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 예술인의 마을 성북동을 가다
“하루쯤 나 혼자 어디라도 가야겠다” 도서관 장서에서 본 책 이름이다. 그렇구나! 꼭 동행자가 있어야만 여행이 되는 게 아니다. 모든 게 자유스러워 좋은 점도 많을 것이다. 마침 일정이 하루가 빈 날이 있어 예전 고교동기회 보견회에서 가 갔던 역사 문화마을 성북동을 ‘나 혼자 여행’의 목표지로 잡았다. 성북동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 근현대 문화와 예술을 꽃피운 문화 예술인의 마을로 자리매김해 왔다. 지금은 ‘나 혼자 여행’이지만 가을 되면 친구들을 안내하는 가이드로서 같이 갈 욕심으로-- 도상 연구를 했다.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삼청각 방향으로 길게 뻗은 오르막길이 성북동 메인 코스이다. 오르막길이라 걸어서 가자면 꽤나 힘이 든다. 그래서 가장 멀고 지대가 높은 만해 한용운의 사저 심우장(尋牛莊)까지는 버스로 가고, 거기서 거꾸로 내려오기로 했다. 이태준 가옥 수연산방(壽硯山房), 이종석 별장, 간송미술관, 성북동 근현대문학기념관, 성북 선잠 박물관과 선잠단지, 최순우 옛집을 탐방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길상사로 가기로 한다.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오늘의 목표지 중 가장 위쪽에 있는 심우장까지 버스를 탔다. 01번, 1111번, 1112번, 2112번 등 버스 편이 많다. 버스를 타고 심우장 입구에서 하차하여 도로를 건넌다. 심우장은 맞은편 언덕길로 올라야 한다. 큰길 가에 만해 스님의 조각상이 있고 설명판을 볼 수 있었다.
만해 한용운님의 사저 심우장(尋牛莊) 심우장까지 꼬불한 오르막 비탈길과 시멘트 계단 길을 150여m 올라가면서 담벼락에 붙은 만해 시인의 많은 시구와 어록을 볼 수 있었다. 심우장(尋牛莊)은 서울시 사적 제550호로, 독립운동가이며 승려, 그리고 시인이었던 만해 한용훈 선생이 말년을 보낸 성북구 성북동의 사저이자 역사적 공간이다. 불교 선가(禪家)에서는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을 소에 비유하여, 마음 닦는 일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심우(尋牛)로 불렀다. 심우장이란 당호는 깨달음을 얻는 수행 과정이란 의미인 심우도(尋牛圖)에서 따온 것이다. 심우장은 정면 4칸과 측면 2칸의 ㄴ자형 북향 가옥이다. 만해의 명성에 비해 집이 작고 소박함에 놀랐다. 이 집은 1933년에 벽산 스님, 조선일보 방응모 사장 등 지인들의 도움으로 지어졌는데 당시에는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에 속했다. 만해는 ‘님의 침묵’을 출판해 일제에 대한 저항문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로 해방이 되기 전 1944년에 이 집에서 서거했다. 한용운이 별세한 뒤에는 딸인 한영숙이 기거하다가 만해사상연구회에 기증해서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방안엔 그의 친필 원고와 논문집, 유품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종석 별장과 성북 구립미술관 그리고 이태준 가옥 수연산방 이종석(李鍾奭)별장 심우장에서 내려와 큰 도로를 따라 7~8분 걸어 내려오면 높다란 탑이 있는 덕수교회가 있다. 그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골목 끝에 이종석 별장이 서 있다. 서울시 민속문화재 제10호로 성북동 서쪽 산 자락에 위치한 이종석 별장은 조선시대 말 마포에서 새우젓 장사로 거부가 된 이종석이 1900년경에 지은 별장 건물로 토지 234.5m²에 지은 건물 2동인데 안채와 별채, 행랑채로 이루어져 있다. 꽃담과 미닫이문 창살이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소유주는 대한예수장로회 덕수교회이다.
성북구립미술관 맞은편 길 건너 성북구립미술관이 보인다. 지역 특성을 반영하여 한국 근현대 미술 중심의 전문성을 살린 최초의 자치구 공립 미술관이다. 성북구립미술관은 2009년 겨울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성북은 수많은 예술가들이 창작의 고향으로 뿌리를 내린 곳으로 장승업, 김환기, 이중섭 등 여러 화가들이 살던 터가 남아 있다. 미술관에 들어가 보니 7월 초에 새로 전시할 “정보원 작가전” 준비에 바쁘다.
점심은 사게절 보양음식 전문점 이향에서 구립미술관 옆 골목길 입구에 이향이라는 멋진 음식점이 기다린다. 예전에 가본 식당이라 반갑다. 단호박약선밥, 상황돌솥밥, 나물 돌솥밥이 인기다. 소고기 해장국도 – 단호박약선밥을 추천하길래 선택했는데 역시 명불허전이다. 후식은 바로 옆에 있는 전통찻집 수연산방에서 하면 되니 타이밍이 제대로 맞다.
