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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사정(蓋棺事定)
관 뚜껑을 덮고 일을 정한다는 뜻으로, 사람은 죽고 난 뒤에라야 올바르고 정당한 평가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蓋 : 덮을 개(艹/10)
棺 : 널 관(木/8)
事 : 일 사(丨/7)
定 : 정할 정(宀/5)
(유의어)
개관사시정(蓋棺事始定)
출전 : 두보(杜甫)의 군불견(君不見)
원래 관의 뚜껑을 덮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오늘의 충신이 내일은 역적이 되고, 이제까지 걸식하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벼락부자가 되는 수도 있다. 따라서 사람의운명이란 죽은 후에라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두보(杜甫)가 쓰촨성(四川省) 동쪽 쿠이저우(夔州)의 깊은 산골로 낙배해 있을 때 친구의 아들인 소혜(蘇徯)가 유배되어 그곳에 와서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두보가 보다 못하여 지어 보낸 군불견(君不見)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사람이 일생을 살고 저 세상으로 갈 때 생전의 한 일이 평가받기를 원한다. 나쁜 일을 많이 한 사람이라도 행적이 덮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다.
유취만년(遺臭萬年)을 말할 때 한 순간의 잘못으로 좋은 이름 유방백세(流芳百世)가 냄새나게 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것도 그 사람의 사후라야 가능하다는 말이 이 성어다.
시체를 관에 넣고 뚜껑을 덮은 후(蓋棺)에야 일을 결정할 수 있다(事定)는 뜻으로, 사람이 죽은 후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됨을 이르는 말이다.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시구에서 나온 이 말은 인사개관정(人事蓋棺定)으로도 쓰인다.
두보가 사천성(四川省)의 동쪽 기주(夔州)라는 곳에서 청빈한 삶을 살고 있을 때다. 마침 그곳엔 친구의 아들 소혜(蘇徯)가 실의에 찬 날을 보내고 있었다.
두보는 한 편의 시를 지어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 해도 언젠가는 쓰일 날이 올 것이라는 뜻을 담아 소혜를 격려했다.
군불견 간소혜(君不見 簡蘇徯)란 시의 해당 부분을 보자.
君不見道邊廢棄池(군불견도변폐기지)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길가에 버려져 있는 연못을,
君不見前者摧折桐(군불견전자최절동)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앞서 꺾여 넘어진 오동나무를,
百年死樹中琴瑟(백년사수중금슬)
백 년 뒤 죽은 나무가 거문고로 쓰이게 되고,
一斛舊水藏蛟龍(일곡구수장교룡)
한 섬의 오래된 물은 교룡을 숨기기도 한다.
丈夫蓋棺事始定(장부개관사시정)
장부는 관 뚜껑을 덮어야 비로소 일이 결정된다.
여기에 힘입어 친구의 아들은 심기일전, 호남 땅에서 세객(說客)이 되었다고 한다.
개관사정(蓋棺事定)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흠… 글쎄요, 돈버는 일? 밥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을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중에서)
두보(杜甫)는 군불견간소혜(君不見簡蘇徯)에서 ‘나무는 백 년을 살고 죽어야 그 나무로 거문고가 만들어지며, 사람은 관 뚜껑을 덮어봐야 그 사람을 말할 수 있다(百年死樹中琴瑟 丈夫蓋棺事始定)’고 했다.
여기서 유래된 고사성어인 개관사정(蓋棺事定)은 ‘관의 뚜껑을 덮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관(棺) 뚜껑을 덮고 나서야 그 사람을 올바르고 정당(正當)하게 평가(評價)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의 참 모습을 보려면 그의 말년의 행보를 보라는 깊은 뜻도 있다.
독일 속담에는,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다 좋다(Ende gut, Alles gut)’라는 격언(格言)이 있다. 이는 셰익스피어가 번안해서 쓴 희곡의 제목이기도 하다.
‘일생(人生)’에 있어서 초지일관 상도(常道)의 험난함을 선인(先人)들도 숙지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인간이 속세에 태어나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이치 속에서 제대로 그 스스로의 자각된 모습을 보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리고 보는 이들마다 오만가지를 생각하는 각자의 시선에서 본 세상의 그 진리는 깊고 넓다.
