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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세상에 종교가 많죠. 같은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고 참 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그런 뜻으로 생각할 때 기독교도 우리가 속한 이 믿음의 종교도 여러 종교 중에 하나 다른 종교들과 같은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이 있는 그런 종교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 그런 경향이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있습니다. 생각은 그렇게 안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삶 가운데 교회를 그렇게 대하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가 있어요.
그렇지 않죠 피상적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지만 그 깊은 의미에서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 저 옆에 있는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소중한 사람들이요. 그 사람들이 그냥 사람들 중에 하나인가요?
아니죠. 사람이지만 그냥 사람들 중에 하나가 아니고 나의 사람 나와 관계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 소중한 존재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데 그거보다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잘 생각을 할 수가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기독교회는 다른 모든 종교와 같은 종류로 그중에 하나로 취급될 수 없는 아주 고유한 요소들이 많이 있어요. 그중에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입니다. 어느 종교에도 세상 어느 곳에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다시 사시고 하늘에 오르신 이를 믿고 따르는 것이 없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오늘 본문이 전하는 내용이고 그리고 오늘 찬양으로 우리 찬양대에서 아름답게 불러준 그 찬양 주가 하신 일 거기에 담고 있는 내용으로 화목 재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예요. 이거를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려고 하는데 먼저는 말의 문제 그다음에 뜻의 문제 의미의 문제를 같이 살펴보려고 합니다. 내용은 우리가 오늘 들은 찬양만 잘 알아도 알 수 있어요.
화목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내용을 잘 담고 있는 찬양의 가사들입니다. 오늘 설교를 통해서 볼 것은 말의 문제와 그리고 뜻의 문제이고 우리의 적용에 관한 건데 첫째로 말의 문제라 하는 것은 20 5절을 같이 봐요. 여기에 보면 한글이 있고 영어가 있죠. 영어는 esb 성경이에요. 한글은 작년하고 우리 청년들이 크게 읽어보시고요. 그리고 영어는 우리 청소년들과 혹시 어린이가 있다면 같이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한글이에요. 시작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비로소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그다음에 영어는요. 우리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이 해보겠습니다. 시작
폴트 프리프리시에이션 바이 히스 블 리브 바이 페이 디스 쇼 가수 라이처스 니스 비 디바인 포베어런스 패스트 포
한글 성경에서는 화목 제물이라고 하고 영어 성경은 프로피시에이션이라고 이렇게 하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이 영어 프로피시에이션은 여러분들 우리 청소년조차도 생소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인데 혹시 들어봤어요?
손 들어보세요 잘못 쓰이면 사라질 말이고 그러나 제대로 쓰이면 우리가 꼭 알아야 되는 말이 이 말이에요. 이 말에 한글 대응 번역은 이 말에 상응하는 한글만은 화목 재물이 아니고 속죄 제물이다.
왜 그런지 알려드릴게요. 조금 더 설명을 하자 보면 화목 재물이라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화목을 위한 재물이에요.
그런데 화목제라고 하는 것은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한 상태에서 드리는 제사예요.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있거나 하나님께 선한 일이 있거나 또 하나님께 사랑을 표현하고자 할 때 드리는 제사 제물이에요. 그리고 재물의 일부는 받쳐진 재물의 일부는 제사장에게 주고 나머지는 가족과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기쁨에 감사의 제사라. 반면에 속죄제라고 하는 것은 누군가 죄를 범했을 때 혹은 죄를 깨달았을 때 그 죄를 속하기 위해서 바치는 제사와 제물이다. 화목 제물이 그렇고 속죄 제물이 그렇다 하면 오늘 본문에 맞는 것이 어떤 것이 더 잘 맞을까 여러분이 이제 판단을 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맞습니까?
화목 제물, 속죄 제물 문맥적으로 보면 속죄 제물이 맞지요.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고 있는 내용의 주제는 죄이기 때문에 그랬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 성경에 쓰여 있기를 화목 제물이라고 했지만 그 뜻은 속죄 제물의 의무로 봤고 그리고 그런 다음에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제물이라는 뜻으로 화목 재물이라고 우리가 또 이어서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내가 이 뒷부분에서 화목 제물이라 하면 그런 뜻으로 여러분이 이해를 해 주시면 됩니다.
그게 말의 문제라면 이제 뜻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 제물이다 하시는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요?
