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과 우리말 / 경기도 안양시 달안동
들 가운데 마을 달안
‘달’이 ‘들’의 뜻으로 붙은 것 엄청 많아
"왜 달안이냐구요? 온통 진흙탕 지역이라 살기 힘들어 마을 사람들이 다 달아나서 '달안‘이래요." (안양 평촌 지역)
"달’, ‘다리’가 ‘들(野)’의 뜻으로 남아 있음직한 곳을 몇 군데 들렀다.(1990년대 이전)
먼저 가 본 곳은 경기도 안양시의 평촌동 일대. 지금과 같이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기 이전이었다. 이곳은 북쪽과 동쪽에 각각 관악산과 모락산이 가까이 있고, 서쪽으로 수리산이 멀리 보이는 너른 벌판인데, 지금은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새 도시가 되었다. 그래서, 이 벌판 주위의 벌말(평촌.坪村), 날미(비산.飛山), 한벌말(관양동.冠陽洞), 범내(호계.虎溪) 등의 토박이들이 농토를 내어놓고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이 벌판 가운데에 조그마한 마을 이름 하나가 달안‘이었다.
여남은 채의 집들로 이루어진 마을인데, 찾아갔을 때에는 서너 집 정도가 빈 집이었다. 보상금을 받고 얼마 전에 딴 곳으로 떠났단다.
마을에서 박재웅(30)이란 젊은이를 만났었는데, 그의 얘기로는 몇 달 안에 이 ‘달안’ 마을이 없어질 것이라고 했었다. 관에서 계속 이주를 독촉하고 있다면서. ‘달안이’라는 마을이름이 어떤 뜻으로 붙은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어렸을 때 들었다는 어른들의 얘기를 전했다.
“여기가 평평한 들 가운데라 비만 오면 물이 안 빠져 길까지 진구렁창이었대요. 그래서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이 살기 힘든 동네라고 딴 곳으로 달아났답니다. 사람들이 왔다가도 금방 잘 달아나는 마을이라 ‘달안이’라고 했다는 거예요.”
누가 꾸며낸 이야기인지 믿기 어려운 지명 유래를 남기고 있었다. 이 마을은 들의 안쪽이었다. ‘달안’은 ‘들 안’이란 뜻이다. 옛날 지도에 보면, 이곳의 한자식 지명이 ‘월내(月內)’로 나오는데, 이것은 ‘달안’을 그대로 의역한 것이다. (지금 이 지역애 달안동이란 행정자명이 있다.)
다리도 없는데 방아다리
속리산 법주사 입구의 보은읍 외속리면 방향으로 가 보았다. 이곳에는 ‘배다리’, ‘긴다리’, ‘방아다리’ 등 ‘다리’가 들어간 땅이름이 많아 여기서의 ‘다리’가 어떤 뜻을 담았는지 알고자 해서였다.
‘긴다리’를 먼저 들렀다. 행정구역상으로 충북 보은군 외속리면의 구인리.
‘긴다리’라 해서 먼저 마을 근처에서 다리를 찾아 보았는데, 그런 다리가 눈에 띄질 않았다. 다리가 놓일 만한 큰 내도 없었다. 마을 어른을 만나 물어보니 다리 이야기는 하질 않고 마을의 한자식 이름 ‘구인(求仁)’에 대해서만 열심히 설명했다. ‘긴다리’라는 이름이 다리가 긴 것이 있어서냐고 거듭 물었다.
“긴 다리가 있을 리는 없죠. 옛날엔 있었다고 듣긴 들었는데…”
그러나, 그 긴 다리가 있었을 만한 큰 내가 이 마을엔 없지 않으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긴다리’가 ‘장교(長橋)’의 뜻이 아닌 것이 틀림없었다. 이곳의 들이 북쪽 말치(말티고개) 골짜기까지 길게 뻗은 것으로 보아 ‘긴다리’는 긴들(長坪)’임이 확실했고, 이곳의 행정지명 ‘구인’은 ‘긴’을 소리빌기로 취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찾아들어간 곳은 ‘긴다리’ 마을 남쪽에 있는 ‘방아다리’였다. 한국전쟁 직후까지도 10여 집이나 있었다는 이 마을은 살기가 어렵다고 한 집 두 집 빠져나가고 당시에는 7 채의 집밖에 남지 않았다. 몇 해를 비어 놓아 다 헐어진 집도 보였고 집터였던 곳의 돌무더기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그나마 마을에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주로 60살 이상의 노인이었다.
