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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의 제정과 그 의미”
□ 출애굽기 12:1-14 □
김경래 (전주대학교 기독교학과・구약학)
I. 개역 본문 및 번역에 관한 해설
1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2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3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 이 어린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양을 취하되, 4그 어린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인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면 각 사람의 식량을 따라서 너희 어린양을 계산할 것이며, 5너희 어린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6이 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7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8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9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출12:10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11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12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13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14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해설>
2절. ⌈호데쉬⌋ שׁדח 는 본래 ‘새롭다’라는 뜻에서 파생하여 ‘매월 달이 새로 뜨기 시작하는 월삭(月朔 new moon)’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월삭과 그 다음 월삭 사이의 기간, 곧 ‘달’ month 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된다. 이 단어가 ‘월삭’을 뜻하는 경우로는 민29:6; 삼상20:5, 18, 24, 34; 왕하4:23; 사1:13; 겔46:1, 6; 암8:5; 시81:4 등을 들 수 있다. 히브리어 구약 성경에 총 281회 출현하는 이 단어는 그중 22회의 경우만 ‘월삭’의 뜻으로 사용되고 나머지는 모두 ‘달’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2절에 세 번 나오는 שׁדח는 모두 후자의 뜻으로 사용된 경우들이다. 참고적으로 2절의 ‘해의 첫 달’이라는 구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본문 הנשׁה ישׁדחל אוה ןושׁאר 을 문자적으로 다시 직역하면 ‘한 해의 달들 중 첫째’가 된다. 이 경우에 우리 개역은 매끄러운 한글 문장을 제공하고 있어서 적합한 번역이라고 생각된다.
3절. תא תיב는 문자적으로 ‘조상들의 집’을 뜻하는데, 여기서 ‘가문’ 내지는 ‘집안’의 뜻으로 사용된 תיב를 구체적으로 한정하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서 혈통에 관계없이 함께 사는 한 집이 아니요, 서로 가족 관계를 이루는 ‘집안’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히브리어 표현에 있어서 תא תיב는 בא תיב와 구분된다. 전자는 ‘한 집에 함께 사는 가족의 모든 구성원’, 곧 ‘온 식구’를 가리키고, 후자는 ‘같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모든 자녀들’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아모스 하캄의 출애굽기 주석: The Chumash Shmot With The Commentary Daat Mikrah, 예루살렘, 1991, 히브리어). בא תיב라는 표현은 민3:24, 30, 35; 17:17; 25:14, 15; 수22:14; 대상23:11; 24:6; 대하35:5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히브리어 낱말 ⌈쎄⌋ השׂ 에 대하여는 개역과 표준새번역 공히 ‘어린 양’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뒤의 5절에서 설명하겠지만 이 낱말은 여기서 ‘어린 양’과 ‘어린 염소’를 다 포함하는 뜻으로 사용된다. 우리말에 양과 염소를 다같이 가리킬 수 있는 단어가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이 번역을 취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정확한 의미는 문맥 (이 경우에는 5절)을 통하여 파악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4절. ולכא יפל שׁיא은 앞에 나오는 구절 תשׁפנ תסכמב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숫자를 따라서 정하되, 먹는 것을 기준으로’ 계산하라는 뜻이다. וסכת의 어근은 ה (이것의 어근은 הסכ) 와는 달리 ססכ이지만, 기본적으로 둘 다 같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השׂה לע וסכת는 어린양을 먹는 일에 참가할 인원을 정하라는 뜻이다. ססכ는 이곳에 1회만 나오는데 그치고, ה는 이곳 말고도 레27:23에서 또 한 번 등장한다.
5절. ‘어린 양’ (⌈쎄⌋ השׂ)은 여기서 히브리어 단어 ‘쬰’ (ןאצ)과 더불어 양과 염소에 대한 통칭(通稱)임을 알 수 있다. 우리 성경에 일반적으로 ‘양(羊)’이라고 번역되는 낱말 ⌈쬰⌋ ןא 은 히브리어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양과 염소 떼를 두루 가리키는 집합 명사이다 (「그 말씀」 1995년 10월호에 실린 필자의 “신약성경 번역상의 몇 가지 문제점”, 145-151 참조). ⌈쎄⌋ השׂ 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항상 단수로만 사용되고, ⌈쬰⌋ ןאצ 은 항상 복수로서 사용된다. 따라서 ןאצ은 השׂ의 복수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창30:32은 단수와 복수로서 이 두 낱말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떼 (⌈쬰⌋ ןאצ)로 두루 다니며 그 양 (⌈쎄⌋ השׂ) 중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와 검은 자를 가리어 내며 염소 중에 점 있는 자와 아롱진 자를 가리어 내리니 이같은 것이 나면 나의 삯이 되리이다.”
