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중심은 평양이고 평양의
중심은 김일성광장이라고 한다. 그만큼 김일성광장을 중심으로 중앙당,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만수대의사당, 내각, 외무성,
교육성, 농업성, 무역성, 금속공업성을 비롯한 중앙기관들과 중앙여맹 등 많은 중요기관들이 밀집되어 있다.
또한 김일성광장 앞에는 중앙역사박물관과 중앙미술박물관이 있는데, 거기에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국보급 작품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다.
TV에서 북한의 김일성광장이 나올 때 광장 앞에 ‘백두의 혁명정신으로’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건물이 중앙역사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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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김정일 추모대회. 오른쪽으로 '백두의 혁명정신'이라는 간판이 걸린 중앙역사박물관이 보인다.
이곳은 매일 밤 11시부터 호위사령부 산하 군인들과 평양시 보안국 순찰대원들이 완전무장을 한 채 2시간 간격으로 순찰을 하는 곳이다.
중
앙역사박물관에는 권총을 찬 인민보안부 경비훈련국 산하 일개 분대병사들이 24시간 무장보초를 선다. 또 매 방마다 배당된 담당
관리원들은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의 참관시간이 끝나면 모든 중요 물품들을 금고에 보관하고 봉인을 한 뒤에야 퇴근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경비가 살벌하고 완벽하다고 하는 중앙역사박물관에서 2004년 4월쯤 금품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후에
판명되었지만, 범인은 하루 전날 낮에 먼저 박물관에 들어가 참관을 하며 탐색한 뒤 박물관 내 화장실에 들어가 잠복을 했다.
새
벽 1~2시쯤 이미 박물관 직원들은 다 퇴근했고, 보초병들도 출입문들을 다 봉쇄하고 졸고 있었다. 범인은 이를 틈타 화장실에서
나와 2층에 있는 금품 진열실에 들어가 고려와 신라시기 금불상 9개를 주머니에 넣고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어 오전 10시
30분쯤 참관을 마치고 나가는 것처럼 유유히 밖으로 빠져나갔다.
중심지이고, 무장보초들이 있고, 또 지금까지 도난사고가 한 번도 없었으니 담당 관리원은 안이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금품들을 금고에 보관하지 않고 그대로 진열장에 둔 채 그냥 퇴근했다. ‘설마’가 사람 잡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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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중앙역사박물관 내부 모습. 고구려 광개토왕비가 보인다.
담당 관리원이 출근해 아침 일정대로 독보(讀報ㆍ노동신문이나 당정책 문건을 읽는 일)에도 참가하고 간부들 방과 중앙 홀,
복도를 청소하고 나서야 자기가 담당한 방에 가서 진열대에 있던 금불상 9개가 없어진 것을 확인했다. 그가 이 사실을 당 조직과
경비초소에 통보한 것은 대략 오전 10시 40분쯤이었다. 이미 범인이 박물관 구내를 벗어나 종적을 감춘 뒤였다. 급히 박물관 모든
출입문을 봉쇄하고 평양시 인민보안국 수사국이 출동해 박물관 안에 있던 사람들을 수사했지만 헛수고였다.
도난당한
금불상 9개 중 6개는 모조품이었다. 이 6개는 원래 진품이 없었다. 나머지 3개는 진품이었는데, 일본에 있는 조총련을 통해
구입한 것으로 중앙역사박물관에 딱 3개 밖에 없는 고려와 신라시기 진품 불상이었다. 유리장 안에 진열되었던 진품 금불상 앞에는
‘일본 조총련에서 김정일에게 올린 선물’이라는 간판도 놓여 있었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김정일은 화가 나서 펄쩍
뛰면서 모든 검찰, 보위부, 보안부, 보위사령부 등을 총동원해서 무조건 찾아내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당국은 그날부터 즉시 평양시를
봉쇄하고 수색에 나섰으나 훔친 자는 이미 자기 집에 도착해 훔친 물건들을 안전장소에 묻어놓은 뒤 안도의 숨을 쉬고 있었다.
보위부·검찰소·보안부가 나서 범인 검거에 나서는 한편, 인민반을 통해 금불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면 신고하라는 회람까지
돌렸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그 후 6개월이 지나서 뜻밖에 국가과학원 자재상사에서 부원으로 근무하던 김모씨가
외화를 탕진하고 돈을 마구 쓴다는 신고가 국가과학원 보위부에 들어왔다. 신고자는 김씨의 친구. 김씨가 그 전에는 생활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는데 최근에 친구들을 자주 초청해 집에서 좋은 술과 고기를 대접하는 등 뭔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요즘 큰 돈벌이를
했냐”고 물었더니 취중에 김씨가 “하룻밤을 밝히면 하늘에서 돈이 떨어진다”고 했다는 말도 했다.
중앙역사박물관
도난사고로 긴장되어 있던 보위부에서 무작정 그를 잡아다가 고문을 했다. 그는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범행을 실토했다. 그는 범행
3개월 뒤 함경남도 무산군으로 출장을 갈 때 불상 9개 중 1개를 가지고 올라가 이전에 알고 지내던 무산군 사람을 통해 중국
사람에게 20만 달러를 받고 팔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골동품에 대해 아무 지식이 없었지만 그가 판 것은 신라시기
진품 금불상이었다. 북한에서 자재상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방방곡곡으로 출장을 다니기 때문에 그는 아무 의심을 받지 않고 무산군
국경지역에 가서 물건을 팔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돈이 많아지자 마구 탕진하다가 결국은 친구의 신고로 덜미를 잡혔다.
수
사 당국은 그가 묻어두었던 나머지 불상 8개도 찾아냈다. 수사 결과를 김정일에게 보고하자 김정일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라도
중국에 넘어간 불상을 무조건 찾아오라고 중앙당에 지시하면서 절도범과 판매에 가담한 자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가족 3대를 엄벌하라는
호령을 내렸다. 결국 김씨와 판매에 가담했던 4명은 사형됐고, 그들의 가족들은 14호 정치범관리소로 넘겨졌다.
한편
중앙당 39호실 사람들은 판매선을 추적, 중국 상해까지 가서 금불상을 구입한 중국 상인을 만났다. 그 상인은 원래 매매가격의
10배인 200만달러를 요구했다. 그게 안 되면 한국에 가지고 가서 팔겠다면서 버텼다고 한다. 결국 북한은 200만달러를 주고
불상을 찾아왔다.
이 사건에서 보듯 북한사람들 머리 속엔 ‘이제는 죽어도 사람다운 생활을 한번 해보자’는 강한 인식이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전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