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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건우가 다연을 데리고 간 곳은 다름 아닌 영화 시사회 장이었다. 꽤 눈에 익은 연예인들도 많이 보이고 아직 상영전이라 그런지 시사화징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다연은 낯설은 풍경에 건우의 뒤에 딱 숨어 건우를 따라 종종걸음으로 지정된 자리로 향하며 건우를 향해 투정부리듯 말했다.
“이게 뭐에요!”
“뭐가.”
“시사회장에 오면 온다고 미리 말해줬어야죠! 제 꼴을 좀 보세요!”
다연의 투정에 건우가 무표정한 시선으로 다연을 위 아래로 쭉 훑었다. 건우는 검은 트레이닝복 차림에 검은 패딩 그리고 하얀 운동화를 신은 다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며 자리에 앉았다. 다연은 입을 삐죽거리며 건우의 옆에 털썩하고 앉았다. 온통 예쁜 옷들로 꾸며 입고 온 사람들로 가득찬 공간에서 선글라스를 낀 캐주얼한 차림의 건우조차 다연과는 매우 대조되었다. 다연은 역시 난 놈은 난 놈이라는 생각을 하며 다리를 달달 떨었다. 짜증이 나면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다연의 좋지 못한 버릇이었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수수하게 차려입은 탓인지 건우가 눈에 띄진 않았지만 훤칠한 키에 선글라스를 꼈어도 이미 영화배우 남건우임을 알아본 주위 사람들과 기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곧 영화가 시작되었다. 주위가 깜깜해지고 스크린이 깜빡거렸다.
한참동안 영화에 집중하던 건우가 문득 옆자리에서 너무나 조용한 다연이 이상했는지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다연이 고개를 꾸벅꾸벅 거리며 졸고있었다. 요게 도움 되라고 시사회장까지 데리고 왔더니 졸아? 건우는 입까지 벌리고 몽롱하게 졸고 있는 다연이 문득 괴씸하게 느껴졌다. 이걸 깨워 말어? 건우가 다연을 깨우려고 손을 들다 멈칫 꽤 헬슥해진 다연의 눈가를 쳐다보았다. 거무튀튀하게 내려온 다크서클. 건우는 다연의 머리를 쥐어박으려던 손을 내려 다연의 머리위로 얹었다. 건우의 부드러운 손길에도 다연은 그저 꾸벅꾸벅 졸기 바빴다. 불편하게 머리를 까딱거리는 다연을 보며 건우가 살짝 힘주어 다연의 머리를 끌어다기자 자연스레 다연의 머리는 건우의 어깨위로 떨어졌다. 건우가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사회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영화에 집중하고 있는 듯 건우와 다연에게 관심을 두는 이는 없었다. 건우는 흠, 하고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다연의 머리위에 있던 손을 거두고 팔짱을 꼈다. 건우는 긴 다리를 꼬며 다시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으아, 잘 잤…….”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선 다연이 기지개를 펴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에 힐끔, 건우의 눈치를 보았다. 영화의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초반에 몇 십 분을 보다 자기도 모르게 잠들었으니 말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영화가 끝나고 인터뷰가 시작된 후였다.
“오늘 본거 내일모레까지 감상문 작성해와. A4용지 단면기준 1장 내외로.”
“네?!”
다연이 놀라 되물었지만 건우는 대꾸하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상영관을 나가려는데 건우의 앞에 누군가 다가섰다. 긴 머리에 푹 눌러 쓴 모자. 그리고 브라운 계열의 짙은 선글라스. 다연이 건우의 앞에 선 여자를 쳐다보자 여자의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오랜만이네 건우씨.”
“이 민주.”
선글라스를 벗자 드러나는 민주의 얼굴을 보며 다연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장실에서 들었던 낯설지 않은 이름 이 민주. 그 이 민주가 연기자 이 민주일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다연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거의 1년간 TV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녀가 시사회장에 불쑥 나타난 것이었다. 그녀의 등장에 몇몇의 기자들의 건우와 민주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건우는 다급하게 민주의 선글라스를 다시 씌우며 민주의 어깨를 감쌌다. 민주를 데리고 급하게 빠져나가려던 건우가 문득 다연이 떠올라 뒤를 돌았다.