수연산방(壽硯山房) 성북 구립미술관 건물 옆 골목에 수연산방이 위치한다. 이태준 가옥 수연산방(壽硯山房)은 원래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의 고택이었다. 이태준은 황진이, 왕자호동 등을 집필한 한국 근대 소설의 완성자로 불리는 대표적인 작가이다. 고향이 강원도 철원으로 별명이 조선의 모파상이러 불렸다. 해방 후 월북했으나 이후 북한에서 숙청되었다. 현재의 수연산방은 이태준이 1933년부터 1946년까지 거주하며 단편소설 ‘달밤’ ‘돌다리’ ‘코스모스 피는 정원’과 수필집 ‘무서록(無序錄)’ 등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킨 곳이다. 일제강점기 순수 문학 모임인 ‘구인회’의 아지트 역할을 했으며, 정지용, 이상, 김유정 등 당대 최고의 문인들이 이곳에 모여 문학을 논했던 곳이었다. 서울시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는 후손이 전통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마당과 실내가 너무나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차 한잔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다. 차를 마시며 이 집 정원과 가구 등을 제대로 감상하였다.
간송미술관 성북구립미술관에서 대로를 따라 500m 가량 내려오다가 좌측 언덕길로 500m 오르면 간송미술관이 나온다. 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미술관이다. 1938년에 보화각이라는 이름으로 완공되었다. 간송미술관은 2018년까지 총 92회의 간송문화전을 개최하며 한국 미술사 연구의 중추로서 자리매김해 오고 있다. 예전 전시회를 보려고 땡볕에 한없이 긴 줄을 서서 기다리며 왜 입장료를 무료로 하는지 엉뚱한 생각도 했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2014년 첫 간송미술전이 유료로 열리고 2019년까지 매년 시리즈로 열렸다. 여러 차례 좋은 감상을 하였고 2024년 8월부터 2025년 4월까지는 미디어아트 전시가 진행 되었다. 간송미술관은 1년 7개월간의 보수. 복원 공사를 마치고 2024년 4월에 정식 재개관하였는데 매년 봄, 가을 두 차례의 테마전시를 열고 있다. 필자의 마지막 간송미술관 관람은 2024년 10.16~12.1 까지 열린 “위창(葦滄) 오세창 간송 컬렉션의 감식과 근역화휘(槿域畵彙)” 였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서화 감식가였던 위창 오세창이 우리나라 역대 화가들의 명작을 모아 엮은 대표적인 서화첩이다. 얼마 전(6월14일까지 2026년 봄 전시) 전시가 끝나 이번 방문은 전시회 참가가 아니고, 단순히 간송미술관 위치 소개를 위해 방문한 것이다. 마당에서 건물과 간송의 흉상만 사진으로 찍고 발걸음을 돌렸다. 몇 달 후 가을 전시회에 다시 오리라 다짐하면서--
근현대문학기념관 문화예술의 도시 성북이라 할 만큼 성북지역은 수려한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문인과 예술인들이 많은 창작활동을 하면서 거주하고 교류하던 곳이었다. 문학과 관련된 종합적인 자료를 수집하고 이용자들에게 소통하는 문학 픓렛폼의 역할 거점으로 2024년 3월에 근현대문학기념관을 건립했다. 상설전시실을 비롯, 기획전시실, 자료열람, 교육실을 구비하였고-성북의 문인들을 시대별로 일제강점기, 광복과 한국전쟁기, 1960년대 이후 산업화 시기로 나누어 작가별로 작품을 전시해 놓았다. 일제강점기에는 한용운, 정지용, 이태준, 이육사 광복과 한국전쟁기에는 염상섭, 김내성, 김동리, 조지훈 그리고 1960년대 이후 산업화 시기에는 김광섭, 박경리, 신동엽, 박완서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또 성북 문학은 문예지에서 시, 소설, 문학잡지(문장, 현대문학, 자유문학, 서라벌문학)로 과거의 작품들로 감상할 수 있고 음악이나 영화, 회화도 음원 듣기나 작품 감상을 할 수 있었다. 이태준의 단편소설 돌다리(1943년 작)가 특별히 눈에 띄어 도서관에서 대여해서 읽어볼 생각이다.
선잠박물관과 선잠단지 성북동 메인코스 대로변 성북역사문화센터(관광안내소) 맞은편에 성북 선잠박물관이 있다. 그 박물관 옆 공터에 선잠단지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선잠단지는 조선조 태종 14년(1414년)_~세종 12년(1430년)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1908년 일본이 선잠제를 중단 시킨 후 방치되디가 2016년에 성북구가 선잠단지 정밀 발굴조사와 재현공사를 시작하여 2020년 12월에 현재의 선잠단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선잠단은 양잠의 신 서릉씨에게 제사를 지내며 한 해의 풍요와 안정을 기원했던 신성한 공간이다. 조선시대 선잠단 터가 성북동에 그대로 남아 있고 선잠단에서 이루어졌던 선잠제는 음악, 노래, 무용이 결합되어 에악의 문화를 담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선잠단지와 선잠박물관을 통해 옛 선인들의 선잠의 문화와 역사를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박물관은 1.2.3층에 전시실을 설치하고 산짐제 재현 모형과 제기 그리고 친잠례에 왕비가 직접 모범을 보이는 데 사용된 국의와 바구니 갈고리 등이 전시되고 있었다. 또 비단을 만드는 왕채와 자수, 매듭, 소품, 장신구도 견학할 수 있었다.
