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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창업주 이병철 자화상)
나무닭(木鷄) / 최길하
'목계'는
말도 표정도
다 지운 뒤에 완성된다
목계는
'경청'과 관찰만으로
볏이 붉게 빛난다.
볏은 태양의 인가(印可)다
그 안에 독립국가가 있다
나무닭은 태어나지 않는다
오직 제 살을 깎고 깎아
이를(達生) 뿐이다.
목계가 3대 째
세보(世步) 중이다.
익룡의 발자국이
바위를 '움푹움푹' 찍으며 가고 있다.
(시작노트)
1.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아들 이건희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며 함께 전한 2品이 있다.
친필로 쓴 <경청(傾聽)>과
집무실에 걸려 있던 목계(木鷄)를 내려준다.
어쩌면 불이(不二)다.
'경청'으로 고체 에너지 '목계'가 구현되고
'목계'가 하드웨어 틀인 체(體)라면, 그 체의 용(用) 소프트웨어가 '경청'이 아닐까?
목계는 장자가 전하는 지혜의 말이다.
장자의 達生(달생)편에 나온다. 달생? 새로 태어나 이른다.
'望之似木鷄矣(망지사목계의)
其德全矣(기덕전의)'
'보기에 마치 나무로 조각한 닭과 같으니 그 덕이 완전하다'
"목계"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깎고 깎아 진화한 것이다.
그래서 達生(달생)이다.
어느 왕(주 성왕)의 취미가 닭싸움이었다.
싸움닭을 조련하는 싸음닭 조교도 있었겠지?
하명한다.
이 닭을 빠른 기간에 조련하여 천하무적으로 만들어라.
열흘 후에 왕이 묻는다.
됐느냐?
"아직 멀었습니다. 닭이 강하긴 하나 교만하여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있습니다."
다시 열흘 후에 왕이 묻는다.
됐느냐?
'아직 멀었습니다. 교만함은 버렸으나
상대의 소리와 그림자에 쉽게 반응합니다.'
다시 열흘 후에 왕이 묻는다.
됐느냐?
'아닙니다. 조급함은 버렸으나
상대를 노려보는 눈초리가 덕이 없고 공격적입니다.'
다시 열흘 후에 왕이 묻는다.
됐느냐?
'이제야 된 것같습니다.
상대가 아무리 소리치고 위협해도 반응도 하지 않으며
마치 목계(木鷄) 같아서
어떤 닭이 바라보기만 해도 제 풀에 꺾일 것입니다.'
"내공"의 훈련을 이렇게 구체적이고 단계적으로 가르쳐 준다.
장자는 자만과 타성에 빠지지 말고 스스로 경계하며
승패에도 집착하지 않는 무심이 최고의 무기다.라고 말한다.
삼성의 경전은 시의 은유다.
목계 두 "音節'이 세상을 다 울린다. 시간과 공간을 다 울린다.
나는 장자의 뜻을 이렇게 읽었다.
하나는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위의 말이고
다른 하나는 숨겨진 말이다.
어느 번역서의 의역에도 없는데
왕(주나라 성왕)과 조련사의 문답에
2가지 상이 중첩되어 있다.
왕 스스로가 싸움닭의 마음을 가진 싸움닭이었던 것이다.
닭싸움 조련사가 임금인 싸움닭을 넌즈시 가르친 꼴이다.
그런데 조련사는 자기가 임금을 가르치는 줄 모르고
왕 또한 자기가 싸움닭인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두 사람 중 어느 한 사람만이라도 이 감춰진 수를 알았다면
이 문답은 성립될 수 없다.
(실제 이건희 자서전에 보면, 어느 임원이 무엇을 묻기에 그것을 내 자랑삼아 말했더니
그 말을 다 퍼트려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기만 하더라는 것이다. 그 후 다시는 그
언행을 안했다고 했다. 선대회장이 준 목계의 뜻 화두가 열린 것이 아니겠는가?)
제왕론인 것이다.
싸움닭 조련사가 두 사람도 모르는 사이 숨은 왕사(王師)였던 것이다.
내 스승은 삼라만상이다.
지식이 스승이 아니고 지혜가 스승이다.