시장만큼 사람들의 치열함을 볼 수 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시장에 가서 상인들의 모습을 보면 삶(生)의 현장에서 그들이 세상을 보는 생각의 깊이는 존엄하게 느껴진다.
무릇 시장이란 팔 물건이 있으면 사람이 몰리고 그 물건이 다 팔리면 사람들이 떠나가서 파장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시장의 이치는 세상만사의 진리일 것이다.
인생(人生)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길이며, 그 길은 늘 거친 것이다. 굽어보이는 길이 많은 것이다. 사마천이 말하길, 모든 곧은 길은 굽어 보이는 법이라 했다.
길(道)을 넓히는 것은 사람의 능력이지 길(道)이 사람을 넓힐 수 없다(人能弘道 非道弘人)고 했다.
길을 넓히는 것은 하늘의 도움(天), 시(時), 공간의 이치(地), 이타심(利他心)의 진정성(人)이 없으면 실로 이루어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진실은 늘 가까운 곳에 있지만 찾기가 어렵다.
청년시대의 두보(杜甫)는, ‘망악(望岳)’이란 시에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이렇게 담았다.
태산을 바라보며(望岳)
岱宗夫何如, 齊魯靑未了.
태산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제나라 노나라까지 푸르름이 끝이 없네.
造化鍾神秀, 陰陽割昏曉.
조물주가 신비로운 것들만 모아 놓았으니, 산의 앞과 뒤로 밤과 낮이 갈렸구나.
盪胸生層雲, 決眥入歸鳥.
피어나는 뭉게구름은 가슴을 후련하게 하고, 눈을 크게 부릅뜨니 돌아가는 새도 보이네.
會當凌絶頂, 一覽衆山小.
내 반드시 태산 정상에 올라가서, 주위의 작은 산들을 굽어보리라.
산(山)을 세찬 바람 속에서도 올라가는 것은 정상에 올라서기 위함이지만, 산 정상에서 아래를 바라는 보는 것은 정상에서 그 아래를 관망함으로 세상의 작음을 느끼기 위함일 것이다. 작음은 늘 위태함을 경계하면서 지혜의 샘물로서 겸손한 마음자세를 가지게 한다.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간다는 것, 자기 분수에 만족하여 다른 데 마음을 두지 않음으로, 위태함을 늘 경계하는 마음으로 산다. 안빈낙도(安貧樂道), 안분지족(安分知足)으로 살아가는 것은 선인들의 지혜였다.
늘 한결같은 평상심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사를 살아가는 그 도덕이자 사람의 지혜이다. 이렇게 연일 폭염이 계속되지만 이제 곧 가을은 오는 것이고 또 가을이 저물어 세찬 겨울을 맞이함은 매화가 꽃 피는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렇게 기다림은 또 다른 하나의 희망이다.
자연은 늘 이렇게 윤회하면서, ‘기다림’의 순리를 간직하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흥(興)한다고 하더라도, 세월이 흐르고 병들고 병이 들면 죽는 것이다. 세상에서 그 영원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연같이도 보이지만 세상은 우연과 같은 필연의 운명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욕망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불행들이 이어지고 있는가를 최근 많이 보고 있다. 성취가 불확실한 행복을 찾아 방황하기 보다는 내 스스로가 행복한 것을 찾아가는 지혜야말로 필요한 것이다.
걱정을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주 작은 것이다. 걱정보단 지혜로운 삶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 즐거운 일이다. 바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개관사정(蓋棺事定) 후에 비친 모습은
한 해의 끝자락에 어렵게 전개되는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 살기도 어려운 주인인 국민들이 머슴들을 잘못 둬 나라가 어렵게 된 상황에, 상서(尙書)에 민유방본(民惟邦本)이라고 '오직 백성이 나라의 근본'임을 모르고 서로 자기들의 당리당략(黨利黨略)에 따라 이 어려움을 풀어가려 하니 학창 시절 '빈대를 잡기위해 초가삼간을 태울 수 없다' 시던 원로 정치인의 말씀과 민한상국(民寒傷國)이라고 '백성이 차가워지면 나라가 상 한다'는 말이 떠오르며 대화와 타협으로 나라의 기틀을 바로 세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회남자(淮南子)에 생기사귀(生寄死歸)라고,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 있음은 일시의 기류(寄留)와 같고, 죽음은 본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인생은 뜬 구름과 같고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 같은 존재인데, 백년도 못 살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삶을 어떻게 살다 갈 것인가?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꼭 필요한 사람이고, 둘째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셋째는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은 그래도 사회에나 그가 소속이 되어 있는 조직에 피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못된 짓을 해서 남의 가슴에 못질을 하는 사람은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남에게 도움을 주거나 살신성인(殺身成仁)으로 베푸는 삶을 사는 사람은 꼭 있어야 할 사람들이다.