최순우 옛집 성북동 메인 코스 중 북쪽 지대가 높은 곳에서 내려오다 보니 가장 마지막 순서는 최순우 옛집이다. 유명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인 혜곡 최순우씨는 국립중앙박물관 4대 관장(1974.06~1984.12)을 지낸 동양미술고고사학자 겸 미술평론가, 박물학자, 대학 교수 겸 수필가이다. 1976년부터 1984년까지 거주했던 1930년대 근대한옥이다. 시민들의 후원으로 보존된 대한민국 최초의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문화유산이다. 시민 관람이 무료이며 아름다운 뜰에는 선생이 직접 심고 가꾼 모과나무, 산수유 등과 야생화들을 계절별로 볼 수 있다. 안채와 사랑채에는 선생이 생활하며 사용했던 전통 목가구, 수집품과 지인들의 미술작품이 보존되어 있다.
길상사(吉祥寺) 길상사를 오늘 코스의 마지막 장소로 잡은 것은 길상사 위치 때문이다. 성북동 메인코스가 아니라 선잠단지 옆으로 뻗은 선잠로 끄터머리에 있기 때문이다. 마을버스 02번을 타고 길상사 입구에서 하차하여 길상사 일주문으로 향한다. 길상사는 성북동 도심 속 고요한 안식처로 불리는 대한불교 조계종 사찰로 “맑고향기롭게” 기치를 내건 순천 송광사 말사이다. 길상사는 최고급 요리집이었던 대원각의 여주인 고 김영한씨가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감명을 받아 7천여 평의 대지와 40여 동의 대원각을 무상 시주하면서 1997년 아름다운 사찰로 다시 태어났다. 김영한은 길상화(吉祥華)란 법명으로 보살이 되고, 한때 유명했던 요정 대원각은 그의 법명에서 이름을 따서 길상사(吉祥寺)라 작명되었다. 길상사 전신 대원각은 과거 1970~80년대 정,재계 인사들이 드나들었던 서울의 3대 요릿집(삼청각, 대원각, 오진암) 중 하나였다. 필자는 매년 회사 주주총회 무렵이면 일본 대주주를 접대 겸 대원각에서 임원 회식을 한 기억이 새롭다. 三角山 吉祥寺 이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지나 사찰 안으로 들어갔다. 주 법당인 극락전과 지장전, 법정스님의 진영각, 후원인 선열당, 수련원인 설법전, 길상보탑과 길상선원 등의 안내표지판을 보면서 우선 극락전부터 찾았다. 극락전은 길상사의 메인 법당으로 일반 일자 형 법당과는 달리 양 날개가 앞으로 튀어나온 ㄷ자 형태로 건축된 것이 특징이다. 극락전에는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고 협시보살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함께 봉안되어 있다. 법정 스님이 입적하신 진영각(眞影閣)에는 법정 스님의 영정과 유품을 모시는 곳이다. 내부에는 스님의 친필 문서와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사진 촬영은 금지하고 있었다. 진영각 뒤편에는 스님의 유골이 모셔진 자리가 작게 표시되어 있었다. 사당(舍堂) 내부에는 대원각을 시주한 김영한(법명 길상화) 여사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었다. 그리고 그 건물 옆에는 시주 길상사 공덕비도 서 있다. 높다란 목조건물이 시선을 끈다. 지장전이다. 지장전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을 주존불로 모시는 전각이다. 아래층에는 신도들을 위한 공양간(다라니 다원 찻집)이 있고 위층 법당에는 영구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예전 대원각의 별방이었던 작은 건물들은 스님들의 수행공간 및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시민의 참선과 명상을 도우는 길상선원과 침묵의 집으로 개조되어 일반 신도와 시민들의 선방(禪房)역할을 하고 있었다. 평일의 길상사는 몇몇 신도들이 보일 뿐 너무나 조용한 산골 암자같은 생각이 들었다. 종로의 조계사와 너무나 대조적인 인상을 받았다.
후기 하루 만에 성북동의 문화 옛터를 다 탐방하기란 무리이다. 과연 성북동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릴 만하다. 한양도성 북악산 자락에 위치해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수많은 역사 유적과 문인 예술가들의 발자취가 온전히 보존된 지역이라, 탐방하는 곳마다 선인들의 숨결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다. 필자가 역사 문화 예술인의 마을로 성북동을 최우선으로 지명하고 찾은 것이 옳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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