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독재자 -12 - <e-book 출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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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기다리고, 애를 태우고, 조바심을 치고, 신경을 써왔던 것에 비하면 이혼의 절차는 터무니 없으리 만큼 간단하고도 쉽게 끝나버렸다.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며 본인임을 확인하고, 법관의 되지도 않는 몇 가지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모든 게 끝나 버린 것이었다.
법관은 왜 이혼을 하려느냐고 물었고, 태권도 나도 성격 차이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구구하게 이제 까지의 일들을, 그리고 정작의 이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늘어놓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자 법관은 이제까지 이혼을 하러 왔던 수 많은 부부들에게 그러했을 것이듯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고, 나는 다시 생각할 것 같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라고 대답했다.
그것 뿐이었다. 아니, 법관은 마지막으로 이혼을 했더라도 다시 합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던가,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너무도 간단하고 쉽게 끝나버려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럴 것 같으면 차라리 혼인신고를 하듯이 일정 서류를 갖춰 동사무소에 이혼 신고를 하도록 하면 어떨가 싶기도 했다. 하긴 합의 이혼이니 따지고 말고 할 것도 없었고 아귀다툼을 벌일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도 간혹 다툼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커다란 법원건물 옆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가정법정 앞에는 이혼을 하러 온 사람들이 흡사 예방 접종을 기다리는 아이들처럼 줄지어 서 있었다. 그들은 굳은 표정인 채 얼마쯤 떨어져서 서로 등을 돌리고 있었고, 더러 가족이나 친지를 대동하고 나온 사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순서를 기다리면서도 서로 옥신각신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법정을 나선 태권과 나는 그렇게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는 사람들 옆을 지나쳐 왔던 길을 되짚었다. 태권이 앞섰고 나는 얼마쯤 뒤떨어져서 걸었다.
흐린 하늘빛 때문일가. 앞서 걷고 있는 태권의 어깨가 축 쳐져 있었다. 이제야말로 정말 마지막이구나 싶었다. 제아무리 펄펄 날던 남자라도 나이 먹고 병들면 의지할 데라곤 여자 밖에 없다고 어머니는 말했었다. 그리고, 젊었을 때는 서로 못잡아먹어 한이었을 때도 있지만 지나고 나면 오히려 그런 것들이 더 그리워지는 법이라고도 했었다.
그러나 그리움이라기 보다는 어떤 아쉬움 같은 것들이겠지……
법원 정문을 나서자 태권은 왼쪽으로 꺾어졌다.
나는 오른쪽으로 꺾어져 올라갔다.
그렇게 얼마쯤 올라갔을까. 문득 아무 말이든 한 마디쯤은 해야 될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는 벌서 저만큼 멀어져 있었고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러더니 옆길로 모습을 감추어 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그가 차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어디 가서 술이라도 한 잔 하려는 것일까……
얼마를 기다려서야 빈 택시가 다가와 멈추었다. 나는 뒷좌석으로 몸을 접어 넣었다. 그리고 문을 닫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택시는 곧 출발을 했다.
출발을 하는 택시 안에서 나는 잠깐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러나 멀어지고 있는 저편의 그저 텅 비어 있을 뿐 태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운전기사가 룸미러를 통해 흘끗흘끗 나를 살펴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택시가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뭔지 모르게 나를 살피는 것이어서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불편하고 거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혹여 나를 아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듯 불편하게 하며 나를 살피던 운전기사는 기어이 한 마디 던졌다.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운전기사는 뭔지 모를 묘한 웃음을 담고 있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한다는 게 귀찮았다.
잠시 아무 말 없이 차를 몰던 운전기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법원 앞을 자주 왔다갔다 합니다. 그래서 법원에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을 자주 태우게 되는데, 그 사람들 얼굴만 보아도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있지요.”
내가 이혼을 하고 나오는 여자임을 안다는 것일 터였다. 그렇잖아도 묘한 웃음이 걸리던 터에 운전기사의 얼굴은 무엇인가 능글맞고도 음흉스러워 보였다.
나는 등받이 깊숙히 몸을 묻고 눈을 감아버렸다.