五代史에는 표사유피 인사유명(豹死留皮 人死留名),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고 흔히들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이라고 했는데 어떤 모습을 남기려하는지 생각해 보자.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짐이 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들어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나 선출직 정치인들이 대학(大學)에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는 말을 기억하고 바르게 실천에 옮겼으면 오늘과 같은 나라 형편이 되지 않았다. 문제를 풀어 가는데 마음에 새기고 실천에 옮기기를 바란다.
개관사정(蓋棺事定)이라고, 한 사람의 평가나 공과(功過)는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 관 뚜껑이 닫힌 뒤에야 판가름 난다고 하지 않는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혼자서 울고 태어났지만, 이 세상을 하직하고 관 뚜껑이 닫힐 때에는 만 사람이 울어주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 생각난다.
테레사 수녀나 슈바이처와 같이 남에게 베풀지는 못할망정 남의 가슴에 못질을 하는 사람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향기(香氣) 있는 이름을 남기지는 못할망정 바른 모습으로 행정이나 정치를 하고 바른 모습으로 살아서 역사에 부끄러운 모습을 남겨서는 안 된다. 마지막 떠난 자리가 아름답게 보이도록 노력하는 삶이길 바란다.
개관사정蓋棺事定)
관 뚜껑을 덮은 뒤에야 평가한다
시인 조지훈의 ‘지조론’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가 지조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말은 다음의 한 구절이다. ‘기녀(妓女)라도 늘그막에 남편을 좇으면 한평생 분 냄새가 거리낌이 없을 것이요. 정부(貞婦)라도 머리털 센 다음에 정조를 잃고 보면 반생(半生)의 깨끗한 고절(苦節)이 아랑곳없으리라. 속담에 말하기를, 사람을 보려면 다만 그 후반(後半)을 보라.’ 하였으니 참으로 명언이다,”
사람은 죽고 난 뒤가 중요하다. 바로 개관사정(蓋棺事定), 죽은 뒤 관 뚜껑을 덮고 일을 정하게 된다. 개관논정(蓋棺論定)이라고도 한다. 개관사정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말로도 쓰인다.
오랜 유랑 끝에 쓰촨(四川)성의 어느 오지에 정착한 두보는 그곳으로 유배된 친구의 아들 소혜에게 군불견간소혜(君不見簡蘇徯)라는 시를 보냈다.
君不見道邊廢棄池
그대 보지 못했나 길가에 버려진 연못을
君不見前者摧折桐
그대 보지 못했나 그대 앞에 쓰러진 오동을
百年死樹中琴瑟
오동은 죽은 등걸로도 거문고를 만들고
一斛舊水藏蛟龍
한 섬의 오래된 물에 교룡이 숨어 있다네
丈夫蓋棺事始定
사나이 죽어 관 뚜껑을 덮고 나서 성패를 말할 수 있나니
君今幸未成老翁
그대 다행히 아직 늙지 않았거늘
何恨惟悴在山中
어찌 산 속에서 불우함을 탓하는고
深山窮谷不可處
심산궁곡은 살 곳이 못 되리니
霹靂魍魎兼狂風
벼락과 도깨비에 광풍까지 겹쳤음에랴.
용기를 잃지 말고 노력하라는 충고였다. 그러나 관 뚜껑을 닫고 난 뒤에도 살아서 저지른 일로 인해 부관참시(剖棺斬屍; 관을 깨뜨려 시체를 베는 것)의 추형(推刑)을 당한 일도 있었으니 관 뚜껑을 닫은 뒤에도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애국지사들 중에도 스스로 만절(晩節)을 훼손해 길이 오명을 남긴 경우가 있으니 안타깝다.
