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셍트, 압셍트(Absente) 외 1편
김밝은
조각나버린 기분이 울부짖는 날
설마,
약간의 운과 좋은 날씨를 원할 뿐*이었던 거야?
아르테미시아 압신티움…
순진한 초록 따위 잊어버려,
주술을 거는 중이야
70도의 환상은
활활 타오르는 욕망이어서
유혹의 초록은 가슴에 안기기 전
입술에서부터 불타오른다지
악마의 이름에 메마른 가슴을 적시면
귀 한쪽을 자르지 않고도
불멸의 작품 하나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서
눈으로 먼저 황홀해진 후
오래전의 무릎 위에라도 걸터앉아
Death in the Afternoon!**
*영화 <포스 오브 네이쳐>의 대사 중에서
**헤밍웨이가 압셍트로 만들어 즐겨 마셨던 칵테일로, 그의 소설 제목과 같음
꽃나무와 아이들*
- 이중섭
근심만 올라앉은 어깨를 정오의 그림자가 툭툭 치며 간다 새들의 잔소리가 많아졌다 조금 더 견뎌야 한다
사는 일은 여전히 절벽 앞이다 대문 여닫는 소리가 날 때마다 가슴을 부여잡고 멀리 있는 얼굴들을 허공에 그리면 귤꽃 향기가 났다
보드라운 숨결이 얹어진 그리움을 그리다 더 가난해진 손을 뻗으면 비웃기라도 하듯 세찬 비를 퍼붓고 손바닥만 한 은지를 펴다가 퉁퉁 부은 마음으로 바라보면 바다는 여전히 깊고 아득해서 또 서러웠다
절대적이고 적대적인 세상의 벽 앞에서도 꿈꾸듯 귤나무에 꽃이 피고 손끝에서 아이들은 알몸으로 재잘재잘 오르내린다
만질 수 없는 얼굴을 어루만지고 싶어 억장이 무너질 때, 건너지 못하는 바다를 향해 꽃향기 날아오른다 뛰어내린다
그토록 다정했던 한 평 반**의 시간을 그리워하며, 더 그리워하며,
*이중섭의 그림 제목
**이중섭이 1년여 간 가족과 함께 살았던 제주의 방 크기
김밝은
2013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술의 미학 자작나무숲에는 우리가 모르는 문이 있다.
시예술아카데미상, 심호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