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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시마즈의 도예교실은 주 2회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에 수업이 있었다.
개인전이 열렸던 다음주 월요일 미츠코는 도예교실을 다녀왔다. 코지는 귀가해서 곧장 부엌으로 달려갔다. 미츠코는 싱크대에서 저녁준비를 하고 있다.
“어땠어? 시마즈는 왔어?”
말을 걸자 미츠코는 돌아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왔어”
미츠코의 이야기로는 교실에 미츠코가 있는 걸 발견하고 시마즈는 친절하게 말을 걸어왔다고 한다. 미츠코가 만나서 반갑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자 호색한의 얼굴로 미소를 띠었다.
미츠코는 물론, 다니고 있는 학생도 오랜만에 나타난 대표강사를 칭송했다. 이 때 이미 시마즈에게는 미츠코에 대한 엉뚱한 생각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더군다나 잊어버려져 가고 있는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쾌감도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그때부터 시마즈는 매번 수업에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다.
미츠코도 빠지지 않고 수업을 받았다. 수업이 있었던 밤에는 시마즈의 상태를 아주 자세하게 보고했다. 오늘은 자신이 시마즈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든가, 또는 반대로 시마즈가 말을 걸어왔다는 등의 이야기를 한다. 시마즈와 미츠코의 대화내용은 하찮은 자기소개 정도에서 차츰 자신의 취미나 자주 가는 가게, 여행지에서의 추억거리 등, 개인적인 것으로 발전해 갔다. 그런 이야기로 시마즈와 미츠코의 거리가 확실히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었다.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가는 걸 미츠코는 기쁘게 이야기한다. 그런 미츠코를 보며 계획을 그만두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간 도로 들어가 버린다. 계획이 진행되면 될수록 기쁨과 망설임과 질투가 가슴속에서 교차됐다. 그러나, 평상 시 힘이 빠져 어두워져 있는 미츠코의 눈이 시마즈의 이야기를 할 때만은 생생하게 빛나고 있는 걸 보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츠코가 도예학원에 다니기 시작해서 1개월이 넘었을 즈음에 코지가 학원으로 갔다. 미츠코가 어떤 식으로 시마즈와 어울리고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시마즈의 도예학원은 도시 중심지에서 떨어진 곳에 있었다. 구 도로를 따라 한참 가다 보면 대나무로 둘러싸인 전통 민가 풍의 건물이 있다. 건물 입구에 시마즈 도예교실이라는 간판이 서 있다. 코지는 건물부지 밖에 차를 세웠다.
격자무늬 미닫이를 열자 안은 토방으로 되어 있었다. 발을 들여놓으니 흙 냄새가 났다.
천정에는 굵은 대들보가 있고, 토방 한 가운데에는 대들보와 같은 굵기의 굵은 기둥이 서 있다. 바닥 마루나 창문 판 등, 건물 전체가 검게 반짝이고 있다. 그 반짝임은 오랫동안 문질러 닦아서 만들어진 광택이었다. 건축물에는 문외한인 코지도 꽤나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철거예정이었던 민가를 옮겨놓은 것이리라.
토방의 안을 보니 객실이 있었다. 격자무늬의 칸막이와 책상이 놓여 있다. 옛날의 카운터를 생각나게 하는 분위기였다.
책상 앞에 한 명의 여성이 앉아 있다. 이전에 미츠코가 이야기한 직원이겠지.
코지가 구두를 벗고 객실로 올라서니 여성은 견학 오셨나요 라고 물었다. 코지가 그런데요 라고 대답하자 여직원은 방명록을 내밀었다. 코지는 이름을 적당히 기입하고 직원에게 돌려주었다. 연락처는 적지 않았다. 여직원은 방명록을 받아 들곤 이쪽이 교실입니다 라며 복도 안쪽을 가리켰다.
여직원이 안내할 생각이 없는 듯 해서 코지는 혼자서 교실로 향했다. 복도를 끝까지 걸어가니 안뜰 비슷한 곳에 맞닥뜨렸다.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되어 돌아서려는데 뜰처럼 생긴 곳 저편에 방이 보였다. 방에는 10여명의 남녀가 긴 책상을 가운데 두고 앉아 있다. 모두 찻잔이나 접시를 손에 들고 붓을 움직이고 있다. 학생들이었다. 방을 교실로 쓰고 있는 것이다.