위의 시는 두보가 친구의 아들 소계에게 보낸 편지 형식의 시다. 세상을 등지고 산 속에서 실의의 나날을 보내지 말고, 속히 나오라고 권하는 내용이다.
원하는 바가 잘 풀리지 않는다고 실망하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쉽게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관 속에 들어가는, 죽는 그 순간까지 희망을 지니고 살라는 당부다. 삶의 고귀함을 잘 묘사하고 있다.
물론 인간에게는 능력의 한계가 있다. 하지만 사람마다 부여받은 재능이 달라서 누구나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소질을 계발하기 나름이다. 그런데 스스로 좌절해선 안 된다.
논어에 “힘이 부족한 이는 중도에 포기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대는 지금 미리 선을 긋고 있다(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고 공자가 제자를 일러 말하는 대목이 있다. 해보지도 않고 자신이 스스로 한계를 정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그렇다. 무슨 일이건 한 번 일을 벌였으면 진득하게 참고 추진하다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부와 명예도 얻을 수 있다. 고통이 따르기도 한다. 더 잘 되는 단련의 기회라고 받아들이면 좋을 것이다.
맹자에 “하늘이 큰일을 맡길 땐 몸과 마음에 시련을 주시는 법, 성질 참고 고뇌하며 기품을 굳게 하여, 우환 속에 든다 해도 되레 근면 공경하네(天任黎民勞骨筋 忍性苦心堅氣稟 居憂處患却恭勤)”라고 한 바를 마음에 새길 일이다.
장기불황에다 세상이 각박하다 보니 투신자살 등 쉽게 삶을 포기하는 이들이 적잖다. 인생의 귀한 가치를 깨닫고 삶에 충실해야겠다. 관 속에 들어 갈 때까지 기회는 있잖은가.
개관사정(蓋棺事定)과 두보(杜甫)
배우 겸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는 친구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내 인생의 목표는 사후(死後)에도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존립과 위상을 보장받는 것이라네.' 그는 젊은 시절 일찌감치 자신의 연기론을 발견했다. 그는 패턴화된 연기 테크닉을 거부했다. 배역에 깊이 몰입할 것을 배우에게 요구했다. 오늘날 '메소드(method) 연기론'의 원조다.
개관사정(蓋棺事定)에서, '개관(蓋棺)'은 '관 뚜껑을 덮다'라는 뜻이다. '사정(事定)'은 '어떤 일이 결정되다'라는 뜻이다. 이 둘이 결합되어 '사후에야 비로소 한 인물의 평가가 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본래 두보(杜甫) 시의 한 구절에서 유래했다. '장부개관사시정(丈夫蓋棺事始定)', 이 7자가 '개관사정(蓋棺事定)'으로 압축됐다. 오지로 유배당해 낙담한 젊은 지인 소혜에게 두보가 위로를 담아 건넨 시의 일부다. 대략 '관 뚜껑 덮기 전까진 아무도 인생 전체를 평할 수 없다'는 의미다.
만약 젊은 날이 '총(聰)'이라면, 노년기는 '혜(慧)'다. 한창 나이인 소혜에게 총기가 없어 두보가 위로를 건넨 것은 아니었다. 소혜에게 그가 전수한 것은 '인생은 길고 기회는 여러 길로 다시 찾아온다'는 지극히 보편적인 지혜였다. 하지만 이 개관사정(蓋棺事定)을 자신에게 건넨 위로로 볼 여지도 없지 않다. 안정된 생계를 꾸리지 못한 채 피난민으로 여러 지방을 전전하며 몸과 마음이 고달프던 무렵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젊은 두보는 관직에 뜻을 둔 패기만만한 지식인이었다. 두보는 중산층 관료 집안에서 태어났다. 두보의 조부와 부친 모두 지방 정부에서 벼슬을 했다. 병약한 두보는 유년기에 모친과 사별했다. 이후 고모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낙양(洛陽)과 인근 도시에서 성장했다.
