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만천과해 瞞天過海
한편,
박달촌의 늑대가리와 한준은 아군의 승전보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한준은 직접, 군영에서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가 멀리서나마 강 건너 적진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적진에서 불화살이 날아다니더니, 적군의 진영이 불바다로 변하는 것을 목격 目擊하게 된다.
‘아, 실패다’
애초에 아군은 활을 가져가지 않았다.
그런데 불화살이 조선하의 서쪽, 그믐 밤하늘을 붉게 수놓고 있었다.
역습을 당한 것이다.
아군이 적의 함정에 빠진 것을 직감했다.
늑대가리는 2기생 10명과 일반 병사 10여 명에게 “강 주위에 혹시 아군의 부상자가 나타나면 구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이 각이 지나도록 아군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수백 명의 적군이 도강을 시도하고 있었다.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감을 깨달은 모용 사부가 천 부장에게 통보하고자, 발 빠른 말을 타고 강 하류 쪽으로 바삐 출발하였다.
늑대가리와 한준은 병사들과 함께 적들을 향해 화살을 쏘았으나, 적병의 숫자가 너무 많아 저지할 방법이 없다.
중과부적 衆寡不敵이다.
각자 화살 30여 개를 모두 소비하였으나, 이제 적들은 이쪽 박달촌 강기슭에 거의 다다랐다.
하는 수 없이 늑대가리는,
“전원 후퇴하라”라는 명을 내리고, 모두 강 하류의 본 진영 陣營으로 도주하게 되었다. 도주병들을 바라보고 적병들은 더욱 기세가 올라, 꽹과리를 울리며 3백 여명의 병사들이 뒤쫓아 왔다.
마을 어귀의 박달나무 숲을 가로질러 달아나는 한준과 병사들은 정신이 없다.
기세가 오른 적병들의 함성은 이제 바로 등 뒤에서 들린다.
마음은 바쁜데 발걸음은 둔하다.
위기일발 危機一髮의 상태다.
도주병 모두, 죽기 살기로 정신없이 숲 길을 뛰어갔다.
겨우 숲을 벗어나니 조선하 둔치의 너른 공터가 보인다.
쫓기는 처지에서는 몸을 숨기기 곤란한 넓은 공터가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한다.
그때,
공터 앞쪽에서 말 탄 군사들 수백 명이 나타났다.
아니,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모두 화살 오늬를 활줄에 먹이고, 시위를 팽팽히 당기고 있었다.
위기일발의 순간에 지원군이 나타난 것이다.
앞서간 혈창루 모용 사부의 반가운 모습이 보인다.
혹독한 수련 생활 3년 내내, 감정 없는 강시 僵尸처럼 냉냉하면서도 엄격한 표정의 사부님이 이처럼 반가워 보이기는 처음이다.
아니, 지금의 혈창루 사부님은 평소보다 더, 더욱 차가운 바위처럼 굳은 표정이다. 그런데도 반갑기 그지없다.
혈창루 사부의 주위로는 아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지휘자는 설걸우 천부장이다.
순간, 천부장이 기름을 먹인 불화살을 한준의 뒤를 따라 추격해오던 적의 허공을 향해 날린다.
이를 본 적병들이 숲 어귀에서 주춤한다.
발 빠른 적병 10여 명은 벌써 숲 바깥까지 튀어나와 있었다.
불화살을 신호 삼아 적병들의 좌우 숲속에서 아군들이 화살을 빗발치듯 날린다.
“매복이다, 후퇴하라!”
적장이 뒤를 돌아보며 큰 소리로 외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박달나무 숲. 뒤쪽으로는 석늑이 2백 군사를 거느리고 퇴로를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좌측에는 설태누차가 군사 2백 명과 장창을 휘두르며, 우왕좌왕하는 적군을 유린하고, 우측에서는 백 부장 장영과 중걸이 또 2백 명의 군사로 적군을 짓밟고 있었다.
접전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렇게 한군의 공격병 3백 여명 중, 반은 죽고 일백 여명은 포로로 잡혔다.
아군의 피해는 가벼운 부상자만 2십여 명이다.
