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네피림’(창 6:1-4)과 하나님의 아들들은? 외계인?(조덕영 박사의 성경 난제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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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피림’은 외계인?(성경 난제 해설)
성경의 난해 구절 "네피림"
'네피림'(Nephilim)은 성경의 난해한 구절 가운데서도 가장 난해한 구절 가운데 하나이다. 성경은 '네피림'에 대해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에 태어난 자손(창 6:1-4)이요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다고 했다(창 6:4). 외계인 음모설과 같은 황당한 이야기까지 나오는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해석의 불명확함이 이 구절의 해석을 쉽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누구를 말하는 가를 살펴보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누구인가(창 6:1-2)에 대해 학자들마다 견해가 일치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들을 타락한 천사들로 보는 견해(필로, 요세푸스, 순교자 저스틴, 외경 에녹서, 암브로스, 델리치, ICR의 헨리 모리스, 폰 라드 등)가 있다.
하나님의 아들들을 타락한 천사들로 보면 사람의 딸들은 타락한 인간의 딸들이 된다. 이 견해의 장점(증거)은 (1)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를 언급(욥기 1; 38:7; 시 29:1; 89:7)한다는 점 (2) 유다서 6-7절이 이 사건을 말한다는 점(Stewart Custer) (3) 그리스도는 천사들이 결혼하지 않는다고 하였지 할 수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다는 점 (4) 칠십인 역 성경이 그렇게 해석한다는 점 등이 있다.
하지만 이 견해의 약점(반론)도 만만치 않다. (1) 천사들이 악했다면 왜 인간이 홍수로 벌을 받았는가 (2) 천사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이 구절 앞에서 언급된 적이 없다 (3) 영적 존재인 천사들의 결혼과 출산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지금도 그런 일이 있어야 하나 천사의 후손에 대해 성경이 말하지 않는다. 천사는 단순히 섬기는 영이며(히 1:14) 가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기는 하나 실제 육체적 몸은 아니다. (4) 이들이 대홍수 이전에 모두 멸족하였다고 여겨지는 데 어찌 홍수 이후 네피림의 후손이 아낙 자손(민 13:33)으로 다시 등장하는 지 해석할 수 없게 된다는 점 등이 있다.
둘째, 하나님의 아들들을 경건한 셋 계열로 보는 견해(Leupold, Stigers 등)가 있다.
이 경우에는 사람의 딸들이 가인 계열의 딸들이 된다. 이 견해의 장점(증거)은 (1) 이 구절은 분명 신령한 측과 신령하지 못한 측의 결혼이라는 점 (2) 이 구절이 말하는 죄는 모세 오경 전체의 주제가 된다는 점 등이 있다.
이 견해의 약점(반론)은 (1) 성경의 다른 곳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경건한 셋 계통으로 해석한 곳이 없다는 점과 (2) 노아 시대 경건한 계열은 셋 계열이 아니라 오직 셋의 후손 중 노아 뿐이었다는 점 등이 있다.
셋째, 하나님의 아들들을 왕이나 귀족들의 아들들로 보는 견해(아람어 탈굼)가 있다.
이 경우 사람의 딸들은 평민들의 딸들을 말하게 된다. 이 견해의 장점(증거)은 (1) 성경에서 행정 관리나 통치자들이 신으로 묘사된다(출 21: 6; 22:8, 9, 28; 시 82:1, 6)는 점 (2) 왕들이 때로 신의 아들로 불려졌다는 점 (3) 창세기 대홍수 이후의 '네피림' 구절을 설명하기에 유리하다는 점 등이 있다.
이 견해의 약점은 (1) 본문이 왕의 아들들을 표현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과 (2) 세상 역사와 달리 성경의 일반적 해석은 결코 왕의 아들을 신의 아들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 반론으로 제시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네 번째로 영적 해석(영해자들)이 있다.
이 경우 사람의 딸들은 불신자들의 딸들을 말한다. 이 견해의 장점(증거)은 (1) 성경 전체의 모형론(模型論)적 해석에 맞는다는 점 (2) 해석의 무리한 부분이 별로 없다는 점 (3) 홍수 이후 하나님의 아들들이 언약 관계의 사람들을 가리킨다(신 14: 1; 32: 5; 시 73:5; 호 1:10)는 점 등이 있다.
약점(반론)은 (1) 구체적 단어를 너무 애매모호하게 해석한다는 점과 (2) 믿는 이의 아들들과 불신자의 딸들의 결혼이었다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표현 대신 그냥 믿는 이의 아들들이라는 단순 명료한 단어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점 등이 있다.
그렇다면 어떤 해석이 바른 해석일까?