두보는 문장과 시에 일찍부터 재능을 드러냈다. 당나라는 과거에서 시작(詩作) 능력을 중시했다. 관료 선발 과정에 부패가 없지 않았지만, 시라면 누구에도 뒤지지 않던 그가 중앙 정부 관료의 꿈을 끝까지 접지 못한 이유다.
755년 중국 대륙 전체에 깊은 흔적을 남긴 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의 난이 발생한다. 두보의 나이 43세 때의 일이었다. 오랜 구직 활동 끝에 한직이지만 중앙 관료 생활을 막 시작한 무렵이었다. 만약 이 갑작스러운 전란(戰亂)이 아니었다면 두보도 수도 장안에서 차츰 승진하며 평탄한 관료의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난세를 만나 그의 관료 꿈은 꺾였지만, 재능에 노력을 더해 율시(律詩)와 절구(絶句) 분야에서 전무후무한 최고 경지에 도달했다. 중국어에서 성조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율시와 절구에서 특히 '각운(脚韻)'은 쉽지 않다. 지식인에게도 꽤 난이도가 높은 글쓰기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에서 사람들은 두보를 시성(詩聖)으로까지 존칭하며, 그의 시를 꾸준히 애송(愛誦)한다.
무엇보다 두보의 시는 분량에서 독자를 압도한다. 현재 약 1500수의 시가 전해지고 있다. 매주 1편을 30년 넘게 창작해야 가능한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참고로, 한글 창제 이후 번역된 '두시언해(杜詩諺解)' 분량도 무려 25권 17책에 달한다.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가 정식 제목이다. 우리 옛말 연구의 귀중한 문헌 가운데 하나다.
두보의 시풍(詩風)은 휴머니즘과 서정적 색채가 강하다. '삼리(三吏)'와 '삼별(三別)'처럼 사실주의로 분류되는 작품이 많다.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나라가 전란에 휩싸였지만, 산천은 여전하구나)' 이렇게 시작되는 '춘망(春望)'처럼 유교 지식인의 입장에서 우국충정을 노래한 시도 있다.
두보는 58세에 거처를 겸하던 작은 배에서 세상을 떴다. 늘 정착하는 삶을 동경했으나, 전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전성기를 보내야만 했던 한 지식인의 애환이 그의 작품에 물씬 묻어난다.
찰랑이는 물결의 흐름 위에서 눈을 감는 순간, 충만했던 시인의 삶으로 회고(回顧)하며 두보는 큰 후회가 없었으리라. 일가(一家)를 이루었고 난세(亂世)지만 기록도 보존했다. 천 년 후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쉴 것을 두보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개관사정(蓋棺事定)'은 긴장이다.
▶️ 蓋(덮을 개, 어찌 합)는 형성문자로 盖(개)는 통자(通字), 盖(개)는 간자(簡字), 乢(개), 葢(개)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덮다의 뜻을 나타내는 글자 盍(합; 그릇에 뚜껑을 덮는다는 뜻, 개)로 이루어졌다. 풀로 덮어 씌우다의 뜻이, 전(轉)하여 덮개의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蓋(개)는 (1)의장(儀仗)의 하나. 양산 모양으로 되었으며 사(紗)로 꾸며졌음. 빛깔에 따라서 청개(靑蓋), 홍개(紅蓋), 황개(黃蓋), 흑개(黑蓋) 등이 있음 (2)번뇌(煩惱)를 달리 이르는 말. 곧 번뇌(煩惱)는 수행(修行)하는 이의 착한 마음을 내지 못하도록 한다는 뜻에서 이름 (3)본디 인도(印度)에서, 비나 햇볕을 가리기 위하여 양산이나 우산처럼 쓰던 것. 행도(行道) 때에 도사(導師) 등에게 받쳐 주는 것. 나뭇잎, 나무 껍질, 대 따위로 만들었음. 