완벽한 승리다.
전장 터를 정리하고 포로들을 한군데 모아 포승줄로 결박하였다.
그러는 동안 동이 트고 있었다.
그때,
한 무리의 군사들이 다시 강 상류 박달촌 쪽에서 나타났다.
이를 본 한준은 또다시, 가슴이 섬짓하다.
놀란 눈으로 살펴보니, 병력은 2백여 명으로 보인다.
그런데,
차림새가 분명 아군의 병사들이다.
노획한 말도 30필 정도 몰고 온다.
그런데 상처의 정도가 심각해 보이는 부상자들이 5, 60명 가량 되어 보이는데, 두 무리로 나뉘어져 있다. 그 들 중 30여 명은 포승줄로 단단히 묶여 있고, 나머지 20여 명은 부상 정도는 더 심하여 보였지만, 묶지 않고 소 수레에 태워 이동 중인데, 운신 運身은 자유로워 보였다.
궁금해 진 한준은 그들 쪽으로 가까이 다 가 가보았다.
그런데, 포승줄에 묶이지 않은 부상자의 대부분은 야간 습격조로 이중부와 함께 강을 건너 적진에 침투했던 박달촌의 병사들이 아닌가?
어리둥절한 한준이 재차 부상병들의 지휘자를 살펴보니, 위지율 오백 부장이다.
위지율 오백 부장은 3년간 박달촌에서 함께 수련한 동료이자, 설걸우 천 부장의 이질(姨姪. 처 조카)이기도 하다.
천부장 소속의 위지율 오백 부장이 후한군에게 포로로 잡혀있던, 습격조 아군의 병사들을 구출해 온 것이다.
박달촌 병사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위지율이 적진지를 재습격 再 襲擊한 지휘관으로 활약한 것이다.
박달 수련생 출신으로서 첫 전과 戰果다.
모두가 승리감에 도취하여 본진으로 귀환하고 있었다.
한준이 석늑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어떻게, 적병들이 이곳까지 침범 侵犯할지 미리 알고, 매복하고 있었는지요?”
석늑은 한준을 보고 빙긋 웃더니, 왼손을 들어 앞을 가리킨다.
석늑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설걸우 천부장 쪽이다.
설걸우 천부장 우측에는 동방 중허 선생과 향기 부녀 父女가 말을 타고 가고 있었다.
“아~하, 역시 동방 선생님의 지략이 대단하시군요”
그러자 석늑은 “아니”하면서 고개를 젓는다.
“그럼, 천 부장님의 작전입니까?”
“아니다”
“그, 그럼요?”
“이번 매복 埋伏은 향기의 작품이었다”
“예??”
“하하하”
옥전과 박달촌 중간 지점에 자리한 본진에 도착하자, 모두들 편히 쉬고 있었다.
늑대가리와 한준은 보고차 본부 막사를 찾아간다.
막사 앞에서 초병 두 명이 안면 없는 한준을 제지한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석늑이 들여보내라고 한다.
막사 안에는 설걸우 천부장과 위지율 오백 부장 그리고, 서너 명의 백 부장이 있었다.
“박달촌 병사 걸부 황 乞扶 晃 인사 올립니다”
늑대가리의 이름이 걸부 황이다.
그러자 천부장이 “편히 앉게”하며 자리를 권한다.
걸부 황이 오백 부장의 자격이 있다는 것을 천부장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정식으로 자리를 배치하자면, 설 천부장 다음의 고위직을 차지할 수 있다.
그러니 엄밀히 따지자면, 막사 안에서는 위지율과 함께 제 2 인자의 위치다.
“이번 전투 면목 없습니다”
“아니 아니, 자네들이 열심히 싸워주었기에 이런 전과 戰果가 나올 수 있었네”
옆에 있던 동방 중허 선생은 걸부 황과 한준을 바라보며,
“피해는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해천 백 부장과 오백 부장 3명과 10여 명의 우리 병사들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점이 안타깝네” 한다.
향기도 한준을 보고는 미안한 표정으로
“작전을 사전에 누설 漏泄시키지 않으려고 미리 알려주지 못해 미안해” 한다.
