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poetry)”
22기 구자현
나는 아픕니다.
몸도 마음도
이제 아름다울 수 없는
나를 보고 웁니다.
세월이 흘러도
사랑이란 마음은
끝나지 않았음을
나를 보고 웁니다.
그대가 가버린 그곳을
내가 이제 걸어갑니다.
그대의 아름다운 그길을
나도 이제 걸어갑니다.
하염없이 그대가
보고싶어 보고싶어
울고 웃는 내모습에
이제 지쳐갑니다.
그대를 향한 내 그리움이
그대에게로 걸어갈 수 있다면
무엇으로도 그를 대신할 수 없기에
나 이제 그대에게 돌아갑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조적인 일상의 아름다움이 영상으로 비춰져서 내가 사는 동네처럼 여겨졌다. 금방 밖으로 나가면 욱이 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 거 같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난 할머니가 그립다. 너무 보고싶다. 거친 세월을 그렇게 살아야했던 나의 할머니.. 늘 나를 보듬어 주시고, 늘 내곁을 지키셨던 그분. 그런데 나는 이유없이 그분을 미워했다.
욱이를 향한 할머니의 사랑.. 그러나 엄마를 대신할 수 없다라는 것..
죽은 희진이와 그 어머니를 바라보는 욱이 할머니의 심정이 다가왔다.
사랑하는 현실을 버리면서까지 모든 것이 아름답기를 바라는 심정..
그 고통의 현실을 싸안아가면서까지 버릴 수 없었던 그 숭고함..
내일은,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은 미래는 지금의 고통을 벗어버리고
아름답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아네스의 노래-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젠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 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나의 오랜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출처] 박기영 - 아네스의 노래(From.영화 '시')
첫댓글 욱이 할머니를 보면서 저는 저의 노년을 생각해보았어요. 시를 읽는 할머니, 시를 쓰는 할머니가 되고 싶습니다. ^^
정말 곱고, 멋지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그려지네요^^ 아름다운 노년,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그런 노년을 기대합니다!!
"욱이를 향한 할머니의 사랑.. 그러나 엄마를 대신할 수 없다"의 표현에 공감합니다. 저도 어릴 땐 쭈글쭈글한 할머니가 싫었는데. 아이를 낳아보니 할머니의 쭈글쭈글함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 아름다운 서평 글 감사합니다.
자현누님의 색깔과 감성이 그대로 묻어나는 영화평이네요. 영화의 장면들도 떠오르고 주인공과 동화된 그리움과 쓸쓸함이 잘 드러난 글이었습니다. 꼭 육성으로 듣고 싶은 글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