산개(傘蓋), 입개(笠蓋) (4)후에 (3)의 뜻이 변하여 천장에서 불상(佛像)이나 예반(禮盤) 따위를 덮는 나무나 쇠붙이로 만든 불구(佛具). 보개(寶蓋). 대산(大傘). 주산(朱傘). 천개(天蓋). 현개(縣蓋) 등의 뜻으로 ①덮다 ②덮어 씌우다 ③숭상(崇尙)하다 ④뛰어나다 ⑤해(害)치다 ⑥뚜껑 ⑦덮개 ⑧하늘 ⑨상천(上天) ⑩일산(日傘: 자루가 굽은 부채의 일종으로 의장의 한 가지) ⑪모두 ⑫대략(大略) ⑬대개(大槪: 대부분), 아마도 ⑭그래서, 그리고 어찌 합의 뜻으로 ⓐ어찌(합) ⓑ문짝(합) ⓒ땅의 이름(합)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덮을 멱(冪), 덮을 폐(蔽)이다. 용례로는 열매가 완전히 익은 뒤에 터지는 열매를 개과(蓋果), 떨치는 힘이 세상을 뒤엎음을 개세(蓋世), 확실하지 못하나 그럴 것 같은 모양을 개연(蓋然), 전각의 바닥에 까는 벽돌을 개벽(蓋甓), 덮개를 덮음을 개복(蓋覆), 기와로 지붕을 이음을 개와(蓋瓦), 위를 지붕처럼 덮은 차를 개차(蓋車), 이엉으로 지붕을 이음을 개초(蓋草), 뚜껑 또는 덮개로 더러워진 하천에 덮개 구조물을 씌워 겉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는 일을 복개(覆蓋), 수레를 멈추고 깁양산을 기울이어 잠시 이야기함을 경개(傾蓋), 높은 벼슬아치가 타던 말 네 마리가 끌던 수레를 관개(冠蓋), 일의 큰 원칙으로 말하건대를 대개(大蓋), 수레 위에 받쳐 햇빛을 가리는 자루가 좀 굽은 덮개를 곡개(曲蓋), 조각을 한 네모진 덮개를 방개(方蓋), 집의 위쪽을 덮어 가리는 부분을 옥개(屋蓋), 관 뚜껑을 덮고 일을 정한다는 개관사정(蓋棺事定), 기상이나 위력이 세상을 뒤엎을 만큼 큰 영웅을 개세영웅(蓋世英雄), 세상을 마음대로 다스릴 만한 뛰어난 재기를 개세지재(蓋世之才), 세상을 뒤덮을 만한 뛰어난 풍채를 개세지풍(蓋世之風), 하늘과 땅을 덮어 가린다는 개천개지(蓋天蓋地) 등에 쓰인다.
▶️ 棺(널 관)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木(목;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官(관)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棺(관)은 시체(屍體)를 넣는 궤의 뜻으로 ①널(시체를 넣는 관이나 곽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②입관(入棺)하다(시신을 관 속에 넣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널 구(柩)이다. 용례로는 널을 만드는 재료를 관재(棺材), 죽은 신도를 장사지낼 때 관에 쓰는 문구를 관문(棺文), 관 위에 덮는 천을 관의(棺衣), 관 뚜껑의 겉면이나 관 위를 관상(棺上), 시체를 넣은 관을 얹어놓는 평상을 관대(棺臺), 관을 만들기 위해 켜 놓은 넓고 긴 널빤지를 관판(棺板), 주검을 묻기 위하여 관을 광중에 내림을 하관(下棺), 나무로 짠 관을 목관(木棺), 함처럼 생긴 작은 관을 함관(函棺), 무덤 속의 관이 밖으로 드러남을 노관(露棺), 시체가 들어 있는 관의 뚜껑을 떼어 냄을 개관(開棺), 집에서 출관하거나 또는 하관 할 때에 관을 들어서 움직임을 거관(擧棺), 시체를 담는 궤를 외관(外棺), 시체를 관 속에 넣음을 입관(入棺), 돌로 만든 관을 석관(石棺), 관의 뚜껑을 덮음을 개관(蓋棺), 시체를 관에 넣음을 납관(納棺), 큰 죄를 저지르고 죽은 사람에게 극형을 추가하여 관을 꺼내서 시신의 목을 베고 대역죄를 범한 사람의 집을 헐어버리고 못을 만드는 일을 이르는 말을 참관저택(斬棺瀦宅), 관 뚜껑을 덮고 일을 정한다는 뜻으로 사람은 죽고 난 뒤에라야 올바르고 정당한 평가를 할 수 있다는 말을 개관사정(蓋棺事定), 죽은 뒤에 큰 죄가 드러난 사람에게 극형을 추시하던 일을 부관참시(剖棺斬屍) 등에 쓰인다.
