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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한국은 2012대선의 한 복판에 서 있다. 선거와 정치는 영화의 소재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현실의 대선 시기에 영화로 선거와 정치를 다루었던 작품들에 대해 문석 <씨네21>편집장이 글을 보내왔다. 현실같은 영화, 영화같은 현실이다. 글이 너무 길다. 그래서 3회에 나누어 게재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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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가 코 앞에 다가왔다. 들떠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관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불안해 하는 이도, 느긋한 이도 있을 것이다. 선거 결과에서 그냥 드라마틱한 무언가를 기대하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MB를 뽑던 지난 선거를 제외하곤 한국 정치와 대선이란 항상 드라마틱한 순간을 낳았으니 그런 기대도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따지고 보면 선거란 본디 드라마틱한 요소를 갖고 있다. 승자와 패자가 있고 선도와 역전이 있으며, 드문 경우지만 때로는 인간승리의 이야기 또한 갖고 있지 않은가. 때문에 선거는 스포츠에 자주 비교되곤 한다.
하지만 선거는 스포츠를 능가하는 면을 갖고 있다. 농구의 버저 비터나 야구의 9회말 2아웃 역전 만루홈런이 짜릿하다 해도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막판 역전승보다 짜릿하긴 어렵다. 생각해보라. 아무리 인기 있는 팀이라 해도 1천만명 이상이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보다 많은 팬을 갖긴 힘들지 않겠나. 물론 국가대표팀이라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또 하나 중요한 차이는 한번의 승리로 4년이나 5년동안 왕좌를 누리는 경우는 스포츠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월드컵이 있기는 하지만 1년만 지나도 축구 팬조차 디펜딩 챔피언이 어느 나라인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여기서 퀴즈, 2010 남아공 월드컵의 우승팀은 어디였을까? 1초, 2초, 3초………… 땡. 정답은 스페인 되겠다).
이런 드라마틱한 선거라는 분야를 영화가 외면했을 리 없다. 극영화가 탄생한 이래, 표현의 자유가 확대된 이래, 정치가 드라마를 만들어낸 이래 영화는 끊임없이 정치를 다뤄왔고 그중에서도 선거는 숱하게 많이 다뤘다. 대부분은 할리우드 영화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심심치 않게 선거영화를 만들어왔다.
오랫동안 표현의 자유, 특히 정치권에 대한 비판이 억압돼 왔던 한국의 경우, 정치/선거영화가 그리 많지는 않은 편이지만 그래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대통령 선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살인과 음모를 다룬 스릴러물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1991, 감독 강우석)나 집창촌의 윤락녀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2003, 감독 송경식), 한 마을의 이장 선거를 둘러싼 권력 갈등을 묘사하지만 사실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표했던 <이장과 군수>(2007, 장규성) 같은 영화가 있다. 불행히도 이들 영화는 대중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지도 못했고 평단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할리우드라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선거를 다룬 할리우드 영화 중 역대 가장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올해 개봉한 제이 로치 감독의 <캠페인>(The Campaign)으로, 869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블록버스터가 아니더라도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웬만한 흥행작이 1억 달러를 쉽게 넘긴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정치/선거영화가 대중에게 큰 소구력을 가진 소장르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계속 이런 종류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앞서 말한 드라마틱한 본성과 함께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라고, 달리 말해 투자 대비 수익률이 그리 나쁜 편은 아니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정치/선거영화를 만드는 데는 거대한 세트가 필요하지도 않고, 특급 배우가 등장하지 않아도 되며(일부 영화는 예외지만), 화려한 CG가 들어갈 필요 또한 없다. 군중으로 출연할 아주 많은 엑스트라만 있으면 일단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할리우드는 유대인들이 일궈냈고 유대인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 경향이 강하다는 점도 고려할 요소다. 아무리 현대 할리우드가 금융자본과 MBA, 회계사에 의해 장악됐다 해도 여전히 유대계는 할리우드의 파워 그룹으로 존재하고 있으니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들 정치/선거영화의 절대 다수는 민주당을 지지하거나 그 보다도 더욱 리버럴한 견해를 품고 있다). 게다가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할리우드의 대다수 구성원은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적 사고와 생활에 젖어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런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피력하는 차원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런 영화가 크진 않아도 짭짤한 수익을 준다면 스튜디오 입장에서도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커다란 수익 대신 정치/선거영화가 평단의 호응을 추구하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이 분야의 영화 중 영화사의 걸작으로 남을 법한 영화는 손에 꼽을만하다.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스미스씨 워싱턴 가다>(Mr. Smith Goes To Washington, 1939)나 앨런 J. 파큘라 감독의 <대통령의 음모>(All The President’s Men, 1976) 정도만이 영화사의 한 장을 장식할 뿐이다.
