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년(철종 12) 김정호(金正浩)가 편찬․간행하고 1864년(고종 1)에 재간한 병풍식 전국 지도첩. 보물 제850호.
유형 지명/행정
시대 현대
성격 시
위치 전라북도 남동부
인구 8만 4856명(2015년 현재)
면적 752.20㎢
행정구역 1읍 15면 7행정동(23법정동) 334행정리(157법정리)
도·시·군청소재지 전라북도 남원시 시청로 60 , 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 518
꽃 철쭉
나무 배롱나무
새 제비
정의
전라북도 남동부에 위치한 시.
개관
동쪽은 경상남도 함양군, 서쪽은 순창군, 남쪽은 전라남도 구례군과 곡성군, 북쪽은 임실군·장수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7°11′∼127°40′, 북위 35°18′∼35°33′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752.20㎢이고 인구는 8만 4856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5개 면, 7개 행정동(23개 법정동), 334개 행정리(157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있다.
자연환경
동쪽·북동쪽·남동쪽이 소백산맥에 속하는 높이 1,000m 이상의 산지이고, 남서쪽 순창군과의 접경지대는 500∼700m의 산지로 되어 있다.
소백산맥의 주 능선인 지리산지에는 삼봉산(三峰山, 1,187m)·명선봉(明善峰, 1,586m)·반야봉(盤若峰, 1,734m)·노고단(老姑壇, 1,507m)·만복대(萬福臺, 1,433m)·고리봉(環峰, 1,304m)·세걸산(世傑山, 1,207m)·덕두산(德頭山, 1,150m) 등 높은 산들이 많다.
그 밖의 지역에는 이보다 낮은 천황산(天皇山, 910m)·고남산(高南山, 846m)·견두산(犬頭山, 775m)·황산(荒山, 697m)·문덕봉(門德峰, 590m)·노적봉(露積峰, 568m) 등의 산들이 있다. 산지 사이에는 분지가 발달해 있는데 산동면·이백면·주천면을 경계로 동쪽의 운봉분지와 서쪽의 오수분지·남원분지로 구분된다.
운봉읍·인월면·아영면 일대인 운봉분지는 고원상 분지로 해발고도 500m 내외이다. 북서부의 덕과면·보절면·사매면과 임실군의 남동부 일대인 오수분지와 중앙과 남서부의 대산면·주생면·금지면·송동면·이백면·주천면·수지면과 동(洞)지역 일대인 남원분지는 높이 100m 내외이다.
오수분지와 남원분지는 높이 250m 내외의 낮은 구릉으로 분리되어 있어 대체로 오수·남원분지로 구분한다. 이들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지는 편마암류로 이루어져 있으나 분지는 화강암류로 이루어져 있어서 암석의 차별침식에 의해 분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남원분지를 흐르는 요천(蓼川)은 장수군에서 발원해 북동부 산동면으로 흘러서 시의 중앙부를 지나 남서부의 금지면에서 섬진강으로 흘러든 뒤 전라남도 곡성군으로 흐르고, 오수분지를 흐르는 오수천의 소지류들은 임실군으로 흐르면서 연안에 소규모의 충적평야를 형성한다. 오수·남원분지를 흐르는 이들 하천은 섬진강의 지류들이다.
운봉읍에서 발원한 광천은 운봉분지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나면서 소규모의 충적지를 만들고, 지리산지에서 발원한 만수천과 산내면에서 합류해 경상남도에서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으로 흘러든다.
남부내륙형 기후구에 속하지만 지형이 분지·고원상분지·고산지대로 이루어져 있어 지역에 따라서 큰 차이를 보인다. 연평균기온 12℃, 1월 평균기온 -1.7℃, 8월 평균기온 26℃이며, 연강수량은 1,200㎜이다.
