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김박은경
버려진 붉은 소파를 보았다
어디서 영업을 끝냈는지
저마다의 요철을 맞추며
최소의 공간만 남기려고
최선을 다하려 애를 쓰는데
인조벨벳은 함부로 눌려서
만신창이의 꿈이라도 되는 듯
녹아 뭉개지는 자리마다
무엇이 얼마나 뜨거웠기에
버틸 수 없이 무거웠기에
소파(搔爬)는
긁을 소에 긁을 파를 쓴다
온통 빗살무늬로 가득해
드문드문 운명이 내다보이는데
거기 앉아서 긁고 또 긁고
우연한 절정 같은 것을
바란 적도 없었을 텐데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고
두 번 다시 불가능하다고
빙글빙글 피어오르는 연기를 따라
무연해지는 일이라고
슬픔이 뭔지도 모르고
아픔이 뭔지도 모르고
반드시
가벼워졌겠구나
마취가 덜 풀려 어지러운 채로
울렁울렁 꽃향기를 맡으며
주저앉아 울고 싶은 마음 대신
국밥 먹으러 간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8월호 발표
김박은경 시인
서울에서 출생. 숙명여대, 홍익대 산미대학원 졸업. 2002년《시와 반시》에〈감전〉외 4편을 발표하며 시문단에 데뷔. 저서로는 시집으로『온통 빨강이라니』(문학의전당, 2009), 『중독』(문예중앙, 2013), 『사람은 사랑의 기준』(여우난골, 2023)과 산문집 『홀림증』(케포이북스, 2012), 『비밀이 없으면 가난해지고』(소명출판, 2021)이 있음.
[출처] 소파 - 김박은경 ■ 웹진 시인광장 2 023년 8월호 신작시 □ 2023년 8월호 ㅣ 2023, August ㅡ 통호 172호 ㅣ Vol 172|작성자 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