삼성의 감춰진 심벌은 창업주 이병철회장이 내린 <나무닭>이다.
나는 이 <나무닭>을 절집 대웅전 뒷벽에서 본 기억을 떠올리며 탄복했다.
<심우도(尋牛圖)>다. 그것을 왜 대웅전 뒷벽에 그렸는지도 이제 알겠다.
(이 뜻은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선물로 준다)
이 목계 삼성이 3대 세보(世步) 중이다.
2.
나는 삼성을 진화로 읽는다.
진화의 메트리스는 과학의 디테일과 예술미학의 정교함이다.
이 진화가 삼성의 정신으로 뿌리내렸다고 본다.
이병철 창업주는 60년대 일본 전자기술의 정교함을 벤치마킹 했다.
그럼 미술품 콜랙션은 어떤 기여를 했을까?
산업기술과 예술이 연관성이 있을까?
없을 것 같다. 아니다.
정점에 가면 엄청난 시너지효과가 발생된다.
예술은 생각을 키운다.
예술은 발상을 점프한다.
전자가 궤도를 이동할 때 1.5층 2.4층으로 소수점 과정을 거치지 않고
껑충껑충 궤도로 점프해 진입한다. 2층 3층 4층 점프한다. 예술의 발상도 그렇다.
예술은 늘 생각한다. 예술은 생각의 키를 키워준다. 아름다워 진다.
과학과 예술은 남녀처럼 같으면서 다르다.
합치면 시너지가 발생한다.
비슷한 상품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종이 태어난다.
삼성의 3대 世步는 한 사람의 걸음 같다.
그래서
과학과 예술이 합친 진화다.
이병철 회장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최선을 다하는가?
그 일화 하나를 소개 하겠다.
그 분이 남긴 글씨 중에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가 있다.
월간 '샘터'를 발행하시던 국회의장을 지낸 김재순 선생이 있다.
이병철 회장과 형님 동생하는 사이였다.
"샘터 시조" 심사위원을 할 때 1년에 한 번씩 김재순 발행인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때 이병철 회장이 쓴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가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 재벌이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울림이 있어 글씨를 세세히 바라보았다.
김재순 발행인 말씀이
"왜 그렇게 뚫어지게 봐요?"
"그 분의 삶과 글씨가 대칭적이잖아요? 안 어울릴 것 같은데 아주 잘 어울리는"
"그리고 글씨를 새기듯 정성을 다해 정자로 썼어요. 한석봉 서체처럼 진심과 정성이 담겨있고 기교도 자랑도 없어요.참 정직해요. 참 인상 깊어요"
"재미난 스토리가 있어"
"어느날 이병철회장이 샘터를 방문하셨어요".
"그때는 000기업 박회장이 쓴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가 있었어"
"유심히 보시더라고. 최선생처럼"
"그래서 내가 그랬어. 저 글은 회장님이 써야 울림이 클 것 같다 했지"
"아무말 없어"
"그러구 일년이 지난 추석 밑에 우편물이 왔어"
"이병철 회장이 "공수래공수거" 2장을 보내셨더군"
"그래서 답례차 집으로 방문했지"
"그때 하시는 말씀이"
"내 그때 김회장 말 듣고 이 글을 썼지. 그런데 영 모양이 안나. 획수가 다 적잖아. 그러니
숨을 데가 없어. 한눈에 다 드러나버려. 특히 손(手)자가 제일 어렵더군. 글씨나 실천이나
참 어려운 글자야. 그래서 꼬박 일년 걸렸어. 수 백장 쓰고 버렸지"
얼마나 정성을 다했는가?
얼마나 진정 진심을 쏟아놓았는가?
어느 한 자 기교가 있는가?
사무사(思無邪)다. 꾸미려고 하지 않았다.
삶의 자세가 종교가 아닌가?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를 보면 반듯하다.
먹이 깊숙히 돌을 뚫고 새겨진듯 하다.
글씨의 보법이 움푹움푹하다. 목계가 이렇게 걸어가고 있다. 3대 째 世步다.
첫댓글 이른 아침에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나무닭에서 심우도로,
잘 깨쳐서 선물을 덥석 받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