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존 윌리암스가 연주하는 <로드리고,아랑후에즈 협주곡> 2악장
맨 밑에는 1악장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탄생지를 찾아서 ]
*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의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

나바세라다 영(嶺)은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 서북방으로 100km에 걸쳐 뻗은 과다라마 산맥의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습니다. 마드리드에서 60km, 601번 국도가 허덕허덕 기어올라와 이 고개를 넘고는 28km 떨어진 세고비아를 향해 산을 내려섭니다.
12월 중순부터 일대는 스키객들로 들끓습니다. 마드리드에서 가까워 나바세라다 영은 스페인에서 가장 붐비는 스키장입니다. 마드리드에서 고개 밑의 마을까지 기차가 스키객들을 실어다 줍니다. 이 나바세라다 역은 영화 <닥터 지바고>를 로케한 곳이라고 해서 더욱 유명한 곳입니다.
고개를 넘어서니 안개가 걷혀 있습니다. 산맥의 북쪽으로는 온통 송림의 대해입니다. 에레스마 천을 따라 난 아세베다 협곡의 소나무밭이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학 다리처럼 훤칠하게 키가 뻗은 소나무들입니다.
* 나바세라다 고개길

이 소나무들은 세계에서 가장 질이 좋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웬만한 소나무들은 10년이면 키가 다 자라는데 여기 것은 날씨 때문에 4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 소나무의 목재들은 주로 문짝이나 조선용(造船用)으로 쓰입니다.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제10장에 소나무밭 이야기가 나옵니다.
-"넌 소나무에 질리지도 않았니, 아가씨야?" "난 좋아해요." "그런 걸 무엇 때문에 좋아하지?" "그 향기와 발 밑에 밟히는 바늘 같은 감촉이 좋아요. 높은 가지를 스치는 바람과 가지끼리 부딪쳐 삐꺽이는 소리가 난 좋거든요."
소설에서 주인공 로버트 조던은 계곡에 걸린 교량을 폭파합니다. 이 다리가 혹시 실제로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데 스페인 내란 중에 폭파된 다리는 세고비아로 가는 도중에 라 칸티나라는 다리가 있는데 이것이 헤밍웨이가 점찍은 다리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 영화에서 다리 폭파 장면

나바세라다 영에서 소나무 밭 사이를 꼬불꼬불 약 40lm쯤 내려온 곳에 라 칸티나 교(일명 모스키토 교)가 걸려 있습니다. 1,300m 고지의 민가도 없는 산 속입니다. 다리 밑의 에레스마 천은 이제 막 시원(始源)이라 개울물로 흐릅니다. 길이 20m 가량의 다리는 낡은 돌다리입니다. 소나무 목재를 실은 트럭들이 이따금씩 지나다닙니다.
소설 속의 교량은 돌다리가 아니라 쇠다리입니다. 하지만 헤밍웨이가 상정했을 만한 다리는 부근에 이것밖에 없습니다. 그는 내란 때 종군하여 이 일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세고비아의 로마 수로교 옆에는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인 메손 데 칸디도라는 애저(돼지 새끼) 요리 전문집이 있고 이 집 주인 칸디도 씨는 단골로 찾아오는 헤밍웨이와 친했던 사이여서 그의 사인이 벽에 걸려 있습니다.
* 세고비아의 로마 수도교

* 수도교 바로 옆에 있는 애저(새끼돼지) 요리로 유명한 <메손 데 칸디도> 식당

이 칸디도 씨도 <누구를 ...>에 나오는 다리는 라 칸티나 교라고 서슴없이 단정합니다. 그러니까 헤밍웨이는 마드리드에서 세고비아의 칸디도의 집을 찾아가며 이 다리를 자주 건넜던 겁니다.
마드리드 대학의 페드로 모레노 교수에 의하면 소설 속의 토요일 하오부터 화요일까지는 1937년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실제로 세고비아 지역에서 있었던 공화군측의 공격과 장소 및 시간적으로 꼭 일치합니다.
이 때 의용군측의 월터 장군 부대가 세고비아를 향해 진격하여 라 그란하 마을까지 갔다가 제지당했습니다. 다만 게릴라에 의한 다리 폭파는 헤밍웨이의 허구입니다. 지리와 시간의 사실성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믿어 버린 소설의 독자들은 폭파된 다리를 보러 나바세라다 영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 스페인 내란 당시 특파원이었던 헤밍웨이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으로 샘 우드 감독이 1943년에 만든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주로 과다라마 산맥으로부터 서쪽으로 연결된 그레도스 산맥 일대에서 현지 촬영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 곳에는 지금도 철교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스페인 내란의 아픈 역사는 과다라마 산맥 서단(西端)의 바이에 델로스 카이도스(死者의 溪谷)에 높이 125m의 거대한 십자가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내란 때 죽은 4만 명의 유골이 안치된 이 곳에는 내란의 주동자인 프랑코 자신이 한복판에 묻혀 있습니다.
* 바이에 델로스 카이도스(사자(死者)의 계곡) 기념관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쓴 것은 스페인에서 미국 플로리다 주의 키웨스트로 돌아와서였습니다.
키웨스트는 미국 대륙의 최남단, 마이애미에서 180마일 길을 그레이하운드 버스가 5시간 걸려 닿습니다. 플로리다 주 육지 끝에서부터의 120마일은 한바다 가운데로 꽁치 주둥이처럼 길게 나 물 위로 차가 달립니다. 다리만도 42개를 건너야 합니다. 섬이지만 길이 있으니 섬이 아닌 셈입니다.
* 키웨스트로 가는 길고 긴 다리