코지는 학생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정원목 사이로 방 모습을 살펴보았다.
방 안쪽에 책상이 하나 놓여 있다. 그 자리에 한 명의 남자가 앉아 있다. 시마즈였다. 작업복을 입고, 손에 들고 있는 접시를 평가하려는 듯이 이리 저리 돌려보고 있다.
가슴 속에서 증오심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시마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군가가 부른 것 같았다. 2열로 나란히 놓인 책상 사이를 지나 창가를 향한다.
가려는 곳 끝에 미츠코가 있었다. 마루를 등지고 정원을 향해서 앉아 있다. 코지가 있는 곳에서 미츠코가 잘 보였다.
시마즈는 미츠코 옆에 앉았다. 미츠코의 손을 들여다 보며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츠코는 손에 든 접시를 보면서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곤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그 입가에는 요염한 미소가 떠올랐다.
코지는 무의식 중에 주먹을 꽉 쥐었다. 미츠코는 시마즈에게 호감 같은 것 가지고 있지 않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미츠코에게 미소를 받곤 득의 양양해 하며 미소로 답하는 시마즈를 보고 있노라면 살을 에는 듯한 고통이 가슴을 찔렀다.
갑자기 미츠코가 자세를 바꾸었다. 정좌하고 있던 자세를 풀고, 몸을 비스듬히 한다. 다리를 옆으로 하는 바람에 스커트 끝이 올라간다. 흰 허벅지가 들여다 보인다. 옆에 있는 시마즈 쪽에서는 미츠코의 다리가 잘 보일 것이다.
미츠코는 무릎을 시마즈의 허벅지에 접근시켰다. 시마즈는 상스럽지 못한 웃음을 흘리며 자세를 고치는 시늉을 하면서 자신의 다리를 미츠코의 무릎에 댔다. 책상 밑에서 두 사람의 몸이 부딪혔다. 미츠코는 얼굴을 들며 아래에서 위로 시마즈를 쳐다봤다. 시마즈도 미츠코를 내려다 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얽힌다.
그 때의 미츠코를 코지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곳에 있었던 여자는 미츠코가 아니었다. 적어도 코지가 알고 있는 미츠코는 아니었다.
미츠코는 스스로 남자를 유혹할 여자는 아니다. 그런 짓을 부끄러운 행위라고 생각하는 여자였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미츠코는 달랐다. 시마즈를 올려다 보는 시선에서는 관능적인 윤기가 흘렀고, 시마즈에게 대고 있는 무릎으로는 상대를 유혹하고 있었다. 보통 때보다 단추를 하나 더 풀은 셔츠로 하얀 가슴이 들여다 보임으로 인한 관능적인 분위기가 정원을 가운데 두고 있는 코지에게까지 느껴져 왔다.
미츠코를 건드리지 마.
코지는 마음 속으로 외쳤다. 불에 데인 것 같은 고통이 온몸을 자극하며 차츰 차츰 마음을 초조하게 만든다. 저건 연기다.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은 거짓인 것이다. 그렇게 알고는 있었지만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얼마가 흘렀는지 모르지만 학생이 시마즈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서로 쳐다보고 있던 두 사람의 시선이 풀렸다. 동시에 코지는 숨을 크게 내뱉었다.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있었다.
시마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섰고, 미츠코 또한 같은 모습으로 접시에 붓을 대고 있었다.
코지는 꽉 쥐고 있던 주먹을 놓았다. 손바닥에는 촉촉하게 땀이 나 있었다. 굉장한 힘으로 꽉 주고 있었던 모양이다.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남아 있다.
다시 한번 코지는 방을 바라보았다. 시마즈는 다른 학생에게 그림 그리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시마즈는 걸려들 거다. 코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확신이었다.
교실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렸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여하튼 지금은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시마즈가 자기에게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확인하고, 미츠코는 다음 단계의 행동을 개시했다. 저녁에 자주 외출하기 시작했다. 이웃사람들에게 남자가 생겼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때까지 미츠코가 밤에 집을 비우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직업이 있었으면 사교관계로도 술을 마시는 기회가 있었겠지만, 일을 하지 않는 미츠코가 밖에서 술을 마시는 기회란 1년에 한번 정도이고, 있었다 해도 학생 때 친구와 만나는 정도였다. 그런 걸 주 2, 3회는 외출하게 되었다.