▶️ 事(일 사)는 ❶상형문자로 亊(사), 叓(사)는 고자(古字)이다. 事(사)는 깃발을 단 깃대를 손으로 세우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역사의 기록을 일삼아 간다는 데서 일을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事자는 ‘일’이나 ‘직업’, ‘사업’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이 등장했던 시기 使(부릴 사)자와 史(역사 사)자, 事(일 사)자, 吏(관리 리)자는 모두 같은 글자였다. 事자는 그중에서도 정부 관료인 ‘사관’을 뜻했다. 사관은 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주관했기 때문에 事자는 제를 지내고 점을 치는 주술 도구를 손에 쥔 모습으로 그려졌다. 후에 글자가 분화되면서 事자는 ‘일’이나 ‘직업’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정의하기로는 史자는 ‘일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吏자는 ‘사람을 다스리는 자’로, 事자는 ‘직책’으로 분화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事(사)는 일이나 볼일 따위를 이르는 말(~를, ~을 다음에 쓰이어)이나 또는 일의 뜻을 나타냄의 뜻으로 ①일 ②직업(職業) ③재능(才能) ④공업(工業), 사업(事業) ⑤관직(官職), 벼슬 ⑥국가(國家) 대사(大事) ⑦경치(景致), 흥치(興致) ⑧변고(變故), 사고(事故) ⑨벌(옷을 세는 단위) ⑩섬기다 ⑪부리다, 일을 시키다 ⑫일삼다, 종사하다 ⑬글을 배우다 ⑭힘쓰다, 노력하다 ⑮다스리다 ⑯시집가다, 출가하다 ⑰꽂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실제로 있었던 일을 사실(事實), 뜻밖에 일어난 사고를 사건(事件), 일이 되어 가는 형편을 사태(事態)평시에 있지 아니하는 뜻밖의 사건을 사고(事故), 일의 형편이나 까닭을 사정(事情), 모든 일과 물건의 총칭을 사물(事物), 일의 전례나 일의 실례를 사례(事例), 일정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운영되는 지속적인 활동이나 일을 사업(事業), 일의 항목 또는 사물을 나눈 조항을 사항(事項), 법률적으로 문제가 되어 있는 일의 안건을 사안(事案), 처음에는 시비 곡직을 가리지 못하여 그릇 되더라도 모든 일은 결국에 가서는 반드시 정리로 돌아간다는 사필귀정(事必歸正), 모든 일 또는 온갖 사건을 사사건건(事事件件), 사실에 근거가 없다는 사실무근(事實無根), 사태가 급하면 좋은 계책이 생김을 사급계생(事急計生), 일정한 주견이 없이 세력이 강한 나라 사람을 붙좇아 섬기면서 의지하려는 사상을 사대사상(事大思想), 자주성이 없어 세력이 강대한 자에게 붙어서 자기의 존립을 유지하는 경향을 사대주의(事大主義) 등에 쓰인다.
