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매 낙홍
이월이 하순에 접어든 셋째 수요일이다. 새벽녘 잠을 깨 베란다 창밖을 내다보니 정병산으로는 여름 장마철 같은 운무가 걸쳐져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엊그제 일요일 저녁부터 봄을 재촉할 비가 내렸다가 그치질 반복하고 있다. 강수가 예보되어도 평소 교류하는 문우들과 트레킹을 나서기로 한 날이다. 동행하는 일행이 다섯인데 승용차 한 대로 움직이기는 빗길 운전이 염려였다.
주선을 맡은 한 문우가 신경이 쓰여선지 교외가 아닌 시내 일원으로 짧은 동선을 제안해 마음이 놓였다. 생활권이 각자 다른 문우 넷은 우산을 받쳐 쓴 채 도지사 관사를 개조한 도민의 집 앞에서 만났다. 설을 쇤 안부가 오가고 빗속에서도 나설 걸음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도청 뜰로 나가 수목에서 피는 꽃들을 완상하고 물향기 공원을 거쳐 창원대학 캠퍼스를 거닐자고 했다.
우리의 일과 시작은 직장인들 출근이 채 끝나지 않은 시간대였다. 도청 후문으로 가서 도청 정원 경내로 드니 매화꽃이 피어 빗방울을 맺혀 있었다. 공무원과 회사원은 일터로 가는데 우리는 도청 뜰의 수목에서 피는 꽃을 완상했다. 옹글고 비틀어져 고목이 된 모과나무는 잎눈이 트고 있었다. 잎이 돋아 자랄 새순 가지에서 피는 모과꽃은 은근히 예쁜데 아직 낌새를 알 수 없었다.
기상청 날씨 정보는 남녘 해안으로 지나는 강수대가 아침나절이 더 세찰 거라 했는데 예보대로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렸다. 그러함에도 일행들은 우산을 받쳐 쓴 채 넓은 도청 뜰을 거닐면서 매화와 산수유꽃을 완상하면서 사진을 남겼다. 정문으로 통하는 중앙대로를 건너 연못 주변으로 가니 백매와 청매가 만발했고 분홍 매화는 개화가 더뎌 망울이 부풀어 꽃잎을 펼칠 기세였다.
연못가 묵은 갈대는 색이 바랜 채였는데 새움이 솟아 세대교체가 되려면 아직 시간이 더 걸려야 할 듯했다. 연못 가장자리 가지가 휘어져 드리워지는 한 그루 능수 복숭아는 꽃눈이 부푸는 즈음이었다. 도청 본관과 이어진 신관 뒤뜰로 가니 한 그루 홍매는 만개해 비를 맞아 일부는 꽃잎이 지고 있었다. 저무는 홍매를 완상하고 도립미술관으로 들어서 비가 긋도록 기다리기로 했다.
시니어 그룹에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차와 간식을 들었는데 널따란 실내를 찾은 손님은 우리 일행뿐이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문우들과 한동안 차담을 나누다 전시실을 찾아 미술 작품을 차근차근 구경했다. 3층의 ‘보통 사람들의 찬란한 역사’ 기획전에서는 해방 전후 활약한 화가들의 명화들이었다. 나혜석, 이중섭, 이우성, 박수근을 비롯해 민중 판화가 오윤도 만났다.
미술관을 나와 창원중앙역 역세권 상가로 향하면서 물향기공원 산책은 줄이고 창원대학 동문으로 들어 공학관 앞뜰에 피는 매화와 산수유를 살폈다. 높이 자란 가지에 솜털이 부푸는 목련 망울은 연방 꽃잎을 펼치려고 했다. 구내 학생회관 식당으로 올라 젊은 친구들 틈새 식판을 들고 배식받아 점심을 같이 들었다. 신학기 개강 이전이라 한산한 휴게실에서 차를 마시고 나왔다.
북문 근처 학생 생활관 앞 청운지로 가니 수면에는 가는 빗방울이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웃한 사격장에서는 동호인들이 쏘아대는 총소리가 들려왔는데 비 오는 날은 기압이 낮아져 가깝게 들렸으나 날씨가 맑으면 상공으로 퍼져 민원이 되지 않는다고 들은 바 있다. 우리는 천변을 따라 주택가 골목에서 발길을 멈추고 담장에 드리워진 영춘화와 분재처럼 가꾼 매화를 완상했다.
영춘화를 살핀 후 창원의 집으로 드니 기와지붕과 토담을 배경으로 자라는 홍매는 개화가 절정을 지나고 있었다. 만개한 홍매는 비바람에 꽃잎이 지상으로 떨어져 물 위에 비친 그림자처럼 보였다. 고택 뜰을 거닐다가 퇴은정으로 올라 남은 사과를 깎아 먹고 솟을대문을 나왔다. 창이대로를 건너 창원천 천변으로 가니 불어난 냇물이 흘렀고 조팝나무는 움이 트면서 꽃이 피려 했다. 24.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