굳이 폭을 넓힌다 해도 평단이 만장일치에 가까운 칭찬을 보낸 이 계열 영화로는 <모두가 왕의 부하들>(1949, 감독 로버트 로센), <밥 로버츠>(1992, 감독 팀 로빈스), <닉슨>(1995, 감독 올리버 스톤) 등만이 떠오를 뿐이다. 또는 고등학교 반장 선거라는 장을 통해 정치세계를 우회적으로 묘파하는 <일렉션>(1999, 감독 알렉산더 페인)나 교황 선출이라는 과정을 특유의 유머와 날카로운 정치감각으로 풍자하는 난니 모레티 감독의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2011) 같은 영화도 있다.
평단이 손가락을 뒤집어 야유를 퍼붓는다 해도 정치/선거영화들이 하나같이 쓰레기는 아니다. 이들 영화 중에는 영화적으로 허접스럽고 구태의연하며 시시껄렁해도 나름 괜찮은 메시지를 품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도 이들 영화가 시큰둥한 반응을 얻곤 하는 건 영화평론가라는 깨나 까다로운 족속의 성향이 반영됐기 때문이리라.
대개의 훌륭한 영화평론가는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영화에 대해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만큼 정치에 관해서도 근본주의적인 기준을 들이미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보수와 진보의 구도를 허접하게 나눠 대충대충 묘사하는 것은 그들의 심미안을 더럽힐 가능성이 크다. 권력의 횡포, 정치의 비정한 속성 등을 어설프게 취급하는 것은 어지럼증을 유발할 것이 틀림없다. 그 어지러운 정치판에서 끝내 선한 의도를 가진 주인공이 승자가 된다는 결말은 그들의 구토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가 정치학 교과서나 예리한 정치 팸플릿일 수는 없는 법. 구멍이 많고 어눌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더라도 문제제기가 신선하거나 전개방향이 참신하거나 어떤 진심이 담겨있는 정치/선거영화들 또한 존재한다. 이제부터 소개할 영화들이 바로 그것이다.
걸작은 아닐지언정 뚜렷한 정치적 메시지를 품고 있으며 영화적으로도 비교적 잘 만들어진 작품들을 소개하려 한다.
* 프라이머리 컬러스❘Primary Colors❘1999❘감독 마이크 니콜스❘출연 존 트라볼타, 엠마 톰슨, 애드리언 레스터, 캐시 베이츠
미국에서 정치/선거영화가 활발하게 제작되는 또 하나의 이유를 꼽자면 이런 내용을 신랄하게 다루는 픽션/논픽션이 수도 없이 쓰여지고 읽히기 때문이다. 실제 정치인이나 정치적 사건을 모델로 다루더라도 탄탄한 원작이 있다면 보다 완성도 있는 영화를 만들기 쉬울 터이고 명예훼손 등의 책임에서도 가벼워질 것이다.
명장 마이크 니콜스 감독이 만든 <프라이머리 컬러스>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1992년 민주당 경선 캠페인을 다루는 영화다. 이 영화는 1996년 출간된 <프라이머리 컬러스: 정치 소설>에 기반하고 있다. 이 책은 당시 저자가 익명(Anonymous)으로 표기된 채 발간됐는데, 훗날 저자는 클린턴의 선거운동을 취재했던 칼럼니스트 조 클라인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 영화는 클린턴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한 선거운동 과정, 특히 후보 선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발휘하는 뉴 햄프셔주 프라이머리 과정에 포커스를 맞춘다. 사실 199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이전까지 클린턴은 전국적인 차원에서 무명 인사에 가까웠다. 게다가 모두가 알다시피 클린턴은 아칸소 주지사 시절부터 성추문으로 이름나 있었고 화이트워터 사건까지 겹쳐 있었다. 이 영화는 그가 어떻게 이러한 난관을 돌파했는지를 한 선거 참모의 눈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물론 정정당당하고 깨끗했을 리 있겠는가.
영화의 중심 인물 잭 스탠턴(존 트라볼타, 그는 클린턴과 쏙 빼닮은 모습으로 등장한다)은 클린턴처럼 남부의 주지사로 1992년 대선 민주당 후보 경선에 출마한 인물이다.
화자(話者) 격인 인물은 흑인 인권단체에서 일하던 성실하고 똘똘한 젊은이 헨리 버튼(애드리언 레스터). 그는 스탠턴의 아내이자 동지이자 뛰어난 조력가인 수전 스탠턴(엠마 톰슨) 등 선거참모진과 함께 스탠턴의 당선을 위해 애쓰게 된다.