“먼저 가 있어. 비밀번호는 문자로 보내 줄 테니까.”
다연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건우는 민주를 데리고 빠르게 시사회장을 빠져나갔다. 그 뒤를 몇 명의 기자들이 따랐다. 그리고 그 주위에 남은 기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남건우랑 이 민주 아직도 만나는 사이였어?”
“설마…… 그때 스캔들 터지고 나서 이민주가 남건우 팬들한테 당한 게 얼만데. 성화가 하도 심해서 결국 이 민주 방송 쉬었잖아. 당시에 하던 드라마도 하차하고. 시청률도 반 이상 뚝 떨어졌었지 아마?”
“하긴, 그렇게까지 당했는데…….”
Dramatic Love
[4885]
다연은 휴대폰 화면에 찍힌 숫자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무작정 사라져버린 건우 때문에 혼자 건우의 집으로 돌아온 다연은 도어락에 건우가 찍어준 숫자를 꾹꾹 눌렀다. 곧 띠리릭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다연은 집 안으로 들어가 테이블 위에 손에 잔뜩 들고 있던 팬레터들을 쏟아 부었다.
“추격자야 뭐야, 비밀번호가 4885게…….”
다연은 괜히 입을 삐죽거렸다. 멋대로 시사회장으로 데려올 때는 언제고 갑자기 툭하고 사라져버리다니. 갈 때는 건우의 차를 타고 편안하게 갔다면, 올 때는 혼자 버스를 타고 그 먼 거리를 와야 했다. 이제 겨우 세시가 좀 넘었을 뿐인데, 몹시 지치는 다연이었다.
소파에 쓰러지듯 벌러덩 누워있던 다연은 팬레터들을 정리하기위해 일어났다. 깔끔한 것을 추구하는 건우 때문에 갖가지 팬레터들을 크기대로, 모양대로 정리하는데 다연이 오고부터는 죄다 자기 몫이되었기에 팬래터를 만지작거리는 다연의 얼굴이 귀찮음으로 가득차 있었다.
“얼음 왕자님?”
다연이 팬레터 앞에 쓰인 문구를 읽었다. 얼음 왕자라……. 킥킥. 다연이 웃었다.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얼음 왕자라기 보단 쌀쌀맞은 재수탱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라 다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팬레터들을 정리해서 하나둘씩 바구니로 옮겨 담는데, 다연의 눈에 띄는 팬레터가 있었다. 분홍색, 하늘색, 연두색. 예쁜 색깔의 팬레터들 사이로 보이는 검은색 팬레터. 눈에 띄라고 검은색으로 보냈나? 다연이 중얼거리며 팬레터를 집어 들었다. 표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테이블 아래에 놓인 바구니를 위로 올렸다. 까만 팬레터들만 모아둔 칸이 있었다. 다른 팬레터들은 다들 모양대로 차곡차곡 함께 들어가 있는 반면에 검은색 팬레터들만 따로 모아둔 것이었다. 문득 호기심이 발동한 다연은 검은색 팬레터 봉투에 손을 갖다 댔다. 그리곤 손톱으로 살살 긁기 시작했다.
“몰래 보고 다시 붙여놓으면 되지 뭐.”
불안한 마음에 조금 멈칫하는 다연은 이내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기 합리화를 했다. 손톱으로 살살 뜯으려던 다연의 의도와는 다르게 빳빳한 종이봉투는 끝을 조금 뜯어내자 손쉽게 떨어졌다. 손으로 봉투를 열려던 다연은 따가운 느낌에 앗-하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끝에서 피가 몽글몽글 맺히더니 곧 손가락을 타고 죽 흘러내렸다. 새빨간 피를 보며 다연이 인상을 찡그렸다. 검은색 봉투 안에는 커터 칼심이 일렬로 붙어져 있었다. 다연은 피가 나지 않는 손으로 안에 있는 내용물을 꺼냈다.
“뭐…야…….”