우리말 개역의 경우 3절과 5절 모두에서 ⌈쎄⌋ השׂ 를 ‘어린 양’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반하여, 표준새번역의 경우 3절에서는 ‘어린 양’으로 5절에서는 ‘짐승’으로 서로 달리 번역되어 있다. 필자에게도 무슨 묘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개역이든 표준새번역이든 번역문만을 읽는 독자들에게 오해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6절. ⌈벤 하아르바임⌋ םיברעה ןיב 의 뜻에 관하여는 몇 가지 해석이 있다. 그 중 하나는 םיברע을 쌍수(雙數)로 보고, 이 표현을 ‘두 저녁의 사이에’ 라는 뜻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해석이다. 이 경우 ‘두 저녁’은 14일 전날과 당일의 두 저녁 내지는 ‘해질 무렵과 어두워진 때’의 쌍으로 보는 것이다 (에벤 에스라; B.D.B. p. 788; John Durham, Exodus, Word Biblical Commentary, vol. 3, Waco, Texas, 1987). 이런 식의 해석은 히브리 언어에 대한 일반적 상식에 기초한 하나의 개연적 판단으로서 그 진위 여부를 판가름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고대 역본들이나 유대인 주석가들의 문헌을 통하여 다른 견해들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칠십인역에서는 6절의 ⌈벤 하아르바임⌋ םיברעה ןיב 을 ⌈프로스 헤스페란⌋ προς εσπεραν 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 헬라어 문구는 다시 우리말로 ‘저녁 무렵’ toward evening 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온켈로스의 아람어 탈굼에서는 이 히브리어 문구를 ⌈벤 쉼샤야⌋ א ןי 라고 옮기고 있는데, 이는 ‘황혼에’ at twilight 라는 뜻이다. 칠십인역이나 아람어 탈굼이나 거의 동일한 시간대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
중세의 유명한 유대인 주석가 라쉬는 ‘제 6시에서 시작하여 그 이후의 시간대’를 가리킨다고 이 구절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제 6시’란 아침 6시를 기준점으로 계산한 시간, 곧 ‘낮 12시’를 가리킨다. 라쉬는 이 구절을 계속하여 설명하기를, “이때에 (= 제 6시) 해가 그 지는 곳의 방향으로 기울면서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내가 보기에 םיברעה ןיב이라는 표현은 낮의 어두워짐과 밤의 어두워짐 사이의 시간을 가리키는 듯하다. 낮의 어두워짐은 저녁 그림자가 기울기 시작하는 때 곧, 낮 제 7시가 시작되는 때에 있고, 밤의 어두워짐은 밤이 시작되는 때에 있다”라고 한다. 라쉬에 의하면 םיברעה ןיב라는 표현은 정오에서부터 밤이 시작되는 때까지의 시간을 가리키는 셈이 된다. (라쉬의 주석은 아람어 탈굼 및 다른 중세의 몇몇 유대인 주석과 더불어 흔히 랍비 성경이라고 불리는 תולודג תוארקמ에 실려 있다. 라쉬 주석에 대한 영역본으로는 Rabbi A.M. Silbermann의 Chumash with Targum Onkelos, Haphtaroth and Rashi's Commentary, Jerusalem, 1934를 참조할 것.)
오늘날 이스라엘의 유대인 주석가 중 한 사람인 아모스 하캄은, 기본적으로 라쉬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아르바임⌋ םיברע 이 쌍수가 아니라, ⌈쬬호라임⌋ םיירהצ 과 같이 지속되는 시간을 가리킨다고 하며, 또 ןיב은 ‘사이에’가 아니라 ‘가운데, … 중에’ 라는 뜻으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자신의 견해를 펼친다 (위에 언급한 아모스 하캄의 출애굽기 주석을 볼 것).
