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체르노빌 대참사에서 승리한 전투원
체르노빌 원자력발전 사고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사상 최악의 참사 중 하나다. 아마 오늘날 대부분 청소년은 그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체르노빌 대참사에 대해 모르는 독자에게는 사실을 정확히 알려주고 이미 알고 있는 독자에게는 그때의 기억을 환기할 겸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려 한다.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현지 시각), 구소련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시에서 1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 4호기가 폭발했다. 원자로 설계 결함, 기술진들의 몇 가지 안전절차 무시와 운전 미숙이 폭발의 원인이었다. 경험이 부족한 야간 교대조가 원자로의 안전 시스템을 시험하던 중 오류가 발생하여, 원자로 노심[원자로에서 연료가 되는 핵분열성 물질과 감속재가 들어 있는 부분. 핵분열 연쇄 반응이 이루어지는 곳임]의 연쇄반응이 통제 불가능 상태가 되고 말았다. 원자로 노심의 온도가 급상승하면서 과도한 열로 냉각수가 수소와 산소로 분해되고, 거기에다 핵분열 반응도 조절 역할을 하는 제어봉의 고온화된 흑연과 분해된 수소가 반응하여 가연성가스를 생성함으로써 끔찍한 폭발을 일으켰다. 무게가 1천 톤이 넘는 원자로 상부 돔 천장까지 통째로 날려버릴 정도로 폭발의 위력은 엄청났다. 연이은 폭발로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어 대기 중으로 퍼져나갔는데, 대부분 낙진은 발전소 인근 지역에 떨어졌고, 일부는 바람을 타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제외한 유럽의 모든 지역과 북미까지 퍼졌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는 역대 최초로 최고 등급[국제원자력기구가 설정한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과 국내 '원자력안전법'의 사건 정의에는 0~7단계까지 기재되어 있음]인 7단계로 분류된 원자력 대참사였다.
두 번째로 등급을 받은 사고는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였다. 체르노빌 대재앙으로 확인된 직접적인 피해자는 57명에 그치지만, 피폭 병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수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 공식 보고서는 3만~6만 명으로 추정한 반면, 그린피스가 추정한 숫자는 600만 명 이상으로 정확히 추산하기 조차 힘들다. 사고가 발생하자 체르노빌시 전체와 발전소 주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거주민들이 전부 대피했고, 이에 따라 지역 주민 중 35만 명 이상이 '강제 이주'해야만 했다. 발전소 주변 지역 반경 30킬로미터 소위 '체르노빌 출입통제 구역'으로 지정된 '거주금지 지구'는 수십 년 동안 출입이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
체르노빌 대재앙의 결과는 말 그대로 황폐함 그 자체였다. 재난이 발생한 지 30년도 휠씬 지난 오늘날까지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든 것을 제자리로 되돌리는 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해 뜬구름만 잡을 뿐이다.
식물도 폭발 이후 며칠 동안 방사능 낙진을 겪었는데, 그 결과 또한 치명적이었다. 폭발로 인해 누출된 방사성 동위원소의 60~70퍼센트가 폭발 몇 주 안에 발전소 주변 숲의 식물들에 침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체르노빌 출입통제 구역에 속하면서 야생 소나무가 주를 이루는 숲속에서 대부분 소나무가 높은 수준의 누출 방사능을 흡수해 죽으면서 연한 적갈색으로 변했다. '붉은 숲'이라는 말이 바로 여기서 나왔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관련된 방사능 낙진에서도 체르노빌과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방사선 수치가 최고조일 때 1차로 노출되어 벌어진 극적인 상황이 막을 내리자, 식물들은 생명체와는 분명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것같은 이러한 상황에서 방사능에 적응하고 생존하는 방법을 찾았다.
체르노빌 출입통제 구역에서 일어난 일은 믿기지 않을 정도다. 아무것도 살 수 없을 것으로 여겨졌던 이 공간은 오늘날 구소련에서 가장 다양한 생물 서식지 중 하나가 되었다. 인간이 방사능보다 휠씬 더 해로운 존재였던가! 이 지역에서의 인간 활동 제한이 사실상 거대한 자연보호 구역을 만든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방사능에도 불구하고, 동식물은 과거보다 개체수가 증가하고 품종도 훨씬 다양해졌다. 오늘날 제한 구역에서 살쾡이∙라쿤∙노루∙늑대∙프셰발스키 말[1870년대 말 탐험가 프셰발스키가 몽골 서쪽에서 발견한 말로,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몽골 야생말 아종]
•여러 종의 새•붉은여우•오소리•족제비
•토끼•다람쥐뿐만 아니라 1세기가 넘도록 멸종되었던 큰곰까지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식물은? 식물은 확실히 동물보다 휠씬 더 잘해냈다. 출입통제 구역에 속하는 프리피야트는 폭발한 원자로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도시였다. 인구 약 5만 명의 그 도시민 대다수가 원 자력발전소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사고 직후 영구 피난했다. 나는 그 도시의 현 상태를 아주 자세한 르포르타주 방식으로 담아낸 사진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사진은 내 눈을 의심할 만큼 믿기 어려웠다. 건물 지붕 위의 포플러, 테라스에 보이는 자작나무, 뻗어나오는 덤불의 힘을 못 이겨 갈라진 아스팔트, '그린리버'로 변한 넓디넓은 6차선대로•••••.
