꿈과 사상에 나타난 기독교적 요소, 그리고 홍수전 개인의 성격과 리더십을 살펴보고 있다. 홍수전 밑에서 태평천국을 이끌어나간 대표적인 인물들의 성격과 활동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들여다보았다.
고지마 신지의 <홍수전>(최진규 옮김, 고려원, 1995)은 학술적인 엄밀함을 유지하고 있는 책임에도 재미있다.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홍수전이 살던 시대가 역동적이었고, 그의 삶은 드라마틱했으며, 주변 사람들 또한 기이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이겠지만, 무엇보다도 태평천국과 홍수전에 관한 풍부한 정보와 함께 제공되는 합리적인 해석 덕분이다.
테오도르 햄버그의 <洪秀全>(노태구 옮김, 새밭, 1979)은 아주 특별한 책이다. 태평천국 혁명이 한창인 1854년 무렵에 쓴 홍수전에 관한 특별한 전기이기 때문이다. 태평천국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홍인간이 직접 전해준 정보를 기초로 하여 집필된 책이어서 홍수전 신화를 대체로 여과 없이 들을 수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직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이후 이야기가 계속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