언젠가 기사식당에서 들어간 적이 있었다. 배고픈 김에 후딱 들어가 놓고 보니 기사식당이었다.
식당건물 바로 뒷켠이 택시회사였고, 교대 시간이라서인지 식당 안은 운전복 차림의 기사들로 꽉 차 있었다. 허겁지겁 밥을 몰아넣는 사람도 있었고, 한쪽 구석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화투패를 돌리는 사람도 있었고, 보리차를 홀짝거리며 서 있는 사람도 있었다.
운전복 차림의 젊은 사람 하나가 문을 밀고 들어서더니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큰 소리로 말했다.
“어이, 오늘 학을 뗐네, 학을 뗐어.”
“무슨 소리야?”
“법원 앞에서 이혼하고 나오는 여자를 태우지 않았는가 말야. 그런데 이 년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나를 끌어안으며 여관을 가자는 게 아냐. 어찌나 찰거머리처럼 늘어붙던지 죽을 뻔했다니까.”
그 말을 다른 사람이 받았다.
“그 아까운 것을 왜 떼 버렸어. 나는 아무리 돌아다녀도 그런 거 하나 걸려들지 않는데. 아깝다 아까워, 제 발로 굴러들어온 호박을 차 버리다니.”
“호박이니까 차 버렸지 이 사람아. 젊고 반반한 년 같았으면 당장 여관에 갔지. 그런데 이건 한물 가 버렸더라구. 중년에다가 살은 뒤룩거리고, 인물은 메주고, 나 같아도 데리고 살 맛 안나겠더라구. 거기다가 술냄새까지 풍기고 말야.”
“그래도 손해볼 건 없잖아. 여관 갔다가 입 싹 닦고 나오면 그만이지.”
“나도 손해볼 거 없다 싶어 두 눈 딱 감고 갈까 했는데, 제기랄, 교대시간이 다 되었더라구.”
“그런 불쌍한 여자들한테는 무엇 보다도 몸보시를 해 줘야 되는데 말야. 몸 보시, 알아? 불가에서도 그런 게 있다더군. 승려한테 자신의 여체 보시하는 거 말야.”
“그걸 이제야 알았나?”
그들은 그러면서 낄낄 거렸다.
한쪽 구석에서 설렁탕 한 그릇을 비우고 있던 나는 애써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았지만 그 이야기들이 그대로 날아와 머릿속에 박히는데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여자가 법원에서 이혼하고 나오면서 아무 남자에게나 여관에 가자고 하는 것은 무슨 심사에서일까. 이제 걸릴 것 없이 풀어졌으니 어떠해도 상관 없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게 헤어진 남편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혹은 그렇게라도 자학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일까? 아니, 자학이라니……?
나는 등받이에 몸을 묻은 채 눈을 뜨지 않았다. 뭔가 음흉스런 얼굴로 묘한 웃음을 흘리던 운전기사도 더 이상은 아무 말이 없었다.
실눈을 뜨고 잠간 밖을 내다보았을 때, 택시는 내가 목적하는 곳 까지의 절반쯤을 지나고 있었다.♧
<계속>
오늘 산행은 설천봉에서 황점까지 약 15km
이제 산에서 볼 수 없는 옛날 산 친구님들.
첫댓글
와~~~👍👍
자연이 좋습니다.
덕유산 다녀오셨군요~
그쪽은 비는 안 왔나 봅니다.
날씨가 좋았는지 사진이 좋습니다~👍👍
지지난 겨울에 갔다가 곤돌라 고장으로 줄 서서
기다리며 덜덜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편히 주무셔요~ 행운 님~🙇🏻♀️🌛🙏🏻
네 지금부터 움직이어야만 된답니다요.
자가님 '양때'님애게는 다녀오셨는자
근황이 궁금합니다요.
@행운 님~
양떼 님께는 화요일 가기로 했어요~
다녀와서 알려드릴게요~🙇🏻♀️
얼른 나가셔요~ㅎㅎ
저도 아웃합니다~🙇🏻♀️
@체칠리아 네 부디 강건하시고
보람된 한주 보내시길
기원드립니다,고맙습니다,
네"제이든"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