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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행운을 잡은 사람
마가복음 6:7-13
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8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9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10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11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12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13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제가 아는 분 중의 한 분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경제력도 갖춰졌고, 뛰어난 유전자로 하루에 잠을 서너 시간만 푹 자고 일어나면 전혀 피곤하지 않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면 Scanning 하는 것처럼 글의 내용이 이해가 되면서 기억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의 지능과 능력으로 명문 학교를 진학하는 것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고 큰 키에 준수한 외모도 갖추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부류의 사람을 가리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라며 내심 매우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았다면 이런 사람을 더는 부러워할 이유도 필요도 없어집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 안에 부름을 받은 저와 여러분은 영원한 행운을 거머쥐게 되는 사람으로 내 안에 영적 DNA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금수저는 가변성이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폭삭 사그라질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주어지는 절대적인 행운은 사라질 수 없을 뿐 아니라 더욱 빛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에게 권능을 주시며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본문의 7절에서 ‘열두 제자를 부르사’라고 하였는데 원문에서는 ‘제자’라는 단어가 없이 ‘열두’라는 단어만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열두 제자’라고 하는 이유는 12라는 하나님의 완성된 숫자 안에는 주님의 거룩한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제자임을 밝히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또한, 12이란 숫자를 넓은 의미로 해석하자며 예수 안에 구원받은 모든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세움을 받은 성도는 모두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지위를 얻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절대적 행운을 잡은 사람입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첫째로 부르심이 특별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주어진 권능이 놀라우면 셋째는 절대적인 믿음이 부여되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 절대적 행운을 잡은 이유는 예수님의 부르심이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막6:7 “열두 제자를 부르사”라고 하였습니다. 영어로는 ‘Calling’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막3:13에서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말씀에서 보이듯이 열두 제자의 부름은 예수께서 이미 명백히 계획하신 분명한 뜻이 담겨 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사람은 외모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과 형편을 아시고 또한,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부르실 때 한 치의 오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시고 처음과 나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분의 눈에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주님이 오라 하실 때 지체하지 않고 따를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제자들에게 그분의 사역을 위임하신 이유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차지하신 부활의 주님으로 택하신 자녀들과 함께 누리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내가 얻은 기쁨과 존귀를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하나님으로 세상에 오셨고 그 사랑을 십자가에서 분명하게 보이셨고, 부활의 영광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십자가는 어둠을 상징한다면 부활은 밝은 빛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하루는 저녁에서 시작하여 낮으로 이뤄집니다. 이처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하루의 모습을 보이며 시간의 연속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주어진 시간은 겉으로 볼 때는 답답하고 어둠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결국은 부활의 영광으로 빛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 안에 부르심을 받은 저와 여러분은 세상에서 어둠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으로 인하여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영광의 빛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안에 부르심이 특별하다는 것입니다.
롬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우리 각 사람을 부르시고 성령의 은사를 주십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천군 천사를 동원하여 지키시고 보살피시므로 영원한 영광을 얻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부름에서 의아하게 여기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의 배반을 모르시고 부르셨냐는 것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대인이 양을 기를 때 그 안에 염소를 풀어 넣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지역 어디에서건, 목자들은 들에서 양이나 염소를 칠 때는 늘 이 두 동물을 섞어서 기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양과 염소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지혜였습니다. 양은 모여서 다니는 특성이 있습니다. 염소는 홀로 다니는 습성이 있습니다.
광야의 하루는 낮의 뜨거운 햇살과 밤의 차가운 공기의 심한 일교차는 생존의 위협을 가합니다. 그런데 양은 모여서 자고, 모여서 이동하는 습성이 있기에 이를 버려두면 양들에게 위험한 일이 닥칠 수 있습니다. 이때 염소가 무리를 흩어놓음으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광야는 비가 많이 오지 않는 척박한 환경이기 때문에 양들이 뜯어 먹을 충분한 양의 풀이 없기 마련입니다. 염소는 다 자란 풀의 잎사귀만 살살 뜯어 먹은 데 비해 양은 어린잎과 다 자란 잎을 구분하지 않고 뜯어 먹습니다. 게다가 잎사귀만 살살 뜯어 먹는 염소와 달리 줄기째 다 뜯어먹습니다. 그런데 소수의 염소를 섞어 키우면 양들이 묵묵히 따라 한다고 합니다.