대참사를 겪은 후 30년이 흐른 프리피야트는 식물들로 뒤덮여 있었다.
체르노빌 대참사를 대하는 식물의 반응은 예상 밖이어서 전문가조차 놀랄 정도였다. 안타깝게도 그 현상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지 않아 진지한 과학적 연구가 이루어진 적은 없다. 2009년 마틴 하두치 교수가 이끄는 슬로바키아 과학원 연구팀이 실험을 위해 프리피야트시까지 갔고, 그 결과 많은 토론이 이루어졌다. 연구팀은 프리피야트시에 일정량의 콩을 심은 다음, 오염 지역에서 1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지역의 동일 재배식물군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프리피야트시의 콩이 상대적으로 물을 적게 소비하면서도 훨씬 더 잘 자랐다. 뒤이은 연구 발표에 따르면 방사능 오염 지역에서 자라는 콩의 경우 정상 개체에 비해 중금속을 결합함으로써 식물을 보호하는 단백질인 시스테인 합성효소와 방사능에 노출될 때 염색체 이상을 줄이는 성분인 베타인 알데히드 탈수효소를 더 많이 지닌 것으로 드러났다.
방사능 오염 지역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는 성장률 비교가 어렵다는 지역 설정의 한계에 대해서는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식물이 역사적으로 역경에 맞서는 특별한 저항력을 개발해왔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식물의 가장 놀라운 능력 중 하나는 방사성 핵종[불안정한 원소의 원자핵이 스스로 붕괴하면서 내부로부터 방사선을 방출하는 원자핵을 말함]을 흡수하여 환경에서 오염을 제거하는 능력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식물이 이 불가능한 위업을 달성해왔다. 이로 인해 식물환경정화[식물을 이용하여 오염된 토양, 대기 또는 수질을 복원하는 방법으로, 주로 중금속이나 유기물질에 의해 오염된 지역을 정화하는 데 이용되고 있음]라는 기술을 통해 이러한 오염물질을 제거하자는 안이 종종 제기되었다. 오염물질 제거 속도는 더딜지라도, 이 기술은 방사성 핵종에 의해 오염된 토지에서 오염을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다. 이 밖에 오염된 토양을 옮기는 방법이 있는데, 권장할 만한 방법은 아니다. 토양을 옮길 때 먼지가 발생하여 대기 중으로 퍼져나가면 2차 오염이 생길 위험이 있어서다. 따라서 흡수되는 방사성 물질의 양은 기후•지형•토양의 구성물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식물은 방사성 물질을 흡수하여 체내에 모으면서 환경에서 그 오염물질을 제거해간다. 이것은 체르노빌의 출입 통제 구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매우 중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만약 그 숲에서 화재가 발생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난 30년 동안 식물에 축적된 방사성 물질들이 화재 즉시 대기 중으로 방출될 것이고 이는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크라이나 정부가 출입통제 구역에서 화재 예방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이유 중 하나다.
*다음은 프리피야트의 주민들이 대피 당일 들었던 소개령이다.
"주목하십시오. 주목하십시오! 주목하십시오. 주목하십시오! 주목하십시오. 주목하십시오! 주목하십시오. 주목하십시오!
시 인민위원회에서 알려드립니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인해, 프리피야트시 주변의 방사능 수치가 높아 대기 상태가 해로운 수준입니다.
공산당, 연방기관, 군대는 필요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만, 인민의 확실한 안전보장과 아이들을 먼저 지키기 위해 키예프주에 있는 임시 거주지로 대피할 것을 알려드립니다.
따라서 금일 4월 27일 오후 2시부터 경찰과 집행위원회 위원들의 감독하에 버스로 이동하게 될 것입니다.
비상식량, 기본 생필품 및 신분증은 가져가시는 것이 좋습니다. 정부 사업처와 기관의 고위 관리자들은 도시 기업의 정상화를 위해 프리피야트에 체류할 노동자들을 선정했습니다.
대피 동안 모든 주택은 경찰이 지킬 것입니다. 동지들, 임시 대피 전에 창문을 닫고 모든 전기기기와 가스를 차단하고 수도를 잠그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임시 대피 과정에서 침착하고 질서정연하게 행동하며 규칙을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식물, 세계를 모험하다 중에서
스테파노 만쿠소 지음
임희연 옮김
신혜우 감수
그리샤 피셔 삽화
첫댓글 얼마나 무서운 원자력의 피해를 사람, 동물보다 강하게 이겨내고 있는 식물이야기로 감탄합니다. 그래도 이 세상에 원자력발전소가 존재하고 이의 대안이 무엇인지 아직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과학자들의 힘찬 연구를 기도해봅니다.
한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거의 천일간 이어지고 있는 전쟁은 사람이 막을 수 있을것인데 왜 멈추지 않는지. 지구에 인간의 욕심에 의한 <전쟁>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야할 일인데. 멈추지 않고 있으니 더 아플 뿐입니다.
지구에서 식물들이 공생해가고 있는 이치를 더 배우고 익혀야할 이유입니다.
지구가 더 아프지 않도록 😢
식물의 위대함을 다시한번 되새기게 하는 글 올려주어 참 고맙고 긴댓글로 답해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글솜씨 없다는 핑게 바쁘다는 핑게 무색하기만 합니다
무거운 짐은 나누어지면, 조금은 가벼워집니다.
나눌수 있어서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