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역사와 전설 깃든 자연생태로…죽령 옛길
하루에 기차가 두 번만 선다는 소백산역(구 희방사역)에서 죽령 옛길로 들어서는 길이 시작된다. 길은 탐스럽게 익은 사과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과수원 사이로 이어진다. 사과밭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온갖 수목들로 뒤덮인 녹색 터널이 열린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죽령 옛길’에 들어서는 셈이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죽령 옛길은 오랜 기간 사람의 발길이 끊겼다. 그 덕분에 옛길 주변의 식생(植生)이 아주 다양하다.
소백산맥을 넘어가는 죽령(竹嶺). 소백산 제2 연화봉과 도솔봉 사이의 잘록한 곳에 자리한 해발 698m의 죽령은 고갯길 개척자와 그 시기가 역사서에 기록돼 있다. 예부터 죽령은 문경새재, 추풍령과 더불어 영남 3대 관문으로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을 잇는 요충지였다. ‘동국여지승람’에 ‘아달라왕 5년(158년) 죽죽(竹竹)이 죽령 길을 개척하고 지쳐서 순사(殉死)했다’고 씌어 있다. 죽죽을 기리고자 ‘죽령’이라 했단다.
영주시가 지난 1999년 복원한 죽령 옛길은 소백산역에서 죽령주막에 이르는 2.8㎞의 고갯길로 도보로 1시간 남짓 걸린다. 자연경관이 워낙 아름다워 이 길은 지난 2007년 우리나라 명승 제30호로 지정됐다. 과거 길에 오른 선비, 지역을 넘나든 보부상, 나그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을 옛길이 자연생태로로 거듭났다. 죽령 옛길은 건설교통부 지정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들어 있는 트레킹의 명소이기도 하다.
‘죽령 옛길’은 1800년에 이르는 역사와 전설이 발걸음마다 깃들어 있어 걷는 즐거움이 한층 두드러진다. 죽령은 삼국시대부터 신라와 고구려의 국경지역으로 격전장이기도 했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의 장수 온달이 죽령 이북의 잃은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출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죽령은 ‘죽죽 미끄러지는 길’이어서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이 낙방할까봐 기피했다는 전설도 있다.
죽령은 숲이 울창하고 마을과 떨어져 있어 나그네의 괴나리봇짐, 보부상들의 짐을 노리던 산적떼가 들끓던 곳이라 고갯길 초입에는 주막이 늘어서 사시사철 번잡했다고 한다. 복원된 옛길을 따라가다 보면 평평하게 다진 터에 담장 돌무더기가 남아있는 주막거리를 만나게 된다. 1900년대 초까지 장사를 한 주막으로 나그네들의 고단함을 달래며 허기를 채웠던 곳이다. 그래서 지금도 선인들의 숨결이 들리는 듯하다.
죽령 옛길이 끝나는 곳에 ‘竹嶺樓(죽령루)’가 있다. 영주시가 국도 5호 죽령 고갯마루에 5억원의 돈을 들여 목조 전통누각을 세웠다. 누각 전면 현판에는 ‘죽령루’, 후면 현판에는 영남의 옛이름인 교남(嶠南)을 딴 ‘嶠南第一關(교남제일관)’이라 새겨놓았다. 이 누각에 오르면 소백산 자락의 조망과 영주시 풍기읍의 전원풍경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죽령루 바로 맞은편의 죽령주막에선 막걸리 등으로 목을 축일 수 있다.
죽령 옛길은 역사와 문화가 깃든 자연생태로의 이상적인 트래킹 코스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길을 잘 정비했고, 곳곳에 다양한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역사 사실과 전설을 함께 곁들여 옛 숨결을 느끼게 한다. 죽령 옛길 인근에는 희방사, 희방폭포와 소수서원, 선비촌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