다연이 입을 꾹 다물었다. 다연의 손에 들린 것은 칼로 마구 긁어놓은 듯 한 건우의 사진이었다. 봉투 안에는 누구의 머리카락인지 모를 털들이 가득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안티 팬인가. 다연은 갑자기 섬뜩함을 느꼈다. 연예인들이 하나둘씩 안티 팬이 있다는 것도 알고, 이렇게 테러까지 감행하는 안티 팬들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 본적이 있었다. 모 가수는 안티 팬이 건넨 음료를 먹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소리도 들었었지만, 이렇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자신에게로 향하는 화살은 아니었지만 다연은 괜히 등줄기가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섬뜩한 기분에 다친 손을 치료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손가락에서 테이블위로 뚝뚝 떨어지는 피를 쳐다보고 있는데, 도어락소리가 들려왔다.
“멍하니 앉아서 뭐하…….”
지친 기색으로 현관으로 들어서던 건우가 다연을 쳐다보다 다연의 손에서 뚝뚝 흐르는 피에 질겁을 하고는 재빠르게 구두를 벗어버리곤 다연의 앞으로 다가왔다. 검은 봉투와 커터칼심들, 그리고 아무렇게나 긁혀있는 자신의 사진과 테이블 위로 흩어져있는 머리카락들. 건우의 시선에 다연이 당황한 듯 테이블 위를 치우려고 하자 건우가 다연의 팔을 잡았다.
“그게…… 그냥 너무 특이해서 살짝만 보려고 한건데……. 죄송해요.”
변명거리를 찾으며 눈을 굴리던 다연은 곧 고개를 푹- 숙이고는 건우에게 사과를 건넸다. 한참동안 건우의 대답이 없자 다연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제 물건을 허락도 없이 손 댄 탓에 건우가 많이 화가 났을 것이라 생각한 다연이었다. 허락도 없이 자신의 팬레터를 읽으려 했고, 게다가 그게 하필이면 안티 팬이 보낸 것이니, 자신의 치부라도 들킨양 자신이었더라도 무척 화가 날것이라고 생각했다. 순간 건우가 손을 들었고 다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따뜻한 손이 다연의 팔목을 잡았고 다연은 따뜻한 건우의 손길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담담한 표정으로 건우는 테이블 위의 티슈를 몇 장 뽑아 다연의 손가락을 감쌌다. 따끔한 고통에 다연이 인상을 찌푸리자 건우가 방에서 구급상자를 꺼내왔다.
“피가 나면 치료를 해야지 이 멍청아.”
“…….”
건우는 상처난 다연의 손가락 위에 조심스레 밴드를 붙였다. 베인 손가락이 살짝 욱신거리긴 했지만 상처가 많이 깊은것은 아닌 듯 싶었다. 건우의 말에 다연은 아무대꾸도 할 수 없었다. 당연히 화를 낼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듯 다연의 다친 손가락을 걱정해주니, 당황했다고 해야 할지 어색하다고 해야 할 지.
“죄송해요 진짜.”
“됐어. 내가 치울 테니까 그만 가 봐.”
“…… 괜찮아요?”
다연도 모른다. 방금 자신이 물은 것이 검은 팬레터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먼저 집으로 가도 되는 것 때문인지. 그러나 건우는 전자의 경우라고 생각한 듯싶었다. 테이블 위의 검은 봉투에 머리카락과 칼심들을 모아 쓰레기통으로 버린 건우가 딱딱한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티도 팬이야. 관심받고있다는 증거지. 연예인으로서 제일 무서운 게 뭔 줄 알아?”
그 순간, 다연은 묘하게 그의 목소리가 젖은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무관심.”
건우의 집을 나선 다연은 회사로 향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다연을 김 사장이 반겼다. 연습생주제에 아무렇지도 않게 사장실 소파에 털썩-하고 앉는 다연을 보며 김 사장이 혀를 끌끌 찼다. 너 같은 연습생도 없어 임마. 감히 사장이 앞에 있는데……. 그러나 다연은 전혀 개의치 않고 코코아를 외쳤다. 김 사장은 웃으며 벨을 눌러 비서에게 코코아와 커피를 시켰다. 곧 김 사장의 여비서가 들어와 코코아와 커피를 테이블위로 올려놓은 후 인사를 하고 사장실을 빠져나갔다. 코코아를 홀짝이던 다연이 서류를 확인하고 있는 김 사장을 향해 물었다.