● 역사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유물·유적은 발견된 바 없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영역에 속했으며 마한 54개국 중 고랍국(古臘國)이 위치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지리산을 경계로 진한과 변한의 국경지역에 위치한 군사상의 요충지였다. 이와 관련해 마한이 달궁(達宮)지방에 별궁을 두고 정장군(鄭將軍)과 황장군(黃將軍)을 파견해 진한·변한의 침략을 막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역에 속했는데, 기원후 15년(온조왕 33) 고룡군(古龍郡)이라 했다가 196년(초고왕 31)에 대방군(帶方郡)으로 개칭했으나, 평안도지방에 한사군(漢四郡)의 대방군이 설치되자 220년(구수왕 7)에 남대방군(南帶方郡)으로 또 바꾸었다.
660년(무열왕 7)에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당하자, 이 지방에 대방도독부(帶方都督府)를 두고 당나라 장수 유인궤(劉仁軌)를 검교대방주자사(檢校帶方州刺使) 겸 도독으로 삼았다.
685년(신문왕 5) 전국에 5소경(五小京)을 설치할 때 그 중 하나인 남원경(南原京)이 설치되었으며, 757년(경덕왕 16) 대방을 남원이라 고쳤다. 828년(흥덕왕 3)에는 증각대사(證覺大師)가 실상사(實相寺)를 창건했고, 875년(헌강왕 1)에는 도선(道詵)이 선원사(禪院寺)를 창건하였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뒤 940년(태조 23) 남원부(南原府)로 개칭되었고, 현종 때 지방제도 정비를 거쳐 임실(任實)·순창(淳昌) 등 2개의 속군(屬郡)과 장계(長溪)·적성(赤城)·거령(居寧)·구고(九皐)·운봉(雲峰)·장수(長水)·구례(求禮) 등 7개의 속현(屬縣)을 관할하는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
명종 때에는 공주에서 망이(亡伊)가 난을 일으키자 남원·완주 등 호남 일대에서 이에 호응했는데, 그 때 윤위(尹威)는 남원지방의 반란군을 평정한 공으로 남원부백(南原府伯)이 되었으며, 그가 남원윤씨의 시조이다.
1310년(충선왕 2) 대방군으로 환원했다가 1360년(공민왕 9) 다시 남원부로 복구되었다. 1379년(우왕 5) 왜구가 경상도지방을 노략한 뒤 함양을 거쳐 운봉의 인월리에 주둔하였다. 그 때 삼도순찰사(三道巡察使)이던 이성계(李成桂)는 이지란(李之蘭)과 함께 운봉 황산에서 왜장 아지발도(阿只拔都)를 사살하는 등 황산대첩(荒山大捷)]을 거두었다.
1410년(태종 10) 대복사 부근에 남원향교가 창건되었다. 1413년(태종 13) 남원도호부로 되어 1군 18현을 관할하였다. 1418년 황희(黃喜)가 세자책봉에 이견이 있어 남원으로 유배되었는데, 그 때 광통루(廣通樓)를 세웠으며, 1444년(세종 26) 전라도관찰사였던 정인지에 의해서 광한루로 개칭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당시 남원도호부의 호수는 1,300호, 인구는 4,912명이었다. 세조 때 진관체제가 성립됨에 따라 남원에도 진관이 설치되었으며, 남원부사가 첨절제사를 겸임해 담양·순창 등을 거느렸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쳐들어오자 의병장 양대박(梁大樸)은 운암에서, 조경남(趙慶南)은 운봉의 팔량치(八良峙)에서 각각 왜군을 대파하였다. 또한 임진왜란중에 변사정(邊士貞)은 교룡산성의 수성장이 되어 산성을 크게 수축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는 남원성이 함락되었으며, 그 때 용성관·향교·만복사·광한루 등이 모두 불탔다.
1654년(효종 5) 남원에 전라좌영을 설치했으며, 1739년(영조 15) 찬규(攢揆)의 반란으로 인해 일신현(一新縣)으로 강등되었다가 1750년 다시 남원부로 복구되었다.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김개남(金開男)은 남원성을 점령하고 교룡산성을 거점으로 활약하다가 여원치(女院峙)에서 관군에게 패하였다. 1896년 지방관제 개편 때에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로 개편되었는데, 그 때 전라남도의 관찰부를 남원에 두었다. 그러나 이듬해 전라북도에 편입됨에 따라 관찰부는 광주로 옮겨졌다.