버튼이 보기에 스탠턴은 아직 전국적으로는 무명 인사에 불과하지만 젊고 매력적이며 강직하며 인간미까지 넘치는, 그러니까 보기 드문 정치인이다. 하지만 이러한 환상은 시간이 갈수록 와르르 무너진다. 그가 알게 된 스탠턴의 본 모습은 대중 앞에서의 모습과 달리 이기적이며 포악하고 사이코 같은 면까지 갖춘 섹스중독자다.
결국 사건이 터진다. 한 미용사가 스탠턴과 혼외정사를 가졌다고 주장하며 전화 통화를 녹음한 테이프까지 폭로한 것이다. 스탠턴 선거팀은 이 분야의 전문가이자 잭과 수전의 오랜 정치적 동지 리비 홀든(캐시 베이츠)을 불러들여 맞대응한다. 그녀는 뛰어난 수완으로 이 테이프가 조작됐으며 여기에 다른 후보가 개입됐음을 입증해낸다. 그 와중 유력 후보였던 해리스가 사망하고 그 자리를 과거의 정치 거물 피커스(래리 해그먼)가 차지하면서 스탠턴은 다시 위기를 맞는다. 리비 홀든을 중심으로 한 스탠턴 캠프는 피커스가 1978년 갑자기 정계를 떠났던 사정에 어떤 흑막이 있을 것이라 추측하고 이를 뒤쫓지만 다시 핵폭탄급 스캔들이 터지며 당황하게 된다. 그것은 스탠턴이 자신의 고향 마을에 사는 16살 짜리 소녀를 임신시켰다는 것이다.
결말은? 스캔들은 사기와 협잡으로 마무리되고 피커스 또한 자신의 음험한 비밀을 묻어주는 대가로 사퇴하지만 이 모든 게 어지러울 뿐인 버튼은 정치판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런 그에게 스탠턴은 얘기한다. “정치라는 세계를 좀 인정할 수 없어? 길은 하나야. 최선으로 싸우는 것. 우리는 국민들이 더 좋은 세상을 이루기 위한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해야 돼. 그게 최종목표야. 기회를 잡아야 권력을 잡을 수 있거든.”
<프라이머리 컬러스>는 현대 정치와 선거의 기본기인 네거티브 전략과 전술을 폭로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이 영화는 우리의 선거란 최선이나 차선이 아니라 최악이 아닌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일이라는 슬픈 현실을 드러낸다.
또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클린턴, 아니 스탠턴의 정치적 행위가 모두 선의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니까 그가 벌인 온갖 추악한 짓거리가 ‘더 좋은 세상을 이루기 위한 기회를 잡기’ 위한 대의에 따른 것이라고 했을 때 우리는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 또는 이런 질문. 도덕적으로 훌륭하지만 정치적으로 무능한 정치인과 도덕적으로는 난잡하지만 정치적 능력은 뛰어난 정치인 중 우리는 누굴 선택할 것인가.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나올 때 착잡해지는 건 그 때문이리라.
* 왝 더 독❘Wag The Dog❘1997❘감독 배리 레빈슨❘출연 더스틴 호프먼, 로버트 드 니로, 앤 헤이시
배리 레빈슨 감독의 <왝 더 독>은 래리 베인하트의 소설 <아메리칸 히어로>에 바탕을 둔 영화다. 이 소설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펼쳤던 ‘사막의 폭풍’이라는 작전명의 걸프전쟁이 사실은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녹화된 것이라는 음모론적 가설에 입각하고 있다. 마치 아폴로 11호의 달착륙 장면이 스튜디오에서 연출된 것이라는 (아주 근거가 풍부한) 음모론처럼 말이다. 하긴, 이라크 건물에 원격 미사일이 명중하는 모습은 당시 TV 화면으로 무한 반복됐는데 생각해보면 뭔가 어설펐다는 기억이 든다.
영화는 이 소설의 모티프를 약간 변형한다. 소설에서 명시했던 부시라는 이름을 지우고 이라크 대신 알바니아를 전쟁 대상국으로 내세운다. 왜 알바니아냐고? 일단 전후 사정부터 알아보자.
대통령 선거를 2주도 남기지 않은 시점, 재선에 출마한 현직 대통령이 대형 사고를 친다. 백악관을 방문한 소녀를 방으로 데려가 성추행한 것이다(클린턴의 르윈스키 스캔들은 이듬해에 폭로됐으니 이 영화는 대단한 선견지명을 가진 셈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백악관 참모진은 노회한 선거 컨설턴트 콘래드 브린(로버트 드 니로)을 호출한다. 브린은 이 치명적인 스캔들은 ‘성동격서’로만 해결될 수 있다 생각하고 알바니아와의 가짜 전쟁을 구상한다.
