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곡동 대모산 아버지 태종의
헌릉 밑에 있었다.
세종의 묘를 쓴후 왕실에 계속 불길
한 일이 발생하였다.
문종 즉위 2년만에 승하하고, 아들
단종을 수양대군이 죽이고, 동생 금
성과 안평도 죽였다. 신하들이 세종
의 묘를 잘 못 써서 그러니 이장 하자
는 상소가 계속되었다.
예종은 받아들여서 장소를 알이보라
고 지시하였다. 왕릉은 임금이 성묘하
러 행차했다가 하루 만에 다시 궁궐로
돌아올 수 있는 위치라야 한다. 도성
으로부터 100 리 안팍이다.
햇볕이 뜨거운 여름에 명당을 찾아다
니던 지관 안효례(安孝禮) 일행이 여
흥(현 여주) 지역의 북성산 근처를 지
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퍼
붓기 시작하였다. 지관 일행이 비를
피하고자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논밭
뿐이고 비를피할 마땅한 장소가 보이
지 않았다.
그때 한사람이 "저기 돌다리를건너가
면 피할 곳이 있을듯 하니, 어서 저리
로 갑시다." 하여 갔더니 거기에는 제
사음식을 준비하는 재실이 있었다.
그런데 비가 오는 중에도 재실 위쪽으
로 밝은 빛이 보이고, 재실 위에는 무
덤이 있고, 비가 오는데도 무덤에서는
이상한 광채가 발하고 있었다...**//
명당의 조건은 땅속 기운이 멈추어 생
기를 뭉치게하고 하늘의 기운인 천기
를 잘 받을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지관이 살펴보니 이보다 더 좋은곳을
찾을 수 없는 명당중의 명당이었다.
궁궐에 돌아가서 "전하, 여흥의 명당
자리는 천하제일 입니다. 그 자리에
왕릉을 조성한다면, 조선의 국운이 백
년은 더 이어질 것이며 왕실에도 기쁨
과 경사가 찾아올것입니다."...**😀
문제는 여흥은 한양에서 180리가 넘
어 100리 이내 원칙에 위배되었다.
그러나 남한강 뱃길로는 하루에 다녀
올 수 있는 100리 이니 문제가 없다고
하여 도성 100리 원칙에 맞추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었다. 바로 명당자
리에는 세조 때 우의정을 지낸 이 인손
(李仁孫)의 묘가 이미 조성되어 있었
던 것이다.
예종은 고민끝에 평양 관찰사로 있던
이인손의 장남 이 극배를 불러 설득했
다. 임금의 말을 듣던 이 극배는 아버
지의 유언이 생각나 깜짝 놀랐다.
이 인손(李仁孫)은 죽기전에 자신의
묏자리를 잡아놓고 다섯명의 자식들
에게 유언을 남겼던것이다....~~
"후일 가문이 번창하고 자손들이 잘
되더라도 내 묘소에는 재실이나 묘막
을 짓지마라. 묘소 앞 시냇물이 불어
나더라도 절대로 다리를 놓지마라.
묘 앞에서 솥단지를 걸고 음식을 하는
것도 안된다. 꼭 명심하라."
이 인손의 자손들은 유언을 지키겠다
고 약속 했지만 다섯 아들 모두 대과
에 급제하고 정승판서가 되었다.
그러자 이버지 묘소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버지에 대한 예의가 아닌것 같
기도 했다. 또한 아버지 묘소를 가기
위해 시냇물을 건널 때 마다 신발벗고
맨발로 건너는 것이 양반체통도 서지
않고 불편했다...~~
그래서 다리도 놓고 재실도 지었다.
하필 왕릉자리를 찾던 지관들이 돌다
리를 건너 재실로 왔던 것이다. 그러
고는 아버지의 묏자리가 왕릉 자리니
다른 곳으로 이장하라는 것이었다.
비록 임금이 부탁하는 말투로 이야기
를 하지만, 이극배는 동생 들과 의논
하여 이장하기로 했다.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기 위해 개장하
던 이극배와 동생들은깜짝 놀랐다.
거기엔 "필시 모년 모월 모시에 이 터
에 진짜 주인이나타날 것이니, 기쁘게
자리를 양보하라. 이 자리에서 연을
날려 연이 떨어지는 곳에다 묘를 옮겨
라." 는 조미가 나왔다...~~
이 인손의 묘는 연이 떨어진 북성산
기슭의 연주리로 이장하였다. 연주리
는 현재 신지 1리이다.
마침내 세종대왕의 묘를 열었더니 관
속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세종대왕의 묘는 예종 1년(1469) 현
재의 영릉인 여주로 이장하게 되었다.
세종대왕의 묘인 영릉이 여주의 명당
에 자리 잡은 뒤로 조선의 국운이 백
년은 더 연장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고한다...~~
*. 이인손(李仁孫)/조선 전기의 문신
. 생애/ 1395(태조4년)~1463(세조
9년), 대표관직/ 형조좌랑, 예조좌랑,
경상도관찰사, 우의정을 역임했다...
첫댓글 우리나라 풍수지리교과서의 표본이라는 영릉입니다
역사공부 잘했습니다
세종대왕의 유익한 역사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