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먼더펑요(我們的 朋友/우리는 친구다)
열차 안(南京에서 成都까지 25시간) / 묘족(苗族) 아가씨들 / 어메이샨(峨眉山)의 사면십방보현보살상
중국은 알수록 아리송한 나라이다. 이 에피소드가 그 한 예가 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중국인은 무례하고, 지저분하고, 질서가 없고, 잘난 체를 좋아하는... 별로 좋지 않은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그뿐이랴, 중국산 상품들은 싸구려고, 가짜가 많고, 믿을 수 없고... 대부분 거부감을 주는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이 중국 여행을 선호하는 까닭은 유구한 역사에 따른 엄청난 유물 유적들, 곳곳에 널려있는 수많은 아름다운 경관들이 여행객들을 유혹하기 때문일 것이다.
2014년 4월, 여행을 좋아하는 두 친구와 배낭을 메고 홀가분하게 쓰촨성(四川省)의 청두(成都)를 다녀오기로 하고 난징(南京)에서 침대(軟臥)열차를 탔는데 청두까지 25시간이 걸린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웃지 못할, 영원히 기억에 남을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 일행 세 명 중, 한 명은 중국어를 조금 하고 나와 다른 한 친구는 중국어를 거의 못하여 짧은 중국 토막말과 영어로 중국인들과 겨우 눈인사로 얼굴을 익히는 정도였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어 식당차로 갔더니 만석(滿席)으로 자리가 없다. 식탁은 네 명이 한 테이블로 드문드문 빈자리가 하나씩 있기에 할 수 없이 세 명이 따로 떨어져 앉게 되었는데 열차 안에서 눈인사를 나누던 40대 전후의 중국 젊은이 셋이 저녁을 먹다가 종업원을 부르더니 간이의자를 가져오라고 하여 둥그렇게 자리를 만들고는 우리보고 같이 합석(合席)을 하자고 한다. 그러지 않아 말도 안 통하여 곤란하던 차라 덥석, 그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빠이주(白酒/배갈)로 이미 얼굴이 불그레한 녀석이 일어서더니 우리 세 명 저녁을 자기가 사겠단다.
극구 만류하는데도 우리를 눌러 앉히고는 재빨리 카운터로 가서 음식을 시키는데 제법 가격이 나가는 고급요리를 시킨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빠이주를 종이컵에 따라주며 신나게 마셔보잔다.
그리고는 ‘워먼더 펑요(我們的 朋友/우리는 친구)’를 외치며 이빠이(一杯/원 샷)를 하자고 한다.
우리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술을 조금 하지만 나는 거의 술을 못 마시는데 분위기를 봐서 마시지 않을 수가 없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호기 있게 ‘워먼더 펑요’를 외치며 목구멍으로 술을 쏟아부었다.
바로 옆자리에 않았던 40대 중반의 대머리 중국 녀석이 흘끔거리며 쳐다보더니 자기가 마시던, 옆에 손잡이가 달린 됫병보다 큰 술병을 들고 와 합석(合席)을 하며 오늘 신나게 마셔보잔다.
연거푸 잔을 채우고는 ‘이빠이(一杯), 워먼더 펑요(我們的 朋友)’를 반복한다. 에라 모르겠다~~.
‘워 아이 쭝궈런!(我愛 中國人/나는 중국인을 좋아한다.)’, ‘한궈런 쭝궈런 펑요!(韓國人 中國人 朋友/한국 사람과 중국 사람은 친구다.)’ 우리는 어쭙잖은 중국 토막말을 내뱉으며 서로 얼싸안고 목구멍에 술을 들이 붓다 보니 모든 술병이 바닥이 났는데 이미 모두 곤드레만드레.... 술에 약한 나는 대취(大醉)하고 말았다.
내가 정신이 없는 중에도 술기운 때문이겠지, 나도 모르게 일어서서 허리를 굽실거리면서 두 손을 모아 흔들며 사방을 둘러보고 큰 소리로,
‘워쓰 한궈런, 워아이 쭝궈런, 워먼더 펑요(我是 韓國人, 我愛 中國人, 我們的 朋友/나는 한국인이요. 나는 중국인을 좋아합니다. 우리들은 친구요)’라고 외쳤더니 모두 두 손을 모아 흔들며 답례를 하고 웃는다.
마침 조금 떨어진 자리에 침대칸 내 옆자리의 20대 초반 아가씨가 앉았기에 손가락으로 아가씨를 가리키며 중국노래 첨밀밀(甜蜜蜜)의 한 구절을 불러제꼈다.
‘티엔미미 니샤오더티엔미미, 하오샹후얼 카이자이 춘펑리(甜蜜蜜, 你笑得甛蜜蜜 好像花儿 开在春风里/달콤해요, 그대 미소는 달콤하지요. 그대는 봄바람에 피어난 한 송이 꽃과 같아요!)’
모두 손뼉을 치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아니 시끄럽다고 인상을 찌푸린 사람도 몇몇은 있었을 테지....
거기까지는 그런대로 좋았는데 어쨌거나 그다음이 문제였다.
짜이찌엔(再見/안녕!)을 외치며 일어서는데 도무지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세 놈이 부둥켜안고 비틀거리며 가까스로 자리까지 왔는데, 대취(大醉)한 40대 대머리 중국 놈이 따라와서 주절거리기 시작한다.
두 친구를 가까스로 침대로 밀어 넣는데 이미 인사불성인 한 친구는 바닥에 꼬라 박히더니 이마에 주먹 같은 혹이 생겼다.
같은 칸에 누웠던 승객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몇몇 중국인이 일어나 주절거리는 중국 놈을 데리고 간다. 나는 자리가 3층이라 가까스로 기어오르는 데는 성공했는데 웬걸 누워서 설핏 잠이 들려는가 싶더니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취한 중에도, 잘못하다가는 아래층 자는 사람들한테 복중주(腹中酒)를 쏟아낼까 조바심이 들어 다시 기어 내려와 바닥을 엉금거리며 구석에 있는 쓰레기통에 머리를 처박았다. 몇 번을 토하고 나니 조금 나은데 자는 승객들이 얼마나 짜증이 날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시 기어서 열차 두칸 연결부분에 있는 화장실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에도 쓰레기통이 있어 몇 번을 더 쏟아내고는 그 앞에 그냥 주저앉았는데 머리가 빙글거려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냥 팔짱을 끼고 앉았는데 화장실 있는 곳이 열차의 연결 부위라 바람이 들어와 추워서 견딜 수가 없다.
턱을 가슴에 처박고 얼마나 덜덜거리며 비몽사몽(非夢似夢) 간을 헤매었는지...
정신이 혼미한 중에 갑자기 누군가 내 가슴에 이불을 씌워주는 기척이 있어 가까스로 눈을 뜨고 쳐다보았더니 아까 내가 손가락질하며 노래를 불렀던 그 20대 초반 중국 아가씨가 이불을 가져다 내 가슴에 덮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신없는 중에도 셰셰(謝謝)....
얼마나 지났는지 조금 진정이 되기에 이불을 들고 다시 내 자리로 기어 올라가 설핏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깨어보니 아침이다. 기차가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오길래 나는 그래도 정신을 차리겠는데 두 친구는 아침까지도 술이 깨지 않아 눈을 멀뚱거리며 두리번거리는 것을 서둘러 강제로 질질 끌고 내려야 했다. 가방이고 여권이고 지갑이고... 바닥에 흩어져 있는 것을 중국 승객들이 주워준다. 그 이후로 나는 중국을 무지무지 사랑하게 되었다. (워 아이 쭝궈/我 愛 中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