화목 재물은 뭔지는 알겠어요. 그런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 제물이다 하시면 그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요?
속죄 재물이 죄를 속하기 위해서 바치는 제물이라고 했죠. 그렇다면 그것에 따라서 예수님도 죄를 속하기 위해서 혹은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기 위해서 인간이 바친 제물이냐 하는 것이오.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지요. 그렇게 그렇게 이해를 하면 화목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이해를 하면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오신 그 예수님을 완성되어야 할 율법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고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이방 종교의 제사 방식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조차도 화목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이해를 해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여러분은 이 부분에 있어서 오늘 말씀을 잘 들어서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있었던 세상의 많은 종교들에서 속죄 제물이 있어요. 거기도 제사가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말하는 속죄 제물이란 무엇이냐면 재앙이나 재난 앞에서 신을 달래기 위해서 인간이 바치는 제물이에요. 가정 농사가 안 돼요. 고기가 잡히지가 않아요. 전쟁에서 패합니다. 가뭄이나 지진 같은 재난이 있어요. 뭘 해도 안 됩니다. 그러면 이것을 신이 진노한 것에 표현으로 이해를 하고 그 신을 달래기 위해서 재물을 바치는 것이오.
한국 땅에 많이 있었던 굿 이스라엘 굿판 그것이 그래요. 노비여와 한 신을 달래기 위해서 재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동물이나 음식이나 술이나 처녀나 소년이나 아기를 바치는 거죠. 요즘에는 돈을 갖다 바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화목 재물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다음에 6가지를 제가 전하고 싶은데 하나씩 잘 따라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앞에서 말한 것과 무엇이 다른지 보세요.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 제물로 세우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아무 곳에나 분노하거나 이유 없이 화를 내는 그런 신인이 아니에요. 그는 죄와 악에 대해서 진노하시고 진노하실 때도 왜 진노하신지 그 이유를 분명하게 주십니다.
둘째로 죄와 악을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는 사람이 제물을 바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그 진노의 원인이 되는 죄가 사라져야 합니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제사, 마음이 담기지 않은 제물 하나님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고 오히려 싫어하신다. 먼저 상한 심령,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찾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셋째로 성경의 속죄자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화를, 하나님의 분노를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좋은 세상, 그리고 그의 백성을 더럽게 하는 멸망케 하는 죄를 사라지게 하는 방편으로 세워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정말로 살 만한 곳으로 지키기 위해서 세워주신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화목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바친 제물이 아니다. 본문이 가리키듯이 하나님이 세상에 주신 거예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할 때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상에 주신 선물이다.
다섯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강요나 운명적인 선택으로 화목 제물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율법에서는 죄인들이 제물을 가지고 오는데, 제물로 선택된 동물들은 강제로 끌려오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지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에서도 다 그렇습니다. 그중에서 사람을 끌고 오는 경우도 많이 있었죠. 유럽에서도 많았죠.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 제물 되심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아들을 보내신 것이고, 아들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순종한 것입니다. 순종에는 강요나 운명이나 우연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그중에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순종이 아니죠. 여섯째로 화목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하신 분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려면 구약의 말씀하신 이 대숙 제일과 성막의 구조에 대해서 좀 설명을 하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성막 타버나클 텐트 이 성막은 성서하고 지성서로 되어 있어요. 큰 부분이 성서이고 작은 부분 더 깊은 곳이 지성서입니다. 이 지성서에는 대제사장이 1년에 단 한 번만 들어갑니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것인데 그 날이 7월 10일 대속죄일이라고 하는 거죠. 지금도 유대인들이 지키고 있는 냠 키프르라고도 하는 날이죠. 이 지성서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법궤가 있어요. 그리고 그 법궤를 덮고 있는 뚜껑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 덮개를 속죄소라고 부르는 거예요. 카퍼레트 그 모양은 그림으로 보면 이렇게 돼 있어요. 속죄소는 순금으로 돼 있어요. 밑에는 나무로 되어 있고 금을 씌운 거지만 이 속죄소는 완전히 순금으로 되어 있고 두 그룹이 두 그룹의 형상이 서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곳 속죄소가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만나시고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는 곳이오. 대제사장이 이스라엘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염소의 피를 뿌리는 곳이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죄를 덮으시고 없이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로는 머시 시트라고 말을 해요. 자비의 자리라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이전의 죄를 보시지 않는 그 은혜를 베푸는 자리다 하는 것이죠. 어려운 말로 옛날 성경에서는 시은소라고도 했습니다.