제자 가운데 갸롯 유다를 넣음으로 제자들은 깨어 주님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 바른 제자의 길이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부르심을 받은 성도에게 불편함을 주고 위기를 안길 수 있는 것이라도 하나님은 생명을 얻되 더 풍성하게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세심한 배려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순종하고 나올 때 내 영혼은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로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로 예비한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부르심에 특별함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절대적 행운을 잡은 이유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 주시는 권능이 놀랍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에게 주신 권능에 대하여 막 6:7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마귀의 다른 이름은 대적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사람에게 죄를 짓게 하여 넘어지게 하는 것이 마귀입니다. 그 마귀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기셨습니다.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기신 그 능력을 제자들에게 주셔서 마귀의 활동을 제어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귀신은 마귀의 세력 아래에서 활동하는 거짓의 영이며 악한 영입니다. 이 귀신을 제어하지 않으면 복음의 말씀을 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에게 마귀를 다스릴 수 있는 권능을 먼저 주신 것입니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죄짓게 한 것도 악한 영 마귀이며, 축복의 땅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도록 한 것도 마귀입니다. 인류의 모든 불행과 저주에는 항상 마귀의 간섭이 깃들여 있습니다. 이 악한 영을 사람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마귀를 이기고 복음으로 새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요일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에서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상대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처럼 마귀와의 전쟁에서 이기게 되면 빼앗겼던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하늘의 기업은 물론 모든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에서의 승리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마귀의 일을 이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증표로 성령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면 악한 것이 무엇이며 마귀의 일이 어떤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둘씩 둘씩 보내신’ 이유는 확증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나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한 다른 제자도 그렇게 느낄 때 이것이 마귀의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귀를 이기는 비결에 대하여 벧전 5:8-9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고 하였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는 말씀은 성령으로 새롭게 되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두렵게 하고 물어 삼킬 듯 다가온다고 하더라도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대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마귀의 영향력에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담대하게 맞서라는 것입니다. 사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마귀와 대적할 때 내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으로 떠올리게 되고 이 말씀에 따라 내가 놀라지 않고 담대할 때 나를 치러 왔던 악한 영은 한길로 들어왔으나 일곱 길로 쫓겨나가는 것을 경험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기는 것 만큼 행복할 수 있고 누림의 영역을 넓혀가는 축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절대적 행운을 잡은 이유는 믿음으로 보장을 받기 때문입니다.
‘월리엄 맥어스킬(William MacAskill)’의 「냉정한 이타주의자」라는 책에서 소득이 한국 돈으로 연 약3,100만원 돼도 전 세계 상위 5%퍼트에 든다고 합니다. 12억2000만에 해당하는 극빈층은 하루 수입이 1.5달러 미만이고 수입 대부분을 식비에 사용함에도 하루 섭취 열량이 평균 1,400㎈에 불과하답니다. 이것을 햄버거 하나의 반 정도 열량을 말합니다.
지구의 여러 곳 분포된 빈곤한 사람들은 늘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살아야 하고 제대로 된 물을 마실 수 없으며 따뜻한 의복과 잠자리를 얻지 못합니다. 그외 문화생활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풍요한 사회 속에 살기 때문에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해결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임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밥만 먹여주면 집안의 허드렛일을 하는 아이들을 둘 수 있었습니다. 우리 집도 언제나 한둘은 있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아서 믿음을 지니게 되면 영원히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보장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막6:8-9에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전도 여행을 떠날 때 때를 따라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모두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신 ‘복이 되리라’는 말씀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되어 그들이 머무는 집이 복되고 은혜가 넘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면 그들에게 주어진 주님의 복이 그 가정에 흐르게 되겠지만 이를 거부하면 아무런 복도 임하지 않을 뿐 아니라 빛에서 어둠으로 빠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막 6:11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유대인들의 생활 습관 중의 하나입니다. 즉, 경건한 유대인들이 이방 땅을 밟거나 여행하고 돌아올 때는 발과 옷에 묻은 먼지를 모두 떨어내는 관례가 있었었습니다. 이는 이방인을 부정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복음을 배척하는 지역은 마치 이방인 지역과 같이 멸망의 자리에 놓이게 됨을 알리고 또 복음을 거절한 자들이 그들 스스로에 대하여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복음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영원한 지옥에 떨어집니다. 그곳은 영원한 주림과 목마름이 있습니다. 헐벗음의 수치가 따르고 두려움과 공포가 잠시도 사라지지 않고 온 영혼을 괴롭히는 곳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에 이르게 되면 영원한 배부름의 만족이 있고 시원한 생명수로 즐거움이 넘쳐나는 곳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이 땅에서 오직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믿음으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누리고 풍부를 누리면 생명을 얻되 더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세계가 열리는 놀라운 광경을 이 땅에서도 누릴 수 있고 영원한 세계에서 더욱 아름답게 꽃피우게 될 것입니다.
내가 잘나고 똑똑해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을 절대적 행운을 잡은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부르심이 특별하고 주어진 권능이 놀랍습니다. 믿음의 영역은 끝을 부르게 펼쳐져 있습니다.
믿음을 소유한 여러분은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절대적 행운을 잡은 사람으로 날마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지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