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치일에 생각나는 일들
태풍 볼라벤(Bolaven)이 지나가고 나니 한낮에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 같다. 오늘 8월29일은 국치일(國恥日)이다. 경술년인 1910.8.29 일본은 강제로 대한제국과 합병을 한 날로써 우리국가, 우리민족에게는 참을 수 없는 치욕의 날이기 때문에 국치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은 19세기 중엽부터 선교사에 의하여 끊임없이 밀려오는 서양의 문물은 물론 선진화된 새로운 기술과 제도도입을 외면한 채 이른바 쇄국정책을 고수하고 있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삼국시대 이전부터 동해와 남해안에 수시로 쳐 들어와 약탈과 도적질을 해갔으며 임진왜란을 일으켜 7년 동안이나 전국토를 쑥대밭을 만들어놓기도 하였다. 수많은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은 말할 것도 없고 곡식과 물자와 도공들을 강제로 끌고 가기도 하였다. 근대에 와서는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나서는 노골적으로 한반도를 침략해오기 시작하였다. 1904년에는 러일전쟁을 일으키고 1905년 음력 6.21일에는 당시 일본 공사인 미우라가 일본군 2개 대대를 이끌고 건청궁에 난입하여 고종황제의 비 명성황후를 시해하였다. 엄청난 만행을 저지르고 난 후 고종황제에게 명성황후의 폐출조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 위협하기도 하였다.
1905.7.29 일본총리 가쓰라 다로와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필리핀을 미국이 가지고 일본은 조선을 가진다는 내용으로 이른바 가쓰라 데프트 밀약을 하게 되었고 이 밀약에 의하여 1905. 11.17 을사보호조약이 강요된 것이었다. 이날 을사오적으로 불리는 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 등 각부 대신과 일본의 특명전권공사 하야시가 한일협상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의 체결로 인하여 대한제국의 모든 외교권을 일본이 행사하게 되었으며 외교 관리를 위하여 경성에 통감을 두어 황제를 내알할 권리를 가지며 개항장과 지역에 이사관을 설치하여 필요한 일체의 사무를 관장하였던 것이다. 그해 11월20일자 황성신문에 장지연이 쓴 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제목으로 일제의 침략성과 매국적 대신들을 통렬하게 비난하였으며 여타 신문에서도 조약의 무효와 조약 반대운동을 널리 알렸고 반일 여론을 확산시켜 나갔다. 이와 같은 분위기 가운데 민영환, 조병세, 홍만식, 이상철, 김봉학, 송병선 등을 위시하여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자결로써 국권침탈의 울분을 토하였다. 12월21일에는 통감부 및 이사청 관제를 공포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초대통감에 임명하였다. 1906.1.31일 각국의 영사관을 철수하고 전국 13개소에 이사청(理事廳)을 설치하여 식민지 지배를 위한 기초공사에 착수하였다. 1906.3.13일부터 통감관사에서 대한제국의 각부 대신을 참석시켜 한국 시정개선에 관한 협의회를 수시로 열어 이를 주재하면서 사실상 우리나라의 내정을 총지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1909.7월에 기유각서의 각의에 의하여 한일합병 실행에 관한 방침을 통과시켰다. 1909.10.26 만주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을 빌미로 삼아 한반도를 무력으로 강점할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일제는 이완용을 비롯한 매국단체인 일진회를 앞세워 조선인이 원함에 따라 조선과 일본이 합병한다는 논리로 1910.8.29 한일합병조약을 성립시켜 대한제국을 멸망시킨 것이다.