속죄소가 바로 그런 곳이에요. 그렇다면 이 속죄소가 화목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요?
이걸 언어적으로 이미지로 설명을 해 볼 수 있는데 우리말 성경에는 재소 지금 제가 말한 이 속재소라고 하는 말이 딱 한 번 나옵니다. 히브리서 9장 5절이에요. 성막의 구조를 말할 때 속죄소를 한 번을 언급을 해요. 그런데 원어로 보면 두 번 나와요. 또 한 곳이 있는 거예요. 바로 오늘 본문이 되고 있는 로마서 3장 25절. 아까 우리가 함께 읽은 로마서 3장 25절 거기에 화목 제물이 속죄소와 원어로는 같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그 말을 속죄소로 번역을 하고 그리고 로마에서에서는 화목 제물로 번역하고 있다.
둘이 말은 다르지만 원어로 통하고 그리고 우리한테는 속 속죄라는 의미로 통해요. 한 곳은 속죄소, 다른 곳은 속죄 제물이다 하는 거죠. 그래서 하나는 속죄 방편, 다른 하나는 속죄 장소 그리고 속죄하시는 이는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이 주시고 그의 뜻에 순종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신 거예요.
누가요?
하나님 자신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이 속재소가 아니라 그것이 본을 따른 하늘의 속죄 속에서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해서 하신 것이고, 그중에 우리도 우리의 죄도 포함되어 있다.
끝으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현대의 일부 지역에서는 또 일부 사람들 가운데는 이 하나님의 진로에 대해서 듣는 거를 어려워하거나 싫어하거나 피하려 하는 어떤 감수성, 문화적 감수성이 있어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인데 왜 화를 내시냐 하는가 묻기도 하고, 학자들 중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달랜다고 하는 생각 자체가 기독교적이지 않고 이기적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빼고 성경의 율법과 복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죠. 그것을 빼면 성경의 전부를 빼가는 것이라고 이해할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의 진노, 그것의 원인이 되는 죄는 중요한 주제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생각을 해야 돼요. 어떤 분노도 모든 분노가 다 싫다. 화를 내는 것이 다 싫다고 해서 이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까지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에서 분노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불의하고 파괴적인 분노, 아주 사소한 것들에도 터져버리는 분노가 새롭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거는 사회적으로도 설명을 할 수 있어요. 하나님을 믿던 사람들이 많았던 세대, 그때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세대 어디에 더 화가 많을까요?
사람들 중에 오른쪽이 더 많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진노를 인정하던 그 시대보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를 싫어하는 그 시대에 인간의 속에 화가 분노가 사람들 중에 더 많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성경적인 이해를 잘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고 악을 행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는 것이 당연하죠. 죄가 악을 낳고 악이 죄를 낳고, 또 죄와 악이 세상을 더럽히고 세상을 살기 어려운 곳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라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사람을 하나님과 분리시키고 사람을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는 모든 것이에요. 하나님에게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도 사람과 사람을 분리하고 사람과 사람이 대적하게 하고 서로 싸우게 서로 원수가 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죄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 당연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신다고 해서 죄를 범한 사람도 미워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성경의 중요한 메시지예요. 성경을 부분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죄인도 미워하시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분자도도 성경의 전체 맥락에서 보면 그렇지 않아요. 모세의 율법에 주차 나와 있는 세상을 향하는 하나님의 가장 크신 뜻은 아무리 큰 죄를 범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모두 회개하고 구원을 받는 것이에요.
그것이 성경에서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인데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어떻게 거룩하신 분인데 죄를 미워하시면서 죄인을 사랑하셨을까요?
답은 예수 그리스도이도입니다. 우리가 찬양하신 찬양할 때 부른 그 존귀하시니 찬양받기에 합당하시니 그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화목 제물로 세우시니 누구요?
예수 그리스도 그는 나의 죄만이 아니고 또 우리의 죄만도 아니고 온 세상의 죄를 위하여 화목 제물 곧 속죄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고, 그 안에서 역사하신 성령을 기뻐하는 그를 기쁘게 따르는 저와 여러분 우리 교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