그는 우선 백악관이 부인할 경우 외려 사실이라고 믿는 언론의 속성을 활용한다. 브린은 백악관 참모들로 하여금 알바니아와의 전쟁설과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전폭기 B-3의 출격 가능성을 우회로를 통해 흘리도록 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 사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들어왔을 때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는 전술을 쓰게 한다. 결국 언론은 알바니아와의 전쟁이 임박했음을 호들갑을 떨며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대통령의 스캔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첫 단계를 마무리 지은 브린은 할리우드로 날아가 영화 제작자 스탠리 모츠(더스틴 호프먼)를 찾는다. 그는 모츠에게 특수효과를 통해 전쟁을 눈에 보이도록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다. 모츠는 뛰어난 솜씨로 폭정에 고통받는 알바니아 소녀의 이미지(알바니아 소녀를 연기하는 미국 틴에이저로는 당시 15살이던 커스틴 던스트가 출연하는데 정말 웃긴다)를 완성하고 알바니아의 핵 테러위협을 조작한다.
하지만 외교라인이 가동돼 알바니아와의 긴장이 완화되자 대통령의 성추문은 다시 부각된다. 브린과 모츠는 보다 극적인 2단계 작전을 구상한다. 그것은 알바니아에 투입된 한 미군 병사가 고립됐으며 그를 구출해야 한다는 여론을 조작하는 것이다. 작전은 실행되지만 문제가 하나 발생하는데, 그것은 그 병사를 연기해야 할 슈만이라는 군인이 군 감옥에 수감돼 있던 사이코패스라는 사실이다. 슈만의 멍청한 짓으로 그가 탔던 비행기는 추락하고 연이은 바보짓으로 결국 슈만은 사망한다. 자, 당신이 브린과 모츠라면 어떤 조작을 통해 대통령을 재선의 길로 인도할 것인가?
<왝 더 독>은 매우 유쾌하면서도 신랄한 블랙 코미디다. 1998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는 남우주연상(더스틴 호프먼)과 각색상 후보로 올랐다가 둘 다 놓치긴 했지만 이 보다 한달 앞서 열린 베를린영화제에서는 배리 레빈슨 감독에게 은곰상을 안겼다.
때때로 풍자가 리얼리티를 갉아먹기도 하지만 드 니로와 호프먼이라는 대배우의 척척 들어맞는 호흡 덕분에 영화는 매끈하게 굴러간다. 이 영화의 제목인 ‘wag the dog’은 영어의 관용구인 ‘tail wagging the dog’에서 나왔는데, 이 말은 주객전도 또는 하극상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는 다음과 같이 자막이 나오기도 하는데, <왝 더 독>의 주제와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왜 개가 꼬리를 흔들까?/ 그야 개가 꼬리보다 똑똑하니까./ 만약 꼬리가 더 똑똑하다면 꼬리가 개를 흔들걸.” <왝 더 독>은 TV를 대표로 하는 매스미디어의 이미지라는 꼬리에 휘둘리는 개 같은 정치판을 한바탕 조롱하고 비판하는 영화다.
* 킹메이커❘The Ides of March❘2011❘감독 조지 클루니❘출연 라이언 고슬링, 조지 클루니,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폴 지아매티
한국에서 올해 초 개봉했던 <킹메이커>는 연극 <파라거트 노스>(Farragut North)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다. <파라거트 노스>는 극작가 보 윌먼이 2004년 민주당 경선 후보였던 하워드 딘 선거 캠프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브로드웨이 연극이다.
연극의 제목 ‘파라거트 노스’는 워싱턴 DC에 있는 한 전철역 이름인데, 이 주변에는 씽크 탱크와 로비스트, 시민단체들이 모여 있다고 하니 대선 후보의 보좌관이 주인공인 연극의 제목으로는 썩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킹메이커>의 주인공은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유력한 마이크 모리스(조지 클루니)의 공보담당 보좌관인 스티븐 마이어스(라이언 고슬링)이다. 그는 젊지만 뛰어난 정치적 감각으로 모리스를 보좌해 그로 하여금 경선 1위를 고수하게 만든다. 곧 열리는 오하이오 프라이머리만 승리하면 모리스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오하이오 프라이머리는 만만치 않은 승부처다. 경선 2위를 달리고 있는 테드 풀먼이 맹렬히 추격하고 있는 데다 프라이머리라는 제도의 성격상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모리스를 견제하기 위해 공화당 지지자들이 풀먼에게 몰표를 던질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승부의 관건은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300여명의 대의원을 확보하고 있는 상원의원 프랭클린 톰슨의 지지를 얻는 것이다.