이상 간단한 고찰을 통하여 보더라도 םיברעה ןיב이라는 히브리어 표현의 뜻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에 모두 합하여 11회 출현하는데 (출12:6; 16:12; 29:39, 41; 30:8; 레23:5; 민9:3, 5, 11; 28:4, 8), 여섯 번은 유월절에 관한 문맥에 나오고 나머지 다섯 번은 다른 제사나 또는 분향과 관련된 문맥에 나타난다. 개역에서는 후자의 경우 ‘저녁때’ (출29:39, 41; 30:8)와 ‘해질 때’ (민28:4, 8)로 번역하고 있다. 이와 같이 유월절 행사 말고 다른 제사나 또는 분향과 관련된 문맥과, 그리고 위에서 밝힌 고대 역본 등을 참조하여 ‘저녁 무렵에’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것이 아닌가 한다.
표준새번역의 “모든 이스라엘 회중이 모여서”에서 ‘모여서’는 그릇된 번역이다. לארשׂי תדע להק לכ의 문구에서 명사형 להק을 우리말 동사 ‘모여서’로 번역한 듯한데, 이런 식의 번역은 엉뚱한 묘사를 제공해주게 된다.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한 자리에) 모일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각기 집안별로 어린양을 잡으면 된다. 여기서 הדע를 그 동의어인 להק과 함께 나란히 쓴 것은 전 이스라엘 회중이 예외 없이 이 행사에 참가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7절. ‘좌우’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יתשׁ는 직역하면 ‘두 (설주)’가 된다.
8절. 여기서 לע은 ‘…와 더불어, 함께’의 뜻이다 (민9:11 참조): “이월 십 사일 해 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어린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 םיררמו תוצמ לע 먹을 것이요.”
9절. 여기서 유일하게 ‘날 것의’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אנ의 동의어로는 י (‘살아있는, 날 것의’)를 들 수 있다 (삼상2:15 참조):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치 아니하고 날것을 (יח) 원하신다.”
10절. 칠십인역에는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다음에 και οστουν ου συντριψετε απ’ αυτου라는 문구가 첨가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의 뼈를 꺾지 말라”는 뜻의 이 첨가문은 출12:46; 민9:12의 병행 문맥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11절. חספ의 의미에 관하여는 같은 어근의 낱말이 나오는 사35:6의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와 왕상18:26의 “저희가 그 쌓은 단 주위에서 뛰놀더라”를 참조할 것.
II. 본문의 위치
출애굽기에 대한 고대 랍비들의 성경 해석 (미드라쉬) 중 가장 중요한 문헌으로 간주되는 「메킬타」는 출애굽기 12장 1절부터 시작된다. 이 사실은 전체 출애굽기 중에서 12:1-14 부분이 차지하는 위치를 설명하는데 하나의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잘 아는 대로 출애굽기는 몇 가지 큰 주제만 살펴볼 경우,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고역 및 번성,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고 보내심, 열 가지 재앙과 애굽에서의 해방, 홍해에서의 기적,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강림하셔서 율법을 주심, 회막 건립 및 제사장 복장 제작 등으로 말할 수 있다. 이들 전체를 다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자면, 1) 출애굽 사건에 대한 역사적 기술과 2) 광야에서의 각종 율법 제정이 될 것이다.
출애굽기 12장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신 첫 번 째 계명, 곧 유월절에 대한 규례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출애굽기 12장은 전체적으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탈출과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발생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어서 위에 언급한 바 두 부분의 교량적 역할을 하고 있다. 12장은 장자 재앙의 실행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음을 기술하며, 동시에 이 때에 처음으로 지키게 되는 유월절에 대한 명령을 담고 있다. 메킬타의 저자는 역사적 사건보다는 율법의 해석에 더 관심이 있었기에 출애굽기 12장부터 그의 주석을 시작하였을 것이다.
출12:1-13:16은 하나의 큰 문단을 이루는데, 이를 다시 여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 애굽에서의 첫 유월절 (12:1-14); 2) 무교절 (12:15-20); 3) 모세가 유월절명령을 전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준행하다 (12:21-28); 4) 장자 재앙과 출애굽 (12:29-42); 5) 유월절을 위한 10가지 명령 보충 (12:43-51); 6)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라는 명령 (13:1-16).
애굽에서의 첫 유월절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는 12:1-14은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에게 지시를 내리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들은 다시 이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해주어야 한다. 반면 바로 앞의 11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유월절과 관련된 동일한 역사적 사건이 전혀 다른 결과로서 애굽 백성들에게 임할 것을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다시 모세가 이를 바로에게 전달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11장과 12:1-14은 하나의 좋은 대조를 보여주고 있다.