읍내 예식장으로 가는 길이라는 한 노인을 마을 입구에서 만나 ‘방아다리’란 이름을 가진 이 마을의 유래를 물었으나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이 마을엔 다리도 없다고 했다. 다만, 들 모양이 방아처럼 생겨서 방아’라는 이름이 붙었을 거라는 설명이었다.
다음으론, 구인리에서 직선 거리로 서쪽으로 3Km 정도 떨어진 ‘배다리’를 찾았다. 곧은 거리로는 그렇지만 가는 길이 없어 보은 읍내를 거쳐 10Km의 길을 돌아 들어갔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보은읍 월송리(月松里)였다.
이곳의 이장인 김영년씨(60)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았으나, ‘다리’에 대한 설명은 들을 수 없었다.
“비가 엄청나게 온 해에 이 앞의 들판이 완전 물바다였답니다. 물이 오랫동안 안 빠져서 마을 사람들이 배를 타고 다니면서 농사를 지었다는 거죠. 그래서, 마을이름에 ‘배’자가 붙었대요.”
만일 이곳이 물바다였다면 이 아래쪽의 보은 읍내는 완전히 쑥밭이 되었을 것이다. 이곳의 ‘배다리’도 역시 다른 곳의 배다리처럼 ‘뱃들(밧들)’이 원이름일 것이었다.
판교도 ‘넓은 들’의 뜻
서울 마포구에는 ‘잔다리’라 불렀던 세교동(細橋洞)이 있었다.
옛날에는 고양시 연희면 서세교리라 하다가, 1943년 11월 1일, 경성부 마포구 동교, 서교, 합정, 망원동으로 편입되고, 1955년 4월 18일, 동제 실시 때 위 4개 동을 합하여 세교동이 되었는데, 잔다리의 윗동네 ‘웃잔다리’는 동교동이 되었고, ‘아랫동네 ’아랫잔다리‘는 서교동이 되었다. 역시 들이 있어서 나온 땅이름이다.
서울 마포구에는 ‘잔다리’라 불렀던 세교동(細橋洞)이 있었다.
옛날에는 고양시 연희면 서세교리라 하다가, 1943년 11월 1일, 경성부 마포구 동교, 서교, 합정, 망원동으로 편입되고, 1955년 4월 18일, 동제 실시 때 위 4개 동을 합하여 세교동이 되었는데, 잔다리의 윗동네 ‘웃잔다리’는 동교동이 되었고, ‘아랫동네 ’아랫잔다리‘는 서교동이 되었다. 역시 들이 있어서 나온 땅이름이다. ’잔다리‘란 이름은 ’좁은 들‘의 뜻이다.
이처럼 땅이름에서 ‘다리’가 들어간 것 중에 ‘들’의 뜻인 것이 많다는 점이다. ‘다리’가 내나 강에 놓인 다리를 뜻하느냐, 아니면 ‘들’의 뜻인 ‘달’의 연철형이냐 하는 점인데, 전국에 퍼져 있는 ‘다리’ 지명들을 대개는 ‘다리(橋)’의 뜻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느데 이는 잘못이다.
판교(板橋)라는 땅이름도 그 하나의 예이다. 그러나 이 지명은 다리(板橋)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원래 ‘너더리(너덜)’로 불려왔
‘너덜’은 ‘넓은 들’의 뜻이다.
넓들 > 널들 > 너들 > 너덜(너더리)
판교는 경기도 성남시의 판교동을 비롯, 행정지명만도 전국에 5개나 있다.