귀가는 택시를 이용했다. 일부러 집 앞까지 타고 와서 마중 나온 코지와 말다툼을 하는 일도 있다. 코지는 미츠코의 불륜을 야단쳤고, 미츠코는 코지에게 헤어져달라고 졸랐다. 심야의 조용한 주택가에 두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물론 연극이었다. 이 모든 것이 미츠코에게 남자가 생겼다는 걸 알리기 위한 계획이었다.
계획한 대로 이웃에 사는 사람들은 미츠코가 바람이 났다고 믿고 있는 듯 했다. 보통 때라면 현관 앞에서 코지를 만나면 반갑게 이야기를 걸어주던 옆집 여자가 코지를 피하게 되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총총히 집으로 들어가버린다. 아침에 쓰레기를 버리러 가면 쓰레기 집하장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주부들이 종종걸음으로 흩어져버린다. 동네에서의 소문은 코지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전파되는 듯 했다.
도예교실 쪽에도 실수는 없었다.
미츠코는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에게 차 마시러 가자고 유도했다. 이야기를 좋아하고 입이 가벼울듯한 여성을 골랐다. 처음에는 도예에 관한 이야기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 등 실없는 대화였으나, 속속들이 알게 되면 이야기는 사람들의 소문으로 옮겨갔다. 내용은 한결같이 교실의 누구와 누구는 사이가 안 좋다든가, 그 사람과 이 사람은 사귀고 있다는 등 인간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시마즈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녀들은 시마즈와 미츠코의 관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왔다. 시마즈 선생은 미츠코 씨를 좋아하나 보다든가, 교실 밖에서 만난 적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교실에서 두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미를 갖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미츠코로서는 그런 걸 물어주길 바라고 차 마시러 가자고 한 것이었다. 생각했던 대로의 전개에 쓴웃음이 나온다. 미츠코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대답을 입에 올렸다. 확실한 관계는 아니지만 있는 것 같은 냄새를 풍기는 것이다.
그녀들과 차를 마시고 돌아온 날 밤 미츠코는 코지에게 꼭 같은 말을 하곤 했다.
“모두 날 부럽다고 해. 부부 둘이서 돈 걱정도 없고,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고 있다. 그 위에, 연애도 즐기고 있다네. 아무런 부자유도 없고,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 거지”
도예교실에서 코지는 개인사업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애는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현실에서는 얼마 남지 않은 목숨으로 아들복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데”
“당신, 그래도 괜찮은 거야?”
코지가 물었다.
계획을 실행하게 되면 부정을 저질렀다는 오명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치정 끝에 살인사건까지 저지른 여자라는 오욕을 뒤집어 쓰는 결과가 된다. 아들의 복수라고는 하지만, 당신은 그래도 괜찮은 거야.
미츠코는 잠시 놀란듯한 표정을 지으며 금방 머리를 젓는다.
“난 어떻게 돼도 괜찮아. 어떤 소리를 들어도 좋아. 스가루의 복수만 갚으면, 그걸로 만족이야”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목소리다. 미츠코는 목숨뿐만 아니라 모든 걸 다 바쳐 복수를 하려는 각오인 것이다.
미츠코는 잠시 침묵 후에 되물었다.
“당신, 괜찮아?”
쓸쓸한 듯 그래서 기대고 싶어하는 모습이다. 코지는 입술을 지긋이 씹으며 테이블 저편에 서 있는 미츠코의 손을 잡았다. 힘껏 잡아주는 것으로 물음에 답을 했다. 미츠코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시마즈로부터 유혹의 손길이 뻗쳐왔다. 미츠코와 술을 한잔하면서 천천히 도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한다. 도예교실에 나간 지 두 달이 지났다. 이 정도가 되면 시마즈가 미츠코를 호텔로 유혹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코지는 미츠코와 함께 시마즈와 밀회할 호텔을 찾기 시작했다. 몇 군데인가 돌아본 뒤에 옆의 도시인 요네자키시에 있는 그랜드 비스타 호텔을 선택했다. 역에서 자동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고급호텔이다. 영국풍 건물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다.
