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밭
농사를 짓기 전에는, 비가 내리면 감상에 빠졌지요.
감상은 얄팍하다 못해 수시로 변하는 배신입니다.
특히, 사랑이라는 감상은 수 많은 배신과 불륜과 사건 사고를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예술로 승화되어 위대한 문학작품이 되기도 했고.
저 자신도 사실 말로는 이렇게 떠들지만 감상에서 벗어날 수 없죠.
그러나, 식물이 자라나는 모습들은 감상이 아니라 감동입니다.
농사를 짓는다는 저의 표현도 엉터리입니다. 달랑 절임배추 장사하기위해 배추 몇 번 심어보고 농사라고 말하는 저 자신이 역겹습니다.
그러나 맛보기로 식물의 단단한 모습들에 대해서는 조금 할 말은 있습니다.
농사는, 그리고 비는, 현실입니다. 지독한 현실이지요.
당장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기에 감상 같은 것은 들어설 자리조차 없지요.
그래서, 내리는 비는 감상에서 훨씬 벗어나 이른바 감동입니다.
비가 반가운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거의 한 달간의 가믐에 식물들은 힘겨워하고 있었습니다.
내 밭은 그나마 논을 매워서 만든 장소이기에 수분이 많아 겨우 버티기는 했는데, 그래도 한낮에는 배추 이파리들이 축 늘어지고 있었습니다.
매마른 배추밭은 거의 망가지고 결구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적당한 시기에 적당히 내리는 비야말로 단비라고 할 수 있죠. 아마, 식물의 뿌리들은 힘껏 빨아들일 겁니다. 사랑에 굶주린 인간들이 그렇듯이.
그리고, 그 동안 못자란 키를 쑥쑥 키워낼 겁니다.
수확을 앞 둔 저의 배추가 영양분을 듬뿍 받아서 꽤 맛있어질 거 같습니다.
눈물겹도록 비가 반갑습니다.
소설책 달랑 한권 내놓고 먹고 사는데 바빠 제대로 글쓰기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설에 연연해하지 않기로 했지요.
문학이란, 현실의 발자욱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현실이 항상 먼저이고 그것이 찍혀나간 자리가 문학이란 겁니다.
그래서, 열심히 농사를 짓는 것이 문학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소설은 참으로 쓰고 싶군요.
그러나 소설은 쓰지 않으려고요. 거짓말도 너무 하고, 가공된 삶이 나를 건방지게 만듭니다.
물론 그 거짓말이 소설가의 특권이지만.
007 제임스 본드가 살인 면허를 가지고 있듯이, 소설가는 거짓말 면허를 가지고 있지요.
그냥 일기 비슷하게 매일 재미삼아 마구 쓰면서 살아갈렵니다.
그것이 저에게 어울리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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