충남 예산의 삽교(揷橋)는 ‘삽다리’가 원래 지명이다. ‘삽다리’는 ‘삿다리’로 ‘사이 샅의 들(間坪)’ 이란 뜻을 담고 있다. 삽을 놓고 건너다녔던 곳의 삽다리도 아니고, 섶으로 만든 섶다리도 아니다.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의 ‘한다리(白橋)’, 충남 당진군 석문면의 ‘다리길橋路里’도 들 관련 땅이름이다.
들’이 ‘달’이나 ‘돌’의 음으로도 불리고, 이것이 음차되어 등(等), 돌(突)이 되었고, 훈차되어 월(月), 진(珍), 석(石)의 한자로 들어갔다. 들 가운데의 마을이름에 월(月)자가 많은 것은 ‘달’이 ‘들’의 뜻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면 사는 곳 중심으로 ‘어떤 곳’임을 뜻하는 지칭이 발생한다. 그 어떤 곳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땅이름이랄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이 어느 곳에 자리잡고 살면 그 자리 잡은 때와 거의 동시에 그 일대에 땅이름들이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고 뒤에 여러 사람 입에 굳혀지면 여간해서는 다시 바뀌지 않는 불변성을 지닌다. 다만, 세월이 지남에 따라 편한 발음 위주로 바뀌어 나갈 수는 있다.
따라서, 땅이름을 조사하다 보면 그 본디꼴(原形)인 옛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이미 한자로 바뀌어버린 것들도 많지만 이 한자식 땅이름도 잘 캐어 보면 그 속에서 조상들이 쓰던 말이 그대로 배어나오는 수가 있다.
들과 관련된 땅이름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러한 땅이름들 중 많은 옛말 또는 방언이 숨어 있음을 본다.
들은 바로 우리 조상들의 생활 터전이어서 그 들이름 자체가 그대로 마을 이름이 되기도 했다. 들이나 벌의 마을이라고 해서 그대로 ‘들말’, ‘벌말’ 같은 이름들도 쏟아져 나왔다.
‘땅’과 관련된 낱말들
‘들’의 원래 음은 ‘ᄃᆞᆯ’로, ‘덜’, ‘달’ 등의 음으로도 불리었다. ‘ᄃᆞᆯ’은 처음에는 단순히 들(野)의 뜻만이 아니라, 산, 돌, 흙 등을 포괄하는 ‘땅’의 뜻을 갖고 있었음이 확실하다.
우리말의 통상적인 발음 변화 과정으로 보아 ‘ᄃᆞᆯ’은 ‘ᄃᆞᆯ’이었을 것이다. 이 ‘ㄷ촵ㄷ’을 뿌리로 한 말들이 모두 땅과 관련이 있다.
지금의 ‘양달’, ‘응달’의 ‘달’도 ‘땅’의 뜻이다. ‘달고질’이란 말도 땅을 다지는 일을 뜻하는데, 여기서의 ‘달’도 땅이다. ‘달’은 산山의 뜻으로 가기도 하는데, 지금의 ‘진달래’란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달(山)의 곶(꽃) > 달의곶 > 다래곶 > 달래곶 > (진)달래꽃
‘들’은 또 경음화해서 ‘뜰’이 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이 말이 ‘마당’ 또는 ‘정원(庭園)’의 뜻으로만 쓰이고 있다.
‘달내’는 ‘들의 내’란 뜻이고, ‘덜머리’는 ‘들머리’이다. ‘마돌’은 물의 들, 즉 ‘물들’(무들)과 같은 뜻이다. ‘너들’은 ‘너른 들(大野)’의 뜻인데, ‘노량(驚梁)’으로 훈차(訓借)되었다. 양(梁)은 ‘들보’의 뜻을 가져 들보의 ‘들’과 음이 같아 들(野)의 뜻으로의 한자가 취해지기도 했다. 옛 땅이름에도 ‘들’은 여러 형태의 한자로 나타난다.
고 양주동 님은 백제의 땅이름에 널리 보이는 영(靈), 돌(突), 진(珍), 월랑(月良) 등은 모두 ‘들’을 일컫는다고 하였다.
