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2:1- 3:22)
이 시간에는 “온전케 하시는 7대 비밀”이라는 제목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온전입니다. 마5:48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못 믿고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얻었을 때도 13년의 침묵이 흘렀는데 13년 후 그 침묵을 깨고 하신 말씀이,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 하셨습니다.
이 완전은 하나님으로서의 완전이 아니라 신자로서의 완전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신자로서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것을 요한계시록의 아세아 일곱 교회에 편지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봅니다. 여기에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7대 비밀이 있습니다.
1. 온전함을 비밀은 사랑입니다.
계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인데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리 잘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행위 수고 인내 성결 영분별 충성 등 모두 갖춘 교회였지만, 처음 사랑을 잃었습니다. 처음 사랑이란 신혼의 첫사랑과 같은 것으로 그것을 잃었다는 것은 주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뭔가 주님의 마음을 서운하게 한 것입니다. 그것은 에베소 교회가 일에 몰두한 나머지 정작 마음을 드려야 할 주님께는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그 결과 함께하시는 임재를 잃어버렸습니다. 고독하고 비참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고전13:1-3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 아무 것도 아니요 -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요,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으면 온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과 마음을 바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2. 온전함의 비밀은 환난입니다.
계2:10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이 말씀은 서머나 교회에 주신 말씀인데, 성경에서 10은 연단의 수, 가득한 만수입니다. 우리가 성숙하고 온전해질 때까지 연단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고난 속에서 주님을 의지하고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119:67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했고, 71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했습니다.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고후7:1에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고 했습니다. 바울도 몸에 가시가 있었는데 우리라고 없겠습니까? 인간은 완악해서 고난이 없으면 안 됩니다.
계7:14에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했는데, 이 셀 수없이 많은 흰옷 입은 무리는 바로 우리들입니다. 주님도 고난 중에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는데, 우리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고난이 우리를 온전하게 하는 비밀입니다.
3. 온전함의 비밀은 말씀입니다.
버가모 교회에 주신 말씀인데, 계2: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하셨습니다. 버가모 교회가 이단에 빠진 것은 말씀에 대한 무지와 오해 때문이었습니다.
버가모의 가장 큰 문제는 발람의 교훈 같은 니골라당의 교훈 때문이었습니다. 발람의 교훈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인계로 유혹하여 우상에 빠뜨린 죄입니다. 니골라 당이 발람의 교훈과 같은 것은 영과 육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영지주의로 그들은 죄에서의 자유를 죄짓는 자유로 오해했습니다. 그 결과 풍성했던 만나는 감춰지고 교회는 세속화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말씀 떠나면 안 됩니다. 말씀이 우리를 온전하게 합니다. 딤후3:16-17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요15:3)다고 하셨듯이 성경을 읽어야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히5:13에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라 했습니다. 이젠 자랄 만큼 자랐으니 예수 천당만 전하지 말고, 거룩함에 이르게 하는 의의 도도 가르쳐야 합니다.
바울이 무법한 행실을 가진 총독 벨릭스에게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와 함께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행24:24-26) 했습니다. 사랑만 전할 것이 아니라 공의도 가르치고, 복음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의의 도도 가르치고, 신앙훈련 들어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경 읽기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4. 온전함의 비밀은 성령입니다.
계1: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두아디라 교회의 문제는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이 퍼뜨린 것은 세속주의입니다. 바알이란 육신 잘되자는데 초점을 맞춘 현세적이고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입니다(요일2:15-16).
두아디라 교회는 계2:19에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하실 정도로 건실한 교회였지만 세속이 침투해 하나님과 세상이라는 두 주인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세속이 왜 무섭습니까? 이세벨 왕후처럼 세속이 왕적 권력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이 왜 문제입니까? 종교가 국가권력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소돔에 갔던 의인 롯의 가정이 세속화되었듯 세속의 위협만큼 빠르고 강력한 것은 없습니다.