III. 주 해
< 1절 >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하나님이 모세뿐만 아니라 아론에게도 함께 말씀하신 것으로 기록된 곳이 또 있는가? 모세와 아론이 함께 활동하기 시작한 이후로 (출애굽기 6장부터) 출애굽기 17장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신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자. 모세에게 단독으로 말씀하셨다는 기록은 6:1, 2, 10, 28, 29; 7:1, 14; 8:1, 5, 16, 20; 9:1, 13, 22; 10:1, 12, 21; 11:1, 9; 13:1; 14:1, 15, 26; 16:4; 17:5, 14에서 찾아볼 수 있고, 모세와 아론 두 사람에게 말씀하셨다는 기록은 6:13 (일반적인 설명으로 직접 인용문 없음); 7:8; 9:8; 12:1, 43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론을 모세의 대언자로 삼았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출4:15-15; 7:1-2), 아마도 이 말씀은 하나님이 모세에게만 한 것이지만, 곧 아론이 이것을 백성에게 전할 것이기 때문에 본문에 그의 이름을 더한 것으로 보인다.
애굽 땅에서. 모세 오경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이 하달된 장소를 밝혀준다. 예를 들자면, 하나님은 ‘회막에서’ (레1:1), ‘시내산에서’ (출19:3), ‘시내 광야에서’ (민1:1; 9:1), 모압 평지에서 (민33:50) 말씀하셨다. 여기서는 유월절에 대한 계명이 특별히 애굽 땅에서 지시된 것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의 멍에가 아닌 하나님의 계명이라는 새로운 멍에 (마11:29-30 참조)를 메기 시작할 운명에 들어서게 된다. 그들은 이제까지 종노릇해온 그 땅에서 새로운 멍에로서의 계명을 받게 된 것이다.
< 2절 >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2절은 구문론상 동사가 없이 명사 또는 명사구로 된 주부와 술부만이 나란히 나열된 문장 (이를 noun sentence라고 함)으로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겠으나, 문맥상 하나의 명령문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상반절과 하반절은 같은 내용을 두 가지 서로 다른 표현으로 나타냈을 뿐이다. 이 계명을 분명히 전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여기서 ‘이 달’이라고 했을 뿐, 달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출13:4; 23:15; 34:18에서는 무교절과 관련하여, 그리고 신16:1에서는 유월절과 관련하여 이 달의 이름 (아빕)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아빕월 (바벨론 포로기 이후로 니산월로 불림)을 1년중 첫 달로 정해주신다. 역법상 이러한 원칙은 구약 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출40:2, 17; 레23:5; 민9:5; 대하35:1; 스6:19 등).
הנשׁה ישׁדח (‘한 해의 달들’) 이라는 표현은 열 두 달 (또는 윤년의 경우 ‘열 세 달’)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아빕월은 이제부터 한 해의 첫 달로 제정된다. 이 달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새롭게 출발하는 해방 원년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유월절이라고 하는 중요하고도 새로운 (유월절에 관한 명령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내리신 최초의 계명임) 규례를 제정함에 있어서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대대로 이를 지키게 하려면 우선 역법을 확립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참고적으로 아빕월은 우리가 사용하는 양력의 3-4월에 해당한다.
< 3절 >
‘이스라엘 회중’ לארשׂי תדע 이라는 표현이 모세 오경 중 여기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 표현을 여기 언급한 것은 유월절 계명울 준수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 앞에 선 하나의 회중으로 묶어주는 중요한 일임을 암시해주는 바도 있다고 하겠다. 이스라엘 회중이라면 누구든지 유월절 계명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출12:43-47 참조).
이 달 열흘에. 왜 ‘이 달 열흘’이어야 하는지 그 의미가 분명치가 않다. 그리고 애굽에서의 첫 유월절에만 이리 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그 후로도 계속하여 10일부터 준비하라는 것인지 분명치가 않다. 유월절 규례에 있어서 10일에 대한 언급은 이곳 말고 성경 어느 곳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참고적으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넌 것은 바로 아빕월 10일의 일이었다 (수4:19).
<4절> 이웃과 함께. Childs는 여기 ‘이웃’을 거리상의 이웃이라기보다는 숫자적으로 맞추기 적합한 규모상의 이웃으로 해석한다 (Exodus, Old Testamrnt Library, London, 1974). 유대인의 후기 관습에 의하면 유월절 어린 양 한 마리에 적합한 인원은 열 명이다. 요나탄은 그의 탈굼에 이 숫자를 삽입하였다 (Keil & Delitzsch).
