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분리의 기원과 의미
최광희 목사
‘정교분리’는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에서 오래된 아젠다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 용어의 개념에 대해 오해하는 국민이 많다. 그동안 이 단어가 큰 이슈가 되지 않은 이유는 종교인들이 아무리 정부를 비판하고 공격해도 정부는 종교를 존중해 왔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반정부 시위대가 공권력에 쫓겨 명동성당으로 피신했을 때 어떤 정부도 종교 시설을 압수·수색하여 범죄자를 색출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명동성당에 숨어든 시위대가 종교인이 아닌 노동자 단체였어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절에 정교분리란 정부가 종교 단체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었고, 일부 종교인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부가 정치권 비판하는 종교 단체를 향해 공세적 태도로 돌변하여 군사 독재 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종교 시설 압수·수색과 종교 지도자를 구속하는 일이 발생하자 정교분리의 참된 의미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졌다. 게다가 최근에는 최혁진 의원 등이 발의한 “민법일부개정법률안”의 내용이 “종교법인 해산법”이라며 기독교 연합회와 시민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어떤 범죄 사실이 발생했을 때는 법원을 통해 영장을 발부받아서 압수, 수색, 체포 등을 하는 것이 합법적 절차이다. 하지만 최혁진의 개정안은 영장이 없이도 행정 공무원이 임의로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불량한 종교 단체를 해산시켰을 경우 종교 단체의 재산을 정부가 몰수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일제 강점기의 교회 폐쇄법과 흡사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교분리의 기원과 그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절실해졌다. “정교분리”란 과연 무슨 뜻일까? 세 가지 해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정치가 종교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다. 2) 종교가 정치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다. 3) 정치와 종교는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이 중 어느 것이 바른 헌법 정신인가?
법학박사이며 미국 변호사인 전윤성은 “헌법 제20조 제2항 종교분리 규정의 개정방향에 대한 연구”에서 우리나라 헌법에 들어와 있는 정교분리는 원래 “국교분리” 즉 “교회와 국가의 분리”가 되어야 하는데 제헌헌법 초안에서 번역상 오류가 발생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이 문구는 반드시 ‘국교분리’로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 전윤성 박사의 주장이다.
전윤성은, 우리나라 헌정사에서 제헌헌법은 미국의 수정헌법을 기초로 제정했는데 당시 번역 담당자가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종교와 정치의 분리”로 오역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는 헌법이 정교분리 표현 앞에 “국교(國敎)는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종교가 국교로 정해질 경우 그 종교는 우선적 지위를 가진다. 국민은 누구나 국교를 신봉해야 할 의무가 생기고 그 외의 종교는 차별 혹은 탄압을 받는다. 하지만 현행법에서 우리 국민은 누구나 자유롭게 자기 종교를 선택할 자유를 가지는데 이것이 바로 “국교분리”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국교분리 정신에 따라 국민의 종교에 간섭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종교인이 정치표현을 하는 것은 어떤가? 모든 종교인은 대한민국 국민이므로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그런데 국교분리로 번역되어야 할 영어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가 “정교분리”로 오역되어 헌법에 들어오면서 정치와 종교 상호 불간섭이라는 오해가 많이 퍼져 있다. 이처럼 오해의 여지가 다분한 “정교분리” 용어는 반드시 “국교분리”로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 전윤성 박사의 주장이다. 전박사의 해당 논문은 「법학연구」 제36권 제3호에 게재되어 있으므로 많은 법조인이 이를 통해 개념의 변화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국가는 종교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국교분리 개념이 미국의 수정헌법에 들어온 것보다 훨씬 오래전, 이러한 개념이 생겨난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스코틀랜드 교회는 성경적 신앙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16세기에는 가톨릭교회와 싸웠고 17세기에는 국교회와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러다가 국왕의 권세를 이겨낸 스코틀랜드 교회가 1638년 에든버러 그레이프라이어스교회(GreyFrias Kirk)에서 왕과 귀족, 성직자와 일반 국민이 함께 모여 국민언약(National Covenant)에 서명함으로 교회를 향한 국가의 간섭을 완전히 배제하였다. 당시 국민언약에 서명한 언약도(Covenanters)들은 장로교의 기원이 되었다.
스코틀랜드에서 국왕과 의회가 교회의 교리와 예배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국민언약에 서명한 이것은 국교분리 혹은 정교분리 개념의 기원이며 이것이 여러 과정을 통해 미국 수정헌법을 거쳐 우리나라 헌법에도 들어와 있다. “국교분리”라고 하든 “정교분리”라고 하든 그 말의 원래 의미는 “국교는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에 다 들어가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국가는 국민의 종교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교분리 개념의 기원을 알지 못하는 국민 가운데 이를 국가와 종교의 상호 불간섭으로 오해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런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도 기회가 있다면 정교분리를 국교분리로 수정하는 것이 맞으며, 그러기 전에도 정교분리를 이유로 종교인의 정치 참여를 억압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모든 종교인은 국민이기에 정치 참여가 당연한 권리이지만, 국가는 종교를 억압하지 말라는 것이 정교분리 정신의 기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