주말에 미츠코와 함께 그 호텔에 묵었다. 현장이 될 방을 미리 조사해 둘 필요가 있었다. 방은 더블베드, 저녁식사는 룸 디너를 부탁했다. 시마즈와 미츠코가 만날 장면을 그대로 준비했다.
목욕실이나 베드의 위치, 방에 있는 비품을 체크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흉기가 될 디너 나이프였다.
디너에 쓰이는 식기나 기타 용기는 모두 프랑스의 유명 브랜드였다. 방에 요리를 갖고 온 뽀이에게 좋은 식기를 사용하네 라고 말을 하자, 뽀이는 좋은 식기로 맛 있는 요리를 즐기시라는 오너의 생각입니다 라고 답을 했다.
다음날 백화점을 들러 호텔에서 썼던 것과 동일한 나이프를 구입했다. 집에 돌아와서 금방 사가지고 온 디너 나이프를 다이닝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런 거로 정말 사람을 죽일 수 있어?”
미츠코는 새로운 나이프를 사방으로 돌려가며 쳐다보았다. 코지는 나이프를 손에 들고 밝은 불에 비춰보았다.
“응, 죽일 수 있어”
빛에 반사되어 칼날이 은색으로 빛난다.
뉴스에 나오는 칼을 사용한 살상사건의 경우, 흉기는 사시미 칼이나 서바이블 나이프 같이 칼날이 길고 예리한 것이 많다. 그에 비하면 디너 나이프는 칼날이 짧다. 디자인도 둥글게 되어 있어 미끄러지기 쉽다. 미츠코가 살상능력을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인체의 구조를 잘 알고 있는 코지가 볼 때는 살상능력유무는 관계없었다. 피부표면에서 장기에 다다르는 길이만 있으면 사람은 죽일 수 있다. 개인의 체격관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피부표면에서 심장까지의 길이는 평균 10 센티 전후. 디너 나이프 킬 날의 길이는 대충 10 센티. 죽이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그러기엔 조건이 있었다.
심장이나 폐 등의 장기는 늑골에 싸여서 외부로부터 보호받고 있다. 사시미 칼이나 서바이블 나이프는 끝이 뾰족해서 칼 날이 피부에 박히게 되면 찌르던 힘으로 심장을 관통한다. 끝이 뭉툭한 디너 나이프의 경우, 그렇게 되기가 어렵다. 나이프의 끝이 늑골에 닿았을 경우, 뼈의 방해를 받아 심장까지 갈 수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죽음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는 뼈와 뼈 사이를 정확하게 나이프로 찌르지 않으면 안 된다.
미츠코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보면서 코지에게 물었다.
“어디를 찌르면 되는 거야?”
코지는 테이블 건너편에 않아 있는 미츠코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기하고 여기 사이야”
늑골의 5번과 6번을 쓰다듬는다. 심장은 그 안에 있다.
미츠코는 코지가 만졌던 장소를 한참 동안 확인하는 듯 하더니 나이프를 손에 들고 코지가 가르쳐 준 장소에 칼날을 대어본다.
“여기?”
가슴으로 칼날을 향한 채 코지를 본다.
코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여기구나”
미츠코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전화를 올려놓은 곳으로 향했다. 전화대 밑에서 전화번호부를 꺼낸다. 미츠코는 코지에게 나이프를 건네며 전화번호부를 가슴에 안았다.
“이걸 가슴이라고 생각하고 찔러 봐”
코지는 놀라서 미츠코를 쳐다보았다. 진지한 눈초리가 코지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어느 정도 힘으로 찔러야 할지 알고 싶어서”
코지는 시선을 돌렸다.
“지금 하지 않아도 되잖아”
언제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다. 단지, 미츠코의 시선을 피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오명이나 욕도 모두 뒤집어 쓰겠다고 하는 미츠코의 각오를 알았을 때 자신도 마음을 정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나이프를 들고 있는 미츠코를 보는 건 역시 괴로웠다.
그러나, 미츠코는 물러설 줄 모른다. 코지의 손을 잡고, 부탁해 라고 조른다. 코지는 주저하면서 일어섰다.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있는 힘껏 나이프로 전화번호부를 찌른다.
쿵 하는 큰 소리가 나며 미츠코가 비틀거린다.
“괜찮아”
뒤로 넘어지려는 미츠코의 등을 잡아준다.