“그런데, 어떻게 적들이 박달나무 숲까지 따라올 것을 예측하고 매복했지?”
“아~ 그건 간단 한 건데, 병법 시간에 열심히 공부를 안 하고 조느라 몰랐지?”
“낮 시간의 무술 수련만 해도 지치고 피곤한데, 그 어려운 병법이 머릿속에 들어오겠어?”
“음... 그건 그렇지”
“나에게 너무 과한 것을 바라지마”
“호호, 그러면 만천과해 瞞天過海란 병법은 기억나?”
“음…. 들어는 본 것 같은데….”
“36 계 三十六計 중, 처음에 나오는 제1계인데”
“그런 것 같군, 뭘 속인다는 것 같았는데….”
“맞아,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넌다는 수법이야.”
“...”
“전쟁 중에 바다를 건너야만 하는데, 물을 아주 무서워하는 왕이 배 타기를 꺼리자, 신하 중, 한 지략가가 꾀를 내어, 배 주위를 온통 장막으로 가리고, 시종들은 악기를 연주 演奏하고, 시녀들은 노래를 불러, 파도 소리를 듣지 못하게 왕을 속여, 배에 오르게 한 다음에 바다를 건너갔다는 계책이야.”
“음, 이제 생각이 나네, 적군을 속이기 위해 아군까지 함께 속인다는 병법이잖아”
“그렇지, 근래 들어 해천 백 부장님이 매우 초조해 보이더라고, 그러면서 눈빛은 때때로 날카롭게 변하는 모습을 보이시더군, 그 표정만 봐도 어두운 그믐밤을 기다려 적을 습격하여 보복하겠다는 작전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 그래서 나도 적의 동태를 유심히 살폈지, 아니나 다를까?
적병은 그믐이 가까워지자 낮에 강변을 타고 하류로 백여 명이 내려가더니, 밤에는 낮의 배가 넘는 3백 여명의 군사들이 멀리 산 쪽으로 돌아, 은밀히 다시 올라가는 것을 우리 측 세작들이 포착하였지, 기습을 대비한다는 느낌이 들었지, 허허실실 虛虛實實 전법의 대표적인 속임수라 할 수 있지,
더구나 인원을 배 이상 더 증가시킨 것은 기습군들을 먼저 섬멸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아군의 진지까지 습격하겠다는 뜻이 아니겠어?”
듣고 보니 간단한 논리였다.
적의 계략을 역이용하여 아군의 피해를 어느 정도 감수하고, 아군에게도 알리지 않고 매복하고 기다리다 적을 섬멸시켰으며, 그러는 사이 위지 율 오백 부장이 200명의 병사를 이끌고 도강하여, 허술한 적진을 재습격하여 적 진영을 초토화 焦土化시키고, 아군의 포로들을 구출해왔다는 것이다.
도강하여 재습격할 때는 적군들은 자신들의 아군이 어둠 속에서 되돌아오는 것으로 착각하여, 무방비 상태로 당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지엽적 枝葉的인 전투는,
후한군 진영으로 흉노족을 유인하여 몰살시킨 후, 그 여세를 몰아 강 건너 박달촌까지 점령하고 영역을 넓히려는 계책을 시도했던, 후한 군의 완패 完敗로 마무리되었다.
한준은 갑자기 향기가 섬뜩하게 느껴진다.
‘무슨 계집애가 저렇게 사람들 마음속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지?’
아군은 물론 적장의 계략까지 다 파악하고, 그 상황에 맞추어 시간과 매복 장소까지 미리 안배 按配하는 적절한 용병술 用兵術을 펼치다니...
이러한 생각이 절로 드니, 친구라기보다는 무서운 계집애라는 느낌이 들었다.
설걸우 천부장도 향기의 계책이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완벽히 성공한 것을 보고 동방 향기의 남다른 재질과 총명함에 탄복 歎服하였다.
이후, 용병술 用兵術과 매복술 埋伏術 등 병법에 뛰어난 두각 頭角을 나타낸 동방 향기를 천부장의 군사 軍師로 삼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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