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군가의 창문을 찍을 뿐이다
그리 대단한 성과는 아니다, 그는 말했다*
그의 사진 속에는
흰 눈을 맞고 서 있는 우체부가 있고
빨간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여자가 있고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눈처럼 녹기 쉽고
유리처럼 부서지기 쉬운 표정을 지으며
그의 사진 속에서
피사체는 왜 어둡고 흐릿한지
눈 내리는 거리는 얼마나 자욱한지
빗방울이 맺힌 유리창은 어떻게 어룽거리는지
들릴 듯 안 들릴 듯하고
보일 듯 안 보일 듯하고
표면과 심연을 구별하기 어렵고
명료한 것이 갑자기 흐려지거나 불투명해지기도 하는
렌즈 또는 유리창 너머의 세계
그의 사진 속에서 유리는
때로 액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리라는 물질 덕분에
그는 세계를 낯설게 보는 법을 배웠다
피사체를 안전하게 보존하는 법을
그러니 남의 집 창문이나 찍으며 한 생애를 보낸다 해도
후회하거나 주눅 들 필요는 없다
평생 뉴욕 이스트 10번가 작은 아파트에 살았던 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존경했다
또한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살아가는 즐거움을 알고 있었다
모든 일은 유리창 너머에서 일어나고 지나갔을 뿐
누군가의 왼쪽 귀를 살살 간지럽히는 게
사진의 목적이라는 그의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