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고명섭 지음 『니체극장』
니체극장
저자는 대학생때 니체가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후 ‘차라’)를 읽고 다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보수적인 성향과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80년대 시대는 한 청년을 안주시키지 못했고 민주화 운동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30대가 넘어 접하게 된 각종 니체의 해석서들은 니체를 사랑과 평화, 자기극복의 전도사로 묘사하고 있었다. 저자는 청년 시절 읽었던 니체 이미지와 다른 견해를 보고 답답증이 일었다고 한다. 하여 니체 전체를 자신의 눈으로 보고 이해하고 싶은 욕망을 가졌다고 한다. 저자는 본업인 기자 생활을 꾸준히 하면서 2007년부터 니체 전작을 읽기 시작하고 글을 썼고, 이를 모아 2012년에 책을 냈다고 한다. 이 책은 현재 8쇄를 찍고 있을 정도로 800여 페이지 벽돌책으로는 꾸준히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다.
저자는 니체를 한마디로 말한다. ‘니체의 사상은 약이자 독이다’. 니체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이후 니체의 유행이 사라진 적은 없었다. 독일의 하이데거와 프랑스의 푸코나 들뢰즈, 데리다도 니체의 산을 넘어야 했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융의 분석심리학도 니체에 빚진 바가 많았다. 독일 정부는 제 1차 세계대전때 ‘차라’ 15만 부를 제작해 전선으로 향하는 군인들에게 나눠주었다. 일부 청년들은 이 책을 가지고 알프스 산맥에 올라 자살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니체의 언어는 자기 극복의 의지를 다지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전쟁과 지배, 인종주의를 찬양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니체의 전모를 극장 무대에 연극을 올리듯이 책에 썼다고 한다. 저자는 독자가 니체의 전모를 책 속에서 느끼기를 원한다. 니체를 제대로 소화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기를 원한다. 니체의 모놀로그를 본 독자의 가슴은 보기 전의 그 것에 비해 분명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의 니체
20대부터 니체를 잊을 만하면 읽어 왔던 나도 이렇게 니체의 전모를 담은 책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내내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생각보다 글은 어렵지 않게 읽혀졌다.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은 니체를 꼭 체험해 봐야 한다. 니체처럼 그렇게 불쌍하고 그렇게 불꽃처럼 산 이는 드물다. 그는 철학 학자가 아니다. 철학자다. 세상에 의문을 품고 죽을 때까지 이에 맞서 싸운 이가 니체다. 물론 이 책을 읽고 니체를 다 알았다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모는 파악이 된다. 니체를 더 알고 나의 체험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재독 삼독이 필요할 것이고, 이후 니체의 저작물들을 차근차근 읽어가면 될 터이다. 어렵다면, 주위 벗들과 같이 읽어보길 권한다. 최근 나도 몸이 아프고 삶의 의욕이 저하되는 것을 많이 느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니체도 그랬는데, 나라고 못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니체가 불쌍했다. 또한 니체가 피로써 쏟아낸 아포리즘은 내 가슴을 후려치는 것이었다. 마치 짱짱하게 추운 어느 날 두껍게 얼어붙은 호수 바닥을 도끼로 내려치고, 거기에 난 구멍에 내가 패대기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니체의 광기의 언어가 살아 움직이는 빛이 되어 연이어 나를 내려치고 있었다.
니체 정신의 핵심
저자는 ‘니체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충실하게 해독하고,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라’고 한다. 해서 나는 이렇게 봤다. 두 가지다. 하나는 위버멘쉬. 나에게 의미와 재미를 주는 기존의 규범과 가치, 의식과 은유를 벗어 던지고(신은 죽었다), 이어 따라오는 반동으로서 우울과 권태와 불안을 극복하고 자기극복과 자기창조의 원리로서 권력의지를 가지고 초인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나에게 사회적인 의미가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여력이 한 20년 정도인가? 보령 초인의 삶이라 칭하자. 끊임없이 공부하고, 죽는 날까지 내 업에 임하매 sbuside, tapering 정신으로 살고자 결심해 본다.
다른 하나는 니체가 정신을 놓기 직전에 쓴 자서전 『이 사람을 보라』에 나오는 이야기다. ‘나의 제자들이여 나는 홀로 가겠다! 너희도 각각 홀로 길을 떠나라! 내가 바라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나를 떠나라. 그리고 차라투스트라에게 맞서라!’ 사실 이 때 니체는 조광증으로 광기의 상태였다. 당시 니체는 현실은 비참했다. 사실 그를 중실히 따랐던 사람은 피터 가스트 밖에 없었다. 그를 아는 사람은 모두 떠난 상태였다. 언론계나 학계에서 그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사후 수백 수천만의 니체주의자들이 나온 것을 보면 그의 아포리즘은 공언이 아니게 되었다. 나는 이 것을 이렇게 해석했다. 스승이 뛰어나면 제자들은 그를 신으로 세운 다음, 본인들은 제사장이 된다. 이제 제자들은 스승의 위대함을 자신들의 이권다툼으로 악용한다. 기독교의 예수와 불교의 싯다르타, 이슬람의 마호메트는 스승이다. 신이 아니다. 그러나 우린 그들을 신으로 모셨다. 왜? 스승을 극복하고 넘어서지 못 하는 제자들이었기에 그들의 제자들에게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스승을 신으로 모시는 방법 밖에 없었을 것이다. 너무 거창한가? 그 신은 내 옆에 내 안에 있다. 나를 짓누르는 인간관계들이 그 것이고, 내 안에 들어있는 욕망과 욕정, 허망과 허울, 위선과 위악이 그 것이다. 니체무대에서 주인공이 객석의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는 것 같다. 신을 버려라! 나 조차도!.
책 익는 마을 원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