* 키웨스트로 가는 지도

인구 5만의 어항인 키웨스트는 헤밍웨이뿐만 아니라 테네시 윌리엄스, 존 도스 파소스, 로버트 프로스트 등 미국의 문인들이 찾아와 머물던 휴양지입니다.
헤밍웨이의 집은 앞이 남국의 식물들로 가려 바깥에서는 건물 전체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헤밍웨이는 32세 때인 1931년 이 집을 사 들어와서 1939년까지 살았고 그가 죽을 때까지 첫째 부인이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가장 창작욕이 왕성하던 시기를 여기서 지내 그의 여러 명작들이 이 집에서 쓰여졌습니다.
* 키웨스트 헤밍웨이 기념관

그의 스페인 취미는 유별난 것이어서 샹들리에 등 많은 가구들이 스페인에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집 뒤쪽에 따로 붙은 건물 2층이 서재입니다. 책상과 소파, 그리고 방 한가운데의 원탁 테이블 위에 타이프라이터가 놓여 있습니다. 헤밍웨이는 새벽에 일어나 정오까지 집필을 하고는 하오에는 낚시질을 나갔습니다.
* 기념관 내부(헤밍웨이가 사용하던 가구들)

집 둘레로는 고양이들이 서성됩니다. 헤밍웨이가 50마리나 기르던 고양이의 후손들입니다. 헤밍웨이가 죽고 나자 어떤 부자가 이 집을 샀으나 한 개인의 집일 수 없다는 것을 얼른 깨닫고 내놓아 1964년부터 기념관이 되었습니다.
키웨스트의 늙은 어부들은 모두 헤밍웨이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가 단골로 다니던 술집 슬로피조우스에서 한 어부는 헤밍웨이가 매달린 선풍기 바람을 막기 위해 원고지에 문진(文鎭)을 얹어 놓고 이 술집의 한쪽 구석에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면서 그 때 자기가 다가가 무슨 소설이냐고 물으니 스페인 내란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였습니다.
* 키웨스트 시절, 헤밍웨이가 잡은 청새치들(부인과 자식들과 함께)

헤밍웨이는 시카고에서 10마일 가량 떨어진 오크파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오크파크에는 헤밍웨이가 살던 집이 세 군데 남아 있습니다. 그가 6세 때까지 살던 노스 오크파크 애버뉴 339번지의 생가에는 개인집이 되어 마당에 기념석이 놓여 있습니다.
* 선 벨리 케첨에 있는 헤밍웨이 기념비

부근에 옛날 집들이 많아 일대가 사적지(史積址)로 지정된 곳입니다. 헤밍웨이는 노스 그로브 161번지의 집을 잠시 거쳐 7세 때부터 21세 때까지 노스 캐닐워드 에버뉴 600번지의 집에 살았습니다. 커다란 저택입니다. 둘레의 녹지는 공원 같습니다.
헤밍웨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겨울 휴양지인 아이다호 주 선벨리의 케첨이라는 마을에서 자살해 죽었습니다. 이 마을에 있는 ‘선벨리 로지’라는 산장의 205호실은 그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일부를 쓴 곳입니다. 헤밍웨이는 이 곳의 쓸쓸한 시골 묘지에 묻혀 있습니다.
[ 어네스트 헤밍웨이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어네스트 헤밍웨이(1899~1961)는 하드 보일드 문체를 장식한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작가입니다. 1953년에 플리처상, 1954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1936년 스페인 내란 때 NANA 통신사의 특파원으로 종군했고, 이 때의 체험이 그의 작품 증 가장 인기있는 소설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낳았습니다.
스페인 내란에 공화군 파를 도와 의용군으로 참가한 미국인 로버트 조던은 세고비아 부근 산중에서 게릴라와 합세하여 적의 진로를 막기 위해 교량 파괴를 계획합니다. 3일의 낮과 밤을 동굴에서 지내는 동안 파시스트 군에 부모를 잃은 마리아라는 처녀와 사랑에 빠집니다.
정세가 변하여 교량의 폭파가 무의미한 줄 알면서도 조던은 에정대로 게획을 실행한 다음 중상을 입자 게릴라들과 함께 마리아를 달아나게 하고는 혼자 소나무 숲가에 남아 적을 향해 기관총을 겨눕니다.
* <로드리고,아랑후에즈 협주곡> 1악장
첫댓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는 중학교 2학년 때인가 영등포에있는 극장에서 보았는데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름대로 영보극장이 아닌가 해 보기도하고. 기티의 선율과 함께 잠시나마 옛 생각을 해봅니다.
LA최거사님! 오랫만입니다. 잘 지내시지요? 이 글을 올리면서 특히 옛날 생각이 많이 납디다.
위에서 소개한 세고비아 새끼돼지 요리집에서 식사가 끝난후 접시를 바닥에 던져서 깨던 장면
(이게 이곳 풍습이라나요), 가족들과 함께 멀고먼 키웨스트 다리를 건너 헤밍웨이 집을 방문했
던 기억 등등...이제는 추억을 먹고 사는 나이여서 더욱 그런가 봅니다.
하여튼 멋진 미국생활 지속바랍니다. 언젠가 미국 여행 다시할 기회가 되어 만날 수 있으면 좋
으련만...Good-Bye!!!
고선생님, 항시 글 잘 보고 있습니다.
나이들이 들어선지 용두열 회원들의 LA 발걸음이 뜸 하고
오히려 이쪽에서 서울 가는 친구들이 더 많은가 보네요.
세고비아는 못가더라도 키웨스트라도 가고 싶다는 마음이 요동칩니다.
지나시는 길에 LA 들려 주시면 언제든지 Wlecome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