즉, ‘들’이 ‘달’이나 ‘돌’의 음으로 옮겨져 이것이 훈-음차되어서 위와 같은 한자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들’의 옛말 형태인 ‘드르(드루)’는 함경도, 평안북도, 제주도에 많이 나타난다. 강원도 지방의 ‘들’관련 땅이름에도 적지 않게 ‘드루’가 들어가 있다.
‘들’은 사투리가 그리 많지 않으나, 경상도 지방에서는 ‘덜’에 가깝게 발음하는 사람이 많다. 이 사투리가 더욱 발전하여 ‘돌’이 되는데, 이 때문에 ‘들머리’가 ‘돌머리’가 되어서 석두(石頭)라는 한자 지명을 단 곳도 있다.
더러는 들이 ‘둘’의 음으로 되어 ‘갯들(갯둘)’이 포이(浦二.서울 강남구)로 되었는가 하면 ‘들골’이 ‘둘이골(두리골?드리골)’이 되어 이곡(二谷.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이 된 곳도 있다.
충주시를 지나는 ‘달내(達川)’,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곰달내古音月’ 같은 이름은 위치?지형적 개연성으로 보아 ‘달’이 ‘들’의 뜻을 가졌을 가능성이 짙다.
달 관련 땅이름은 이 밖에도 ‘달바위’(月岩洞.경기도 의왕시), ‘달고지(月松里)’(충북 보은군 보은읍), ‘달재’(月嶺里) (경남 창녕시 영산면), 달애(다래)’(月川里.강원도 삼척시 원덕면), ‘월호리’(月湖里.원주시 지정면), ‘달외’(月外.충북 옥천군 안내면), ‘댈울(달울)’(月溪.충남 보령시 월전리)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이들 땅이름을 두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땅이름에서의 ‘달’은 하늘의 달(月)과는 대개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달’이 연철되면 ‘다라’ 또는 ‘다리’로 된다.
그래서, ‘다랏골(다락골)’, ‘다리실’ 같은 땅이름으로 옮겨진다.
‘달’의 연철인 ‘다리’는 묘하게도 ‘다리(橋)’와 음이 같아 진짜 다리 관련 땅이름과 섞여 ‘다리’가 어떤 뜻으로 붙여진 것인지 구분하기 쉽지가 않다.
‘다리’, ‘다라’, ‘다래’로 시작되는 땅이름은 대개 ‘달’을 그 뿌리로 하는 것이 많다.
서울에는 ‘굽은다리’라는 땅이름이 있다. 강동구 천호동의 옛날 지명인 곡교리(曲橋里)는 이 이름이 바탕이다.
이곳 구천면길의 둔촌로와 암사대로 사이 지역에 굽은다리의 변형인 ‘고분다리’란 지명이 있는데, 이 역과의 연관성은 없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이에, 고분다리와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굽은다리역에는 강동구민회관앞이라는 명칭이 병기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이 지역 마을을 잇는 다리가 굽어 있다고 밝힌 글도 있으나, 이 이름은 들이 굽어져 펼쳐 있어 나온 이름으로 보인다. ///
* 친척말
-달구질 들판 덜머리(들머리)
* 친척 땅이름
교곡(橋谷.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마교리
월곡月谷里(충남 당진군 당진읍 등)
월송(月松洞.충남 공주시 등)
교포(橋浦里.경기도 평택시 오성면 등)
교항(橋項.경기도 강화군 양사면 교산리
마릿드루馬坪(강원도 삼척시)
진두루(長坪.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늪두루(楡坪.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뒷드루(北坪.동해시)
절뚜루(寺坪.강원도 인제군 남면)
가느드르(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나전리)
가드래(加坪)’(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천평리)
마람또리(馬坪.춘천시 사북면 원평리)
야촌(野村里.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등)
야막(野幕里.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야목(野牧里.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군량(郡梁.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양평리)
유등(柳等.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2022년 8월 29일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