▶️ 定(정할 정/이마 정)은 ❶형성문자로 㝎(정)의 본자(本字), 顁(정)과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갓머리(宀; 집, 집 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정(正)의 고자(古字)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正(정; 바르다, 정돈하다)과 사당이나 집 안(宀)의 물건을 정돈하여 넣기 위해 자리를 정한다는 뜻이 합(合)하여 '정하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定자는 '정하다'나 '안정시키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定자는 宀(집 면)자와 正(바를 정)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正자는 성을 향해 진격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바르다'나 '올바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바르다'라는 뜻을 가진 正자에 宀자를 결합한 定자는 '집이 올바르다' 즉 '집이 편안하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집안이 무탈하여 매우 안정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은 正자의 의미가 확대되면서 '정하다'나 '바로잡다', '평정하다'와 같은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定(정)은 마음을 한 곳에 집중(集中)하여 움직이지 않는 안정(安定)된 상태(狀態). 선정(禪定)의 뜻으로 ①정(定)하다 ②정해지다 ③바로잡다 ④다스리다 ⑤평정하다 ⑥편안하다 ⑦안정시키다 ⑧머무르다 ⑨준비하다 ⑩자다 ⑪그치다 ⑫이마(앞머리) ⑬별의 이름 ⑭반드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정할 전(奠)이다. 용례로는 정해진 값을 정가(定價), 작정한 시각을 정각(定刻), 일정한 규례를 정례(定例), 규정에 의하며 미리 정해진 인원수를 정원(定員), 일정한 방식을 정식(定式), 일정한 수효나 수량을 정수(定數), 정한 기한이나 기간을 정기(定期), 일정한 시기나 시간을 정시(定時), 결정된 안건을 정안(定安), 일정한 직업이나 업무를 정업(定業), 어느 곳에 자리잡아 오래도록 사는 것을 정착(定着), 예정한 계산을 정산(定散), 죄를 판단하여 결정함을 정죄(定罪), 일정한 액수를 정액(定額), 일정한 분량을 정량(定量), 마지막으로 작정함을 결정(決定), 옳다고 믿고 정하는 일을 인정(認定), 이제부터 할 일에 대하여 미리 정하여 두는 것을 예정(豫定), 규칙으로 정하는 것을 규정(規定), 꽉 결단하여서 틀림없이 정함을 확정(確定), 추측하여 판정함을 추정(推定), 분명히 그렇게 가리켜 정하는 것을 지정(指定), 일이나 마음이 평안하게 정하여 짐을 안정(安定), 어떤 일을 잠깐 임시로 정함을 잠정(暫定), 골라 내어 정함을 선정(選定), 헤아려 정함을 측정(測定), 아침 저녁으로 부모의 이부자리를 보살펴 안부를 묻고 따뜻하고 서늘하게 한다는 뜻으로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도리를 이르는 말을 정성온청(定省溫淸),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는 뜻으로 인생의 무상함을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이별의 아쉬움을 일컫는 말을 회자정리(會者定離), 저녁에는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을 드린다는 뜻으로 자식이 아침저녁으로 부모의 안부를 물어서 살핌을 이르는 말을 혼정신성(昏定晨省), 바둑을 두는 데 포석할 자리를 결정하지 않고 둔다면 한 집도 이기기 어렵다는 뜻으로 사물을 명확한 방침이나 계획을 갖지 않고 대함을 일컫는 말을 거기부정(擧棋不定), 관 뚜껑을 덮고 일을 정한다는 뜻으로 사람은 죽고 난 뒤에라야 올바르고 정당한 평가를 할 수 있다는 말을 개관사정(蓋棺事定), 노인도 소년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뜻으로 사람의 목숨은 덧없어 정명을 알 수 없으므로 죽음에는 노소가 따로 없음을 이르는 말을 노소부정(老少不定), 풍채와 안색이 일정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금방 기뻐했다 금방 성냈다 함을 이르는 말을 채색부정(采色不定), 겨울은 따뜻하게 여름은 시원하게 밤에는 잠자리를 정하고 아침에는 안부를 살핀다는 뜻으로 부모를 섬기는 도리를 이르는 말을 온정정성(溫凊定省), 무엇이든지 하나의 규칙이나 척도에 맞추려고 하는 융통성 없는 태도를 이르는 말을 표자정규(杓子定規), 한 번 정하여져 바뀌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일정불역(一定不易), 죽일 죄인을 죽이지 아니하고 귀양을 보냄을 이르는 말을 감사정배(減死定配), 바람이 자고 파도가 잔잔해진다는 뜻으로 들떠서 어수선한 것이 가라앉음을 이르는 말을 풍정낭식(風定浪息), 짐을 실을 수 있는 정량을 일컫는 말을 적재정량(積載定量), 비위가 뒤집혀 가라앉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밉살스런 꼴을 보고 마음이 아니꼬움을 이르는 말을 비위난정(脾胃難定), 확실한 안심을 얻어서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안심결정(安心決定), 믿음을 얻어서 극락왕생이 틀림없음을 이르는 말을 왕생일정(往生一定), 한 번 정하여져 바뀌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일정불변(一定不變), 태도만 침착할 뿐 아니라 말도 안정케 하며 쓸데없는 말을 삼감을 일컫는 말을 언사안정(言辭安定)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