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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하나되게 하심 요사이 미세먼지로 하늘이 뿌였습니다. 맑고 깨끗한 하늘이 그리워집니다. 이처럼 주님을 묵상하려면 먼저 먼지 같은 온갖 잡념들이 다 가라앉아야 합니다. 온갖 잡념들이 가라앉고 나면 비로소 주님 생각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직 우리의 무의식의 세계에는 내려놓지 못한 많은 자신의 꿈과 정서적 요소들로 가득 차 있으며,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복잡한 정서적인 요소들로 둘러싸인 채 날마다 살아가고 있습니다. 묵상기도를 시작하려면 먼저 자동적으로 숨어있던 복잡한 정서적인 면들이 떠오릅니다. 정서적인 요소들이 먼저 떠오르고 가라앉은 다음에 비로소 주님의 생각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묵상기도를 원한다면 매일의 삶속에서 세상에 대하여 죽고 오직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는 자가 되는 수련이 꼭 필요합니다. 주님께 나아가는 길은 다른 모든 소원을 내려놓고 오직 한 가지 소원 곧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소원만을 생각하는 삶에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태초에 아담은 하와를 보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이는 내 뼈중의 뼈요 내 살중의 살이라” 그러던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서 어긋나고 비틀려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지 않는 한 서로 하나되는 길은 멀기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아로 인하여 상대방과 생각과 감정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형제를 비판하지 않고 사랑으로 품는 길은 자아의 폐기에 달려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모든 사람의 죽음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자아가 죽지 않고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하나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 사회의 불행은 점점 외톨이가 되어간다는데 있습니다. 사람을 사귄다는 것이 또 다른 짐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겸손과 온유와 희생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사랑의 길은 자신의 것에서 기쁨을 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누리게 되는 생명과 행복에서 기쁨을 구하는데 있습니다. 내 홀로 사는 것은 견디기 힘든 단조롭고 지루한 삶인 반면 다 함께 하나 되어 살아가는 삶은 기쁨이 충만한 삶입니다. ‘내 인생의 일부는 내가 형제자매 안에 거할 때 내가 사용할 수 있도록 내 형제자매에게 주어진 것이다.’(보언, 266쪽)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이 우리의 것이 되도록 내어주셨으며 그 일이 주님에게 가장 큰 기쁨이 되셨습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는 말씀에 우선권을 부여하고 다른 것들을 희생할 줄 아는 관용의 정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가능합니다.(261쪽) 말씀보다 자아가 득세하는 곳에서는 은혜가 말라버립니다. 18. 11. 16 청덕동에서 장기옥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