이 순간, 마이어스에게 결정적인 위기가 찾아온다. 풀먼 선거본부의 수장인 톰 더피(폴 지아매티)의 비밀 만남 제의를 덜컥 받아들인 것이다. 이 자리에서 더피는 마이어스에게 자기 편 캠프로 넘어올 것을 제안한다. 더피는 캐스팅 보트 격인 톰슨이 차기 정부에서 국무장관을 맡는 대신 풀먼을 지지하기로 결정했다면서, 그리하여 이미 대세는 넘어왔다면서 그의 결단을 촉구한다.
마이어스는 그 제안을 거부하고 자리를 뜨지만 이 일은 부메랑이 돼 그의 목을 조르게 된다. 마이어스가 더피를 만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모리스 측 선거본부장 폴 자라(필립 세이무어 호프먼)가 언론에 두 사람의 만남을 흘렸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무엇보다 신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자라는 이 일을 기회 삼아 마이어스를 해고한다. 이와 동시에 마이어스는 깊은 관계를 맺기 시작한 선거운동 인턴 몰리(에반 레이첼 우드)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겼음을 알게 된다. 그녀는 모리스와 섹스를 했고 임신까지 한 상태였던 것. 게다가 애초의 제의를 받아들여 더피를 찾아간 마이어스는 더피로부터 “이제 너는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더피는 마이어스가 자신의 캠프로 와도 좋지만, 상대 캠프에서 해고된다 해도 그를 무력화하는 셈이기 때문에 애초부터 양수겸장의 묘수로 만남을 제안했던 것이다.
<킹메이커>의 원제 ‘The Ides of March’는 본래 로마력으로 3월15일을 의미하는데, 흔하게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브루투스 등에 의해 암살당한 날(BC 44년 3월15일)을 일컫는다. 즉, 강력한 중앙집권통제를 통해 각종 개혁을 실시하려던 카이사르에게나 공화정을 지켜내려던 반대파에게나 이날은 운명적인 날이었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오하이오 프라이머리가 3월에 열리기도 하지만, 이 프라이머리는 마이크 모리스 후보에게나 보좌관인 스티븐 마이어스에게나 운명이 걸린 승부인 셈이다. 특히 패기있고 능력있지만 관록이 부족했던 마이어스에게 이 프라이머리는 정치적 생명이 걸린 어마어마한 승부다.
벼랑 끝까지 몰린 그는 결국 날카로운 단검을 빼든다. 게다가 몰리가 자살까지 했으니 마이어스는 승부수를 던질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는 모리스를 비밀리에 만나자고 한 뒤 몰리 건을 빌미로 협박을 벌인다. “당신은 정치판에서 깨뜨려서는 안될 유일한 룰을 어겼으니까요. 대통령이 되려면 전쟁을 시작할 수도 있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으며, 바람을 피워도 되고, 나라를 파산시켜도 되지만 인턴을 건드려선 안 되는거죠.”
그는 몰리와 모리스의 불륜에 대한 아무런 증거도 없음에도 몰리가 남긴 음성메모가 있다고 주장한다. 모리스 또한 그의 패가 ‘뻥카’인 것을 거의 확신하지만 일말의 가능성 때문에 불안하다. 과연 마지막 승부는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
열성 민주당 지지자이자 언젠가는 민주당을 대표해 대통령 후보로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 조지 클루니는 좋은 배우이기도 하지만 좋은 연출자이자 각본가이기도 하다.
특히 매카시즘의 광풍에 맞서는 방송국 뉴스 앵커의 이야기를 다룬 그의 연출작 <굿나잇 앤 굿럭>(2005)은 여러 상을 받기도 했다. <킹메이커>에서도 그는 연출과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 속 캐릭터들은 내가 정치에 관여하면서 만난 수백명의 사람들을 섞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연극에서 언급되고 내가 영화를 통해 반영한 불법 행위, 민주적 절차에 대한 조작, 비밀 협상, 권력 남용 같은 것들은 모두가 사실이다. 정치인들이 이 나라의 가장 높은 곳에서의 승리를 위해 얼마나 많이 제도를 조작하는지를 알면 무시무시하다”고 이 영화의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방송사와의 인터뷰를 위해 연단에 오른 마이어스의 황량한 모습은 미래의 정치라고 해서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