나이프는 전화번호부에 2 센티 정도의 깊이를 만들었다. 미츠코는 의외라는 듯 찢어진 부분을 살폈다.
“그렇게 강하게 찔렀는데도 요것밖에 들어가지 않네. 생각보다 힘이 더 필요하네”
요리에서 부엌칼을 사용할 경우, 톱을 사용하는 경우처럼 잡아당기며 자르는 경우는 있어도 찌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수술에서 사람 살에 메스를 대어본 경험이 있는 코지는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람 살에 칼날을 꽂아본 경험이 없는 미츠코가 그걸 알 리가 없다.
“그렇구나, 몸 전체로 부딪칠 정도의 힘이 필요한 거네”
코지는 전화번호부에서 나이프를 빼서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 나이프를 이번에는 미츠코가 집어 들었다.
“상당히 많은 피가 흘러나오겠네”
칼날을 손가락으로 쓰다듬는다. 나이프를 주시하는 미츠코의 눈을 보며 코지는 등줄기에서 오한을 느꼈다. 어두운 정념에 휩싸인 눈. 이런걸 사람들은 살의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코지는 미츠코로부터 강제로 나이프를 뺏어 들었다.
“보통 사람들은 많은 피를 볼 기회가 거의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를 보기만 해도 동요한다고. 죽일 생각으로 칼을 들고 덤비던 범인이 방어상처만 보고도, 무서워서 도망가는 경우도 적지 않아”
“방어상처?”
미츠코가 묻는다. 코지는 가해자의 공격에 저항하다 생긴 상처를 말하는 거야 라고 설명했다.
미츠코는 그래요, 라고 중얼거리며 코지에게 미소를 보낸다.
“난, 피를 본 것만 가지고 무서워서 도망가는 일은 안 할 테니 안심하라고”
미츠코는 코지에게 전화번호부를 내밀었다.
“이번에는 당신이 갖고 있어봐”
말하는 대로 전화번호부를 받아 든다.
“준비해”
전화번호부를 가슴에 안자 미츠코는 몸 전체로 부딪쳐왔다. 다리에 힘을 주고 충격을 받아낸다. 전화번호부를 보니, 코지가 만들었던 구멍 옆에 또 다른 구멍이 생겼다. 미츠코가 찔러서 만든 흔적이었다. 코지가 만든 것보다 깊이가 얕았다.
“다시 한번”
미츠코는 코지가 말릴 틈도 없이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허둥지둥 전화번호부를 가슴으로 끌어안았다. 미츠코는 먼저보다 더한 힘으로 코지에게 부딪혀왔다. 찌르곤 빼고, 빼곤 찌르고를 반복한다. 그 충격을 받아내는 코지의 이마에 땀이 배어났다.
“미츠코, 이제 그만 해”
미츠코는 그치지 않았다. 뭔가에 홀린 듯이 전화번호부에 나이프를 마구 찔러댄다.
미츠코의 끔찍한 표정에 숨을 멈췄다.
“이제 그만 둬”
우격다짐으로 미츠코로부터 나이프를 뺏는다.
미츠코는 투덜투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다. 잘 들어보니,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조금만 더 라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코지는 알지 못했다. 조금만 더 힘이 필요하다는 뜻인지, 조금만 더 그대로 하게 해달라는 말인지, 아니면, 복수를 완수할 때까지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는 의미인지 짐작할 수가 없다.
괴로웠다. 자신이 미츠코를 대신하고 싶었다. 어찌할 수 없는 슬픔과 괴로움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코지는 전화번호부를 바닥에 내던지며 미츠코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미츠코의 야윈 등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미츠코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떨림은 점차 오열로 바뀌어 통곡이 되었다. 미츠코는 코지의 어깨를 잡고 큰소리로 울었다.
(다음으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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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
살인 연습
내가 당사자라면
정말 상상이 안갑니다.
현실에서 이런 상황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하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아 휴 ! 사람 마음이 한을 품는다면. 이렇게 모질고 독할수 있을까?
실수의 살인이 있는가 하면 . 계획적으로 모의연습 까지하면서...
다음날은 미소 유혹을하는.. 아구구
五月飛霜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조금은 그렇지요?
그런데, 어느 한 면으로 보면 아주 이해 못 할 일만은 아닌 듯 하기도 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