< 5절 >
너희 어린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유월절 희생으로 사용될 어린양이나 염소는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다른 모든 희생 제물이 그러하듯이 흠이 없어야 한다 (레1:3, 10; 22:19). 흠이 있는 희생 제물은 가증하여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기 때문이다 (레22:20; 신15:21; 17:1). 번제와 마찬가지로 (레1:3, 10 참조) 수컷을 요구한 것은 유월절 희생 제물이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대신하여 죽기 때문일 것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요1:29, 36)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다분히 유월절 어린양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고 하겠다. 바울 역시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양이라고 한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고전5:7).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히브리서 기자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흠없고 점 없는’ 피로 인하여 구속이 가능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히9:14; 벧전1:19). 이런 점에서 유월절 어린양은 의심할 나위 없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 6절 >
이 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3절과 더불어 이 기간에 대한 이유나 목적이 분명치 않다. 이 첫번째 이집트의 유월절 이후 정확하게 40년이 지나서 이스라엘 백성은 아빕월 10일에 요단강을 건넌 후 14일 저녁에 가나안 땅의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킨다 (수4:19; 5:10). 그리고 그 이튿날, 곧 정월 (아빕월) 15일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의 소산을 먹기 시작하고 동시에 만나가 그친다 (수5:11-12). 그들에게 이제까지의 40년 광야 생활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40년을 격하고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애굽에서의 해방과 가나안 땅에의 안착이라는 두 가지 획기적인 역사적 사건을 점찍어놓은 중요한 날이 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넌 후 유월절을 지키기까지 4일이라는 기간 중에 있었던 일은 다름 아닌 할례였다 (수5:2-9).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처음으로 명하신 이 규례는 유월절 규례가 제정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약속을 통하여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후손을 하나로 묶어주는 중요한 표시였다 (창17:9-14).
또 한 가지 이 기간과 관련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제7월 (티슈리) 10일에 속죄일이 있은 후 그 달 15일부터 초막절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레23:27-34). 초막절은 잘 아는 대로 가장 즐거운 명절이다. 속죄일은 말 그대로 죄를 속하는 날이다.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은 ‘스스로 괴롭게 해야’ 한다 (레16:31).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속죄일에서 시작하여 초막절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인 회개 기간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상 제시한 광야 40년이나, 요단강을 건넌 후 4일의 기간, 그리고 속죄일인 7월 10일에서 초막절까지의 기간 (대략 4일)에 있어서 공통적인 요소는 ‘고통의 기간이면서도 머지않아 다가올 새로운 삶을 기대하는 희망에 찬 기간’이라는 점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의 오랜 종살이에서 해방되기 직전 4일 동안 자기들의 구원을 위하여 대신 희생당할 어린 짐승을 4일 동안 지키고 있을 때, 그들은 두려움과 (이때 애굽의 장자들은 모두 죽게 된다) 희망이 교차되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 7절 >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피 바르는 정확한 방법은 여기 묘사되지 않았으나, 출12:22에 기록되어 있다: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
< 8절 >
그 밤에. 성경의 역법에 의하면 이 밤은 이미 15일이 시작되는 밤이다. 하루는 해가 질 때부터 다음날 해가 질 때까지이기 계산되기 때문이다.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무교병이란 밀가루 반죽을 누룩으로 부풀리지 않은 채 구워낸 빵을 가리킨다. 유월절 및 무교절 기간의 누룩은 하나의 부정적인 상징물로서 ‘부패, 불결’ 등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 다음에 옮겨 적은 바울의 권면은 이를 잘 보여준다: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고전5:6-8). 쓴 나물에 대하여 성경은 그 식물의 정확한 종류나 이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지 않다. 쓴 나물을 함께 먹는 것은 ‘맛을 돋구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애굽에서의 쓰라린 삶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라 하겠다.