“혹시 사장님이랑 아빠 활동할 때도 안티라는 게 있었어요?”
갑작스런 다연의 질문에 김 사장이 보던 서류를 정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연에게로 다가왔다. 푹신한 소파에 앉은 김 사장은 양손을 깍지 끼며 말했다.
“있긴 있었지? 근데 왜?”
“그냥요…… 그땐 어땠어요? 막 쥐 시체 이런 거 보내고 그랬어요?”
“그땐 그 정도로 심하진 않았지, 그들도 예전엔 그냥 사람이었어. 근데 세상의 모든 생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하듯이 안티라는 것도 지금은 달라졌지 많이. 물론 논리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서 한 사람을 싫어한 다기보단 비판하는 팬들도 꽤 있어. 근데, 이유도 없이 싫어하고, 또한 이유가 있더라도 무작정 사람을 깎아내리고 저주하는 아주 나쁜 사람들이 있지. 게다가 요즘 인터넷이 발달하다보니까 익명성이 보장 되는 게 많잖아. 가면을 쓰게 되면 그 어떤 존재보다 잔인해질 수 있는 게 인간이야.”
사장님의 기나긴 말에 다연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악마. 인간의 탈을 쓴 악마. 다연은 그런 악마에게 계속 시달렸을 건우가 떠올랐다. 그의 감정없는듯한 표정과 눈빛. 그건 혹시 그 안에 또 다른 감정을 숨기기 위한 가면이 아니었을까?
“너도 데뷔하면 겪을 수 있는일이야. 남일 아닌 거 알지?”
김 사장이 장난스레 웃었다.
“근데, 어때? 요즘 건우 어시 하는 일은?”
갑작스런 화제의 전환에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던 다연은 김 사장을 쳐다보았다. 그리곤 속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하나둘씩 밖으로 토해내기 시작했다.
“말도 마세요! 진짜! 만날 부려먹기만 하고 이거해라 저거해라, 어찌나 입은 까다로운지 조금만 달아도 안 먹고 다 버려요! 저 지금까지 연기에 대해 배운 건 하나도 없다고요! 만날 커피배달만 하고. 진짜 무슨 생각으로 저 그 재수탱이한테 맡긴 건데요!”
사장님을 만나면 멱살잡이라도 하려고 마음먹은 듯 분노를 토해내는 다연을 보며 인자한 웃음을 짓는 김 사장이었다. 그 미소마저 악마의 미소처럼 보였던 다연은 답답함에 당장이라도 사장님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다른 사람으로 소개시켜달라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제대로 굴리긴 하나보네. 말 잘 들어. 어디 가서 그런 선생 못 구한다. 너?”
“줘도 안 해요.”
“툴툴거리긴. 근데 너 요즘 네 아빠 못 봤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선생님 어시하고 집에 가면 만신창이가 돼서 침대에 쓰러지는데, 아빠 가게 닫고 올 때까지 어떻게 기다려요? 그냥 뻗지.”
“너희 아빠 요즘 네 얼굴 본지 오래됐다고 우울해 하더라. 딸 바라기 이대훈이가 조만간 우리 기획사 털어 버릴 거라던데?”
다연이 경악했다. 좋게 말해 딸 바라기, 나쁘게 말해 딸 바보로 통하는 아빠였다. 무남독녀 외동딸인 덕택에 엄마에게도 받아보지못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아빠를 통해 받고 자란 다연이었다. 대훈이 아침에 가게로 나가는 시간은 6시30분. 다연이 한참 꿈나라를 헤매고 있을 시간이었고, 대훈이 밤에 가게를 닫고 집으로 오는 시간은 거의 11시,12시쯤. 다연이 달콤한 꿈을 꾸고 있을 시간이었다. 며칠째 아빠의 얼굴을 본 기억이 없던 다연은 기획사를 털어버린다는 아빠의 말이 단순 장난이아니라 충분히 실천하고도 남을 위인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냐?”
