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後漢)의 요청(要請)으로 북 흉노를 토벌(討伐)하는 선비족]
석 산 박 영 석
흉노와의 40년 전쟁에서 나라가 거덜 난 한나라. 국민은 4천만에서 2천만으로 반쪽이 나고,
백성들은 유랑민 신세로 전락하게 되고, 한무제까지 나라 꼴은 유지되었으나
죽고 난 후 또 왕망의 난이 일어나, 이를 쫓아낸 후한마저 거지꼴이라
북방 유목민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자,
후한은 선비족에게 북 흉노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AD85-91년 사이 선비족은 후한의 요청으로 북 흉노 토벌(討伐)을 시작하는데,
5-60만명에 달하는 막대한 인구의 북 흉노가 선비족으로 귀순 귀속한다.
이들 인적자원을 이용한 모용황은 342년 5만5천 군사로 고구려를 공격하여
심대한 피해를 입히게 된다.
이때부터 신라 경주에 적석목곽분이 출현한다.
중앙아시아와 동일한 방식이며 기마문화의 타임캡슐이라 할만하며, 중앙아시아제품이 무더기로 출현하고,
전멸로 알려진 흉노 출신 선비족은 회군 시 본대를 떠나 신라로 남하하여,
신라를 접수하여 지배세력 화한다.
후한으로 본다면 이이제이(以夷制夷) 위중국휘치(中國諱恥)를 하겠다는 것인데,
선비측의 수락을 받고 나니, 소문이 퍼지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 북 흉노의 투항이 물밀 듯이 쇄도한다.
그러자 선비로서는 생각이 달라져 불어난 몸집을 활용할 궁리에 빠지게 되는데,
5-60 만명이 갑자기 불어난 병력으로 손쉬운 침략전쟁(侵略戰爭)에 나서기로 한 선비족.
그러나 갑자기 투항한 북 흉노를 마냥 믿을 수가 없어 모용 선비족은 분리 작전으로 활용,
그냥 버려도 좋은 위험한 쪽으로 배치 한다.
그러나 흉노 출신 선비족으로서는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희망을 가지고 남하하여 신라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한편, 중원에서 전연(모용선비족)은 탁발선비족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고,
436년 북연마저 고구려에 전체 투항하는 일이 벌어진다(고구려 인구의 1/3수준).
세상만사 새옹지마라 길흉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사라. 이들이 모여서 승승장구하여 삼국을 통일하고,
중원(中原)대륙(大陸)을 175년간 통치(統治)하는 신라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