위와 같이 성경 신학자들도 사람마다 이 문제에 대해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일치된 결론을 도출해 내지 못했으므로 어떤 해석이 바른 정답인지 결론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성경에는 네피림이 누구인지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성경 구절이 하나 있다. 바로 앞에서 소개한 바로 노아 홍수 이후 등장하는 네피림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은 네피림을 보았다고 보고하고 있다(민 13:13). 이들은 네피림의 후손인 '아낙 자손'이라 하였는 데 키가 장대한 거인족이었다(신 13:32, 신 9:2; 수 15:14; 삿 1:20 참조). 전 세계적 홍수였다면 방주에 탄 노아 가족 말고는 모두 사망했어야 하는 데 홍수 이후 가나안 땅에 다시 등장한 네피림의 후손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지 아니면 달리 해석해야 하는 것인지 딜레마에 빠져버리게 된다. 또한 믿는 이의 아들들이 어떻게 가나안 땅에 네피림의 후손들로 번성하였는지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는 하나님께서 통일된 해석법을 주시지 않는 경우에는 일단 성령의 사람들이 기도하고 연구하여 제시한 모든 수용 가능한 해석법을 존중하면서 좀 더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일반 설교자나 해석자들도 함부로 단정하지 말고 가능한 해석법을 모두 제시하고 열어놓아서 독자들이 성경의 신비로움을 스스로 깨닫고 접근하도록 만드는 것이 보다 더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라 여겨진다. 즉 혹시 이 구절을 설교하고 싶다면 설교자가 위에 소개한 네 가지 가운데 자신이 특별히 확신하는 해석법이 없다면 이들 네 가지 각 해석법(장단점)을 모두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더 나은 해석법은 없을까? 이들 네 가지 모두 다 가능한 해석일 수 있겠으나 굳이 선택한다면 첫 번째와 두 번째 해석이 그나마 좀 더 많은 탁월한 신앙의 선배들과 학자들이 선택한 해석법이므로 설교자 개인의 확신이 없다면 이 두 가지 해석법의 장단점을 소개하면서 이들 두 가지가 좀 더 성경적 해석법임을 압축하여 가르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완벽한 해석은 이 세상에서는 영원히 희미하게 남아있을 지도 모르겠다(고전 13:12). 성경은 이렇게 단순한 책이 아니요 신비한 초월적 계시의 책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성경 속에서 성도들이 겸손한 마음 가운데 끊임없이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깨닫기를 재촉하는 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평택대 <과학과 신학> 교수)
[출처] 성경 ‘네피림’(창 6:1-4)과 하나님의 아들들은? 외계인?(조덕영 박사의 성경 난제 해설)|작성자 창조의 작은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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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안 읽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젊을때 읽었던 성경은 건성 건성 띄엄 띄엄 대충 대충 읽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앞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후반에는 다 잊어버리고 기억이 안나니
궁금증도 별로 없었죠.
2년여 전에
성경읽는 방법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무조건 속독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해하고,
모르는 것은 형광펜으로 줄 긋고 통과한다
그것을 반복 재반복 계속한다.
너 댓번 그러다보니
앞에 내용과 뒤의 내용이 상충되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여섯 일곱번을 되풀이 하니
순서는 왔다갔다 할 지라도...
천지창조와 야곱의 열두아들 그리고 애굽의 열가지 재앙들 등등이 기억되기 시작했습니다.
열번정도 읽고나니
지명때문에 헷갈리고 어지럽습니다.
그래서 성경지도를 사다가
읽으면서 성경지도를 들여다 봐가면서 성경을 읽습니다.
열서너번째 읽으니
대충 어디쪽에서 일어난 이야기며
아람이 어느쪽이고 에돔이 어느쪽에 있고
하란과 우르가 어디라는게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물론
하루에 20여장의 성경을 읽는 시간보다
주석과 인터넷검색하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립니다.
이제는
인터넷 검색에서 충분한 해답이 못된다고 판단되면
목사님과 같이 머리를 싸매고 해석해보기도 합니다.
복잡한 구절들은
한가지의 해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의 견해들이 있는 겁니다.
그 견해들은
성경공부를 하는 저에게는 소중한 것이지요.
골치아픈 구구단 다음에는 사칙연산
그고개를 넘어서면 인수분해가 기다립니다
인수분해를 넘어서면 싸인 코싸인 탄젠트
미분적분이 또 넘어가야 할 산입니다.
공부하다가 미친놈이 될 수도 있다면서
중간에 때려치면
돌대가리가 되고 사회에서 낙오가 되는 거죠.
저는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성경을 할 수 있는데까지 배우고 싶네요.
지금은 어렴풋이 정리되는게...
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셔야 했는지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그 복잡하고 힘든 율법들을 폐지하고, 더욱 더 보완하셨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성경공부를 하려면 끝이 없겠지만 말입니다.
성경공부는 맘먹기에 따라서
일반공부보다 더 재미 있습니다.
첫댓글 뭐든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지요.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나 기록자들의 경험과 표현을 거쳐 기록되었음을 간과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