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廣闊)한 대륙의 나라 미국
Ⅱ. 끝없는 대평원(大平原)의 미국 남부(南部)
<미국 남부 텍사스 주>
9. 텍사스 북부의 작은 도시 아마릴로(Amarillo)
식당 빅 하우스 / 식당 앞(손녀와 촬영)
캐니언 관광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30분 거리 북쪽에 있는 아마릴로로 향하였다.
아마릴로(Amarillo)는 텍사스에서 가장 큰 도살장이 있고 또 스테이크가 맛있기로 텍사스는 물론 미국 전체에서 첫손을 꼽히는 곳이라고 한다. 그 유명하다는 스테이크 집 ‘빅 하우스(Big House)’에서 식사를 했는데 건물도 어마어마하게 크다. 건물 내부는 벽면이 온통 거대한 뿔이 달린 사슴 머리의 박제로 채워져 있고, 예전 카우보이들의 복장은 물론 자잘구레한 그들의 장신구까지 전시하고 있다. 또 종업원들의 옷차림도 커다란 모자와 박차(拍車)가 달린 부츠 등 당시의 카우보이 복장이다. 재미있는 것은, 건물 밖에도 커다랗게 써 붙여져 있었지만 ‘1시간 동안에 72온스의 스테이크를 먹는 사람은 공짜, 대신 실패하면 72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1온스가 28g이니 전체 2kg 정도>
우리가 식당에 들어갔을 때, 한 우람한 체격의 백인 젊은이가 도전하고 있었는데 옆에는 디지털시계가 남은 시간을 표시하고 있는데 결국, 반쯤 먹고 실패했다. 1인분이 6~8온스니까 거의 10인분...
건물 밖에는 당시의 포장마차, 높이 3m쯤이나 되는 엄청나게 큰 카우보이 신발, 실물의 2배도 넘는 소의 동상 등 텍사스를 상징하는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메뉴판에는 텍사스 특유의 남부 사투리도 씌어 있는데 이를테면 ‘How de yo'll?’ 이런 비슷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How do you all?’의 남부 표현이라고 하며 다른 지역에서의 표현은 ‘How do you guys?’ 정도이겠다. ※How de yo'll<하드욜>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텍사스 고유의 전통으로 스테이크 집에서는 땅콩을 무제한 제공하는데 까먹은 껍질을 바닥에다 그냥 버려 엄청나게 많은 껍질이 테이블 밑에 흩어져 있어 처음 들어가면 꼭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소금을 가미하여 껍질째 구운 땅콩을 큰 통에 가득 채워 식탁 위에 올려놓는데 돈도 내지 않으니 까먹으면 짭짤하고 먹을만하다.
고급 스테이크집도 예외가 아닌데 걸어가면 빠작빠작 껍질 부서지는 소리, 또 먼지도 많이 날 것 같은데 손님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땅콩을 까서 입에 털어 넣는 모습이 재미있다. 이것이 텍사스의 전통이란다.
10. 그림 같은 도시 샌안토니오(San Antonio)
알라모 요새 / 리버워크(River Walk) / 당시 민병대(民兵隊) 모습 재현
텍사스 남부 샌안토니오는 영화로도 잘 알려진 ‘알라모 요새’가 있는 아름다운 도시로, 2010년에는 혼자, 2018년에는 딸 가족과 함께 두 번 다녀왔다.
이곳은 원래 멕시코 땅이었던 까닭인지 건물들이나 도시 모습 전체가 미국이라기보다는 멕시코에 가깝다고 하겠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유명한 리버웍(River Walk)인데 도심 한가운데로 흐르는 강은 도시 지표면보다 5~6m 낮아서 계단을 통하여 강변까지 내려가야 한다.
강변에는 거대한 나무들이 들어차 있고 수많은 아름다운 다리는 물론 카페와 식당들이 강변을 따라 빼곡히 들어차 있으며 큰 빌딩 밑으로 관광객을 실은 크루즈가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한다.
폭이 5~6m 정도로 꼬불꼬불한 운하는 양쪽으로 산책로도 잘 꾸며져 있고, 작은 관광 크루즈가 쉴 사이 없이 다닌다.
크루즈는 넘쳐나는 관광객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줄 뒤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8달러 50센트를 받는 관광 크루즈는 45분 정도 도심 가운데를 흐르는 강(운하)을 도는데 저녁이 되면 운하 양쪽에 들어서 있는 수많은 카페와 노천 음식점들은 오색 불빛을 밝혀 휘황찬란하다. 식당마다 손님들로 넘치는데 4~5명으로 구성된 마리아치(솜브레로를 쓰고 멕시코 전통복장을 입은 악단)들이 식당을 돌며 기타와 아코디언 반주에 맞추어 경쾌한 멕시코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다음 날은 미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던 비극의 현장 알라모 요새를 둘러보았다.