“네. 오늘은 일찍 마쳤는데 아빠 가게라도 찾아가봐야지. 나중에 뒷감당을 어떻게 해요? 갈게요!”
다연은 빠른 걸음으로 사장실을 나갔다. 다연이 나간 뒷모습을 보며 김 사장이 턱 끝을 매만졌다.
Dramatic Love
다음날 다연은 종종걸음으로 건우의 집으로 향하는 골목을 돌았다. 눈에 보이는 카페간판에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카페 문을 열고 몸은 들어가지 않고 머리만 빠끔히 내미는 다연이었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다연은 테이블을 닦고 있는 태준을 발견했다.
“아저씨!”
“어? 다연이 왔냐? 오늘은 왜 이렇게 느긋해?”
다연은 자랑스레 어깨를 으쓱했다. 손에 들린 봉지가 꽤 묵직해 들고 있는 팔이 아파오자 다연은 태준에게 인사를 남기고는 다시 건우의 집으로 향했다. 매일 달려오느라 못 봤던 골목길의 풍경들이 하나하나 정겹게 다가왔다. 건우의 연락이 먼저 오지 않았지만, 오늘은 기분 내서 건우에게 맛있는 떡볶이나 해주겠다고 마음먹은 다연이었으나 머지않아 발길을 멈춰야 했다. 빌라 오피스텔 앞에 서성이는 낯선 인물 때문이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까만 선글라스를 낀 체로 오피스텔 앞을 왔다갔다 거리는 수상한 남자. 다연은 무의식적으로 현관뒤쪽에 숨었다. 우편함 앞에서 서성거리는 남자를 보며 다연은 숨을 꼴깍 삼켰다. 혹시 안티 팬? 다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후우- 하고 뱉었다. 가장 의심되는 확실한 증거로 그 남자의 손에는 검은색 봉투가 들려있었다. 어제 본 것과 똑같은. 다연은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그대로 그 남자를 향해 달려가 그의 멱살을 쥐어 잡고는 손에 들고 있던 봉지를 남자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악! 뭐야!”
“네가 남건우 안티 팬이지!”
다연이 무작정 남자의 등에 매달려 남자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그리곤 헤드락을 거는 자세로 계단을 올라갔다. 다연이 남자의 머리를 겨드랑이에 끼고 2층 건우의 집 앞에 도착하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거 놔!”
“놓긴 뭘 놔? 넌 오늘 죽었어!”
밖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란에 건우가 현관문을 열었다. 건우의 눈에 보이는 건 다연과 다연의 밑에서 얼굴이 잔뜩 빨개진 한 남자. 건우는 현관에 기대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레 문이 열리고 등장한 건우를 보며 다연이 남자의 목을 더욱 꽉 조르며 씩씩하게 말했다.
“선생님! 안티 팬 잡았어요!”
“아니라니까!”
“넌 조용히 해!”
다연이 주먹으로 남자의 머리통을 쳤다. 건우는 물끄러미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런 건우의 반응에 다연이 소리쳤다.
“아니에요! 맞아요! 이놈이 검은색 편지봉투 들고 우편함 앞에 있었다니까요! 것도 이렇게 수상한 차림으로!”
“아니야.”
“네?”
“걘 내 사촌동생이거든.”
그의 말에 다연은 자기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있던 팔을 스르륵 풀었다. 겨우 다연에게서 벗어난 남자는 켁켁거리며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잔뜩 얼굴이 빨개진 남자는 연신 기침을 했다. 건우는 들어와. 라는 말을 짧게 남기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조용한 복도에 둘이 남게 된 다연과 건우의 사촌동생. 다연은 연신 기침을 하는 남자를 민망하게 바라보다 건우를 따라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혼자 남은 남자는 어이없다는 식으로 다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자신도 안으로 향했다.
★민주의 등장_! 두둥_!
★다연이가 헛다리 짚는데는 선수인가봐요......풉
★개인카페 윳타네 일상 http://cafe.daum.net/23cmd
첫댓글 다다연아.?
부끄러움은 왜 우리의 몫인가요......두둥_!ㅋ3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