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선 무궁화로
이월 셋째 화요일이다. 새벽녘 잠을 깨 아파트단지 이웃 동의 꽃대감이 가꾸는 꽃밭에 피는 복수초를 글감으로 시조를 한 수 남겼다. “산자락 부엽토를 즐겨서 자라는데 / 탐이 나 안아와서 도심 속 분에 채워 / 휴면기 겨울 보내며 문안하듯 살핀다 // 잎줄기 사그라져 흔적이 없더니만 / 새봄에 움을 틔워 꽃대를 밀어 올려 / 망울진 봉오리에서 노란 꽃잎 펼친다” ‘업둥이 복수초’
꽃대감은 아파트단지 뜰에 가꾸는 여러 꽃을 유튜브에 소개하며 여가는 보낸다. 친구에게 산자락에 피던 복수초 봤다고 하니 그 꽃을 가꿔보고 싶다고 해 작년 봄 미산령에서 몇 포기를 캐와 전한 바 있다. 여름 이후 잎줄기가 사그라져 겨울을 넘겨 꽃대가 솟으면서 노란 꽃을 피웠다. 봄이 오는 길목 매화가 피어 꽃소식을 전해왔는데 초본에서 피는 꽃으로는 복수초가 기다려졌다.
올겨울은 예년에 비해 날씨가 포근하고 비가 잦다. 어제 우수는 절기에 걸맞게 비가 졸금졸금 내렸는데 이튿날인 이월 셋째 화요일에도 비가 예보되었다. 강수량은 미미하고 바람이 세차지 않을 듯해 아침 식후 산책을 나섰다. 오는 주말 다녀올 서울행 열차표는 일전 예매해두었으나 연이어 대구에 예식장으로 가야 할 일도 생겨 열차표를 끊어두어야 할 듯해 창원중앙역으로 향했다.
집에서부터 걸어 창원천 상류로 가니 냇물이 넉넉히 흘러 여름 장마철 같아 보였다. 창원대학 캠퍼스로 들어 운동장 가장자리를 따라 걸으니 누가 나를 불러 걸음을 멈추고 되돌아보니 문학 동아리서 뵙는 지기였다. 사림동 주택에 사는 공직에서 은퇴한 분으로 산책을 나와 잠시 밀린 안부가 오갔다. 열차표 예매 후 부전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타야 해 오래 머물지 못하고 작별했다.
창구 역무원에게 일요일 대구행 새마을호를 예매하고 곧 출발하는 경전선 무궁화호는 한림정까지 끊어 탑승했다. 진례터널을 빠져나간 열차가 진영역에 멈췄다가 다시 미끄러져 간 한림정역에서 내렸다. 사실 열차에서 내리기 전 객실 안에서 잠시 갈등이 생겼다. 열차표는 한림정까지였지만 원동이나 물금으로 내려가 강변을 따라 걸어 구포까지 걸어볼까 하다가 마음을 거두었다.
이용 승객이 적어 한적한 한림정 역사를 빠져나가 들판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창원 북면에서 대산 강가를 거쳐 김해 생림으로 뚫는 도로 공사 현장을 지났다. 경전선 철길과 화포천 습지에는 높다란 주탑을 세워 쇠줄이 걸쳐지는 사장교 공법이었다. 어디선가 흘러온 물길이 들녘을 지나면서 화포천으로 흘러드는 수로에는 봄날에 내가 머위 순을 뜯었던 언덕이 보이기도 했다.
드넓은 한림 들녘 벼농사 뒷그루는 복합 영농이라 비닐하우스 딸기와 양파와 마늘이 자랐다. 시야에 들어온 무척산과 낙동강 건너 밀양 일대 낮은 산에는 옅은 안개가 끼었다. 물류 창고를 겸한 공장에서 제작된 창호는 대단지 신축 아파트 현장으로 옮겨가는 듯했다. 들판을 지나 강둑으로 오르자 술뫼 둔치 생태공원과 유장하게 흘러가는 낙동강 물길이 뒷기미에서 밀양강을 만났다.
술뫼에서 전원생활을 누리는 지인을 찾아가니 반갑게 맞아주었다. 텃밭에는 봄을 맞은 채소들이 자랐다. 실내로 들어 차를 들면서 근황 안부를 나누었다. 지인은 유유자적한 농막 생활을 영상에 담아 유튜브로 내보는데 구독자를 날로 늘려갔다. 지인과 헤어져 둔치 자전거 길을 따라 걸어 파크골프장을 거쳤다. 궂은 날씨임에도 동호인들이 여럿 나와 잔디밭에서 공을 겨누어 날렸다.
가동을 거쳐 느티나무가 선 일직선 둑길을 더 걸어 유등으로 갔다. 강 건너는 밀양 명례와 수산이 드러났다. 유등배수장을 지나니 비닐하우스에는 당근이 파릇하게 자랐다. 농민들은 예전에 많이 짓던 수박 농사에서 당근으로 바꿔 길렀다. 유청마을 한식뷔페에서 도로 공사 인부들 틈에 끼어 식판을 받아 점심을 해결했다. 유등 종점에서 출발해 창원역으로 가는 2번 마을버스를 탔다. 24.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