이와 같은 일제의 만행으로 인하여 우리의 조상과 부모형제, 선배들은 갖은 고통과 수모를 당하였으며 굶주림과 귀중한 생명을 그들의 강권에 의하여 총알받이가 되기도 한 것이다. 1945,8,15 광복을 맞이하기 까지는 36년간이지만 실지로는 40년 이상 그들의 총칼 앞에 위협을 당하면서 살아온 것이었다. 우선 그들은 순종황제를 왕으로 강등시키고 노골적으로 이왕(李王)이라 호칭하였으며 명성황후를 시해하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순종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고 영친왕을 납치, 살해하는 등 조선 왕족 말살정책을 펴나갔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말살시키고자 획책하였으며 수많은 문화재와 유물을 일본으로 반출해 가버렸다. 광화문을 없애고 조선의 심장부인 경복궁 근정전 앞에 일제의 총독부 건물을 세우고 창덕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어 벚꽃을 심어 창경원이라 하여 유원지를 조성하였다. 창덕궁과 종묘 사이에 도로를 신설하여 조선왕실의 맥을 끊고자 한 것이다. 우리나라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걸게 하였고 애국가 대신 가미가요를 부르게 하였다. 무궁화가 아닌 벚꽃을 심게 하였으며 우리민족의 상징인 흰옷을 입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뿐인가. 우리의 언어를 쓰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우리의 글인 한글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일본말과 일본글을 가르친 것이다. 대대로 이어져온 각자의 성씨를 없애고 일본식의 창씨와 개명을 하도록 강요하였으며 출판, 언론, 집회의 자유마저 앗아간 그들의 천인공노할 만행은 이루다 헤아릴 수조차 없는 것이다. 일제 전범의 본거지인 신사(神社) 참배를 강요하는가 하면 동양척식회사를 통하여 농지의 수탈과 함께 양곡의 반출은 물론 노무자징용, 징병, 위안부, 정신대, 생체실험 등으로 인력을 수탈하는 등 인간으로써 도저히 행할 수조차 없는 악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일제는 우리 민족에게 대대로 치유할 수 없을 만큼 포악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안겨 주었음에도 진정한 사과조차 없을 뿐만 아니라 적반하장 격으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가하면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 편찬, 자위대 해외파병, 대신들의 공공연한 신사참배 등의 행위는 신군국주의로 돌아가는 모습으로 보여 진다. 런던올림픽에서 맞붙게 된 한·일 축구경기 3·4위전에서 통쾌하게 승리한 우리선수가 그라운드에서 ‘독도는 우리 땅’이라 적힌 종이를 들어 보인 세리머니를 문제 삼아 메달을 보류하도록 잔꾀를 부린 저들이다. 일본은 세계의 경제 제2의 대국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대상이라 외교는 지혜롭게 수행해 나가야 하겠지만 우리는 굳건한 심기를 다잡고 분발하여 국력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며 저들보다 한발 앞서가는 나라를 만들어야 하겠다. 조속히 통일한국을 이루어 경제, 사회, 문화, 정치, 외교부문 까지 저들보다 월등한 수준으로 올라서서 함부로 깔보지 못하도록 힘을 길러야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하겠다. 국치일 아침에 생각나게 하는 일들이다. (2012.8.29)
첫댓글 송하님 오랫만에 보네요. 그 동안 많이 적적하였습니다. 앞으로 자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인들은 염치가 없는 사람들 같아요. 남의 나라를 36간 짓밟았으면 미안하다고 사과는 못 할망정 엄연한 우리의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고 있는 모습이 한심하네요. 위안부 문제도 증거를 대라고 하더군요. 위안부 할머니들이 우리들이 증거니 보라고 일본을 가려고 한다더군요. 정말 한심한 사람들 같아요. 송하님 행복하세요.
선생님 여기서 뵙네요.반갑습니다.
송하님 안녕 국치일을 보내면서 그날을 잊지말고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정치 경제 국방의 선진화를
위해 더욱더 분발해야갰읍니다 대학원에서 뵙지못해 못내 아쉽네요 그래도 카페에서라도 만나뵐수 있어 좋읍니다
전 건강히 잘지내고 있읍니다 송하님도 건강하세요
일본이 우리나라에 36년간 온갖 못된 짖과 만행을 저질러 놓고도 사과는 커녕 오늘 뉴스에의하면 오늘부터 일주일간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광고를 일본의 중앙지 , 지방지등 70여개의 신문에 실는다니 너무나 이기적이고 철면피한 사람들이네요 우리도 대응책을 마련해야겠지요 송하님 건강하세요
송하님 오랜만에 카패에서 뵙게 대네요.바뿐일이 잊어 늦게 찾게 되엇읍니다.대학원에서 같이 만나지 몾해 아쉽습니다.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짖밟은 일본은 아직가지도
변변한 사과한마디 없는 일본을 넘어가려면 온국민이 국력을 키워 일본이 다시는 우리나라를 넘보지 몾하게 해야 겠네요.송하님 늘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