텔레비전 유튜브 기타 매체를 통해서 혹은 매체가 없이도, 세속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예고 없이 떠밀려 들어오고 사람들의 마음을 세속화시키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보암직 먹음직 탐스러워 선악과 따먹는 것은 1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방법이 무엇일까요? 엎드려 기도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성령 충만이 그 비밀입니다.
그래서 갈 5장에서는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를 비교하면서 갈5:16에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육신대로 살지 않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5. 온전함의 비밀은 행함의 믿음입니다.
계3:1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사데는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난 곳입니다. 이렇게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지만 행함이 없는 믿음이었기 때문에 실상은 죽은 교회였습니다. 신앙생활에 게으르면 답이 없습니다.
잠24:33-34에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했습니다. 영적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결과 거룩한 성도도 많지 않았고, 부흥의 일군도 없었고, 주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3:3에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하셨는데, 이건 재림의 경고가 아닌 심판의 경고입니다. 주님의 심판이 언제 닥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기도 안 해도 제자교육하니까 부흥된다고 좋아하더니 큰일났습니다. 이대로 가면 교회는 우리 시대로 끝날지 모르겠습니다. 성도의 신분에 맞게 신부로서 성도로서 성전으로서 동역자로서 부족함이 없는 행함 있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6. 온전함의 비밀은 감사입니다.
계3:8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말씀인데, 빌라델비아교회는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 은사도 능력도 물질도 훌륭한 지도자도 교세도 없었지만 상관하지 않고 박해 가운데서도 목숨 걸고 말씀대로 산 결과 믿음의 부유와 형통의 큰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감사’라고 했느냐 하면 감사가 아니면 적게 받고도 말씀을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택하여 주신 것만 생각해도 날마다 그것이 감격이어야 합니다. 지옥 불에 던져질 사람이었는데 구원해 주시고 자녀 삼아 주신 것만 생각해도 영원히 찬양하며 살아도 부족한데, 사람들이 욕심이 너무 많습니다. 이 욕심 때문에 찬양이 나오지 않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화려한 설교 그런 건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 성경이나 몇 마디 읽는 것이 전부인 교회 같아요. 당시는 성경이 없었으니 몇 마디 들은 것이 전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한 말씀이라도 그대로 붙들고 실천하는데 힘쓴 결과 열린 문의 큰 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는 허세를 버리고 한 사람이라도 양육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생활 100점, 말씀보기 100점, 찬송생활 100점, 섬김 봉사 전도 승리 각각 100점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선 말씀과 기도만큼은 생활화해야 하겠습니다.이렇게 자신과 교회를 훈련시켜 나가면 그 몇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킬 일군이 됩니다. 그러므로 한 말씀이라도 붙잡고 경건에 이르도록 열심히 훈련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를 온전하게 합니다.
7. 온전함의 비밀은 열심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계3:19에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라오디아 교회는 초대형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육신적인 부요와 형통을 영적인 부요와 형통으로 착각하고, 자만한 결과 열심을 잃었고 그 결과 주님은 그들과 멀리 계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의 심장이 멈추면 죽듯이, 열심 사라지면 그 믿음은 죽습니다. 눅12:49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하셨는데, 열심의 불이 사라지면 부흥도 멈추고 맙니다. 신앙의 뜨거움은 감정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학문은 없었지만 열심이 있었기에 온전한 주님의 제자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스펄전 목사는 “주님을 향해서 가슴이 뜨거운 사람, 열두 명만 있다면 이 런던의 삭막하고 고독한 환경을 기쁨이 충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다니엘과 같이,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와 같이 뜨겁게 하나님을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온전함을 원하십니다. 우리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십시다. 그것이 우리를 온전하게 하는 비밀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비밀은 사랑 고난 말씀 성령 행함 감사 열심입니다. 이 중 하나라도 붙잡읍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하나님이 기뻐하실 가장 온전한 믿음에 도달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