1906년에는 의병장 양한규(梁漢奎)가 헌병대를 습격하다가 전사하였다. 1914년 남원도호부가 폐지되었고 운봉군을 통합해 남원군이 되었다. 이 때 남원군은 19개 면을 관할했으며, 인구는 약 9만2000여 명에 이르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4월 3일 이석기(李奭器)의 영도하에 많은 면민들이 만세운동에 참가했으며, 그 뒤 5월까지 19차례의 시위가 전개되었다.
1931년 남원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이듬해 전주∼남원간의 철도가 개통되었다. 근대의 인물로는 이 지방 3·1운동 선구자인 이석기를 비롯해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이었던 백용성(白龍城)과 일제의 침략에 대해 자결로 항거한 이태현(李太鉉), 통감부를 습격했던 박석규(朴錫奎) 등이 있다.
1950년 6·25 때 7월 24일 공산군에게 점령당했다가 9월 28일 유엔군의 진주로 다시 수복되었다. 이 때 각급 관청과 학교·교회·주택 등이 불탔으며, 9·28 수복 후에는 패주하던 공산군이 지리산으로 들어가 인근 주민을 약탈하는 등 그 피해가 컸다. 그 때 애국청년·학생들이 경찰을 도와 공비 토벌에 참가하였다.
1956년 왕치면이 남원읍에 폐합되었으며, 1981년 남원읍이 시로 승격되었고 남원군과 분리되어 별도의 행정구역을 이루었다. 1985년 7월 대강면 수홍출장소를 폐지, 1990년 4월 송동면 양평리 일부가 금지면 상신리에 편입되었다. 1995년 도농통합에 따라 남원군과 남원시가 통합되어 새로운 남원시가 되었으며, 같은 해 3월에 운봉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98년 5월 1일에는 동면이 인월면으로 개칭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22일에는 쌍교동이 죽항동과 금교동으로, 용정동이 향교동으로 각각 편입되었다.
출처: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532979&cid=46618&categoryId=46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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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127°21′~ 127°26′, 북위 35°22′~ 35°28′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경남 함양군·하동군, 서쪽으로 임실군·순창군, 북쪽으로 장수군, 남쪽으로 전남 구례군·곡성군에 접한다.
북동부·동부·남동부가 소백산맥에 속하는 해발고도 1,000m 이상의 산지이고, 동면 인월리의 팔량치(八良峙:513m)를 통해 경남과의 교통이 이루어진다. 남동부는 지리산 주능선의 서부에 해당하여, 산내면은 경남·전남과의 경계를 이룬다.
노고단(老姑壇:1,507m)·만복대(萬福臺:1,433m) 등지에서 발원하는 달궁계곡과, 반야봉(盤若峰:1,732m)에서 발원하는 뱀사골계곡은 남강의 상류가 된다. 남서부의 순창군과의 접경지대는 해발고도 500~700m의 산지가 북동~남서 방향으로 분포하며 이곳에 섬진강의 본류가 흐른다.
기반암은 남동부의 지리산지구가 호상편마암이고 남서부가 편암·편마상화강암이며, 군의 중앙, 즉 임실군 오수면과 운봉읍, 시내 중심가를 잇는 삼각형 지역이 대보화강암지역으로 넓은 분지가 발달하였다. 여기에 해발고도 100~500m의 구릉지가 분포하고, 그 사이의 요천 주변에 대상(帶狀)의 충적평야가 발달했다.
분지는 덕과면·보절면·사매면·동면·운봉읍 등지에 넓게 분포하는데, 특히 운봉읍과 동면에서는 분지의 해발고도가 450~650m에 달하여 운봉고원이라 불린다.
연평균기온 12.2℃, 연강수량 1,313.7mm, 1월 평균기온 -1.6℃, 7월 평균기온 25℃ (평년값 기준)로 남부내륙형 기후에 속하나 지형상 지역별로 큰 차이를 나타내, 분지상고원인 운봉읍·동면 등은 눈이 많고 여름에도 서늘한 고랭지기후를 나타낸다. 주천면·산내면 등 지리산 지구의 해발고도 1,000m 이상 지역은 11월 중순경부터 눈이 내리고 다음해 4월까지 눈이 쌓여 있는 아한대성 기후를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