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아정신과지나영마음이흐르는대로 p294-300
앞에서 언급했듯이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단계설’에서 인간이 지닌 최상의 욕구를 자신이 지닌 최고의 가능성에 다다르는 ‘자기실현’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실현을 성취한 사람들이 보이는 공통점을 연구 관찰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자기실현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잘 가려낸다. 대개 삶에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본 사람들이며, 그 어려움을 풀어가야 할 문제로 보고 해결책을 구상하고, 또 그러한 과정에서 홀로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대체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또 그들은 현실을 잘 직시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 그리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며, 자신 외의 일에도 늘 관심을 가진다. 동시에 자발적이고 창의적이면서 사회의 관례에 잘 구애 받지도 않는다. 간혹 충동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런 특성들을 내 모습에 비추어 생각해보았다. 운 좋게도 나는 매슬로가 말한 자기실현에 다다른 사람들의 특성을 여럿 가지고 있는 듯하고, 또 누가 뭐라 하든 내가 원하는 삶을 소신 있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어느정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자기실현이라는 정점에 이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은 아닐지언정 나 자신은 더없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울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이런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이 들뜰 것이다. 모든 욕구가 다 채워지고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정점에 이르는 것이니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때를 상상하며 내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하게 대답을 찾아보았다. ‘나 역시 그럴 수 있을까?’ 아쉽게도 답은 ‘아니다’였다. 물론 여러 역경을 잘 넘겨가며 나답게 살아온 나의 삶이 무척 뿌듯하고 만족스러우며, 별다른 후회도 남지 않는다. 그렇지만 더 궁극적인 앞날을 생각했을 때 가슴 한구석이 텅 빈듯한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었다. 이를 보면 최상의 욕구라는 ‘자기실현’의 경지에 올라도 메워지지 않는 욕구가 있는 것 아닐까. 사실 자기실현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욕구라 말한 매슬로 본인도 말년에 가서는 반전된 생각을 보이며 자기실현보다 더 상위의 욕구가 있다고 자신의 이론을 수정했다(그는 그때가 자신의 말년임을 몰랐는데, 조깅을 하던 중심한 심근경색이 와 62세로 갑자기 생을 마감했다). 매슬로는 그가 죽은 뒤 출판된 글에서 자기실현보다 상위의 욕구인 ‘자기초월’을 이렇게 설명했다. 자신의 진심에 집중하며 자기를 중심에 놓고 사는 삶을 넘어서서 이타심, 영적 각성, 서로 하나 됨 같은 나를 ‘초월’하는 가치에 집중할 때 다다를 수 있는 경지라고. 즉, 남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참된 나’를 찾은 후에 오는, 심지어 나 자신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는 그야말로 진정한 ‘초월’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자기 초월의 개념은 매슬로와 동시대인이던 오스트리아 신경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이 이미 늘 강조해오던 것이었다. 더 나아가 프랭클은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자기초월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저절로 자기 밖으로 주위를 돌리게 되어 있다고도 말했다. 어쩌면 가난에서 벗어나 부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자기실현이라 믿으며 이기적이라고 할 만큼 평생 한눈 팔지 않고 달리시던 내 아버지에게도, ‘자기초월의 의지’가 잠재해 있었던 것이리라. 그래서 자신을 희생하다시피 하는 환경에서도 타인을 생각하며 공장 문을 닫지 않으신 것이리라. 또한 프랭클은 자기실현이란 내가 그 실현을 좇아 노력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할 때나 타인에게 사랑을 줄 때에, 즉, 자기초월을 향해 갈 때에 부수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마치 부산물이 나오듯 말이다. 이렇듯 우리가 자신만을 위해 열심히 살아갈 때는 다 채우지 못하는 더 높은 상위의 욕구가,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에게 인정의 손길을 뻗칠 때에야 비로소 채워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의 마음속 빈자리는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한참 궁리해보다가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아, 내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으면 되겠구나!’ 나는 그토록 부모가 되고 싶었으나 아이를 갖지 못했다. 반대로 그 아이들은 간절히 부모를 원했지만 부모가 곁에 있어 주지를 못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나는 캄보디아에서 조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두 여자아이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처음 그 아이들의 사진을 받았을 때는 내가 그 아이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앞으로도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소아정신과 의사로든 봉사자로든 후원자로든 임시 부모로든, 내가 부모를 잃은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존재가 될수 있다면 마음속의 빈 자리가 채워질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내 나이 이제 마흔넷이니 나는 인간 평균 수명의 반 남짓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내 인생 전반전을 살펴보면 어딘가 모르게 어수선하고 늘 허둥거리고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은 내 주변에 또 내 삶 구석구석에 나를 진심으로 도와주었던 손길들이 늘 끊이지 않고 있었다. 나답게 길러주신 부모님부터 늘 친구가 되어준 언니, 문제집 살 돈도 없던 내게 샘플 문제집을 주시던 학창 시절 선생님들, 어렵고 힘든 의대공부를 서로 나누어 하며 형제자매처럼 지낸 의대 동기들, 평생 의사로서 되새길 교훈을 심어주신 의대 은사님들, 미국에 와 처음으로 혼자 살아야 했을 때 가족처럼 챙겨주던 동료 의사들, 외국인인 내가 뒤처지지 않게 배려하고 도와 주던 미국 레지던트 동기들, 좋은 정신과 의사로 성장하도록 수련해주신 UNC 교수님들, 볼티모어에서 가족이 되어 주고 지금은 평생 친구가 된 이웃들, 성숙한 교수로 성장하도록 이끌어준 존스홉킨스와 케네디크리거의 상사들과 멘토들, 내 병을 공감해주고 측은히 여기며 정성을 다해 치료해주었던 친구 정태환 교수, 내가 병으로 1년 가까이 자리를 비워야 했을 때 그 자리를 기꺼이 메워준 나의 상사들과 동료들, 이렇게 별난 그리고 아픈 아내를 떠나라 해도 떠나지 않고 계속 옆에 있어준 곰 같은 남편까지……. 다 나열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할 만큼 많은 ‘사람’이 있었기에 남편이 말했듯 나는 ‘기적처럼’ 여기까지 왔다.
* 2부 사막 교부들의 금언 토마스 머톤 p43- Verba Seniorum 10
한 원로가 말했다. “경솔하게 자신을 믿지 말고, 혀와 욕망을 제어하며 술을 멀리 하십시오. 어떤 문제로 누군가가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면 그와 논쟁하지 마십시오. 그가 옳게 말한다면 ‘좋습니다.’ 하고, 그릇되게 말한다면 ‘당신 생각대로 하십시오.’라고 말하되 그의 말에 대해 논쟁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하면 여러분의 마음이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