18세기 초,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전도소(傳道所)로 지어졌던 알라모(Alamo)는 수도회에서 이 지역의 전도를 포기하고 떠나자 멕시코 정규군이 점령하여 요새로 사용했는데 이곳 주변에 미루나무가 많아 미루나무라는 의미의 알라모(Alamo:스페인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1835년 12월 텍사스 의용군 부대는 멕시코 군대를 몰아내고 알라모를 되찾는데 멕시코군이 다시 쳐들어오자 샘 휴스턴을 비롯한 미국의 텍사스 지도층은 이곳을 포기하고 철수하지만, 의용군들은 철수를 거부하고 끝까지 사수(死守)하기로 결정한다.
1836년 2월 23일, 멕시코의 ‘산타안나 장군’이 이끄는 멕시코 정규군 4.000여 명의 대 공세가 시작되자 의용군을 이끌던 ‘제임스 보이 대령’과 ‘윌리엄 트래비스 대령’은 186명의 의용군을 지휘하여 14일간이나 저항하다가 전원이 전사하는데 멕시코군은 1.000~1.600명의 전사자를 냈다고 한다.
이들이 14일간 버티어 준 덕분으로 샘 휴스턴 장군이 이끄는 미국 정규군은 지금의 휴스턴 부근에서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벌어 결국 멕시코군을 격파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이 전쟁 결과,멕시코 땅이었던 텍사스주, 뉴멕시코주와 애리조나주 일부가 미국 영토가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알라모는 텍사스 인들의 자랑이자 영웅적 저항의 상징이 되었으며 전사자들 전원이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이것이 멕시코와의 전쟁인 알라모 전투로 후일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매월 첫 토요일은 알라모 전투를 기념하여 각종 전시회가 열리고 의용군 복장을 한 자원봉사자들이 당시 사용하였던 각종 무기와 복장을 갖추고 행진하는 모습도 보여주는데 마침 내가 갔던 날이 2월 첫 토요일이라 운 좋게도 관광객들과 함께 이 행사를 볼 수 있었다.
알라모요새 안의 가운데 메인 홀은 성당이고 둘레는 작은 방들이 있는데 당시 전투에서 어린아이와 여자들 15명 만이 살아남았다는 조그만 방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 밖에 수많은 당시의 유물들을 전시한 몇 개의 방과 꽤 넓은 안마당, 총탄 자국이 선명한 외벽 등도 잘 보존되어 있다.
알라모 요새 앞의 거리는 항상 관광객들로 넘치고, 길거리는 예쁘게 치장한 꽃마차 여러 대가 관광객들을 태우고 수많은 기념품 가게들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관광 꽃마차 / 알라모 추모 타워 / 한국전(6.25) 참전기념 조형물
또 이 근처 자그마한 공원에는 한국전쟁과 월남전 참전기념 조형물이 있었다.
한국전(6.25) 참전기념 조형물은 겨울철인 듯 참호 속에 두터운 방한복을 입은 미군 두 명이 피로한 표정으로 보초를 서고 있는 모습이어서 가슴이 쓰리다. 그 둘레로는 전사자들의 명단이 빼곡하게 동판(銅版)에 새겨져 있었는데 한국전쟁에서 미군 5만여 명이 전사하였다고 적혀 있었다.
몇 년 후, 집사람과 다시 미국 딸네 집을 방문했을 때 손녀들을 데리고 다시 이곳을 방문하였다.
샌안토니오의 자랑 리버워크 / 미국의 자존심 알라모 요새(집사람과 손녀)
18세기 초,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전도소로 지어졌던 알라모(Alamo)는 수도회에서 이 지역의 전도를 포기하고 떠나자 멕시코 정규군이 점령하여 요새로 사용했는데 이곳 주변에 미루나무가 많아 미루나무라는 의미의 알라모(Alamo:스페인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 알라모는 텍사스 인들의 자랑이자 영웅적 저항의 상징이 되었으며 전사자들 전원이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이것이 멕시코전쟁 중 ‘알라모 전투’로 후일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알라모요새 안쪽은 가운데 메인 홀에 성당이 있고 둘레는 작은 방들이 있는데 당시 전투에서 어린아이와 여자들 15명 만이 살아남았다는 조그만 방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 밖에 수많은 당시의 유물들을 전시한 몇 개의 방과 꽤 넓은 안마당, 총탄 자국이 선명한 외벽도 잘 보존되어 있다.
알라모 요새 앞의 거리는 관광객들로 넘치고, 길거리는 예쁘게 치장한 꽃마차 여러 대가 관광객들을 태우고 있었고 수많은 기념품 가게들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샌안토니오는 이국적인 멕시코풍의 도시 모습으로, 또 미국 자존심의 대명사인 알라모 전투의 현장인 알라모 요새로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관광지 중의 하나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