< 9절 >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라쉬의 설명대로 ‘각을 뜨지 않고 통째로’ 이 어린양을 불에 구워 먹어야 한다. 만일 이것을 물에 삶아야 한다면 큰 솟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했을 그들에게는 아주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 10절 >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이 조항은 이후 다른 제물에도 적용되어진다: “위임식 고기나 떡이 아침까지 남았으면 그것을 불에 사를지니 이는 거룩한즉 먹지 못할지니라” (출29:34);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 희생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레7:15). 그러나 서원제나 자원제의 경우 하루가 더 연장된다: “그러나 그 희생의 예물이 서원이나 자원의 예물이면 그 희생을 드린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되, 그 희생의 고기가 제 삼일까지 남았으면 불사를지니, 만일 그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제 삼일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사는 열납되지 않을 것이라. 드린 자에게도 예물답게 못되고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죄를 당하리라” (레7:16-18). 만나 역시 안식일 전날만을 제외하고는 다음 날 아침까지 남겨 둘 수 없었다 (출16:19-20, 23-24).
< 11절 >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제 곧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을 떠날 것이기 때문에 떠날 수 있는 만반의 자세를 갖춘 후 빨리 먹으라는 것이다. 이 지시는 애굽에서의 첫 번 째 유월절에만 해당되는 사항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הוהיל אוה חספ . 유월절은 여호와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이요, 그의 지시를 따라 그를 위하여 지켜야 할 규례이다. 안식일에 대한 규례에서도 이와 같은 문구를 찾아볼 수 있다: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20:10).
< 12절 >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이 문구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출애굽시의 애굽에 대한 마지막 재앙과 관련하여 하나님이 애굽의 사람과 짐승의 처음 난 것을 죽였다는 말 외에 다른 내용의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특별히 애굽의 눈에 보이는 각종 우상들을 훼파하였다는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애굽인들이 그들의 장자를 묻는 일이 애굽 신들에 대한 심판과 연관되어 기록된 적이 있을 뿐이다: “애굽인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 모든 장자를 장사하는 때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더라” (민33:4). 여기서 말하는 ‘애굽의 모든 신’이란 애굽 사람들의 삶과 영혼을 지배하고 있는 영적인 세력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Keil & Delitzsch).
< 13절 >
그 피가 …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피를 통한 구속은 신구약 성경 전반에 흐르는 중요한 사상중의 하나이다. 이날 밤 죽음의 사자는 문설주와 인방에 묻힌 피를 기준으로 삶과 죽음을 결정한다.
< 14절 >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실제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 있어서 유월절 준수의 여부는 그들의 신앙 상태를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여러 가지 종교개혁에 착수하고 선정을 베풀어 백성의 신망을 받았던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은 대대적으로 유월절 행사를 지킴으로써 칭찬을 얻었던 지도자들이기도 하다.
IV. 메시지
1. 동일한 사건, 전혀 다른 결과
동일한 사건일지라도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인에게 임하는 결과는 전혀 다르다. 애굽에서 있었던 최초의 유월절 사건은 애굽인에게는 사상 유례없는 큰 재앙이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새로운 삶으로의 출발점이었다. 출애굽기 11장에서는 동일한 날에 있을 일에 대하여 ‘장자 재앙’이라는 혹독한 심판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애굽의 바로에게 전달된다. 그러나 12장에서는 동일한 날에 있을 일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라는 하나의 복음(福音)으로서 이스라엘에게 전달된다.
마찬가지로, 불신자들에게 임하는 재앙은 때때로 우리 신자들에게 있어서 구원의 시작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은 불신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비참한 날이 될 것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는 구원이 완성되는 환희의 날이다.
2. 새로운 관계, 새로운 역법 (曆法)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는 최초의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계명이다. 하나님은 애굽에서의 첫 유월절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친히 그들의 왕이 되신 것이다 (사43:15 참조: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하나님은 유월절 규례를 지시하시기에 앞서 먼저 새로운 역법을 정하여 주신다.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은 새로운 시간 개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 세상이나 주변 사람이나 또는 내 멋대로 정하는 시간이 아니요,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에 따라 살겠다는 자세와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모든 일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시간 결정에 의하여 이루어지도록 순종할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3. 피를 통한 구원
애굽의 모든 장자들에게 죽음이라는 무서운 재앙이 임할 때,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살린 것은 다름 아닌 문에 묻혀진 유월절 어린양의 피였다. 과거 애굽에서 어린양의 피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시고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은 이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자기 백성들을 사신다 (행20:28). 그리스도의 피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면하게 해 주는 것이다.
인간 구원을 말함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조금이라도 감소시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과 권위에 도전하는 중대한 과오라고 하겠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죄인이 구원을 받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공로 때문이다. 유월절이 여호와의 것이듯, 구원하는 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